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1화 (21/221)

〈 21화 〉 20. 빌어먹을 월요일

* * *

완벽하게 준비가 됐냐고 묻는 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아니오’ 뿐이다.

예방이나 준비란 것은 해도 해도 모자란 법이니까. 얼마만큼 많은 준비를 했든지 상관없이 현실은 더욱 커다란 벽을 들이밀어 오는 법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이라고 생각한순간 뚫리는 거야. 이 멍청아. 절대 방심하지 마. 방심한 놈이 1빠따로 뒤지는 거야.”

방심하면 죽는 다는 것. 이는 이미 여러차례 게임과 드라마, 소설 혹은 영화로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방심을 하지 않았더라도 죽는 놈들이 수두룩하지만.

“충분하지 않아. 전혀 충분하지 않다고.”

“아.. 예.”

가구들로 얼기설기 이어진 방책과 바리케이드 대용으로 마트 입구에 주차된 자동차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하진성은 내 말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좀비 새끼들이 파쿠르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자력으로 구축한 저 엉성한 방벽이 언제 뚫릴지 알 수가 없다.

기름도 끓여두고 혹여나 벽타고 기어오르면 떨어뜨릴 물건들도 잔뜩 쌓아 뒀지만 영 불안하다.

군기가 잡혔다곤 해도 여전히 담배나 태우며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양아치들과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겁먹은 모습을 보이는 여자들을 보고 있자니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후우...”

막상 이리 보니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오십도 채 안 된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곧 12시시가 되는 순간 ‘죽음의 월요일’이 시작될 텐데.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주말 동안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어디까지 통용될지.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몰려올지도 모르겠고 특수 좀비가 어느 정도로 많이 생겨날지도 알 수가 없다. 여기 어디 회귀자라거나 빙의자라거나 뭐 그런 소설 속 주인공스러운 인간이라도 한 명 있었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전원 재앙을 처음 맞이하는 이들뿐이다.

“애들은 확실히 주변 감시 중이겠지?”

“예. 몇 번이나 주의를 줬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었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결국 우린 오늘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기로 했다.

‘월요일’이 되는 순간, 그러니까 자정을 넘긴 그 순간부터 일반좀비들이 특수 좀비로 변하기 시작할 테고 일반좀비들도 지능과 흉포성이 월등히 높아질 수 있으니.

“후우...”

그나마 여성 진에서 각성자가 2명이나 더 나와 줘서 다행이다.

8명 중 각성자가 된 것은 단 2명뿐이지만 이 정도도 전체 통계로 봤을 땐 많은 편이니까.

2명의 새로운 각성자는 묘하게 적극적이던 황수민과 말 수가 굉장히 적은 이은혜라는 여자였다.

‘당장 둘 다 써먹을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놀랍게도 황수민은 전사나 아처, 파이터 같은 노멀 클래스가 아니었다.

무려 '메이지'라는 아예 없지는 않지만 제법 희귀한 직종이었는데 스킬 트리를 보아하니 원소 마법 중에서 하나를 파고드는 느낌의 직업이었다.

문제는 메이지의 직업 특성상 저렙일 때는 존나 쓸모가 없다는 것.

일단 초기 마나가 너무 부족해서 기본 마나 소모 6에서 7짜리 마법을 두 세 방 쏘면 쓸 모가 없어진다.

그나마 레벨이 높아지면 ‘마력 증가’나 ‘마나 회복 증가’ 같은 스킬들이 나오는 모양인데... 당장 4렙짜리 메이지에게 고차원적인 마법 전투를 바라선 안 될 것 같았다.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직업이다.

그래도 각성한 덕분에 스탯의 영향을 받아 여자의 몸으로 성인 남성의 힘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거기다 이은혜는 활 없는 궁수...’

궁수는 지극히 장비 의존적인 클래스였다. 활과 화살이 없으면 아처 클래스는 그냥 감시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만큼 장비 빨을 오지게 탄다는 소리다.

활이 없으면 사용 가능한 전투 기술이 제로라니. 정말 당황스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노멀 클래스인 전사는 쇠 파이프만 하나 쥐어 줘도 좀비 뚝배기 잘만 깨고 다니던데.

