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31. 육봉을 선물로 줬습니다
* * *
“이걸로 스킬도 다 찍었고. 으읏차!”
기지개를 폈다.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더니 몸이 약간 찌뿌둥했다.
‘일단은 이걸로 미뤄놨던 일들은 다 마무리했고... 이제 황수민한테 떡갈나무 지팡이랑 대마도사의 귀걸이를 주고, 카쉬낙스에게 스티븐의 기둥을 고양해야겠지... 그다음에 레벨링 좀 하면 딱이겠다.’
보상 선택만으로도 피곤한데 여기다 강화영 레벨도 올려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전부 선신 씹새끼들 때문이다.
원래는 알람 맞춰두고 좀 자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잠을 좀 줄여야겠지.
“둘 다 안 피곤해? 자다가 나 때문에 깼잖아.”
“하루 쯤 안자도 괜찮아요. 그리고 잠 다 깼어요.”
“저도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버틸 만해요.”
“그래? 그럼 슬슬 다시 움직여볼까?”
일단 은지와 하린이의 레벨을 10으로 맞춰두고 싶다. 그리고 강화영도 제대로 써먹으려면 레벨을 높여야 하고.
‘어딘가에 스폰해 있을 보부상도 발견했으면 정말 좋겠네.’
기왕 다들 잠깬 김에 바로 움직여야겠다.
‘오늘 다이소까지 다녀올까.’
과연 지난밤을 다이소의 생존자들은 어찌 보냈을까. 우리처럼 힘겹게 이겨 냈을지 아니면 전부 좀비 떼에게 몰살당했을지 상태가 궁금하다.
‘살아남은 놈들이 있다면 노예로 삼아 팀의 전력을 높인다.’
어젯밤을 버틴 놈들이라면 쓸 만하겠지. 촉수소환에 제한이 없어진 지금이라면 놈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노예로 삼을 수 있다.
나는 지금 비인간적인 노예사냥을 즐기고 싶다. 선신들의 챔피언과 싸워야하는 스트레스를 노예낙인을 찍으며 풀고 싶다.
‘이번 사냥엔... 처녀가 있다면 좋겠군.’
은지와 하린이도 물론 굉장히 좋지만.
남자의 로망은 역시 처녀지.
물론 은지의 테크닉과 하린이의 질 조임이 장난 아니긴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처녀를 따먹고 싶다.
처녀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궁금하면 찾아서 맛보면 된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내 힘에 취해 자만하고 나댈 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히 처녀를 사냥할 정도는 된다고 본다.
그래, 처녀사냥. 이건 노예낙인 스킬을 얻고 나서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다.
‘처녀를 찾아보자. 예쁜 처녀가 과연 이 세상에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나는 수색을 멈추지 않으리.’
물론 당장은 생각만 할뿐. 선신의 챔피언인지 나발인지부터 다 조져놓고 본격적으로 찾아 나설 생각이다.
처녀와의 섹스가 생존보다 우위에 있진 않으니까.
‘그런데 다이소에 있는 놈들이 설마 선신의 종복들은 아니겠지?’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다이소에 선신의 종들이 있다고 상상하니 아찔하다.
그리 가까이 붙어 있었다면 인디크론이 단박에 위험하다고 경고했겠지.
인디크론이 나에게 대비하라고 했으니 적어도 이삼일 정도 뒤에 찾아오지 않을까.
경계를 게을리 해선 안 되겠지만 다이소에 자리 잡은 놈들이 선신의 하수인일 것 같지는 않았다.
“옥상에 가서 말 좀 전해 놓고 우리 마트 밖에 나갔다 오자.”
“밖으로요?”
“응. 너희 10렙으로 맞추고. 쟤도 레벨 좀 높이고.”
강화영은 여전히 잠들어있다. 그나마 피 달라고 안 보채고 잠들어서 다행이다.
“좋아여!”
“잠시만요. 무기 좀 챙기고...”
