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28. 보상수령은 친애하는 두 노예와 함께
* * *
은지는 내 품에 고개를 반쯤 파묻고서 한참이나 울었고 하린이는 십 년감수 했다는 듯 연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화영은... 인상을 찌푸리고서 혀를 닦고 있다. 못 먹을 걸 억지로 먹은 표정인데 하린이가 말하긴 화영이 내 몸속의 독기를 뽑아냈다고 한다.
‘스킬하나 없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독기가 있단 걸 알아챘으며. 또 그걸 어찌 뽑아낸 거지?’
짐작 가는 바로는 카니지 뱀프라는 클래스뿐이다.
‘타종족으로 변하는 클래스들은 종족 특성이라도 자연스럽게 개화되는 건가? 흐음. 어찌 되었든 상당히 쓸 모 있는 녀석임을 본의 아니게 스스로 증명해 냈군. 역시 버리기 아까워.’
내 노예낙인 스킬에 약간이지만 저항하는 것도 그렇고. 향후가 기대된다.
강화영을 노려보고 있자 내 품을 눈물 범벅으로 만든 은지가 나를 바라보며 원망했다.
“오빠... 제발. 뭐 좀 혼자서 하지 마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그렇게 갑자기 죽으려고 하면 어떡해요. 우리끼리 어떻게 살라고 그래요. 오빠 죽어 버리면 나는 이제 누구 믿고 사냐고요...”
“미안. 미안하다.”
울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은지는 묘하게 귀여웠다.
생긴 게 워낙 귀엽고 예쁘니 찡찡거리는 것도 봐줄 만 하구나.
거기다 그녀가 하는 말이 썩 틀린 말도 아니고 확실히 다 맞는 말이니 사과 말고는 할 수 있는 대답도 없었다.
솔직히 내 욕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까. 마력 500에 눈이 돌아갔다.
물론 못생긴 노예가 이런 소릴 지껄였다면 바로 꿀밤 삼천대를 먹였다.
“그래. 미안 해.”
그저 묵묵히 은지의 걱정스러운 불만을 들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님. 하아. 아니에요.”
하린이는 말을 아꼈다. 그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만족한다며 내 손을 붙잡고선 한참이나 주물럭거렸다.
마치 두 번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점점 나를 붙잡은 두 손에 담긴 힘이 세졌다. 좀 아픈거 같은데...
“저, 하린아. 이제 좀. 아픈 것 같은데...”
“참아요. 제 마음이 이것보다 더 아팠으니까. 그리고 이거 지압효과 있어요.”
“어... 그래. 고맙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실상 내가 그리 맥없이 숨이 멎은 건 내가 결국엔 뒤틀린 내단을 처먹을 거라 미리 예측한 인디크론이 꾸민 일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겁 대가릴 상실하고 내단을 먹은 이 모든 일에 원인이니까.
“하하...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은지와 하린이는 한참을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물론 그녀들의 어리광이 썩 나쁘지 않아 그대로 그녀들을 양쪽에 끼고서 드러누웠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니 확실히 내가 그 정신 나간 심연 속에서 살아 돌아왔음이 실감 났다.
‘그보다 인디크론이 했던 말이 너무 신경 쓰여..’
선신 측에서 챔피언을 보냈단 인디크론의 계시는 마력 스탯 745로 느슨해지던 내 마음에 아찔한 긴장감을 더해줬다.
‘챔피언은 분명 나 같은 플레이어일 거고. 클래스나 레벨은 물론이고 몇 명이나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했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신의 챔피언쯤 되는 놈들이라면 워리어나 아처 같은 노멀 클래스 따위가 아닐 거다.
적어도 메이지 급 이상의 레어 클래스이거나 나와 같은 히든 클래스가 찾아오겠지. 히든 클래스의 플레이어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다니.
그것만으로도 짜증스럽고 화가 난다.
