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2. 네임드 사냥
* * *
카쉬낙스의 시선이 집요하게 나에게 따라 붙었다.
진득하게 나를 훑어본다. 곧 잡아먹을 음식의 상태를 살피듯 나를 음미하고 있다.
그런 욕망어린 시선임을 뻔히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고 심지어 거부할 수도 없다.
그저 신의 무거운 관심을 묵묵히 받아내는 방법밖에.
‘거슬려...’
이 기분 나쁘고 찝찝한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반의 맨 뒷자리에 앉은 엄청 음침한 여자아이가 뒤틀린 흑심을 품고서 날 노려보는 느낌이다. 언제 칼 빵을 맞을지 모르는 서늘한 감각.
나이스 보트.
‘어라? 반의 음침한 거유여자가 나를 노려 봐준다 라고... 이거 썩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 카쉬낙스는 음침한 거유 미소녀인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뭔가 나를 좋아하는 음침한 동급생의 욕정 어린 시선이라 생각하니 마냥 거슬리게만 느껴진던 카쉬낙스의 집요한 시선이 왠지 견딜 만해졌다.
오히려 이 지대한 관심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래,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계속 생각하다보면 카쉬낙스가 진짜 음침거유녀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 줄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니 더부룩한 속이 좀 편해진 것 같아.’
역시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그냥 나에게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니 신의 압력도 버틸 만하다.
어쩌면 지속된 스트레스에 의해 '즐기는 자 모드'에 들어선 걸지도.
“자, 다들 무기 챙겼지?”
“네!”
“완벽해요.”
“주인님. 피는 언제 먹을 수 있어요??”
“좀 참아.”
“아. 네. 아. 배고픈데. 아.”
강화영의 투정어린 한탄을 무시하며 마트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바리케이드 앞까지 왔다.
아쉽게도 스프레이는 어제 옥상전투 때 전부 사용해 이제 남은 게 없다. 물론 지금 우리라면 굳이 그런거 없이도 밖을 돌아다닐 수 있다.
“자, 목적지는 일단 다이소고. 거기까지 가면서 특수 좀비 발견하면 최대한 죽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결연한 의지로 똘똘 뭉친 눈빛들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강화영은 여전히 맹한 표정이지만. 상관 없다. 나는 강화영을 반쯤 포기했다. 내 명령만 잘 따르면 뭘하든 상관 없지.
'나가기 전에 심연관측을 한번 써 보고 싶지만 업이 1개뿐이라 지금 쓰긴 좀 그렇네.'
심연을 들여다보는데 업이 1 소모되고 거기서 또 계약까지 하려면 업이 더 필요하다. 아직은 인신공양을 더 해야한다.
‘다이소에 사람이 있으면 몇 명 죽이고 업 좀 얻어야겠군.’
저항하지 않더라도 비 각성자를 몇 명 죽여서 카쉬낙스나 인디크론에게 바쳐야겠다.
일단은 잡아다 바칠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우린 마트 입구를 막고 있던 물건들을 살짝 치우곤 밖으로 나왔다.
빠져나가고 나선 다시 잘 막아 뒀다.
“여기도 난장판이구나.”
마트 주변은 옥상으로 기어올라 오려다 떨어져 죽은 좀비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이것들도 향후 불태워 치워야할 것들이다. 시체를 이대로 계속 방치하면 역병이 창궐할지도 모른다. 시체 파먹은 쥐들 때문에 흑사병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으럇!”
쾅!
내가 마트 주변에 널린 시체를 둘러보는 동안 하린이가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러 다가오는 좀비들의 머리를 양단했다. 아니, 저건 그냥 때려 부수는 거다.
쾅! 쾅!
굉음을 내며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좀비들이 뭉텅이로 쓸려 나간다.
중간중간 스킬도 섞어 쓰는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수십 마리를 연달아 도륙 내고 있다.
“스킬 써?”
“네에. 한번 제대로 써봐야 나중에 진짜 싸울 때도 바로바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익숙하게 만드는 중이예요.”
“오. 그래. 마력량 체크하고.”
“넵!”
하린이는 이마에 흐르는 한줄기 땀을 쓰윽 닦더니 다시 좀비들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도끼날에 잘린 다기보단 으깨져서 파괴된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거의 양민 학살기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특수 좀비가 너무 없다. 어찌 된게 한 마리도 안보여.”
어젯밤에는 미친 듯이 몰려오던 특수 좀비들도 아침이 되니 어디로 다 숨었는지 잠잠하다.
그저 조금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변한 일반좀비들만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다.
그 많던 특수 좀비는 다 어디갔을까. 누가 다 죽인 거지.
‘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젯밤에 우리가 특수 좀비를 거의 다 죽여서 지금 특수 좀비가 씨가 마른 게 아닐까 싶다.
덕분에 인근엔 일반좀비만이 득실거려서 안전해져 좋긴 한데 반대로 이런 놈들로는 은지와 하린이가 레벨을 올릴 수 없어서 아쉽다.
‘특수 좀비가 없으니 심심하네. 순한맛 아포칼립스야.’
일반좀비는 죽이는 맛이 좀 덜했다. 이제 일반좀비 따위로는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 잡생각도 잠시, 슬금슬금 차체에 숨어서 다가오던 좀비들을 향해 촉수를 내뿜었다.
“르뤼에”
푸확!
