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30화 (30/221)

〈 30화 〉 29. 보상수령은 친애하는 두 노예와 함께 (2)

* * *

'스티븐의 기둥'이 허공에서 생겨났다.

다행히 이번엔 물건이 나올 걸 미리 대비하고 있던 터라 떨어지기 전에 먼저 낚아 챌 수 있었다.

“윽... 뭐야 이거.”

물컹한데 탱탱한 실리콘 덩어리를 붙잡은 감촉에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심지어 묘한 열기가 느껴지고 살짝 끈적끈적한 점액이 표면에 묻어 있는 물건이었다.

이건 뭐랄까. 기묘한 생김새의 ‘봉’이었다.

“허어.”

“오빠 이거 꼭 생긴 게 꼭.”

“딜도...?”

이 정도면 스티븐의 기둥이 아니라 스티븐의 '육봉' 아닌가?

무슨 이런 기기묘묘한 남성근 같은 물건이... 허어.

‘이걸 악신에게 바치면 호감도를 얻을 수 있다고? 역시 이해가 안 되네. 악신이란 것들은 이런걸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가? 무슨 생각들이지? 하긴 악신의 생각을 내가 어찌 이해할까.’

뭘까 이 물건은. 용도를 파악할 수 없다. 설마 진짜 딜도는 아니겠지.

그래, 악신에게 자위용품이라도 선물하라는 의미일 리가 없지. 그전에 악신에게 성별이 있었나?

내가 아는 악신이라고 해 봐야 카쉬낙스와 인디크론뿐이다. 그리고 둘 다 성별이 뭔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우선 카쉬낙스는 머리를 웅웅 울리는 텔레파시 같은걸로 소통하니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안 되고. 인디크론 같은 경우도 직접 마주했지만 성별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느껴지길 무수한 벌레들이 구름처럼 뒤엉켜있는 형상이었지.

심지어 성대도 없는지 벌레들이 으깨지는 소리로 인간의 언어를 흉내냈는데 그마저도 억지로 쥐어 짜낸 듯한 목소리라 무슨 말을 하는지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성별을 파악할 순 없었다.

기본적으론 둘 다 남성체가 아닐까 싶지만 내심 여신이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중성일지도 모르지.’

어찌 됐든 이건 나중에 카쉬낙스에게 바쳐야겠다. 나에게 무관심한 카쉬낙스의 호감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빠. 그런데 이건 어디 쓰는 보상이예요?”

“이거? 이건...”

생각해 보니 보상을 상의하지도 않고 내 멋대로 정했네. 애초에 악신에 대해서도 둘에게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이걸 신에게 바치면 호감도를 쌓을 수 있데.”

“신...?”

하린이가 눈에 띄게 불안감을 내비쳤다. 안 그래도 갑자기 시체들이 활개치며 씹창 나버린 세계인데 뭔지 모를 정체불명의 신들까지 있다고 하면 나 같아도 당황스럽겠다.

“너무 무서워할 거 없어. 우리 편이야. 우리 편.”

사실 우리 편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른다.

난 그들의 입장에선 단순 장기 말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구나 둘 다 정신 나간 악신이다. 같은 편이라 말하기엔 심히 껄끄러운 존재들이지.’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은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같은 편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진실을 말했다간 둘 다 불안해 할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그래도 일단 나는 그들의 종복이 됐고. 그들의 힘을 빌려 쓰는 클래스니까...’

나는 결국 은지와 하린이에게 내가 만난 악신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은 우리 편이라 말해 둘을 안심시켰다.

‘기왕 신에 대해 말 나온 김에 습격을 받을 거란 사실도 알려 줘야겠네.’

업적보상부터 다 받은 다음에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기왕 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거 지금 다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럼 곧 다른 신의 사자? 신도? 아무튼 뭐 그런 놈들이 온단 말이네요?”

“주인님. 이거 꽤 위험한 상황 맞죠.”

“그렇지. 아마 곧 사람을 많이 죽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신의 사자들이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단 말에은지와 하린이 둘 다안색이 창백해졌다. 하긴 본인들은 신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데 멋대로 이야기가 진행된 거니까. 당황스럽겠지.

“살인이야 이미 경험해봤고. 저는 괜찮아요.”

“저도. 받아들였어요, 주인님.”

다행히 둘 다 납득했다. 하긴 재앙 업데이트 공지도 내려오는 세상이 됐는데 뭔들 수긍 못할까.

“일단 다음 보상으로 넘어갈게.”