왜 가만히 잘 있는 사람한테 지랄하는 건지. 선신이란 놈들에게 저절로 증오가 쌓여 갔다.
‘나를 죽이러 온다는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 기연을 처먹었을지도 모르겠고...’
나는 하루 사이에 흑사의 내단과 뒤틀린 내단을 주워 먹어 마력을 745까지 끌어올렸다.
나만 이런 비약적인 성장을 하란 법이 없으니 적들도 뭔가 기연을 얻어 나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을 지도 모른다.
‘인디크론은 나에게 적들을 대비 하라고 했어. 그 말뜻은 지금 상태로는 놈들에게 몰살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무조건 적인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단 소리야.’
그다지 적들이 위험하지 않았다면 그런 투박한 방식으로 나를 심연에 끌고 내려와 직접경고하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적들이 위험하니까 죽음을 가장해 나를 불러냈겠지.
‘놈들이 발견한 보부상이 파는 물건이 엄청난 물건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업적을 달성해 받은 보상이 굉장한 위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답답하네.’
말 그대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나를 어떻게 조지려고할지 하나도 예측할 수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인디크론이 대비하라는 말대로 어떤 상황에서든 뒤지지 않고 놈들을 역관광시킬 정도로 힘을 키우고 변수를 창출해내는 수밖에.
그나마 받아야 하는 업적 달성 보상이 9개나 남았다는 점이 조금이지만 위안이 된다. 놈들도 내가 모를 변수를 가지고 올지도 모르는 만큼 나 또한 놈들의 허를 찌를 변수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야하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선신들이 직접 강림해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란 사실이 불행 중 다행 아닐까.’
인디크론이 해준 이야기중에 인과율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아마 그게 신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막는 하나의 장치이자 게임의 규칙이겠지.
신들의 과도한 개입이나 난립을 막아 플레이어의 게임 판이 박살 나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이걸 통해 나는 선신과 악신. 그리고 그 사이에 중립적인 존재나 집단이 하나 더 끼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게임 시스템 창. 이걸로 말미암아 게임 운영자 같은 놈이나 놈들이 있단 걸 알 수 있지. 그리고 그 것들은 중립일거야.’
게임 운영자인지 게임 마스터인지 명칭은 모르겠지만 이 스킬이나 업적보상, 상태창 등을 설정하고 조율하는 놈들은 선식과 악신 그 누구의 편도 아닐 거다. 아마 인과율이란 장치도 이놈들이 만든 게 아닐까?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신들까지 가지고 노는 놈들. 이놈들이 제일 위험한 놈들이야.’
악신과 선신의 틈에 끼여 그들에게 규칙을 강요할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에 소름 끼친다. 그리 보면 나는 그저놈들이 놀고 있는 게임판 위에 놓인 장기 말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
‘후우... 아찔하네. 머리를 조금 비우자. 당장은 그런 놈들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니까.’
생각이 조금 옆으로 샜다. 지금은 우선 나를 조지러 올 놈들과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선신 놈들에 대한 판단을 끝마쳐야 한다.
‘나를 죽이러 오는 놈들은 선신들의 챔피언이지... 그래. 분명 '선신들'이라고 했어. 그 말은 선신들끼리는 단합이 잘 된다는 건데... 빌어먹을 악신 놈들은 설마 개인주의자들 뿐인 건 아니겠지?’
인디크론은 분명 ‘선신들’의 챔피언이 나를 공격한다고 했다.
그건 곧 선신 하나가 아닌 다수가 연합했다는 의미고. 이는 선신들끼리는 서로 적극 협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악신들은 그다지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는 건가? 하긴 종복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녀석도 있으니까.’
당장 카쉬낙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빌어먹을 악신은 인신 공양할 때를 제외하곤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지. 너무 단정 짓지는 말자. 카쉬낙스는 내가 내단을 먹어도 되냐고 물어 봤을 때 알아서 해라고 말하면서도 분명 먹어보라는 의지도 같이 전달했어. 처음부터 인디크론이 나를 심연으로 초대할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리보면 악신들은 무조건 단독행동만 고집하는 독불장군은 아닐 거야. 그리고 결국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으로 이끌어 준거니 완전 무관심하다고 볼 수도 없지.’