은지는 가죽 벨트에 숏 소드 두 자루를 잘 묶었고 하린이는 철제 투구와 도끼를 집어 들었다. 특수 좀비를 사냥하고 드랍된 아이템들이다.
“야! 강화영! 일어나라.”
“으음. 츄릅.. 네엥? 왜용.. 방금 자라면서요.”
강화영은 잠투정을 부리듯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답했다. 노예 주제에...
“밥 먹자.”
“저 일어났어요. 저 언제든지 피 마실 준비되어 있어요. 저 주인님 말 엄청 잘 듣는 거 알죠?”
피에 미친년 답게 밥준다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다.
“모르겠고 따라와. 옥상으로 갈 테니까.”
그리 넷이서 옥상으로 올라가니 한창 옥상을 청소 중이던 하진성과 노예들이 보였다.
다들 생활용품 코너에 있던 장화와 고무장갑을 끼고 마트 직원들이 썼을 고무 앞치마까지 입고서 열심히 옥상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어디서 대걸레와 밀대를 찾아왔는지 다들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이 좀 웃겼다.
꼭 시체청소부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의 현실 버전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와.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다. 그쵸 오빠.”
“그러게. 다들 제법 열심히 치우고 있었네.”
옥상 전체에서 썩은 좀비의 피 냄새보다 락스 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
말라붙은 핏기로 가득했던 옥상 바닥이 이제는 불그스름한 거품과 물기로 가득하다.
한쪽 구석에선 좀비들의 시체를 쌓아둔 시쳇더미가 보이고 거기에 불을 지피고 있는 황수민과 주변을 서성이며 시체에서 흘러나온 핏물을 열심히 닦아내는 이은혜, 김도경, 구지환이 보였다.
김일우와 김민준은 돌아다니며 바닥에 떨어진 좀비의 살점이나 뼛조각을 쓸어 쓰레기 봉투에 담고 있었고 하진우는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바닥에 물을 뿌리고 하진성은 호스를 가져와 벽면에 묻은 피를 지워내고 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옥상을 치우고 있던 노예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왜 마음이 뿌듯해지는 걸까. 남에게 일을 잔뜩 시키고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힐링이 된다. 그래서 잠시 가만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하진성이 우리를 알아보고 웃으며 달려왔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아직 청소가 덜 댔습니다.”
“아, 그래. 청소는 잠시 멈추고 알려줄 게 있으니까 다들 모아봐.”
“예, 형님. 야! 다들 와봐!”
노예들을 불러 모아 곧 습격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알렸다.
왜 우리를 습격하는지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그냥 마트를 노리는 엿 같은 새끼들이 찾아올 거라고만 말해 뒀다.
당연하게도 반응들이 하나 같이 절망적이다.
“하아... 아니 시발 좀비도 엿 같아 죽겠구만. 인간들까지..”
김일우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분노를 삭히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지 김민준도 연신 욕설을 중얼거리며 우릴 습격할 놈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어찌 되었든 길어도 이번 주 내에 습격 올 거야. 그러니까 아처인 김민준이랑 이은혜는 사주 경계 확실히 하고. 수상한 놈들 발견하면 그냥 무조건 죽여 버려. 그리고 시쳇더미에 불 피우려던 것도 잠시 멈추고. 어그로 잘못 끌었다간 큰일 날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형님.”
“우린 곧 나갈 거야. 다이소 놈들이 어찌 됐는지 확인도할 겸. 레벨 좀 높이고 올게. 오늘 저녁 전에는 돌아올 거니까 너희들끼리 마트 확실히 지키고 있어라.”
“네. 형님..”
“인상 펴 다들. 우린 살아남을 거야. 너무 기죽지 말고. 살기 위해선 죽여야 하는 거 알지?”
