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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5화 (25/221)

〈 25화 〉 24. 스킬 습득은 항상 힘들어

* * *

“감사합니다!”

“그래. 고생하고.”

김일우의 어깨 탈골까지 치료하니 30분 정도 흘렀다. 이젠 진짜 스킬을 찍을 때다.

물론 그전에 노예들 일 좀 시켜놔야겠다. 30분 쉬게 해줬으니 슬슬 일해야지.

“야. 진성아.”

“예! 형님!”

“애들 데리고 마트 내부 좀 정리해라.”

“내부정리 말입니까?”

“어. 마트 안에 남아 있는 좀비들 좀 싹 치우라고.”

“알겠습니다! 아, 형님. 저기. 강화영은 어떡합니까?”

고개를 돌리는 여전히 멍을 때리는 건지 무슨 생각하는 건지 중얼중얼거리는 강화영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쟤는... 하... 시바. 그냥 일단 좀 냅두고 지켜보자. 클래스 때문인지 뭔지 애 상태 이상한 거 같은데.”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너 레벨 업 했지?”

“예! 저, 이제 10렙입니다!”

“스킬은 네가 알아서 찍어. 너희도 스킬 알아서들 찍어!”

나는 앞으로 나와 은지, 하린이 그리고 새로 히든 클래스를 얻게 된 강화영의 스킬에만 관여할 생각이다.

저 많은 노예들 스킬을 내가 다 관리해주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 히든 클래스도 아니고. 여차하면 버릴 수도 있는 녀석들이니 자기들이 알아서 찍게 해 두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알겠습니다!”

“아 참, 물이랑 전기 되는지도 다 확인해 보고. 식품 매장 상태도 확인하고.”

“예! 싹 다 확인하겠습니다!”

하진성이 공구를 챙겨 들고 노예들과 비 각성자 둘을 데리고서 옥상 출입문 너머로 내려갔다.

5층짜리 건물이지만 좀비들은 대부분 옥상으로 다 몰려왔으니 내부에 남은 좀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식품 코너는 지하층에 있으니 크게 별 이상 없겠지. 없어야 해.

‘걱정 말자. 저놈들도 간밤에 다들 레벨이 좀 올랐던데 알아서들 정리 잘하겠지. 신경 끄고 나는 내 스킬이나 찍자.’

지난밤 총 5렙 올랐고 방금 전 인신 공양을 하나 찍었으니 스킬을 4개 더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죽인 특수 좀비의 숫자만 해도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 것에 비해 레벨은 다섯 개밖에 안 올라서 좀 아쉬웠다.

‘레벨 10이라 특수 좀비로도 레벨이 잘 안 오르는 걸지도 몰라.’

5렙부터는 일반좀비로 레벨이 잘 오르지 않더니 10렙이 되는 순간부터 특수 좀비들로도 레벨이 잘 오르지 않게 된건 아닐까.

10렙까지는 쭉쭉 올랐는데 뭐랄까, 벽에 막힌 느낌이다. 특수 좀비를 넘어선, 네임드 개체를 사냥해야 레벨 10의 벽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다.

‘네임드... 일부 조건을 달성한 특수 좀비들이 도달하는 새로운 영역... 조건만 알 수 있다면 네임드를 양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닌가. 양산이 안 되니 네임드인가...’

문득 특수 좀비를 생포해서 억지로 조건을 충족시킨 다음 네임드를 양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쉽고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네임드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연이어 떠올랐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어찌 됐든 아직은 시기상조야. 보금자리 하나 제대로 못 지켰는데 네임드 양산은 너무 먼 이야기지.’

당장은 생존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할 때라 생각을 더 이어나가진 않았다. 일단 오늘 중에 마트 내부에 남은 좀비를 싹 치우고 옥상에 남은 시체들도 정리해야 한다. 청소도 하고 씻고. 좀 쉬었다가 다가올 밤을 다시 대비해야겠지.

‘사람이 확 줄었으니 지난밤처럼 어마 무시한 숫자의 좀비가 습격하진 않을 거야. 사람이 많을수록 더 어그로가 잘 끌리는 것 같았으니까.’

다가올 밤은 조금 평화롭기를 바랐다. 쉼 없이 몰아치면 그대로 깎여나가기만 할 테니까. 후일을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은 스탯부터 확인하고... 남은 스킬 4개를 찍자.’

