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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4화 (24/221)

〈 24화 〉 23. 전투 종료

* * *

“끄으윽...”

양손바닥에 역 오망성이 그려졌다.

칼로 후벼 파 억지로 새긴 듯한 모양의 삐뚤빼뚤한 역 오망성.

이걸로 이제 촉수를 불러낼 때 손가락으로 오망성을 그려야 하는 귀찮음이 사라졌다.

“후우....”

그래도 만마의 낙인이 찍히며 느낀 고통에 비해선 덜 아팠다.

덕분에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빠... 방금 그거... 괜찮은 거 맞죠?”

“어. 괜찮아. 자꾸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그런데 은지야 내 이마에 뭐 흉터 같은거 없지?”

혹여나 이마에 낙인이 보이는지 물어 봤다. 요상한 낙인이 찍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껄끄러워할 테니까. 상대를 속이거나 선한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데 낙인찍힌 이마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되도록이면 아무 흔적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어... 아무것도 없어요...”

다행히 눈에 보이는 종류의 물리적인 낙인이 아니었나 보다.

내 영혼에 새긴 게 아닐까 싶다. 영혼에 찍힌 낙인이라니 두렵군...

그보다 나를 보는 은지의 눈빛이 너무 강렬한데... 애정이 듬뿍 묻어 있다.

“주인님, 진짜 괜찮은 거 맞죠?”

하린이도 걱정된다는 듯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내 비명 소리에 뭔 일이 난 건 아닌지 걱정한 모양이다. 그런데 하린이의 눈빛도 뭔가 강렬해졌다. 강한 열망? 욕정? 뭐 그런게 느껴진다... 둘 다 왜이러지? 진짜 내가 좀 이상해졌나?

“괜찮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난 진짜 멀쩡한데... 아무 문제없다.

분명 인신 공양 직후 신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기묘하고 기분 나쁜 감각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몸을 빼앗기거나 정신적으로 이상해지지 않았다.

카쉬낙스인지 뭔지 하는 그 악신은 그저 공양 받은 만큼 나에게 대가를 지급해줬을 뿐이다.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려거나 가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괴롭힐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냥하다고 느껴졌다. 왜일까. 분명 고통스러웠는데.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신의 손길은 자상했던 것 같다.

이런... 이건 뭐 스톡홀름 증후군 그런 건가? 영육이 카쉬낙스에게 저당 잡힌 상태라 뇌가 억지로 좋은 기억으로 미화시키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설마 인신공양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신과 연결되는 건 아니겠지...’

잘 모르겠다. 좀 더 죽여서 신에게 바쳐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관심을 안 가져 줬으면 좋겠네.’

솔직히 인간의 영혼을 맛있다고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신에게 과한 관심을 받아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단 말이지.

“아니, 그런데 오빠...”

“응?”

“뭔가 좀 많이... 잘 생겨진 거 같은데요? 흐음... 역시 자세히 보니까 확실히 느껴져요.”

“어? 갑자기?”

은지가 뭔가를 확인하듯 내 얼굴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잘생겨졌다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은지 녀석 공포 영화 매니아라더니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에서 섹시함을 느끼는 건가... 그건 좀 상당히 위험한 취향 같은데.

은지를 흥분시키기 위해 피를 뒤집어써야 한다니... 좀 힘들지도...

“음... 하린아.”

“네, 언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확실히... 뭔가 얼굴형은 그대로인데... 이목구비가 좀 뚜렷해진 것 같기도하고... 확실히 분위기가.. 변했어요. 첫 인상이랑은 딴판... 매력적...”

이젠 하린이까지 달라붙어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얘네 뭐지? 왜 이러는 거야... 만마의 낙인 때문인가... 그거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마나가 높아져서 이러는 건가? 200을 돌파한 마나의 효과가... 이런식으로 드러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력이나 카리스마가 높아졌을 지도... 나쁘지 않군. 모른척하고 이 상황은 즐기자.

“흐음... 오빠.”

“어? 너희 둘 다 왜 그래?”

“아니에요, 오빠. 좋아해요.”

“저도 좋아요.”