시력과 동체시력이 좋아지고 자력 이동기를 갖게 되긴 하지만 역시 각 잡고 제대로 싸우려면 활과 화살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활이 주어진다는 가정하에 일반 전사보다 궁수가 단일 화력이 더 높아지고 상대하기 껄끄러워지긴 하다만 가장 중요한 활이 하나밖에 없으니...

활은 하린이가 가지고 있던 것 1개뿐이고 그건 자연스럽게 김민준에게 주어졌다.

당장 4렙 따리인 이은혜보단 7렙인 김민준에게 주는 편이 효율적이니까. 활을 쥐어주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활이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다. 내심 은지와 하린이 같은 히든 클래스가 뜨길 기대했는데. 내 행운 666이 일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군.

“후우...”

아무튼 그리하여 각성자는 총 아홉.

나와 은지, 하린이 그리고 하씨 형제와 5렙 전사 김일우, 7렙 궁수 김민준, 4렙 메이지 황수민, 4렙 아처 이은혜.

여기에 비 각성자 33명. 총인원 42명이 전부다.

‘역시 사람이 더 필요해...’

마트를 방어할 인원이 부족하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장 월요일이 다가오니 죽어버린 박성오와 두명의 전사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먹고 마실 건 당장은 충분하니까 적어도 20명은 더 있었으면 좋겠어...’

60명은 넘어야 밤중에 빈틈 없이 경계를 설 수 있을 것 같은데.

42명이서 경계를 서고 있으니 곳곳에서 빈틈이 생긴다.

‘다이소에 자리 잡았다는 새끼들도 모조리 붙잡아 와야겠네...’

다이소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대략 10분.

가까운 거리다. 중간에 좀비만 없다면 오고 가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고.

‘당장은 오늘 밤을 넘기고. 낮에 접촉해 보자.’

저쪽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오늘 밤을 버티고 나면 우리와 합류할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야 아직 자정이 되지도 않았는데 좀비들이 하나둘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수를 줄여놓기 위해 분명 인근에 있는 좀비들을 죽일 만큼 죽였는데도 어디 숨어있었던 건지 곳곳에서 좀비들이 기어나온다.

“형님. 5분 남았습니다.”

“하아... 빌어먹을 월요일이 오는구나... 너도 이제 네 자리로 가서 대기해.”

“예, 알겠습니다.”

나와 은지, 하린이가 셋이서 마트 정문 쪽을 담당했다.

앞으로 5분 뒤, 저 미친 좀비들이 어찌 행동할지 지켜봐야 했다.

‘보자... 남은 좀비 기피제는 나와 하린이가 각각 1번. 은지가 2번 쓸 수 있고.’

황수민과 이은혜가 새로 각성자가 되면서 ‘퍼스트 킬’ 업적을 달성해 받은 게 2개라 도합 10번 좀비 기피제를 사용할 수 있다.

아쉽게도 마트에 있던 각성자 새끼들은 첫날과 둘째 날에 벌써 다 썼다고 한다.

멍청한 새끼들. 아끼지 않고 생각 없이 써버린 모양이다.

‘이 10번의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해.’

일단 황수민과 이은혜의 스프레이를 강탈하듯 받아 뒀다.

솔직히 저 둘은 내 하렘도 뭣도 아니고. 은지와 하린이와는 달리 그저 노예일 뿐이라 그런지 기피제를 빼앗는데 거리낌은 들지 않았다.

‘흐음... 2분...’

호흡이 거칠어진다.

손이 살짝 떨렸다. 나도 꽤 긴장했나보다.

“오빠.”

내가 긴장한 걸 눈치챈 은지가 손을 꽉 쥐어왔다. 고갤 돌려 그녀의 안색을 살피니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 또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하린이도 마찬가지였고.

“주인님, 우리... 살아남을 수 있겠죠?”

“물론이지... 솔직히 딴 놈들은 몰라도 우리 셋은 무조건 살아남을 거야.”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우린 살 수 있을 거다. 스프레이도 있고. 하다 안 되면 여기 인간들 전원 좀비 밥으로 바치고 도망가면 그만이지.

상황이 급박해지면 마흔 명가량의 생존자를 버리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문득 인신 공양 스킬이 떠올랐다.

‘역시 인신 공양 스킬을 찍어야 했을까...’

산 제물을 바쳐 업을 쌓고 신과 가까워진다는 요상한 스킬.

