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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27화 (27/221)

〈 27화 〉 26. 아무거나 주워먹지 말자

* * *

난 흑사의 알과 송곳니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흑사의 알이라.’

흑사가 뭐 하는 놈인지 생김새도 스펙도 모르니 알을 뽑아 흑사를 키우는 게 맞나 싶다.

‘더구나 이건 소환이 아니야.’

이게 제일 큰 걸림돌이다. 설명에 소환수라고 똑바로 명시 되어 있지 않은게 영 신경 쓰인다.

샐러맨더는 확실히 소환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에 죽어도 다시 불러내면 그만이지만 흑사는 소환수가 아니었다. 만약에 전투 중에 죽어 버리면 진짜 그대로 그냥 죽는 게 아닐까.

‘키우다가 죽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란 소리잖아. 그건 좀 아니지.’

그저 ‘길들일 수 있다’라고만 쓰여 있으니 죽으면 그대로 끝나는 게 아닐까 싶다.

더구나 부화한 상태로 주는 것도 아니고 알인 상태에서부터 키워나가야 하는데 상당히 귀찮을 것 같다.

들고 다니다 혹여나 깨지면 어떡해. 그럼 프라이라도 해 먹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알인 상태로 준다는 것부터 이건 꽝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그래, 흑사의 알은 선택하지 말자. 괜히 키우다가 죽어 버리면 보상낭비고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자원과 시간과 노력이 소모될지도 모르니까. 더구나 실컷 다 키워놨는데 꽥하고 뒤지거나 성체가 돼서도 영 상태가 안 좋으면 많이 짜증 나겠지.’

흑사의 알은 기각이다. 여러모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알을 선택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럼 송곳니인데..’

송곳니는 일단 찌르기만 하면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무조건 한 방에 죽여 버릴 수 있는 지상 최강의 무기다.

하지만 일회용이란 점에서 선뜻 고르기 좀 망설여진다.

한 번 쓰고 버려야 한다니. 뭔가 많이 아쉽다.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을 쓸 수 있다면 고려해볼 만 하지만 1회용이란 점이 송곳니를 선택하기 주저하게 만든다.

‘솔직히 지금 내가 가진 촉수발출이나 구강소환 스킬만 봐도 웬만한 적들은 한 방 컷 나긴 해... 그런데 굳이 송곳니를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내가 가진 스킬의 성능이 워낙 뛰어나서 굳이 송곳니가 없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촉수나 구강소환이면 중·장거리에 있는 특수 좀비도 한 방이면 죽일 수 있다.

촉수는 심지어 다섯 마리씩 붙잡아서 터트려 죽일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다가가서 찔러야하는 송곳니는 큰 메리트가 없는 보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킬을 많이 쓸 수 있게 마력을 높여주는 뒤틀린 내단이 훨씬 이롭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자연스럽게 내단 쪽으로 눈길이 간다.

이건 잘만 먹으면 마력이 무려 500이나 증가하는 미친 물건이다.

마력 500 증가라니. 레벨을 도대체 몇 개나 올려야 도달 할 수 있는 수치일까.

답이 안 나온다. 계산이 안 될 만큼 엄청난 수치란 말이지.

‘마력 500. 솔직히 꼴리긴 해.’

만약 내가 이걸 먹는 다면 진짜 진지하게 이 동네 최강은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력 스탯 245도 결코 낮은 게 아닌데 500이나 증가해서 745가 된다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촉수를 사방팔방으로 내뿜고 다녀도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는 게 아닐까?

촉수를 미친 듯이 뿜어내며 부정한 손길을 상시 발동해도 될 만한 수치란 말이지.

그리고 노예낙인 한번 쓰는데 마나가 10씩 소모되는데 마력 745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노예공장을 차려도 될 만한 마력량이다. 더구나 체감 상 마력회복도 마력량에 비례해 빨라졌다. 745의 마력을 전부 소비해도 앉아서 쉬다보면 몇시간 만에 다 찬다는 말이지.

마력이 745쯤 되면 솔직히 진짜 좀 방심하고 살아도 될 만하지 않을까.

즉사 확률 55퍼센트만 어찌 피해가면 나는 진짜 먼치킨에 한 발 가까워지겠지.

‘그리고 마나가 100을 돌파했을 때 보상으로 전체 스탯이 10씩 올랐으니... 이번에도 비슷한 혜택을 받지 않을까?’