짬이 났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해 두고 낮을 알차게 써야한다.

재앙이 적응 될 때까진 맘 편히 쉴 시간 따윈 없다.

“스테이터스.”

[장조준]

[레벨: 10]

[클래스: 컬티스트]

[근력: 47]

[민첩: 46]

[체력: 45]

[의지: 50]

[마력: 245]

[행운: 666]

[업: 1]

[스킬: 촉수발출, 노예낙인, 차오르는 살점, 부정한 손길, 변형된 시야, 인신 공양]

마력은 흑사의 내단을 성공적으로 섭취한 덕분에 200이나 올랐고 근력부터 의지까지는 마력 100 돌파 보상으로 전부 10씩 더 올랐다. 레벨 업을 통해 올랐을 스탯에 추가 스탯 10까지 부여되니 화려하기 그지 없는 스테이터스 창이 됐다. 여기에 촉수소환이 촉수발출로 변경되었고 한 명을 신에게 바친 결과 업이라는 수치가 새로 생겨나 있었다.

‘당장 스테이터스 만으로도 어마 무시하네. 동레벨 최강이 아닐까..?’

스테이터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실상 스탯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레벨 1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니까. 육신에 마나가 흐르는 덕분에 신체 능력도 더 좋아졌고.

‘특히 마력 245는 미쳤지.’

마력만으로 웬만한 놈들은 찜쩌 먹지 않을까. 양손으로 촉수발출을 휘갈기면 이젠 특수 좀비고 나발이고 다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다.

‘이거... 점점 먼치킨이 되어가는... 아, 아니야. 지난번에도 이런 생각했다가 된통 당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지난밤에는 크게 방심도 안 했는데 불구하고 우리 셋을 제외한 노예 전원이 전멸할 뻔했으니...’

방심하지 말자. 방심 하지 않았음에도 지난밤은 충분히 위험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보부상이 나타나 나에게 흑사의 내단을 판매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와 은지, 하린이 셋을 제외하곤 전원 죽었겠지.

‘정신 차리자...’

기껏 탈취한 마트를 좀비들에게 빼앗기고 노예 대다수를 잃을 뻔했다. 방심 안 해도 이 사달이 나는데 조금 강해졌다고 방심하는 순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악신과 연류 되면서 선신 진영 플레이어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됐어. 선신 진영의 플레이어가 뭐 하는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과 관련이 있는 놈들인 이상 나 정도의 혜택과 강함을 가졌을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아찔하군.’

지구 어딘가에 진정한 먼치킨이 있을 수도 있다. 가령 행운 수치가 777이라 재앙 초반부터 기연이란 기연을 다 처먹고 엄청나게 강해진 그런 말도 안 되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겨우 마나 245가지고 나 잘난 맛에 나대다가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용사니 성자니 뭐 그런 새끼들에게 썰려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다 만마의 낙인 덕에 다른 성흔을 가진 놈들은 무작정 나를 적대시한다...’

다른 성흔을 가진 놈들. 이건 선신이고 악신이고 따지지 않고 성흔을 가진 새끼들은 무조건 나를 적대시 한다는 소리였다. 만마의 낙인은 최대한 숨겨야한다. 존재 자체를 들키지 않는 편이 생존에 유리할 것 같다. 어떻게 숨겨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빌어먹을... 전혀 안심할 때가 아니었어... 혹여나 성흔을 가진 놈이 내 낙인을 눈치채고 우호적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방심시키고 암살하려 할지도 몰라.’

이제 마주치는 플레이어들은 무조건 노예로 삼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다. 방심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칼 빵을 맞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원래부터 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었구나.’

각성자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노예로 삼겠다는 다짐을 하고보니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노예낙인을 얻은 순간부터 나는 각성자는 보이는 족족 무조건 노예로 삼으려 했고 안 되겠으면 죽여 왔다.

‘애당초 동등한 입장의 동료를 만들지 않았었군. 그래, 나는 수평적인 관계보단 차라리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더 선호했지... 명령받고 명령내리는..’