“네!” “넵...”

둘 다 나를 공격하는 신이나 신의 사자들에 대해서 더 깊이 묻지 않았다. 그저 둘의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은지는 곧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할 거란 말에 의지를 다잡은 눈빛이었고 하린이는 왜 우리를 노리는 건지 짜증스러워 보였다.

“다음은 ‘용서받지 못할 자’의 업적보상.”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죄인의 마지막 탄환]

[2. 도망자의 검은 두건]

[3. 무법자의 핏빛 단검]

그럴싸한 물건들이 나왔다.

[죄인의 마지막 탄환: 탄환을 집어삼키십시오. 탄환을 집어삼키면 죽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든지 무조건 삶을 끝낼 수 있게 됩니다.]

‘이건...’

죄인의 마지막 탄환. 이건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죽음으로 도망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보상이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한 상황일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둬라는 의미일까.가령 적의 손에 붙잡혀 영구적인 고통에 빠지게 됐을 때 유용한 보상 같다.상당히 아포칼립스 적인 보상이다.

‘물론 내가 선택할 건 아니지.’

이미 나의 영육은 악신들의 소유가 됐다.내가 죽으면 영혼이 반으로 찢겨 카쉬낙스와 인디크론에게 가겠지.나는 이미 찍혔다. 둘이나 되는 거악들에게. 그러니 죽음은 나에게 있어 더 이상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영겁토록 고통 받을 거야.’

죽고 나서까진 지금 생각하기 싫다. 당장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할 거다. 다음 보상이나 확인하자.

[도망자의 검은 두건: 두건을 몸에 묶고서 그 무엇도 죽이지 않고 살생 없이 한 달을 견디십시오. 그리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흥미롭네. 분명 흥미롭긴 하지만...’

과연 한 달을 견딘 끝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몹시 궁금하긴 하다.

그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얻거나 또 다른 업적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내 부하들은 곧 사람을 죽일 일이 생긴다. 당장 쓸 모가 없는 보상이다.

‘거기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이나 비살생으로 버티고 살라니. 답이 없지. 지금이 멸망 전의 세계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뭐가 나를 노릴지 모르는 세계에서 무살생으로 한 달을 버티는 건 꽤 어려운 일이야.’

죽일 놈들도 죽일 것들도 천지에 널린 시대가 왔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것도 죽이지 말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더구나 비살생이니 벌레 한 마리 안죽이고 한달을 버텨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탄환도 두건도 지금은 그다지 필요 없네. 마지막 단검이 제발 선택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길.’

[무법자의 핏빛 단검: 출혈을 유발합니다. 사람을 죽여 피를 머금은 단검은 소유주에게 깊은 고양감과 황홀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고양감과 황홀감... 대가는 타인의 생명.

‘사람을 죽여서 정신적인 쾌락을 얻으란 소리잖아. 그건 마약과도 같겠지. 이 물건이 전투에도 과연 도움이 될까?’

핏빛 단검은 살인귀를 탄생시키는 물건이었다. 이런 엿 같은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면 기분이 좋아진다니. 안 죽일 이유가 있을까.

이걸 얻은 놈이 한 번 살인의 쾌락을 맛본다면 살인에 미쳐 날뛰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건 역시... 강화영에게 주는 편이 맞겠지.’

단검이라 암살자 계열인 은지에게 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은지가 단검이 선사하는 쾌락에 빠져 마약 중독자처럼 변해 버리면 좀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러니 애당초 처음부터 마음이 박살 나 있던 강화영에게 주는 편이 나아 보인다.

‘보상 이름도 무법자의 핏빛 단검이고. 뱀파이어인 강화영과 어울리는 물건이군.’

어쩌면 피에 미쳐 있는 강화영이 단검으로 인해 상태가 호전될지도 모른다.

피를 먹을 때 그녀는 황홀경에 찬 표정을 지었는데. 사람을 죽이는 걸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굉장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정신이 맑아져 말도 잘 통할지도 모르지.

지금도 노예낙인이라는 고삐를 풀어 버리면 피를 빨기 위해서 미친 광인마냥 사람을 죽이고 돌아 기센데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행복하단 사실을 깨닫게 되면 강화영은 진정한 학살마이자 피에 미친 광인이 될 것 같다.

‘가끔 컨트롤이 안 되는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노예로서 시킨 일은 최대한 따르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 카니지 뱀프라는 클래스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야.’