악신들이 완전히 개인플레이만 하고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빌어먹을 악신들보단 개엿같은 선신들이 더 단합이 잘되고 멀티플레이에 능한 것 같다. 곤란해.’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선신들은 나를 관측할 수 있다.’
인디크론은 인과율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선신들의 계략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나를 죽이려 오는 놈들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몰랐지.
그 말은 인디크론은 그저 가까운 미래만 어렴풋이 엿보았을 뿐 적들의 세세한 정보까지는 들여다볼 수 없었단 걸 의미한다.
‘그에 반해 선신 측 챔피언들은 벌써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 말은 선신 측에서 컬티스트인 나란 존재를 미리 감지하고 알아냈다는 소리지.’
이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나는 적을 모르는데 적은 나를 대략적이게 나마 알고서 죽이러 온다는 소리니까.
‘인과율이란 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대놓고 상대측 진영의 챔피언을 관측하는 이런 부조리함을 용납하진 않겠지. 용납할 생각이었다면 인디크론도 적들의 전력을 관측할 수 있었어야 하니까.’
고로 선신 측에선 내 일거수 일투족까진 보지 못할 거란 판단을 내렸다.
물론 이 또한 그저 가정일 뿐이지만.
아마 선신들도 상당한 인과율의 후폭풍을 감당하고서 나를 찾아낸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밸런스가 맞다. 게임 마스터가 중립이라면 밸러스에 신경쓸 테니까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선신만 무조건 유리한 싸움이었다면 인디크론이 괜히 나를 불러와 미래에 대한 언질을 해줬을 리가 없지. 싸워볼 만 하니까 나를 포기하지 않은 거다. 여기서 다시 한번 게임 마스터가 중립적인 존재들이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일단 선신들끼리는 다 같은 편이고 한통 속인 거고... 심지어 모종의 방법으로 나의 존재를 특정하고 암살자를 보낼 정도의 힘과 결단을 갖췄다. 빌어먹을. 살아남기가 더 지랄 맞게 됐군.’
여러모로 앞날이 깜깜하다.
나날이 강해지는 좀비 새끼들 상대하기도 벅찬데 웬 빌어먹을 개종자들까지 나를 노리고 있으니.
이거 완전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긴 악신의 편에 선 순간부터 이미 예정된 일일지도 모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깜깜한 미래라...
하긴 명색이 악신 숭배자인 컬티스트인데 그 정도는 돼야지.
‘물론 자의로 악신을 숭배하게 된 건 아니지만. 어찌 됐든 덕분에 얻은 게 많으니 그만큼의 역풍도 감당해야겠지.’
그저 부여받은 클래스가 컬티스트였던 것뿐. 내가 나서서 악신을 숭배하려고 한 건 아니다.
엄연히 나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피해자라고 떠들기엔 컬티스트로서 얻은 스킬들이 하나같이 사기 적이긴 하지만.
그래, 이건 그저 내 운이 좀 나빴... 다고 하기엔 묘하게 좋네?
역시 행운 666.
좆같으면서도 좋다. 오락가락한다.
“둘 다 조금 진정됐어?”
“네, 오빠. 이제 괜찮아요.”
“저도.”
은지와 하린이 둘 다 이젠 내 가슴팍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있다. 이제 겨우 진정한 둘에게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빠른 시일 내에 나를 죽이려는 개종자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간 다시 분위기가 심각해질 것 같아 일단은 말을 아꼈다.
남은 업적 보상 좀 다 받아 두고 조금 있다 이야기해줘도 괜찮겠지. 그 정도의 시간은 남았을 테니.