거기다 항상 남의 약점이나 후벼 팔 수 있는 상처 혹은 과거사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유형의 삐뚤어진 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뒤틀린 성격 덕분에 친구도 없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지금 와선 이런 무자비하고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이 생존에 유리해서 정말 다행이다.

‘후우... 잡생각은 이쯤하고 스킬이나 선택하자...’

빨리빨리 스킬 찍고 업적보상받고 좀 쉬고 싶다.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체력 스탯이 무려 45나 됐지만 그렇다고 내가 피로를 하나도 못 느끼는 초인이 된 건 아니니까. 오히려 묘하게 활기찬 하진성이 이상한 거지.

“스킬선택.”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뒤틀린 갑각]

[2. 만마의 총애]

[3. 심연관측]

[4. 무아의 마안]

[뒤틀린 갑각: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당신을 지켜 줄 키틴질 벽이 생성됩니다.]

‘방어 스킬이네...’

어느 정도의 공격까지 막아주는 지는 잘 모르겠다. 총알도 막아줄 수 있을까?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고민 없이 뒤틀린 갑각을 찍었겠지.

방어 스킬이 하나도 없으니 향후 분명 찍긴 찍어야겠지만 당장은 심연관측을 선택할 생각이다.

‘이번엔 또 얼마나 아플지...’

항상 스킬을 습득할 때마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파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플 거라 여기고 이를 꽉 깨물었다. 고통에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픔은 늘 새롭고 신선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후우... 심연관측 선택.’

[스킬이 적용됩니다.]

눈을 꼭 감았다. 이번에도 침을 한 방울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겠지...

“어...?”

허나 이번엔 아무런 고통도, 아픔도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송곳으로 뇌를 찌르는 끔찍한 감각도. 지식이 억지로 새겨지는 벅찬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이... 이 기분은... 대체...’

순식간에 우울감과 탈력감, 무기력증이 밀려올라온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깊고 깊은 절망감에 몸이 떨렸다.

뇌의 통증이 아닌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 심연 관측은 이때까지 스킬을 찍을 때 일어나던 현상들과는 많이 다른 증상이었다.

‘심연관측’을 익히는 순간, 나는 어둠 속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한 공포를 느꼈다.

홀로 남아버린 듯 주변이 고요해지고 정신적으로 몰려간다. 공포. 이유 모를 두려움이 내 심장을 조여 왔다. 답답하다.

“아... 안돼...”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아래로. 더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저 깊디깊은 못 속으로...

‘나... 나는... 대체... 무슨 짓을...’

도대체 뭐와 접촉한 거지?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

답답하다. 미칠 듯이 답답하다.

숨통이 조여드는 감각.

숨을 쉴 수가 없어...

“...빠!..”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 것 같은데.. 이건 나만의 착각일까?

모르겠다.

주변 사물은 물론이고 소리마저 모조리 녹아 사라져 버린 어둠 속에서 나는 홀로 발악했다.

근원적인 공포만이 남은 아무도 없는 이 미친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원인 모를 답답함과 고독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빠!!!”

“허억...!!!”

눈을 떠보니 은지나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으, 은지야...”

“오빠!”

은지가 와락 안겨 왔다. 그녀는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뭔가... 끔찍한 악몽이라도 꾼 것만 같다.

식은땀으로 앞섶이 흥건했다.

“왜... 왜 그래 은지야..”

“아무리 불러도.. 흐윽... 안 일어나서... 반응도 없고... 숨도 안 쉬어서...”

은지는 횡설수설 방금 전 나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누워 있던 하린이가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곤 일어나 나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대답이 없었고 그제야 상황이 심상찮다는 걸 깨달은 은지가 일어나 나를 부르고 흔들어 깨웠단다.

그 와중에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니...

그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에게 다가온 하린이가 손을 뻗어왔다. 붙잡아 주길 원하는 것 같아 살며시 하린이의 떨리는 손을 잡아줬다.

“주인님... 앞으로 절대 혼자서 스킬 찍지 마요. 주인님 스킬 이상해요... 우리가 옆에서 보고 있을 때 같이 찍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게 좋겠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하린이의 손은 핏기가 빠진 것처럼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살짝 떨리는 손을 아프지 않게 꽉 붙잡아 줬다. 그녀가 안심할 수 있게끔.

‘둘 다 나를 믿고 의지하다 보니 내가 갑자기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나 보다... 설마 나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 못했지...’

