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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 30. 빠른 스킬 선택

* * *

보상선택을 하려니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하지?

왜 나는 항상 이렇게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하는가.

이 또한행운666의 효과?

“행복해... 정신이 나갈 것 같지만...”

“오빠 표정이 엄청 이상한데.. 또 어디 아파요?”

“주, 주인님. 왜 우세요?”

“하... 기뻐... 행복해. 난 행복하다고.”

내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자 의아하게 나를 보던 은지와 하린이. 둘에게 보상을 설명했더니 곧바로 내 반응을 납득했다.

“셋 다 레전드네요.”

“그치 은지야. 나 선택 장애 올 것 같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셋 중에 하나를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

뭘 골라도 좋지만 그중에서 단 하나만 선택하려니 손이 떨린다.

차라리 다 주던지. 아니면 아예 선택지를 보여 주지 말지. 왜 이런 선택지를 줘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걸까.

“주인님. 암시장이나 전당포에 대한 상세정보는 없죠?”

“전혀 없어. 그게 문제야.”

이름만 봐선 둘 다 숨겨진 상인이랑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닐까 싶은데 암시장이 뭘 파는 놈인지 전당포엔 뭐가 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서 문제다.

암시장이나 전당포의 상세정보를 알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선택이 더 쉬워질 텐데. 불친절한 설명문은 나에게 그런 것까진 알려주지 않았다.

“오빠, 상인 NPC가 동행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그쵸?”

“맞아. 한 번 찾아내면 이젠 찾아다닐 일 없이 우리 쪽에서 계속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보부상을 계속 데리고 있다 보면 언젠가 또 흑사의 내단 같은 물건을 팔지 않을까?

그때는 나 말고 다른 노예를 시켜서 먹인 다음 내가 달성한 것과 똑같은 업적을 달성 시키면 언젠간 암시장과 전당포 출입증을 다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내단을 얻을 방법이 보부상의 랜덤 판매뿐이니까...’

물론 보부상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보부상... 퇴근할 때 기분 엄청 좋아 보였는데. 우리랑 동행하면 퇴근 못하게 되는 건가?’

그럼 NPC와의 호감도가 박살 나는 게 아닌가?

기껏 좌판 물건 매진시켜가며 호감도 올려 뒀는데 골드 칩 받고 호감도가 씹창 나버리면 어떡하지.

‘아니야. 데리고 다니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떨어지는 그런 좆 같은 시스템일 리가 없지. 동행이라고 해서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다니라는 법도 없고. 어쩌면 출퇴근 하는 방식일지도 모르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설마 미치지 않고서야 실시간으로 NPC의 호감도가 씹창나게끔 설계해 뒀을까 싶다.

‘아닌가. 게임 운영자 놈은 첫 업데이트로 생존자를 다 죽이려고 할 정도로 악질적이고 악랄한 새끼니까. 어쩌면 NPC를 동행시켰을 때 정말 호감도가 작살날 지도 몰라.’

골드 칩을 골라서 보부상에게 줘보기 전까지는 어떤 방식일지 알 수가 없으니 호감도 관련 고민은 이쯤 하자. 어쨌든 좋은 보상이고 호감도가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시스템으로 묶여 버린 이상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싶다.

“음...”

그때 가만히 눈을 감고 고민하던 하린이가 작게 신음했다. 이번에도 그 특유의 직감이 일을 하려나?

“뭔가 느낌이 와?”

“아뇨. 전혀. 전혀 모르겠어요.”

젠장. 이럴 때 하린이의 직감이 딱 선택을 해주면 좋으련만.

“하... 어쩌지.”

“오빠는 뭐가 끌려요?”

“일단... 암시장이랑 상인 NPC 동행 둘 중에 하나로 하고 싶은데. 글쎄 암시장이 젤 끌리네.”

전당포도 궁금하긴 하지만 당장 끌리는 건 암시장이랑 NPC 동행이다. NPC의 호감도 문제는 일단 제처 두고 2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싶다.