인디크론도 곧 온다고 한 거지 당장 온다고 말한 건 아니니까.
대비하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대비할 정도의 기한은 남았다는 소리다. 적어도 오늘 중에 찾아와서 깽판 치진 않을 것 같다.
방심한 건 아니다. 방심이라기 보단 인디크론의 말을 분석하며 그저 합당한 추리를 했을 뿐.
“그럼 업적 보상이나 같이 골라볼까? 보상 고르고 너희 스킬 찍자.”
“좋아요!”
“네. 주인님.”
고개를 돌려보니 화영은 피곤했는지 다시 잠들어 있었다.
약간 맛이 간 녀석이니 그대로 잠들어 있게 내버려 뒀다.
“자, 그럼...”
남은 업적은 총 아홉 개.
순서대로 ‘목숨을 건 도박’, ‘마나유저’, ‘미지와의 조우’, ‘용서받지 못할 자’, ‘카쉬낙스의 종복’, ‘복수신앙’, ‘인디크론의 종복’, ‘넘치는 마력’, ‘생명담보’다.
“일단 ‘목숨을 건 도박’ 보상부터 확인해 볼게.”
“네!” “넵.”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도박사의 주사위]
[2. 도박사의 조커카드]
[3. 도박사의 황금동전]
이거 이름만 봐선 뭐 하는 물건들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도박사의 주사위: 단 한 번,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상인 NPC의 판매 물품을 교체할 수 있습니다. 교체할 품목이 없거나 적을 경우 나온 숫자만큼 교체 후 리필 합니다.]
‘이거 보부상에게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구나. 상인 NPC라는 걸 보니 향후 업데이트에 보부상 말고 다른 상인도 나올 거 같고.’
보상의 설명에 의하면 숫자 6이 나오면 좌판의 물건을 죄다 바꿀 수 있단 의미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 나왔을 때 교체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좌판에 있는 물건을 5개 산 상태로 주사위가 6이 떠버리면 남은 물건 하나가 교체되고 거기에 물건이 5개나 더 리필 되는 보상이네.’
보부상은 좌판의 물건이 매진될 경우 미련 없이 떠나버리니까 1개의 물건은 무조건 좌판에 남겨 둬야 한다.
그 상태로 주사위를 굴려서 1보다만 높게 뜬다면 좌판에 남아 있던 1개의 물건이 교체되고 남은 횟수만큼 새로운 물건이 리필 되니 이건 아주 좋은 보상이었다.
물론 일회용인 게 마음에 안 들지만.
[도박사의 조커카드: 상인 NPC에게 조커카드를 넘겨 주면 ‘겜블러’ 클래스 카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기존 플레이어가 겜블러 카드를 사용할 경우 레벨이 리셋 되고 직업이 겜블러로 교체됩니다.]
‘세상에.’
겜블러가 뭐 하는 클래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습득 가능한 클래스인걸 보니 평범한 종류의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이걸 얻고 보부상만 어찌 찾아내면 구지환과 김도경 중 한 명을 겜블러로 바꿀 수도 있겠군.’
기존 각성자를 겜블러로 교체하면 레벨이 리셋되니 아깝다. 습득시킨다면 비 각성자인 둘 중에 한 명을 골라야겠지.
[도박사의 황금동전: 황금동전을 대가로 지급해 상인 NPC가 판매하는 물품 중 하나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으음... 이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카드 같은 보상이군.’
언젠가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물건이 나오면 그걸 무조건 살 수 있게 해주는 보상이다.
‘얼마나 개쩌는 물건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이것도 군침이 도는 보상이야.’
일단 가지고 있다가 내가 가진 코인으로도 구입하기 어려운 물건이 나왔을 때 이걸 주고 구입할 수 있다.
‘셋 중에 뭘 고르지.’
보상 설명을 읽고 있는 동안 내 양쪽 젖꼭지를 꼬집으며 장난을 치고 있던 은지와 하린이에게 보상을 설명해주며 뭘 고를지 의견을 물었다.