도망자의 두건과 죄인의 탄환도 썩 나쁘진 않은 보상들이지만 강화영이 핏빛 단검을 들고 적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을 수가 없다.

“이 세 개 중에 나는 단검을 고르고 싶어.”

“오빠 의견에 무조건 찬성.”

“하린이는 어때? 다른 보상 중에 끌리는 거 있어?”

“음... 이번에는 딱 이거다 싶은 물건이 없네요.”

“좋아. 그럼 보상 선택.”

곧 눈앞에 붉은 혈기를 가득 머금은 단검이 한 자루 생겨났다.

그건 마치 야수의 이빨과 같은 톱니 칼날을 가진 단검이었다. 붉은색인 것도 그렇고 영 꺼림칙한 생김새의 물건이다.

“살벌하게 생겼네...”

그나마 뭔지 모를 짐승의 가죽 칼집도 같이 딸려와 있어서 넣어 두면 칼날이 보이지 않아 좀 덜 꺼림칙했다.

“야. 강화영. 일어나봐.”

“우응... 네?”

“안 일어나면 저녁 없다.”

“저, 일어났어요! 일어났어요. 주인님.”

피를 주지 않는다고 말하자 벌떡 일어나는 강화영.

난 그녀에게 핏빛 단검을 건넸다.

“이게 뭐지? 단검? 어... 칼날이 예뻐. 예쁜 단검. 선물이예여?”

“그래. 앞으로 그걸로 싸워.”

“와. 선물. 선물은 피가 더 좋은데.. 배고프다. 주인님 저녁 언제 먹어요? 아까 그 사람들 언제 돌아오지? 주인님은 배 안고프세요?”

귀가 아프다. 그녀는 잠에서 깨자마자 배가 고픈지 저녁을 먹고 싶다고 쉼 없이 재잘거렸다.

분명 아까 김도경과 구지환의 얼굴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피를 먹였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처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한계치를 알 수 없으니 곤란하다.

“일단 참아. 다시 자.”

“네에... 하~암...”

피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급 우울해진 강화영은 단검을 품에 안고서 금세 잠들었다.

“흐응...”

하린이는 여전히 탐탁찮다는 눈빛으로 강화영을 노려봤다. 그녀는 여전히 화영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 빠르게 다음 보상.”

다음 업적은 ‘카쉬낙스의 종복’이다. 난 도대체 무슨 보상이 나올지 상상이 안 갔다. 앞선 보상들이 하나같이 특이했던 것도 한몫 한다.

‘과연 뭐가 나올지.’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카쉬낙스의 표식]

‘뭐야...’

이때까지 업적보상은 3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보상은 선택지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앞선 업적들과는 다르단 걸까. 차별화를 둔 것 같은데 뭐 하는 물건일까.

[카쉬낙스의 표식: 이것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뭐지?’

설명도 이상하다.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니. 그럼 다른 걸 더 모아야 뭔가 효력이 생긴단 의미겠지.

내 생각엔 ‘인디크론의 종복’ 업적 보상도 이것과 같은 보상일 것 같다.

‘무슨 인피니티 스톤도 아니고. 종류별로 다 모아야 한다는 소리잖아.’

표식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선 카쉬낙스와 인디크론을 제외한 다른 악신과도 엮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골치가 아프다.

‘선택...’

곧 오른손 손등이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끄으윽...!”

“또, 또 왜 이래요..!”

“어... 주인님 손등에..”

오른손 손등에 무언가 새겨졌다. 그건 마치 문어나 오징어를 그린 듯한 촉수 다발과 비슷한 문양이었다.

“어?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사라졌어요.”

하린이의 말대로 표식은 금방 사라졌다.

“오빠, 그것도 업적 보상이었죠?”

“어. 선택지고 뭐고 없어서. 그냥 받았는데 좀 아프네?”

은지는 걱정스럽게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어쩌지 또 아플 것 같은데.

난 기왕 ‘카쉬낙스의 종복’ 업적 보상을 받은 김에 ‘인디크론의 종복’ 업적보상도 받기로 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인디크론의 표식: 이것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역시나 이것도 ‘카쉬낙스의 종복’ 보상과 같은 설명이다.

‘습득.’

이번에도 오른손 손등이 불타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 새겨졌다.

“후우...”

워낙 아플 일이 많기도 하고 이미 한번 경험했던 고통이기도 해서 이번엔 크게 티 내지 않고 아픔을 씹어 삼킬 수 있었다.

‘방금 건.. 벌레의 얼굴 같았지.’