‘암시장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을 팔 거 같고. 동행은 보장된맛 집이지.’

이 2개 중에서 은지와 하린이가 고르는 선택지로 결정하자.

“은지는 뭐가 좋아? 암시장이란 동행 중에서 한개만 골라봐.”

"음, 저도 오빠처럼 암시장이요. 무엇보다 보부상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암시장이나 전당포는 업적 보상으로만 만날 수 있으니까 보부상처럼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굳이 선택하자면 암시장이죠.”

“오. 은지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네.”

은지 말대로 보부상은 생존해 있다 보면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 존재다. 거기다 생존자들이 10명 이상만 모여 있어도 확률적으로 나타나니까 출현조건이 까다롭지도 않고.

그에 반해 암시장이나 전당포는 보상으로 밖에 갈 수 없다. 따로 만나는 방법도 없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동행이 나쁜거냐 하면 그건 또 아니란 거지.’

일단 상인 NPC가 꼭 보부상만 있으리라 법이 없으니까 그게 문제다.

향후 업데이트로 보부상이 아닌 새로운 상인이 추가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상인 NPC는 보부상 보다 출현 조건이 훨씬 까다로울 지도 모른다.

그때 골드 칩을 사용하면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상인을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써먹을 수 있으니 좋다.

역시나 딱 그렇다 할 정답은 없었다. 이건 진짜 그냥 내 감과 은지와 하린이의 의견에 맞게 하나를 골라잡는 수밖에 없는 선택지다.

“하린이는 어때?”

“암시장이랑 동행 둘 다 끌리긴 하지만... 일단 저도 암시장이요.뭔가 특이한 물건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좋아. 암시장으로 가자.”

결단을 내렸다. 셋 중 둘이 암시장을 외치고 있으니 암시장으로 가는 게 맞겠지.

나도 사실 암시장을 고르고 싶었다. 뭔가 암시장이라 하면 남자의 로망이 느껴지는 장소니까.

전당포 보다는 암시장이 좀 더 멋있고 있어 보인다는 이유도 한몫했지.

셋 다 비슷하게 좋다면 그중에서 더 간지 나는 쪽을 고르는 게 맞다고 본다.

“도박마의 블랙 칩 선택!”

보상 선택과 동시에 카지노에서 쓰일 법한 검은색 칩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어디 굴러갈세라 급하게 주웠다. 이건 보부상을 만나기 전까지 극도로 소중히 다뤄져야 하는 물건이다.

“휴우. 됐다. 이걸로 업적보상 다 얻었어.”

“와아­!”

“고생하셨어요, 주인님.”

“둘이같이 골라준 덕이지 뭐.”

확실히 나 혼자 전부 다 선택하려 했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거다. 은지와 하린이가 옆에서 같이 골라 주니 비교적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스킬이나 찍을까?”

“나! 나부터!”

“언니...”

“아, 맞다. 이번엔 양보할게.”

“고마워요.”

지난번엔 은지가 먼저 스킬을 골랐었다. 이번에는 하린이에게 양보하려나보다.

“자. 그럼 하린이부터 찍어 보자.”

은지와 하린이는 각각 레벨이 4씩 올랐다. 둘 다 이제 레벨 9고 스킬은 4개씩 찍으면 된다.

[성하린]

[레벨: 9]

[클래스: 바바리안]

[근력: 40]

[민첩: 32]

[체력: 42]

[의지: 31]

[마력: 34]

[행운: 33]

[스킬: 심박추적, 근육확장, 거친 피부, 파괴자의 주먹질, 돌팔매질]

하린이는 바바리안 답게 근력과 체력이 중점적으로 올랐다.

‘생존에 특화된 직업이야. 나쁘지 않은 자기 강화기술과 적절한 보조 스킬들까지.’