“셋 중에 뭘 고르는 게 좋을까.”
“음. 저는 조커카드요.”
“그래? 왜?”
“왜냐하면 주사위나 동전은 한 번 쓰면 그걸로 끝인데 클래스는 안 죽으면 영구적이니까요.”
“확실히 은지 말이 맞네. 하린이는?”
“음... 저는 동전이요.”
“이유도 말해 줘.”
“그게... 왠지 지금 황금동전을 얻어두면 나중에 ‘꼭’ 필요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냥 별다른 이유는 없고... 제 직감이예요.”
하린이의 직감이라. 묘하게 감이 좋은 하린이의 말이라 그런지 신빙성있다.
“흐음...”
“오빠. 하린이가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황금동전을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네. 하린이, 뭔가 감이 좋잖아요.”
내가 스킬을 고르다 심연에 빨려들어가 숨을 쉬지 않았을 때 곧바로 알아채기도 했고. 홀로 뭔가 느끼는 게 많은 듯하다. 야만인의 감인가. 어쩌면 이것도 강화영의 뱀파이어 클래스가 가진 종족 특성처럼 야만인인 바바리안의 종족 특성일지도 모른다.
“황금 동전이라. 그래. 이걸로 하자.”
곧 눈앞에 웃고 있는 시바견의 얼굴에 새겨진 황금 동전이 한 닢 떨어졌다.
뭐지? 도지코인이 떡상 한다는 암시인가?
“우와. 강아지 귀엽게 생겼다.”
“언니 저도 볼래요.”
“응, 하린아 여기.”
“오... 진짜 귀엽다.”
귀여운 강아지가 새겨진 금화라서 그런지 둘 다 눈을 못 땐다.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동전이 하나뿐이라 누구에게 주기가 참 묘하네.
둘 다 사랑하는 입장으로서 한쪽만 챙겨 주면 다른 한 명에게 눈치가 보인다고 할까.
“일단 이걸로 하나는 선택완료. 다음은 마나유저 달성 보상...”
[클래스 판독 중...]
[컬티스트로 확인.]
[마법사 계열의 보상이 지정됩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마법사의 떡갈나무 지팡이]
[2. 마녀의 까마귀 깃 고깔모자]
[3. 주술사의 부유석 목걸이]
컬티스트도 마법사 계열의 스킬로 취급하는 건가.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직업군의 전용 템들이 떴다.
그렇다면 마법사 계열이 아닌 전사계열의 직업 군은 마나가 100이 넘어가면 다른 보상을 선택할 수 있단 소리로군.
‘마나 100이라... 다들 죽지만 않고 잘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치지.’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1~5 사이로 랜덤하게 스탯이 오르니까 레벨만 잘 오르면 마력스탯이 결국엔 100을 돌파할 거다. 그때까지 안죽고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마법사의 떡갈나무 지팡이: 떡갈나무 지팡이로 사용하는 마법은 위력이 배로 커집니다.]
이건 일반 화염구를 강화된 화염구로 만들어 주는 물건이었다.
‘내가 쓸 수 있나? 아니지. 나는 애당초 지팡이로 쓰는 마법 스킬이 없으니까. 손동작을 취하는 스킬이 대부분이야. 나랑은 안맞아. 황수민에겐 제격이군.’
[마녀의 까마귀 깃 고깔모자: 영창이 필요한 스킬의 영창을 단축시키거나 지워 버립니다.]
이거 영창생략이나 무영창이 가능해진단 소리였다.
‘이건 나도 쓸 수 있겠는데.’
이 고깔모자를 쓰면 르뤼에라고 외칠 필요조차 없이 촉수를 뿜어낼 수 있게 된다.
‘흠... 그렇다고 마녀의 고깔모자를 쓰고 다니긴 좀 그렇지.’
나는 영창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니까 일단 패스.