다들 분위기가 너무 우중충해서 사기를 조금 올릴 목적으로 말했다. 어디 가서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이들 전부 내 노예들이라 그런지 무대 울렁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괜히 동정 베풀지 말라고. 노인이고 애고 불쌍히 여기지 말란 말이야. 아니, 그냥 대화자체를 하지 말고 무조건 보이면 죽여! 나 없을 때 찾아오는 새끼들은 전부 적이다.”
“예!”
내 말에 다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를 공격하러 오는 놈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키우기까지 한다.
특히나 하씨 형제는 나에게 굴복하기 전에도 이미 마트를 노리고 찾아오던 인간들을 숱하게 때려 죽였다고 하니 믿고 맡겨도 되겠지.
같잖게 동정심을 베풀었다간 죽는 거다. 노예가 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죽이던지 노예로 삼던지 무조건 둘 중 하나야.
“그리고 황수민. 이거 받아라.”
황수민에게 보상으로 나온 떡갈나무 지팡이와 대마도사의 귀걸이, 내가 끼고 있던 녹마석 반지까지 챙겨 줬다.
“아이템 설명 보이지?”
“네... 우와 대박.”
“여기서 우리 넷이 나가면 네가 화력이 제일 쌔다. 우리 넷 없을 때 수상한 놈들 가까이 오면 일단 화염구부터 쏴 갈겨. 신원 파악은 죽인다음에 한다.”
“네, 알겠어요.”
“좋아. 다들 이제 다시 할 일들 해. 긴장 풀지 말고. 잘 거면 보초 꼭 둘 이상 세워가면서 자고. 그리고 아까 고기 구워뒀으니까 청소 끝나고 먹어라. 밑에 층에 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형님!!”
다들 다시 옥상을 청소하러 돌아갔다.
적이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줬으니 이걸로 됐다. 당장은 은지, 하린이와 강화영을 레벨 10까지 레벨 업 시키고 다이소를 확인할 생각이다. 그러다 시간 나면 보부상을 탐색하러 다니면 된다.
이제 진짜 카쉬낙스에게 '스티븐의 기둥'만 딱 공양하고 나가자.
“얘들아 잠깐만. 오빠 이거 공양 좀 할게.”
“공양이요?”
“응. 별거 없을 거야.”
은지의 눈빛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오빠, 진짜 안 위험한 거 맞죠?”
“그... 럴걸?”
아닌가?
뭐, 어차피 할 거였으니 너무 겁네지 말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는 즐기는 수밖에.
악신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면서도 강해지려면 기어들어가야 하는 게 컬티스트의 길. 이 길에 들어선 이상 고통은 내 삶의 동반자가 아닐까.
“괜찮을 거야. 너희가 있으니까.”
“오빠...”
“괜찮아, 은지야.”
“주인님. 일단 앉아서 해요. 갑자기 쓰러질까 무섭네요.”
“그럴까?”
하린이의 의견을 받아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깨끗한 하늘이 잘 보인다.
이거 공양하기 딱 좋은 날씨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 은지와 하린이.
강화영은 끝까지 피는 언제 줄꺼냐며 보채다가 내가 짜져있으라고 명령 했더니 구석에 가서 쪼그려 앉아 멍을 때리고 있다.
“크흠. 그럼 할게.”
난 주머니에 대충 넣어 뒀던 스티븐의 육봉.... 아니, 기둥을 꺼냈다.
‘그런데 어떻게 바쳐야하지.’
사용설명서가 없으니 뭘 알 수가 없네.
‘일단은 바친다고 외쳐보자.’
난 스티븐의 기둥을 붙잡은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외쳤다.
“카쉬낙스님께 바칩니다!”
일순, 시공간이 정지한다.
모든 것들이 멈춘 세계.
색이 사라진 흑백의 세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청소하던 하씨 형제도,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은지와 하린이도, 멍하니 하품을 하고 있던 강화영까지.
모든 게 멈췄다.
‘어... 뭐, 뭐야 이게...?’
그저 눈동자만 미약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 몸은 움직일 수가 없다.