“허허. 나도 그래.”

급 고백을 하더니 둘 다 나에게 안겨 왔다.

피 칠갑해서 찝찝할 텐데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긴 우리 전부 지금 꼴이 말이 아니니까. 빨리 샤워하고 싶다. 물론 여전히 마트 내부에 남아 있을 좀비들부터 다 처리 해야겠지만.

“그보다 살아남은 사람은 이게 전부야?”

다행히 아홉 명의 각성자들은 전부 살아남았다. 그러나 비 각성자들은 거의 다 죽었다.

33명의 비 각성자 중에서 겨우 셋 만 살아남았으니 전멸했다 봐도 무방하다.

‘이름도 모르는 양아치 둘에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여자 하나라...’

어찌 보면 사실 셋이나 살아남았단 건 대단한 일이 아닐까?

이 셋은 뭐 전직 특수 부대원들도 아니었을 텐데 그 난전 속에서 용케도 살아남았다.

보아하니 이 두 놈은 서로 등을 맞대고 좀비들에게 저항하며 버틴 것 같고 여자는 미친 듯이 도망 다니다 각성자인 황수민 옆에 딱 달라붙어서 살아남은 듯했다.

“너희들은 이름이 뭐냐?”

어찌 됐든 여태까지 아득바득 죽어라 살아남았는데 이름 정도는 물어봐줘야겠지.

“저는 구지환입니다, 형님..”

“저는 김도경입니다.”

“저, 저.. 저는 강화영이요...”

살아남은 세 명의 비 각성자들의 표정은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침울하고 씁쓸한 표정들이다.

그야 알고 지내던 인간들이 죄다 죽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거기다 특수 좀비들 앞에선 너무나 무력했을 테니 더 침울해할만했다.

특히 강화영은 PTSD라도 걸린 것처럼 연신 주위를 살피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오줌이라도 지릴 기세다.

‘이 세 놈들 중에 누굴 플레이어로 만들지.’

살아남은 셋 중 한 명을 플레이어, 즉 각성자로 만들려고 한다. 보부상이 판매 중인 계정생성 카드를 사용하면 비 각성자도 각성자로 만들 수 있었다.

‘여태까지 살아남은 게 용해. 이 셋은 플레이어가 될 자격이 이미 차고 넘친다.’

다만 셋 중 한 명만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제 다시 보부상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다시 만났을 때 또 계정생성 카드를 팔라는 법도 없으니까. 어쩌면 선택받지 못한 두 명은 끝까지 비 각성자로 싸우다 죽을지도 모른다.

‘뭐, 내가 크게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지.’

각성자가 되지 못한 본인들의 운명을 탓해야지.

“야, 화영아. 고개 들어봐.”

“에.. 예.”

“흠.”

생긴 건 그저 그렇다. 몸매가 꼴리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숫기 없고 방금 전까지 좀비들에게서 도망 다녀서 그런지 굉장히 초췌해 보인다. 퇴폐미가 느껴지냐고 묻는 다면... 그냥 피폐한 몰골이라고 답해 줄 수 있겠다.

‘영 안 되겠는데. 각성자로 만들어도 이런 상태면... 그래도 역시 여자를 각성자로 만드는 편이 쓸모가 있지만서도.’

이 양아치 둘이야 각성자로 안 만들어도 어느 정도 싸우겠지만.

일반여성인 강화영은 각성자로 만들지 않으면 써먹기가 힘들다. 스탯의 도움을 받아야 성인 남성에 준하는 힘을 낼 수 있으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비 각성자인 여자를 도대체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까. 보는 눈이 많아 다른 남성 노예의 성욕 처리도 시킬 수 없는 마당에 쓸모가 없다. 차라리 각성자로 만드는 편이 더 쓸모가 있겠지.

‘저 두 놈에겐 미안 하지만 강화영을 각성자로 만들어야겠어.’

“이거 살게요.”

“좋은 선택이군.”

그 자리에서 바로 보부상에게 계정생성 카드를 구입해 강화영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

“이, 이게 뭔가요...?”

“이걸 사용하면 너도 각성자가 될 수 있다.”