하린이는 아마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혼자 잘 살아남았겠지.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넘치는 분노]

[2. 강철 위장]

[3. 확장된 감각]

[4. 야만인의 함성]

[확장된 감각: 눈을 감으면 청각, 후각, 촉각이 예민해집니다. 수면 중 감각이 날카로워 집니다. 야습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나와 은지가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변형된 시야나 들추는 시선과 같은 눈과 관련된 스킬이 나온 반면 하린이는 아예 시야를 포기하고 다른 감각을 높여주는 스킬이 나왔다.

‘거기다 홀로 남더라도 잠들 수 있을 법한 스킬이 나왔네. 역시 생존에 특화된 클래스야.’

확장된 감각은 잠든 상태에서도 기습이나 야습을 당하지 않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이건 중요하다. 혼자 남았을 경우 적들이 언제 공격할지 알 수 없으니 수면 패턴이 망가지고 피로가 중첩될 텐데 확장된 감각이 있다면 홀로 남더라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잠들 수 있다.

잠들더라도 높아진 감각이 적의 공격을 알아차려줄 테니.

심지어 시야가 봉쇄당한 상태에서도 다른 감각에 의존해 전투를 이어 나갈 수 있게 해주니 하린이가 혼자 였다면 필수적으로 찍어야하는 스킬이었다.

“뭐가 좋을까?”

“저는 '넘치는 분노'랑 '야만인의 함성'이요. 곧 주인님을 노리고 오는 놈들이 있잖아요. 그놈들이랑 싸우려면 필요할 것 같아요.”

'넘치는 분노'는 잠깐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반동이 있을 거라 예상되는 스킬이고 '야만인의 함성'은 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대신 주변의 좀비들에게도 어그로가 끌릴 수 있다.

“그럼 일단 야만인의 함성부터 찍자. 선택.”

[스킬이 적용됩니다.]

“습득 됐어요, 주인님. 야만인의 함성은 영체들도 데미지를 입힐 수 있데요.”

“영체? 나중엔 귀신도 나오는 건가.”

“와...! 대박! 귀신!”

귀신이라는 말에 호러무비 메니아인 은지가 눈에 띄게 기뻐했다.

귀신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건가?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취향이지만 은지니까 별말 안 했다.

그런 은지의 반응과는 달리 하린이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귀신... 으...”

하린이는 겁이 많아서 그런지 귀신 이야기에 질색했다. 빨리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어했다. 나도 스크린 밖에서 귀신과 직접 마주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서 얼른 스킬선택으로 넘어갔다.

“그럼 다음 스킬.”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넘치는 분노]

[2. 강철 위장]

[3. 확장된 감각]

[4. 비명참기]

[비명참기: 고통에 내성이 생깁니다. 기절저항이 높아집니다. 고통스러울 수록 정신이 예민해집니다.]

“오... 이거 완전 나한테 필요한 스킬이잖아.”

스킬 습득 때마다 골병 드니까 고통 내성은 나에게 꼭 필요한 스킬이다.

"부럽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전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다. 이걸 습득하면 고립된 상황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고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겠다.

“일단은 넘치는 분노로 할게요.”

“알겠어.”

물론 하린이는 당장 닥쳐올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전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스킬을 골랐다.

이제 2개 남았다.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저돌적인 돌진]

[2. 강철 위장]

[3. 확장된 감각]

[4. 비명참기]

[저돌적인 돌진: 전방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갑니다. 부딪힌 대상은 충격파에 휘말립니다.]

“이걸로 할게요.”

“바로 선택해도 돼?”

“네. 보자마자 끌렸어요.”

“좋아.”

하린이의 선택은 빨랐다. 딱 보자마자 자기가 써야 할 기술이라며 돌진기를 골랐다.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지면강타]

[2. 강철 위장]

[3. 확장된 감각]

[4. 비명참기]

[지면강타: 손이나 발로 지면을 내려쳐 충격파를 발생 시킵니다. 아군이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역시 지면강타겠지?”

“네. 엄청 마음에 들어요.”