심연관측.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단순한 육체의 아픔이 아닌 정신의 붕괴. 솔직히 하린이가 재빠르게 눈치채고 은지가 깨우지 않았다면 나는 스킬에 잡아 먹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 그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카쉬낙스를 느꼈을 때와 비슷한 벅참을 느꼈어... 신... 신이 거기 있었다...’

이걸로 한가지 가능성을 예상해볼 수 있다. 심연관측은 카쉬낙스와는 전혀 다른 이름모를 악신과 관련이 있는 스킬일지도 모른단 사실이다. 처음 심연관측이란 스킬이 선택지에 생겨났을 때 유독 강조되어 표시된 걸 보면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정확하진 않지만 왠지 느낌이 그렇다. 촉수소환이 카쉬낙스의 권능이라 치면 심연관측은 또 다른 악신의 권능을 빌리는 걸지도 모른다.

‘카쉬낙스뿐만 아니라 다른 악신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행운 666 이게 원인인가? 이거 카쉬낙스가 부여한거 아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다. 이 또한 레벨을 계속 올리고 성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인신 공양을 습득하며 카쉬낙스의 존재를 깨닫게 됐듯이 말이다.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고 있으니 심연관측에 대한 정보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입력됐다.

‘업을 1개 소모해서 심연을 들여다본다... 주문은 크롤­빈­어스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양손 엄지와 검지를 서로 맞닿게 해 삼각형을 만들며 주문을 외워야했다.

그리하면 손가락으로 만들어진 삼각형이 심연과 연결되며 그 속에 도사린 존재들과 소통을 할 수도 있단다. 물론 말이 제대로 통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의사소통은 만마의 낙인 효과로 문제가 없겠지... 다만 이 스킬 하나로는 제대로 써먹기 힘들단게 문제야.’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는 것 같지만 계약 조건이 터무니없는 경우를 비롯해 심연을 들여다 볼 때마다 업을 하나 소모해 가며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애매해. 뭔가 보조적인 스킬이 있지 않을까...? 그래, 당장 하드한 계약 조건은 만마의 총애로 완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소환 과정만 단순화 되면 최곤데.’

만마의 총애 스킬 효과는 ‘이계의 존재들에게 관심과 호감을 얻고 계약조건이 완화된다.’였으니 이건 심연관측과 관련이 있는 스킬이다. 그렇다면 계약조건을 완화시키는 스킬이 있으니 계약과정을 단순화 시켜 주는 스킬도 있지 않을까?

매번 심연의 존재를 불러낼 때마다 사람 한 명씩 갖다 바쳐야하는 건 좀 많이 비효율 적인 일이니까.

‘일단은 스킬을 더 찍어봐야겠어. 3개 더 찍을 수 있으니 그 안에 해답이 나오길 기대해 보자.’

이번에는 은지와 하린이에게 미리 스킬을 습득할 거라 이야기해뒀다.

“스킬선택.”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뒤틀린 갑각]

[2. 만마의 총애]

[3. 구강소환]

[4. 무아의 마안]

[구강소환: 이계의 구강을 소환합니다. 적들의 사지를 뜯어 삼킵니다.]

‘음... 이건 또 뭐지?’

촉수소환을 넘어서 구강을 소환한다니... 구강이면 입을 소환한다는 소리인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스킬이다. 입을 불러내서 적의 사지를 뜯어 삼킨다니...

'이건 고르지 않을 수가 없는 선택지지.'

입을 불러내 적의 신체를 결손시킬 수 있다니. 무조건 죽여야 하는 상대와 싸울 때 최고의 스킬이군. 이거라면 촉수소환과 더불어 내가 쓸 수 있는 최강의 패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구강소환 선택.”

스킬을 습득하는 순간 심연관측을 골랐을 때와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크으....”

또다시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탈력감이 느껴진다.

동시에 옆에 앉아 나를 지켜보던 은지와 하린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도 둘의 손을 꽉 잡았다. 서로 맞잡은 손에 온기가 전해진다.

마치 동아줄을 붙잡고 있듯 그녀들의 손을 붙잡고서 스킬 적용을 견뎌 냈다.