“우와. 좋겠다...”

“혀, 형님... 저도 잘 싸울 수 있습니다...!”

구지환은 침을 꿀꺽 삼키며 카드를 노려봤다. 강렬한 욕망이 담긴 눈빛이다. 군침이 도나보군.

김도경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며 자기가 더 잘 싸울 수 있다는 걸 어필이라도 하듯 발을 동동 굴렸다.

“너희도 다음에 생기면 줄게.”

“아,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 뒀다.

솔직히 다음에 계정생성카드가 생길 때쯤엔 이미 둘 다 죽어 있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무릎 좀 꿇어볼래?”

“네?”

“빨리 꿇어!”

“힉.. 네..!”

강화영이 얼른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이미 나에게 굴복한지 오래다. 이마에 지장만 찍으면 된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에 피를 내서 강화영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일단 노예부터 만들어 두고서 카드를 뽑게 시켜야겠다.

치이이이!

“넌 이제 내 노예다. 자해금지. 배신 금지. 팀에 위해가하지 말 것. 명심 또 명심해라.”

“네에...”

마나가 많으니 노예를 만드는 것도 거리낌이 없어지는군.

노예로 만들고 나서야 강화영은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저, 저기. 그럼 이제 사용하겠습니다...”

“그래.”

기왕 뽑을 거 히든 클래스 나와라..!

강화영는 카드가 들어 있는 은박지를 뜯었다.

번쩍!

밝은 빛과 함께 그녀의 손에 한 장의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뭔데. 뭐가 나왔는데?”

“어... 카니지뱀프...?”

“뭐? 카니지 뭐? 도대체 무슨 클래스를 뽑은 거야...?”

내 행운 666이 또 한 건 저질렀구만!

이거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카니지 뱀프라니.

무슨 대학살의 흡혈귀라는 뜻인가?

“모, 모르겠어요... 어...?”

빠드득...!

손가락에서 카드가 사라진 순간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강화영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지 심하게 발버둥 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끄아아!!! 끄아!!”

“야! 멈춰!”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노예이기에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할 텐데...

“끄으윽... 끄흡... 끄아아!!!”

노예 주제에 그녀는 내 명령을 저항하려 했다!

“이런 씨발...! 멈춰! 멈추라고! 이 씹새야!!!”

“끄르르륵...!!!”

몇 번이나 더 같은 명령을 내리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발작을 멈췄다.

“끄아아...”

그런데 뭔가.. 변했다..

단순히 분위기나 외모만 변한 게 아니라...

‘인종 자체가 달라진 것 같은데...?’

화영이의 피부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더구나 송곳니가 굉장히 길어졌으며 귀 끝이 뾰족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하얗게 샜고 두 눈이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허어... 퇴, 퇴폐미... 미쳤구만... 뱀파이어라 이건가...’

꿀꺽...

군침이 들 정도로 얼굴이 예뻐졌다. 원래의 얼굴도 어렴풋이 남아 있으나 성형수술이라도 받은 것같다.

이 정도면 거의 은지와 동급의 외모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아... 하아...”

“야... 괜찮냐?”

“네헤... 하아... 하아... 이, 이제 괜찮아요...”

이거 빼박 히든클래스 같은데. 아직 레벨이 0이라 뭐 하는 클래스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나중에 좀비 한 마리 죽여 보게 하면 되겠지.

그럼 이 ‘카니지 뱀프’라는 이름부터 살벌한 클래스가 뭐 하는 클래스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다.

“됐어. 뭐 각성자가 된 게 중요하지. 축하한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라고.”

바닥에 멍하니 앉아 손을 쥐락펴락 하는 화영이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흐아... 가, 감사합니다.”

뭔가 영 상태가 이상해 보이지만... 당장은 좀 피곤해 보이니까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자.

“큭...”

화영이는 애써 뭔가를 참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아무도 그녀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오, 오빠... 저 사람... 괜찮은 거 맞겠지?”

“어... 그럴 거야. 아마도.”

“눈빛이 좀... 무섭네요...”

“일단 혼자 있게 냅두자.”