일단 주니까 받기는 받아두는데 앞으로 이런걸 몇 개나 더 모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장 쓸모도 없어서 그리 기쁘진 않았다.

‘언제 악신을 다 만나서 이걸 완성시켜.’

그나마 나쁜 효과를 주는 보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다음 보상.”

남은 업적보상은 ‘복수신앙’, ‘넘치는 마력’, ‘생명담보’ 총 3개다.

'복수신앙'은 카쉬낙스를 섬기는 중에 인디크론의 종복이 되어 달성된 업적이고 '넘치는 마력'은 마력 스탯이 500을 돌파하며 얻은 거다.

'생명담보'는 흑사의 뒤틀린 내단을 먹고 살아남아서 달성된 업적이고.

나는 우선 ‘복수신앙’ 달성 보상부터 고르기로 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만신전의 초대장]

[2. 만마전의 초대장]

[3. 만귀전의 초대장]

“초대장?”

“초대장이요?”

“어. 잠시만. 설명 좀 읽어볼게.”

갑자기 뜬금없이 초대장은 뭐지.

‘그리고 만신전이나 만마전이 선신, 악신 진영인건 대충 알겠는데 만귀전은 또 뭐야.’

선신과 악신이 아닌 다른 종류의 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 미친 세계는 설마 만신, 만마, 만귀 이렇게 삼파전이 이뤄지고 있는 건가.

악신과 선신이 대립중인 것만으로 복잡하고 머리 아파 뒤지겠는데 거기에 정체불명의 새로운 집단이 하나 더 끼어들었다.

‘일단 설명부터 읽어봐야겠네.’

[만신전의 초대장: 선신들 중 하나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살려 그들의 사도가 되십시오.]

[­주의­ 악신 진영일 경우 죽임 당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긴 내가 절대 못 간다는 소리네. 갔다간 바로 끔살 당할 것 같다.

‘물론 다른 놈을 보내면 되겠지만 이미 나를 죽이려고 플레이어도 보내는 놈들이 내가 보낸 다른 놈에게 뭔 개수작을 부릴지 알 수가 없으니 이건 패스.’

굳이 내가 안 가도 다른 놈들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내 동료일 테니 선신 놈들이 무슨 수작질을 부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이건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만마전의 초대장: 악신들 중 하나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니... 미친 거 아닌가.’

그래도 내가 악신 진영인데 다짜고짜 죽이려할까.

‘그럴지도...’

스킬 '만마의 총애'를 얻은 지금도 카쉬낙스와의 호감도가 그리 높지 않아 직접 마주쳤다간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두려운데 다른 놈들은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이건 처음부터 나에게 묘하게 우호적이었던 인디크론이 이상한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악신들에게 너무 큰 공포를 가지고 있는 거일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일단 악신들과 계속 엮일 것 같긴 한데. 일단은 보류하자. 클래스 적인 문제로 엮이는 거랑 이런 보상만 달랑 들고 무작정 찾아가는 거랑 대우가 다를지도 몰라.’

여러모로 곤란한 보상이다.

‘그나저나 만귀전은 뭐 하는 곳이지.’

[만귀전의 초대장: 고대신 중 하나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시련을 거쳐 고대신의 화신이 되십시오.]

[­주의­ 다른 진영일 경우 고대신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디크론의 말로 유추해보자면 만마전과 만신전은 확실히 대립하고 있지만 이곳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 내 예상이지만 어쩌면 여긴 중립적인 존재들이 모여 있는 곳 일지도 모른다.

‘만귀전이 셋 중에서 그나마 제일 안전해 보이네. 그리고 굳이 내가 안 가도 되니까. 은지나 하린이 중에 한 명을 보내도 되고.’

안 되면 만마전의 초대장을 골라서 악신과 마주하고 와야겠지만 만귀전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으니 두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 봤다.

“저... 제가 가보고 싶어요.”

“만귀전에?”

“네. 왠지 끌려요. 이것도 그냥 제 감이지만요.”

하린이가 뜻밖에 만귀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럼 그렇게 할까?”

“네. 맡겨 주세요. 그 화신이라는 게 돼서 돌아올게요.”

“그래. 꽤 가고 싶은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당장 보낼 생각은 없다. 지금은 여러모로 위기 상황인데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중요 전력을 보낼 수는 없지.

나를 죽이러 온다는 그 선신들의 챔피언들부터 다조져 놓고 때 되면 하린이를 만귀전으로 보내줘야겠다.

"만귀전 선택."