거기에 섭취 성공하면 업적도 여러 개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황수민한테 먹여서 도박을 함 해봐야 하나?’

황수민은 마력 스탯이 높으면 무조건 이득인 클래스다.

아마 단번에 500 가까이 오르면 마법 폭격기로 써먹을 수 있겠지.

진짜 장난 안치고 엄청날 거다. 무지성으로 마법을 난사시키며 다가오는 적들을 모조리 불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황수민이 45퍼센트의 확률에 도달해 생존할 수 있을까?’

이게 문제다. 살아남을 확률이 45퍼센트나 된다는 건 분명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죽을 확률이 55퍼센트라고 생각해 보면 이 또한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니까 선택하기 망설여 지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황수민이 뒤틀린 내단을 먹으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다.

일단 행운수치가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황수민의 행운 수치는 하린이의 33보다도 낮았다.

‘아무리 내 행운에 영향을 받는다 해도... 황수민이 먹는 것보단 내가 먹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 어찌 되었든 내 행운은 666이니까.’

까딱 잘못해서 황수민이 내단을 먹고 죽어 버리면 업적보상 손해에 메이지 낭비다.

안전 빵으로 행운수치가 더럽게 높은 내가 먹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 내가 먹는 거야. 뒤틀린 내단을 먹고 살아남을 확률이 무려 45퍼센트나 되니까. 이거 해볼 만하다...’

다양한 고민을 하며 흑사의 뒤틀린 내단을 빤히 노려보고 있으니 내 머릿속에서 은지의 모습을 한 소악마가 튀어나와 내 귓가에 야릇하게 속삭였다.

‘너, 처음부터 먹고 싶었잖아.’

뜨끔.

정곡을 찔렸다. 미치겠네.

꿀꺽.

흑사의 내단을 먹고 마력 745가 된다는 상상을 하니 자연스럽게 군침이 싹 돈다.

사실 처음부터 먹고 싶긴 했다.

마력 500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쉽게 포기하긴 싫지.

심지어 흑사의 내단 처럼 2개 이상 먹으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없었다. 흑사의 내단과 흑사의 뒤틀린 내단이 서로 겹치는 물건이 아니란 소리겠지.

다만 즉사한다는 설명문 때문에 망설였다. 과연 내가 이번에도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무슨 소설의 주인공처럼 주인공 보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도 죽음이 나를 피해 갈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니 선뜻 내단을 고를 수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하린이를 닮은 천사가 하나 나타나더니 한마디 거들었다.

‘야이 등신아! 행운이 그렇게 높은데 이걸 참아? 네놈 행운 수치만 666이야. 그런데 뒤질 걸 걱정하니?’

이거 천사랑 악마랑 똑같은 녀석들 같은데?

하긴 둘 다 내 망상의 일부분이니 의견이 똑같겠지.

‘함 먹어봐...?’

흑사의 뒤틀린 내단에 마음이 반쯤 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결단이 서지 않는다. 누군가 먹으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바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내단을 먹을 용기가 필요하다.

은지와 하린이를 깨워서 의견을 물어보고 싶지만 둘 다 내단을 먹지 말라고 나를 타이를 것 같아 깨우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현실성있는 진심 어린 충고가 아니라 용기를 주는 한 마디였으니까.

그래서 난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곤 카쉬낙스를 떠올렸다.

명색이 나의 주신이니 뭔가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였다.

‘카쉬낙스님... 제가 이 내단을 먹어도 될까요...?’

마법의 소라 고동에게 질문하듯 나의 주신에게 물었다.

사실 내 부름에 크게 반응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종교인들이 예수나 부처에게 기도하는 느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기도한거지 진심으로 대답이 돌아오길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느님도 부처님도 안 믿다 보니 기도할 대상이 마땅히 없어서 카쉬낙스에게 기도했던 것뿐인데...

나의 기도가 닿은 걸까.

문득 거대한 존재의 시선이 느껴졌다.

“허억...!”

진득한 악의로 똘똘 뭉친 거악의 눈동자.

나를 빤히 노려보는 듯한 아주 부담스런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에 노출된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뱀을 눈앞에둔 생쥐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한낮 미물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존재감이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빤히 노려보는 거지...?’

나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주다니. 할 짓이 더럽게 없는 신인가?