“네, 주인님.”

설마 피라도 먹고 싶은 건 아니겠지..?

‘솔직히 저 정도 외모면.. 피 한번 빨게 해 줘도 되지 않을까.. 상태 봐서 하렘에 추가 시켜야겠군.’

합법적으로 뱀파이어를 따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강화영은 일단 무조건 하루 날 잡아서 한 번 맛 좀 봐야겠다.

그래도 일단은 뭔가 바뀐 몸에 적응 중인 거 같으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자.

“자, 일단 이제 좀 쉬자!”

“네. 고생하셨습니다!”

하진성이 제일 힘차게 대답했다.

동생과 함께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그는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있다.

‘아침이 되니까 좀 잠잠해지네...’

옥상엔 더 이상 좀비가 올라오지 않았다.

마트 건물 안에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조금 쉴 수 있을 것 같다.

“하아.. 피곤해... 오빠 좀 쉴게요...”

“저도요... 주인님, 죄송한데 조금만 누울게여.”

“흐흐. 그래. 어서 쉬어. 둘 다 오늘 정말 고생했다.”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데 피 맛 날 것 같아서 참았다.

“헤헤.. 오빠야말로 엄청 멋있었어요. 최고야!”

“주인님 최고.. 저 주인님만 믿어요...!”

그 말을 끝으로 은지와 하린이는 피로 흥건한 바닥에 그냥 누웠다.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가 없었나 보다.

하긴 특수 좀비를 상대로 그렇게 미친 듯이 싸웠으니 앉아 있기도 힘들겠지. 워 보이들을 쓰러뜨린다고 둘 다 엄청 고생했다.

막타는 내가 쳤어도 죽일 수 있게끔 잡아 패건 그녀들이니까. 육체노동이 극심했을 거야.

‘하... 존나 피곤하다.’

나도 저 둘 사이에 눕고 싶지만 누웠다간 그대로 잠들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누울 수가 없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스킬도 찍어야 하고, 업적달성 보상도 무려 6개나 골라야 한다.

“조금만 기대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러시게.”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어서 보부상의 가방에 기대어 앉았다.

내가 가방에 기대 안거나 말거나 보부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건 구입 말고는 일체의 상호작용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NPC라서 그런 건지 아직 친분이 그리 쌓이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저, 조준씨. 여기 물 좀 드세요.”

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황수민이 눈치 빠르게 생수와 초코바가 들어 있는 가방을 가져 왔다.

옥상 곳곳에 초코바와 생수를 넣어 둔 가방을 배치 해 뒀다. 전투가 장기화 되면 먹으면서 싸우자는 의견을 적극 반영해 전날에 미리 배치해 둔 거다.

정작 의견을 냈던 아줌마는 초반에 죽었지만.

“오 땡큐.”

“하하...”

생수와 초코바를 건네주는 황수민의 손이 조금 떨렸다.

표정도 어딘가 어색한 미소였고. 볼도 살짝 붉은데... 춥나?

힐끔힐끔 내 얼굴을 자꾸 쳐다보는 게 이번 전투에서 그리 큰 전공을 새우지 못해서 그런지 묘하게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굳이 그렇게까지 눈치 볼 필요 없는데 말이지.’

어차피 이번 전투에는 황수민이 그다지 큰 도움이 못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메이지는 대기만성 형 직업이니까. 좀 더 성장하고 스킬도 늘고 마나도 증가하면 진면목을 다하겠지.

“저기 이은혜는 어쩌다 다친 거야?”

“그게... 저를 구하려다가...”

“그래? 흠. 알겠어. 가 봐.”

“네..!”

황수민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얼른 하씨 형제에게 갔다. 분명 하진성에게 강간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대하고 있다.

내가 팀의 위해를 가할 행동을 하지 말라는 명령해서 그런 건가?

“여기 다들 드세요.”

황수민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생수와 초코바를 건넸다. 그러곤 자리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이은혜에게로 돌아갔다.

참고로 강하영에겐 다가가지 않았다. 내뿜는 분위기가 워낙 살벌해서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다.

“흡... 어, 언니...”