인신 공양하면 얻을 수 있는 이 ‘업’이라는 건 다른 스킬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재화의 개념이란 건 알겠다. 당장 심연관측 스킬을 쓰려면 업이 필요하니까.

허나 신과 가까워진다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선뜻 찍기 꺼림칙하다.

설명 란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가 너무 수상쩍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진짜 신이 맞는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나를 가지고 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클래스가 컬티스트인데... 어쩌면 인신 공양이야말로 내 클래스의 시작이자 끝과 같은 스킬이 아닐까?’

위기가 다가오니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내 선택이 정말 옳았는지 혹여나 잘못된 길에 접어든 건 아닌지.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신 공양을 찍어야 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직감을 따라야하나.’

이건 이성적인 판단이나 상황분석을 통한 추리 같은 게 아닌 그저 본능적인 직감인데. 인신 공양을 찍고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끌림을 나는 느끼고 있다. 내 마음 속의 불안감이 커져감에 따라 마치 스킬들이 자신을 선택하길 종용하는 기분이다.

‘다음 레벨 업 때는... 무아의 마안보단 인신 공양을 선택하는 게 이로울지도...’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징! 징! 징!

휴대폰의 알람이 일제히 울렸다.

드디어 12시가 됐다.

날짜가 바뀌고 월요일이 찾아왔다.

제발 오지 않길 간절히 빌었던 엿 같은 월요일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직장인일 때도 월요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 또다시 월요일이 왔음을 우리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렇게 12시가 지나는 순간, 좀비들에게 나타난 변화는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끔찍했다.

“우어어어아아!!!!!!”

“키아아아!!!!!”

“끼에에아아아아아아아!!!!!!!”

“빌어먹을...!”

좀비들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울음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푸화악!!!!

“시, 시발...”

“저, 저게 대체...”

수백 마리의 좀비들 사이로 몇몇 개체가 몸을 뒤틀더니 원래의 몸이 찢겨나가고 터져 나가며 기기괴괴한 모습의 특수 좀비로 바뀌었다.

마트의 옥상에서 본 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조, 좀비지네가...”

십 수 마리의 좀비지네가 몸을 뒤틀며 거리를 활보했고...

“주, 주인님... 저거... 저것들..”

하린이가 손가락질한 곳엔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체의 근육질 좀비들이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워, 워 보이...”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됐다는 특수 좀비. 멸망 3일차, 아직 인터넷이 될 때, 다운 받아둔 특수 좀비들의 정보들 중 유독 위험하다고 평가받던 녀석들이다.

“저기엔 빗치도 있고... 어... 저건 처음 보는 놈들이에요... 주, 주인님... 우리 어떡해요.”

좀비지네와 워 보이뿐만 아니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좀비들이 특수 좀비로 변해 포효를 내지르고 아직 생존자가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끔찍한 건 저 수많은 좀비들 대부분이 우리가 대기중인 마트를 노리고 있단 점이다.

쾅!

쾅!

쾅!!!

마트의 입구에 세워둔 방책을 무자비하게 내려찍는 거구의 워 보이들.

입구 앞에 세워둔 자동차가 놈들의 손에 뜯겨나가고 입구가 흔들리며 침입을 막기 위해 가져다 둔 가구들이 점점 뒤로 밀려나갔다.

그사이로 수십 개의 팔을 꿈틀거리며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좀비지네들까지.

“혀, 형님!!! 1층이 뚫릴 것 같습니다!!!”

“으아!!!! 젠장!!! 올라온다!!! 시발 기름 부어!!!!”

“지, 지네다!!!!”

사방에서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절망한 생존자들의 아우성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하하.. 하하하하...”

답 없는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의 준비는 다 뭐가 되는 거지?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나의 노력을 비웃듯 더욱 커다란 시련과 재앙을 몰고 왔다.

나름 대비한다고 했던 것들이 수백, 수천 마리의 좀비 때 앞에서 전부 부질없이 허물어지게 생겼다.

‘문제는 일반좀비가 아니야... 저 빌어먹을 특수 좀비들...’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저런 괴물들을 상대로?

저 많은 특수 좀비들을 상대로?

“오.... 오빠... 우리... 어, 어떻게 해요..”