아니면 만마의 총애를 습득해서 이런걸까. 묘하게 적극적인 반응이다.

‘뭐야...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줄 줄은 몰랐는데... 괜히 기도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나의 기도에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해 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이렇게나 빤히 쳐다볼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엄청 부담스럽다.

‘시선이 무거워... 차라리 무관심으로 대응해 줘요.’

점점 압박이 심해진다.

그렇게 숨을 쉬기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신으로부터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아서 해라.]

[배고프다.]

머릿속을 찌르르 울리는 신의 의지.

거대한 배고픔이 느껴진다. 당장 인신 공양 할 것을 원하고 있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강렬한 의지표명에 순간 의식용 단검을 뽑을 뻔했다.

당장 내 옆엔 인신 공양 할 만한 대상이 없음에도 누군가를 죽여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만약 여기에 구지환이나 김도경이 있었다면 바로 공양했을지도 모르겠다.

“허억... 허어... 쿨럭...”

그리 나를 조여 오던 압박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 영혼을 찍어 누르던 존재감과 시선도 자연스레 물러났고.

‘무슨 존재감이 이렇게 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신에게 기도하는 일이 이토록 위험천만한 일이었구나...

실존하는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진짜 장난 아닌 일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더구나 인신 공양을 아직 한 번밖에 안 해서 그런지 호감도작이 안 돼 있는 상태라 더 날이 선 반응이 돌아온 게 아닐까 싶다.

‘절대. 두 번 다시 함부로 기도하지 말아야지. 기도 하더라도 최소한 인신 공양을 원 없이 한 다음 해야겠다.’

악신을 상대로는 정말 무엇 하나 방심할 수 없다.

교회에 가서 예수에게 기도하는 느낌으로 기도했다간 악신의 노여움을 살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알아서 하라는 거 보니까 시도해 봐도 괜찮다고 말해 준 것 같은데...’

먹어도 문제없다는 뉘앙스 같았다.

이 판단이 내 편의주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인지 진짜 신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대답을 들으니 먹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 먹자. 도대체 어느 세월에 마력을 500이나 높이겠어. 이건 먹고 죽어도 먹어야지. 못 먹어도 먹는 거야..!’

결단한순간 빠르게 행동했다.

업적 보상으로 흑사의 뒤틀린 내단을 골랐다.

곧, 눈앞에 뒤틀린 내단이 생겨났다.

‘전에 먹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네...’

지난번에 먹었던 흑사의 내단은 그저 까만색이었는데. 이번엔 노란 줄이 쫙쫙 그어져 있었다. 한층 더 위험해 보인다. 마치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는 색감이다.

“후우... 후우...”

심호흡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닭살이 돋고 손이 살짝 떨린다.

‘나는 옛날부터 뽑기를 잘했어. 가챠 운이 좋았다고. 분명... 분명 이번에도 살 수 있다. 그래, 카쉬낙스가 나를 지켜 주겠지. 행운 666이 좆으로 보이냐 이 말이야!’

꿀꺽.

삼켰다.

내단은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초콜릿처럼 녹아 없어졌다.

‘되... 된 건가? 성공인가? 그런데 왜 불안 하게 아무런 안내문구도 안 뜨는 거지?’

지난번과는 뭔가 다른 반응이다.

흑사의 내단을 먹었을 때는 입에 넣자마자 안내문구가 뜨며 마나가 200올랐다고 알려 줬었는데.

‘설마... 설마 아니겠지. 행운수치를 너무 믿었나? 제기랄! 이럴 순 없어. 왜 아무런 반응이... 윽..!’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귀에 들릴 정도로 거센 박동과 함께 가슴이 흔들리며 혈관이 날뛰는 듯한 고통이 뒤따라왔다.

“끄으으윽...!!!”

“주, 주인님!! 언니!”

“뭐, 뭐야! 오빠 왜 이래?! 오빠!”

“끄아아!!!!”

몸이 펄떡펄떡 뒤흔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입에서 게거품이 흐르고 눈의 실핏줄이 죄다 터져 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동시에 시야가 암전했다.

어둡다.

나의 몸이 느껴지지 않는다.

‘빌어먹을... 개같이 멸망했다...’

설마 진짜 죽은 거야?

왜 행운 666이 일을 안 하지?

의문만 가득 남긴 채 나의 의식은...

저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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