만귀전의 초대장은 나무 그림이 새겨진 작은 돌멩이였다. 깨부수면 갈 수 있는 모양이다.

“자, 여기.”

“고맙습니다. 주인님이 받은 보상인데 나눠 주셔서 고마워요.”

“뭘, 네가 강해지면 나도 좋지.”

동료가 강해지면 여러모로 써먹기도 좋고 생존율이 높아지니 내가 굳이 지켜 주지 않아도 될 테고 일석이조다.

‘이거 하린이, 강화영, 황수민에게 줄 건 다 하나씩 챙겼는데 은지만 아무것도 못 받았네.’

다음에 뭐 은지가 쓸 만한 거 나오면 은지 줘야겠다.

‘다음.’

이번엔 ‘넘치는 마력’ 업적달성 보상이다. 무려 마력 스탯이 500을 돌파해 달성한 업적인 만큼 꽤 좋은 보상을 주지 않을까 싶다.

[클래스 판독 중...]

[컬티스트로 확인.]

[마법사 계열의 보상이 지정됩니다.]

이번에도 계열에 따른 차별 보상이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대마도사의 목걸이]

[2. 대마도사의 귀걸이]

[3. 대마도사의 서클릿]

[대마도사의 목걸이: 마력 투사체가 2배로 늘어납니다.]

‘정신 나갔네...’

이건 미친 보상이다.

화염구를 한 방 쏘면 2발이 발사되고 바람 칼날을 사용해도 그게 2배로 불어나 적을 찢어 버리는 보상이라니.

‘촉수도 2배로 늘어날까? 아, 안 되겠구나.’

촉수는 소환물이지 마력 투사체가 아니니까.

‘마력 투사체 한정이지만 그래도 충분히 굉장한 보상이야.’

촉수소환이나 부정한 손길 같은 투사체를 쏠 수 없는 스킬은 적용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황수민이 이걸 가질 경우 마법폭격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대마도사의 귀걸이: 45퍼센트의 확률로 마력 소비 없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1이상 보유 중이어야 합니다.]

“쿨럭..!”

침을 잘못 삼켰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보상이지?

45퍼센트의 확률로 스킬을 공짜로 쓸 수 있다니.

‘45퍼센트가 누구집 개이름도 아니고 충분히 높은 확률이다. 미치겠네. 마력 소모 없이 스킬을 쓸 수 있다니.’

이것도 만만찮게 정신 나간 보상이다.

꿀꺽.

절로 군침이 돈다.

[대마도사의 서클릿: 마나 회복 속도를 2배로 높입니다.]

2배로 회복 속도가 늘어난다니.

“2배...”

굳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지 않아도 마력을 회복 시켜 주지만 회복 속도가 상당히 더딘 녹마석 반지와 2배로 빨리 채워주는 대마도사의 서클릿을 같이 쓰면 최고의 효율을 뽑아 낼 수 있겠지.

“고민 되네.”

역시나 이번에도 둘에게 질문했다.

“이번 건 좀 어렵다. 그치 하린아?”

“네, 언니. 이번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뭔가 딱 하고 오는 감이 없네요.”

“오빠는 뭐가 좋아? 이번엔 오빠가 선택하고 싶은걸로 하자.”

“그럴까?”

난 솔직히 귀걸이가 끌린다. 마력 소비 없이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니까.

“선택!”

투박하게 생긴 은색 귀걸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귀를 뚫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은지에게 줬다. 뭐라고 주고 싶어서.

“그럼 이제 드디어 마지막 보상이네.”

“오!”

마지막은 ‘생명담보’ 달성보상이다.

뒤틀린 내단을 먹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덕분에 달성됐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도박마의 블랙 칩]

[2. 빚쟁이의 화이트 칩]

[3. 바람잡이의 골드 칩]

또 도박과 관련된 보상들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상인 NPC들에게 써먹을 수 있는 보상일까.

[도박마의 블랙 칩: 상인 NPC에게 건넬 경우 ‘암시장’의 영구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암시장...?’

암시장이란 장소가 있나 보다.

‘뭔가 이름부터 대박의 냄새가 나...’

일단 보류해 두고 다음 보상도 확인해 보자.

[빚쟁이의 화이트 칩: 상인 NPC에게 건넬 경우 ‘전당포’의 영구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우와... 이것도 일단... 킵.’

[바람잡이의 골든 칩: 상인 NPC에게 건넬 경우 상인 NPC가 당신과 동행하게 됩니다.]

이번 보상도 상당히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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