[주술사의 부유석 목걸이: 마력을 소모해 허공에 떠올라 부유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로 떠올라서 공중폭격을 가하라는 소리였다.
이건 빼박 메이지인 황수민에게 줘야 하는 물건 같은데.
황수민이 이걸로 공중에 떠올라 사방에 매직미사일을 쏴 갈기는 상상을 하니 꽤 마음을 울리게 하는 꼴리는 보상이다.
‘흠. 일단 셋 다 내가 쓰기보단 메이지인 황수민에게 주는 편이 좋은 물건들이군. 이후에 황수민이 마력 스탯 100을 돌파했을 때 다른 보상을 골라 세트로 쓰면 딱이겠다.’
그렇다면 이 셋 중 당장 황수민에게 필요한 건 뭘까. 둘에게 물어봤다.
“음... 수민이는 마력이 부족하죠.”
“그쵸.”
“역시. 마력부터 어찌해야겠네.”
그런 의미로다가 부유석 목걸이는 아쉽지만 탈락이다.
당장 파이어볼 쏠 마력도 부족한 애한테 마나를 소비하며 공중에 뜨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 남은 건 두 개인데...”
“오빠. 저는 지팡이 추천이요. 왜냐하면 어차피 몇 방 못 쏠 거 위력이라도 높이는 편이 좋잖아요.”
“저도 찬성이요.”
“그럼 떡갈나무 지팡이로.”
곧 내 위로 게임에서 마법사들이 들고 다니던 끝부분이 둥근 전형적인 나무 지팡이가 떨어졌다.
“크억..!”
“오, 오빠!”
“위, 위치가 하필..”
떨어지는 지팡이의 머리부분에 얻어맞은 아랫도리를 붙잡았다. 상당히 아프다.
“후우... 일단 이건 나중에 황수민 보면 줘야겠다.”
“네에... 우리 오빠.. 자꾸 어디가 아프네...”
“주인님. 조심하세요.”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허리를 두드리며 지팡이를 옆으로 치워뒀다.
“다, 다음...!”
다음은 악신과 처음 조우하며 달성된 ‘미지와의 조우’의 업적보상이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로이의 조각상]
[2. 질리언의 등불]
[3. 스티븐의 기둥]
뭔가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는 건 나의 착각이겠지.
[로이의 조각상: 미지 숭배자 로이가 만든 조각상입니다. 파괴할 경우 불특정 악신 중 하나와 조우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일단... 일단은 보류다.’
이미 카쉬낙스와 인디크론을 만나며 확실히 깨달았다.
악신은 선뜻 마주하기엔 좀 위험하다.
그나마 카쉬낙스는 나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별문제 없었고 인디크론은 나를 자기 챔피언으로 삼기 위해 비교적 우호적으로 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악신들마저 그런 식으로 반응하란 법이 없다. 물론 만마의 총애를 가지고 있으니 대부분은 나를 좋아하겠지만 혹여나 너무 좋아서 집착해버리면 그건 그거 대로 꽤 피곤한 일이니까. 악신의 비인간적인 집착이라니. 두렵다.
‘다, 다음..’
[질리언의 등불: 미지 수색가 질리언이 만든 등불입니다. 악신의 고유 영역에서 존재를 상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호라...’
심연에서 나는 존재를 상실하는 감각을 느꼈었다. 이건 그런 이상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겠지.
‘일단은 좋아. 다음.’
[스티븐의 기둥: 미지 탐험가 스티븐이 발견한 막대입니다. 악신에게 바쳐 악신의 호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거다.”
악신의 호감.
당장 새로운 악신과 만나기도 무섭고 악신의 고유 영역엔 갈 일이 없게 끔 하면 된다.
기둥을 얻어 나에게 무관심한 카쉬낙스의 환심을 사자. 그럼 좀 친절해지지 않을까?
인디크론은 어느 정도 나에 대한 호감이 있는 것 같으니까!
“기둥 선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