“트, 틀렸어. 이런 상황에선... 도, 도망쳐요 주인님...”

둘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젠장... 스프레이를 지금부터 써야 하나...?’

당장 나와 은지, 하린이는 살고 봐야지.

스프레이는 총 10번 쓸 수 있으니까... 셋이서 6시간씩은 사용할 수 있다.

‘마트를 버리고... 차라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야할까...’

솔직히 식량문제 때문에 마트에 자리 잡은 거지 우리 셋 말고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

각성자 노예들도 써먹기 좋은것 뿐이지 소중하다거나 꼭 살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만약 서른셋의 일반인들의 목을 베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기꺼이 목을 벨 용의도 있다.

그때 우리의 눈앞에 알림이 떴다.

­­

[업데이트 완료!]

새로운 재앙의 일주일이 시작됐습니다!

부디 더욱 강화된 좀비들 사이에서 멋진 전리품과 경험치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업데이트 관련 세부 사항]

1. 변화한 좀비들의 습성.

좀비가 공격적이며 지능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좀비들은 다수의 인간이 모여 있을 때 더욱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또한 좀비들은 야간에 더욱 활발히 생존자를 추적하고 공격합니다.

끝으로 특수 좀비들 중 몇몇 개체는 기피제의 효과를 무시합니다!

2. 좀비 처치 보상 증가.

이제까지 경험치와 코인만 받으셨죠!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보상이 증가합니다.

특수 좀비는 이제 확률적으로 무기와 방어구, 장신구와 같은 아이템을 드랍합니다.

이때 드랍한 아이템은 보부상 NPC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3. 네임드 개체의 등장.

특수 좀비 중 조건을 충족한 몇몇 개체는 ‘네임드’로 진화합니다.

네임드 처치 시 확정적으로 더욱 큰 보상과 추가 능력치를 제공받습니다.

네임드 개체는 준 필드 보스로 취급되며 주위에 소소한 영향력을 행사 합니다

4. 보부상의 출현조건.

생존자 집단의 수가 10명 이상일 경우 보부상이 인근에서 확률적으로 출현합니다.

생존자 집단의 수가 100명을 초과할 경우 보부상이 근처에서 확정적으로 소환됩니다.

또한 플레이어가 보유한 코인이 1만 이상일 경우 보부상이 플레이어 주위에 출몰합니다.

­­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업데이트 내역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벽을 기어오르는 좀비지네를 죽이고 도망치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래, 시발... 이건 답이 없어.’

이 정도까지 미친 물량으로 쳐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상은 언제나 나의 예상 따윈 가뿐히 벗어나 버리는구나.

거대한 재앙의 폭풍 앞에서 이대로 모든 게 무너져 버리는 건가.

‘도망가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마트를 버리고 도주를 선택하려는 순간이었다.

­퓨웅!!!

마트 옥상의 한가운데.

밝은 빛줄기가 번쩍이며 벼락이 치긋 내려꽂혔다.

“저, 저건도 뭐야!!!”

“시, 시발!!! 이젠 빛나는 좀비냐고!!!”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는 그때, 빛이 사그라지며 그중심에서 웬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허름한 옷차림과 등산모를 깊게 눌러쓴 거지 같은 차림새의 나이를 파악할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의 남성.

사람보다 훨씬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던 그가 당황한 생존자들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자리를 깔고 앉았다.

“허어. 재앙이로군.”

자리 잡고 앉은 남자는 정신 나간 특수 좀비들이 비명을 지르며 기어 올라오는 와중에도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가방을 뒤적이더니 좌판을 깔고 물건을 꺼냈다.

‘저 새끼 뭐야...’

그가 꺼내 든 물건들은 전부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보였는데.

녹색 보석이 박힌 반지부터 푸른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요상한 카드까지 하나 같이 ‘아이템’ 같아 보였다.

그래, 게임에 나오는 그런 아이템 말이지.

“서, 설마...”

물건들을 좌판에 쫙 깔아둔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우리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마치 미리 정해둔 대사를 억지로 내뱉는 것처럼.

“아무리 커다란 재앙이 오더라도 내 임무는 변함이 없지. 상황이 많이 급한 것 같은데. 물건이나 좀 둘러보게 젊은이들.”

수천 마리의 좀비 앞에서 우리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거는 그는 ‘보부상’이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