이걸로 하린이의 스킬을 다 골랐다.

적과의 전투를 상정한 상태로 스킬을 고른 덕분에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다음은 은지 차례.”

“금방 끝났네여?”

“응. 하린이가 컨셉을 야만 전사로 확실히 잡았나 봐.”

“아, 아니. 야만적이라기 보단 그냥.. 좀 더 잘 싸울 수 있는 거로..”

“이야. 야만 전사 하린이 멋있네.”

“어... 네에...”

하린이는 왠지 야만인이라 놀리면 부끄러워한다.

“은지도 어디 보자..”

[이은지]

[레벨: 9]

[클래스: 섀도워커]

[근력: 34]

[민첩: 44]

[체력: 30]

[의지: 35]

[마력: 36]

[행운: 44]

[스킬: 그림자 직조, 그림자 은신, 마비 독니, 흐릿한 걸음, 들추는 시선]

암살자 계열답게 민첩이 제일 높았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 당연한 수치다.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비도발출]

[2. 출혈유발]

[3. 거짓판별]

[4. 고통증가]

[비도발출: 단검을 투척했을 때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집니다. 미약하게 적을 추적합니다.]

하린이의 돌팔매질과 비슷한 스킬이지만 이건 단검류에 한정된 스킬이었다. 아마 제약이 걸린 만큼 명중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미약하게나마 적을 추적한다는 설명만 봐도 얼마나 위협적인 스킬인지 감이 온다.

“비도발출이 제일 낫겠죠?”

“출혈유발은 굳이 찍어야하나 싶고. 거짓판별은 전투에 별 필요 없으니까. 고통증가도 좋긴 한데 역시 비도발출이지?”

고통증가로 적들이 정신 못 차리게 해주고 싶긴 하지만 당장은 비도발출이 더 좋은 선택지였다. 그림자 직조로 뽑아낸 그림자 단검을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샘이니까.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그림자가시]

[2. 출혈유발]

[3. 거짓판별]

[4. 고통증가]

[그림자가시: 지면의 그림자에서 가시를 분출시킵니다.]

“와. 미쳤네?”

“오빠, 우리 이걸로 해요.”

이건 예측불가의 일격을 먹일 수 있는 스킬이다. 비도를 던진 다음 그림자 가시를 내뿜어 적의 등 뒤를 노릴 수 있는 기술.

은지가 컨트롤을 잘해 잘만 사용한다면 다양한 연계기가 탄생할 것 같다.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증거인멸]

[2. 출혈유발]

[3. 거짓판별]

[4. 고통증가]

[증거인멸: 죽인 대상을 그림자 속으로 집어삼킵니다.]

“우와... 증거인멸. 지금이 이런 시대가 아니라면. 나 완전히 살인귀 같지 않아요, 오빠?”

“그러게. 기척도 숨겨, 그림자 무기로 찔러 죽이니 증거도 안 남아. 시체도 치워 버리고. 완전히 사이코패스들이 꿈에 그리던 능력들이네.”

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니 소름 끼친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이라니.

"증거인멸보단 고통증가가 나을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고통증가로 적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유발해 정신력을 떨어뜨리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료의 비명 소리는 꽤 공포스러울 것 같다.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증거인멸]

[2. 출혈유발]

[3. 거짓판별]

[4. 잔상남기기]

[잔상남기기: 특이한 발걸음으로 잔상을 남겨 인위적인 인기척을 조성합니다. 적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마지막 스킬은 잔상남기기로 하자.”

“좋아 좋아. 그렇게 해요, 오빠.”

잔상남기기는 좀비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을 스킬이지만 인간들에겐 효과적으로 먹힐 스킬이다. 일부러 잔상을 남겨 적에게 위치를 속여 기습할 수 있을 테니까.

"됐어. 이제 스킬 다 찍었다."

이제 다시 움직여보자. 카쉬낙스에게 스티븐의 기둥을 공양해야하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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