석화라도 된 듯 돌덩어리처럼 굳어 버렸다.
식물인간이 이런 감각일까. 문득 이대로 세상이 정지하고 나 홀로 깨어 천천히 정신이 죽어 버리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이, 이게 무슨 개같은 일이야....’
카쉬낙스에게 요상하게 생긴 육봉을 바쳐서 시공간이 멈춘 걸지도 모른다.
설마 스티븐의 기둥이 마음에 안 들었나?
뭐라도 좋으니 반응 좀 해줬으면 좋겠다!
[흐음...]
점차 두려움에 질려가던 나의 머릿속에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나에게 주는 건가?]
묘하게 언짢은 분위기. 살짝 기분 나쁜 듯한 떨림.
전신을 끈적한 촉수가 휘감아 오는 불쾌한 감촉까지.
아니, 느낌이 아니라 진짜 촉수가 자라나 내 발목부터 휘감고 올라와 목을 조였다!
동시에 내 눈앞의 공간이 찢기듯 벌어지며 차마 인간의 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아스트랄한 풍경이 비춰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순식간에 속이 메스껍고 둔중한 두통과 함께 전두엽이 덜덜 흔들렸다.
인디크론을 마주했을 때 영혼이 떨리는 기분을 느꼈다면 카쉬낙스의 일부를 마주한 지금은 몸이 뒤틀리고 변질될 것만 같다.
순간 내 몸이 촉수 덩어리로 변한 것 같은 환각에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왜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설마 공양 방식이 이상했나? 아니, 왜 저리 언짢아하는 거야.’
시간이 멈춰 식은땀이 흐를 리가 없는데도 등이 축축해지는 기분이다.
또한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지는 아픔이다.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린다. 시야가 점차 붉어지는 걸 보니 이건 피눈물이 분명했다.
‘이제 그만 보고 싶어... 너무... 힘들어...’
언제까지 저 벌어진 틈새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거지?
이건 형벌인가. 자신에게 더러운 육봉을 공양했다고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분명 아이템 설명에는 바치면 악신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아픔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조금 전보다 더 분노한 느낌으로 카쉬낙스가 나에게 되물었다.
[나한테 주는 거냐고 물었다.]
주인 되는 자의 물음에 붕괴직전의 상태임에도 억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노예가 내 질문에 무조건 대답해야 하는 것처럼.
시공간이 정지했음에도 입이 열려 대답을 토해낸다.
“네. 당신께 바, 바칩니다."
[하아...]
깊은 한숨에서 느껴지는 회한. 그리고 고뇌하는 떨림.
신이 내비치는 감정에 동조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불안 해졌다.
악의 마음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아서.
‘버, 버텨...!’
곧 서늘하게 날이 서 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동시에 내 목을 꽉 조여 오던 촉수 또한 약간 느슨해졌고.
붕괴하려던 몸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왔다.
고통도 점차 사라졌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분위기가 풀리고 내 눈앞에 찢겨져 있던 공간이 점점 아물었다.
정신이 원상태로 돌아오고 다시 들은 카쉬낙스의 목소리는 아까완 조금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목소리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왜지?’
왜, 악신의 목소리가 여자의 가느다란 미성으로 들리는 거지?
카쉬낙스의 본신과 마주하며 내 귓구멍이 이상해진 걸까.
아니면 나를 대하는 카쉬낙스의 반응이 달라진 걸까.
변화한 카쉬낙스의 목소리에 대한 의문도 잠시.
더 큰 물음표가 내 머릿속에 생겨났다.
[이렇게 갑자기 고백받아도...]
‘예?’
고백? 고백이요? 내가?
아니, 내가 미쳤다고 우주적인 촉수더미에게 고백을 해?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아니, 존나 잘못된 게 맞다.
허나 잘못을 바로잡을 세도 없이 악신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마치 내 반론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제멋대로.
[마음은 알겠지만... 아직은 무리야.]