이거 차라리 뇌가 아픈데 더 낫지 않을까. 그건 그냥 아프고 말았으니까. 그만큼 정신 공격은 버티기 어려운 신선한 충격이었다.

‘카쉬낙스가 초보들을 위한 입문자용 악신이었다면... 이 뭔지 모를 존재는 좀 더 고차원적인 충격을 선사하는 악신... 스킬 효과는 마나소모가 10이고... 손으로 물어뜯는 동작을 취하며 알­라쿰­플루토를 외치면 된다... 하루 3번 사용 가능하고. 흐음...’

이건 확실히 심연의 존재와 연관된 전용기가 맞다. 촉수소환이 카쉬낙스와 관련된 전용기였다면 이건 심연의 존재가 내려준 기술이 분명하다. 하루 3번 밖에 못쓴다는 설명도 그렇고. 아마 이 스킬도 나중에 인신공양을 하든 방법을 찾아서 심연의 신과 접촉한다면 촉수소환이 촉수발출로 강화됐 듯이 강화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2개 남았다.’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뒤틀린 갑각]

[2. 만마의 총애]

[3. 영구계약]

[4. 무아의 마안]

[영구계약: 이계의 존재와 영구적인 계약을 맺습니다. 마력을 소모해 소환수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영구계약이라... 소환과정의 단축. 이게 심연관측을 제대로 활용할 방안이로군.’

영구계약을 통해 심연을 들여다보고 소통할 존재를 찾아 계약을 맺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줄일 수 있겠다. 미리 계약해둔 상대를 소환수 삼아 마력만 소모해 계속 불러낼 수 있을 테니까.

‘남은 스킬 2개는 각각 만마의 총애와 영구계약으로 선택해야겠다.’

고민 없이 바로 만마의 총애를 선택했다.

‘과연 이번엔 뇌가 아플까... 아니면 정신이 위태로워질까...’

만마의 총애가 가져올 고통을 기다리며 은지와 하린이의 손을 꼭 쥐었다. 허나 이번엔 육체의 고통도, 정신의 붕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느껴지는 것은 시선.

무수이 많은.

시선들이 나를 보고 있다.

마치 먹잇감을 품평하듯.

“욱....”

순간 올라오는 구토감에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무언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일순 나를 주시한 기분이 들었지만 몇초도 지나지 않아 금세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바, 방금... 뭐야...’

나만 스킬 습득이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이건 무슨 스킬 습득 때문에 게임을 접고 싶어질 정도인데... 어찌된게 좀비 새끼들 패죽이는 것보다 스킬 습득이 난이도가 더 높은 것 같다.

‘뭐 하나 방심할 수가 없잖아... 애초에 방심하지도 않았는데 너무한거 아니냐고...’

늘 내가 견디고 감내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들이 계속 나타난다.

예측할 수 없으니 이젠 진짜 스킬 습득이 두렵다.

“후우...”

“오빠....”

“주인님. 힘들면 나중에 찍어요.”

“아니야. 괜찮아. 빨리 스킬 찍고... 업적 보상도 받고... 할 일이 많아.”

걱정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니 더 힘내서 빨리 끝내야겠다. 질질 끌어봐야 결국은 찍어야 하는 스킬들이다. 그래, 결국은 찾아올 아픔들이지.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뒤틀린 갑각]

[2. 불완전한 피막]

[3. 영구계약]

[4. 무아의 마안]

[불완전한 피막: 등에서 날개를 꺼낼 수 있습니다. 비행이 가능해집니다.]

“허어...”

이건 설명부터 대박인데.

물론 몸소 경험해본바 컬티스트의 스킬이란게 다 그렇듯 정상적인 스킬은 아니겠지. 이미 10번에 가까운 스킬습득 경험으로 깨달았다. 컬티스트의 스킬은 성능이 괴랄한 대신 그에 따른 반동도 엄청나단 사실을.

‘꼴을 보아하니... 날개를 뽑을 때마다 오지게 아플 것 같은데...’

그런데도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니까. 이건 때되면 무조건 찍어야 하는 스킬이다.

물론 당장은 심연관측을 제대로 쓰기 위해 영구계약부터 선택할 테지만.

‘스킬 선택.’

이번엔 다시 아래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어 얼른 둘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은지와 하린이의 온기가 전해지니 금방 마음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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