“은혜야...”

황수민과 비슷하게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한 이은혜.

그녀는 왼팔이 좀비들의 손톱에 긁혔다. 그래서 그런지 안색이 파리하고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 않았다.

좀비들에게 직접 물리지 않은 이상 좀비로 변하진 않겠지만 아마 손톱에 긁히며 시독(??)이 오른 것 같았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상처 부위가 괴사되거나 곪아 터져 팔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 고칠 방법을 뻔히 아는데 내버려 두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이대로 아처 하나를 버리는 건 인적자원을 굉장히 낭비하는 일이니까. 일단 치료부터 하자.

“야, 이은혜. 이리 와봐.”

“예?”

“이리 와 보라고.”

“어.. 네.”

황수민 옆에 딱 붙어 있던 이은혜는 내 부름에 몸을 흠칫 떨더니 일어섰다. 황수민은 얼른 그녀를 부축해 내 앞으로 데려왔다.

“여기 앉아.”

“네...”

뭔가 체념한 얼굴이다. 설마 내가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팔 좀 보자.”

“파, 팔이요?”

“그래. 수민아 팔 좀 걷게 도와줘라.”

“네. 잠시만요.”

상처 부위는 꽤 심각했다.

손톱에 뜯겨서 그런지 파헤쳐진 상처가 보기 흉했다. 진물도 흐르고 있고.

“지금부터 팔에 생긴 상처를 치료할 건데. 이 악물고 있어라. 많이 아프다.”

“저, 상처도 치료할 수 있으신가요?”

황수민은 대단하단 눈빛으로 나를 봤다. 내가 좀 대단한 클래스를 뽑긴 했지.

“어. 근데. 진짜 좀 많이 아파. 그러니까 은혜야, 뭐 재갈이라도 물고 있어.”

“네...!”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의지를 다잡은 이은혜는 뜯어낸 내의를 돌돌 말아 꽉 깨물었다.

황수민은 그런 이은혜의 오른손을 꽉 잡고서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후우.”

지금부터 이은혜에게 스킬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할 거다.

노예를 만들고 손가락의 상처 지혈할 때 말고는 잘 쓸 일이 없었던 스킬인데. 오늘 그 가치를 다 하겠군.

“슈드­세라­아캄”

이은혜의 상처 부위 위에 손을 가져다 대고 주문을 외자 보라색 빛이 손에서 뿜어져 나와 상처로 스며들었다.

“끄으으윽!!!! 끄읍!!!”

고통에 이은혜가 몸부림쳤다.

“견뎌! 상처가 낫는 과정이야! 이대로 상처를 내버려 두면 안 돼! 참아!”

“끄흐흐흐윽....”

이은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통을 견뎠다. 황수민의 손을 붙잡은 오른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상처가 제법 길고 깊어서 많이 아프겠지. 그래도 팔 병신 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자, 다됐다.”

“후악... 하아... 하아...”

“은혜야! 지, 진짜... 팔이 다 나았어...”

“후우... 더, 더럽게... 아프네요... 감사합니다...”

어찌 된게 이은혜의 안색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지만 일단 상처는 다 나았다.

“다친 사람. 다들 말해.”

“어... 저기 형님. 혹시 발목 골절도 봐주실수 있습니까?”

하진우가 얼른 손을 번쩍 들었다.

“어... 글쎄. 이게 골절까지 치료가 되는진 잘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

스킬 이름이 차오르는 살점이긴 한데. 외상이 빠르게 낫는 다고 했으니 골절도 치유가 되려나?

일단 마나는 남아도니까 시도나 해 보자.

“슈드­세라­아캄”

이번에도 손에서 보랏빛이 뿜어져 나왔다.

“끄읍... 이거... 너무... 아픈데요...”

자상치료만큼의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나아 보였다. 효과가 극적이지 않은 만큼 고통도 덜한 느낌이다.

“휴. 됐어.”

“감사합니다!”

“저, 형님! 저도!”

김민준과 김일우도 다가왔다.

그때부터 이리저리 아픈 녀석들을 치료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 스킬 찍어야 하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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