뭐가 무리라는 건지.
나는 고백한 게 아니라 그냥 알량한 자기보신을 위해 신의 호감도를 조금 높여보려고 한 것 일 뿐인데...
[지금은 배고파.]
촉수가 내 얼굴을 핥았다.
비상식량을 맛보듯. 천천히 내 목에서부터 핥으며 올라와 볼을 넘어 이마에 닿는다.
쩝쩝.
‘진짜 맛보는 것 같은데..?’
축수는 그대로 온몸 구석구석을 만져 보고, 조여 보더니 곧 내 아랫도리에 닿았다.
그대로 바지 속으로 촉수가 기어들어간다.
‘으읏..! 미친년이!’
음부가 촉수에 휘감긴다. 축축한 점액질이 흘러나와 묘하게 기분이... 좋다.
더욱이 적당한 압력으로 내 음부를 휘감은 촉수가 끝내 귀두의 끝부분을 톡톡 건들이며... '발기'시켰다.
‘자, 잠깐...!’
음부를 휘어잡은 촉수의 소름 끼치도록 기분 좋은 감촉에 비명 지르듯 정신파를 내뿜자 내 양물을 쥐고 있던 촉수가 스르륵 바지 속에서 빠져나갔다.
왜 나는 빠져나간 촉수를 아쉬워하고 있는 걸까. 그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동조되어 있는 카쉬낙스의 감정을 내가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크흠. 아쉽군. 좀 더 공양해라.]
그대로 자기 할 말만 하곤 입맛을 다시며 카쉬낙스가 사라졌다.
나를 옭아매던 촉수의 감촉이 사라지고 영혼이 짓눌리는 존재감이 점점 옅어져 간다.
곧 찢어졌던 공간이 완전히 아물며 흑백으로 물들어 있던 세계에 천천히 색이 돌아왔다.
“허억... 허어...”
“오빠! 누, 눈이!”
"주인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요..."
은지가 얼른 내 얼굴을 붙잡았다.
시야가 흔들리고 눈에 초점이 맞지 않는다.
피눈물을 흘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공간의 균열을 봐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눈이 미칠 듯이 아팠다.
덩달아 호흡도 불안정해졌고 식은땀도 미친 듯 흘러내렸다.
‘이 미친 악신 멋대로 착각했어...’
멋대로 내가 고백했다고 판단하더니 심지어 거절했다.
더 웃긴 건 거절한 이유가 ‘배고파'서다.
거기다 배고프다고 고백을 거절해 놓고는 애새끼 자지를 희롱하듯 내 음부만 만지작거리다 갔다.
‘빌어먹을 악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
한편으로는 그대로 잡아먹히지 않아 아쉬워하는 내가 있었다. 상반된 감정이 소용돌이 치며 정신력을 떨어뜨린다.
‘휴우... 그래도 묘하게 호감도가 높아졌으니 이걸로 된 거야. 방금 전의 그 감촉은.. 잊자. 잊는 거야.’
성별을 알 수 없던 목소리가 나에게 맞춰주듯이 여성형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아닐까.
‘그런데 만약 내가 여기서 호감도를 좀 더 높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 악신 미연시라도 되나?’
설마 하니 악신과 연애라도 하라는 건 아니겠지.
[크흠.]
“어라?”
그제야 나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 누군가가 카쉬낙스란 사실은 더 쉽게 깨달았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시선...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야릇한 감촉. 뭐야. 왜이러냐고.’
악신의 시선이 짙다.
내 전신을 훑어보는 시선은 마치 혀로 나를 핥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진득하고 저열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저건 식욕일까, 아니면 성욕일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 않다. 두렵다.
“오빠! 괜찮아? 오빠...!”
“주인님!”
은지와 하린이가 처절하게 울고있는 나를 껴안았다.
그녀들의 몸에 안겨 나는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울고 있으니 악신 카쉬낙스의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게임의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