보랏빛 소환진에서 촉수가 뻗어 나가 다가오던 좀비 무리를 와해시키고 닥치는 대로 잡아 터트렸다.
“오빠, 저것들 비교적 신선한 거 보니까 다들 어젯밤에 죽은 사람인가 봐요.”
은지는 숏소드로 좀비의 눈을 찔러 죽이며 말했다.
은지 주변엔 눈부터 뒤통수까지 관통당해 죽은 좀비들로 가득했다.
“그러네. 부패가 덜 된 시체가 제법 된다.”
그동안 잘 버티던 사람들이 어젯밤 얼마나 많이 죽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설마 다이소에 있는 놈들도 다 죽은 건 아니겠지? 되도록 각성자는 노예로 삼고 비 각성자는 공양 좀 하고 싶은데. 돼지 같이 처먹는 화영이 피 주머니도 좀 챙겨야하고.
그때 강화영이 죽은 좀비 시체의 목덜미를 붙잡고서 나에게 다가왔다.
“헤헤... 주인님. 이거 먹으면 안 되죠?”
강화영은 다른 좀비들에 비해 비교적 신선한 여자 좀비의 시체를 들고서 나에게 물었다.
“야! 당연히 안 되지. 미쳤냐?”
“헤엥. 아쉽다. 아깝다. 먹을 만 한 거 같은데. 안 되나. 한 입만..”
“안 돼! 이 미친년아! 저리 치워!”
“네엥...”
신선하다 싶으니 좀비 피라도 빨아먹을 생각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니, 생각이랄게 있긴 한 걸까?
‘정신 나간 년...’
진짜 대책 없이 멍청하다. 왜 이런 바보가 된 거지?
“아무튼 뒤질라고 진짜. 야, 그런데 좀비 죽여도 아무것도 안 떠?”
“네에. 아무것도 안 뜨던데요?”
강화영은 첫 좀비를 죽이고 나서도 ‘퍼스트 킬’ 업적이 달성되지 않았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퍼스트 킬’ 업적은 첫 좀비를 죽이고 각성해야 달성되는 업적임을 알 수 있다.
아이템으로 플레이어가 된 강화영은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나보다.
‘뭐, 업적보상을 얻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일단 스탯도 뛰어나고 스킬도 좋으니까...’
다이소까지 가는 길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좀비들을 죽이며 나아갔다.
역시나 일반좀비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게 된 나와 은지, 하린이와는 달리 강화영의 레벨은 순조롭게 올랐다.
여기서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강화영은 의지 스탯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20부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나 은지, 하린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레벨 1때는 행운 수치를 제외 하곤 기본 스탯이 15를 잘 넘기지 않았던 반면 강화영은 의지 스탯만 비정상적으로 낮은 ‘5’였고 나머지 스탯은 올 ‘20’이었다. 이 또한 카니지 뱀프의 클래스 특성 같았다.
‘특히 마력 스탯이 빠르게 오르네.’
[강화영]
[레벨: 3]
[클래스: 카니지 뱀프]
[근력: 25]
[민첩: 26]
[체력: 27]
[의지: 9]
[마력: 30]
[행운: 42]
[스킬: 핏빛손톱, 흡혈회복, 혈류가속]
‘스킬도 좋지.’
카니지 뱀프의 특이한 점은 스탯만이 아니었다. 스킬 선택도 특이하다.
나나 다른 이들은 레벨이 올라 스킬을 찍을 때면 4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지만 강화영은 우리와 달리 선택지가 단 하나뿐이었다.
‘선택지라고 보기도 어려웠지.’
오히려 일방적으로 스킬이 습득되는 것에 가까웠다.
우리가 필요에 맞게 캐릭터의 스킬을 찍어가며 육성해나가는 방식이라면 카니지 뱀프는 선택지 없이 레벨이 오를 때마다 클래스가 가지고 있던 잠재 능력이 하나씩 개방되는 구조였다.
스킬선택으로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분명 좋았지만 성장방향이 하나로 고정되는 건 좀 아쉽다.
‘그런 아쉬움을 웃돌고도 남는 성능을 가진 스킬들이지만.’
대략 강화영이 얻은 스킬들에 대해 설명하자면 ‘핏빛 손톱’은 손톱이 길어지며 무기가 되는 스킬이고 ‘흡혈회복’은 피를 빠는 거로 상처가 치유되는 스킬이다. 그리고 ‘혈류가속’은 피를 빠르게 흐르도록 만들어 육체 능력을 높이고 반사 신경을 극대화하는 스킬이었다.
스탯도 높은데 전투에 특화된 스킬과 전투지속력을 높여주는 스킬까지 골고루 잘 배치되어 있다.
여러모로 가능성이 차고 넘치는 클래스다.
“하아, 배고파. 배고픈데. 아.”
물론 클래스의 영향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모자란 상태가 되었고 판단능력도 좀 떨어지지만.
그나마 돌발행동을 노예낙인의 명령으로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마저도 가끔 내 명령을 저항하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끝내 내 말대로 움직인다.
‘명령을 따르긴 하니까. 그리고 피로 유혹하면 금방 고분고분해지니...’
통제할 방법은 충분하다.
잘 키워서 잘 써먹기만 하면 된다.
“오빠, 저기.”
강화영에 대해 생각하며 걷고 있으니 은지가 나를 불렀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뭔가가 고개를 처박고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다이소 입구에 자리 잡은 두 마리의 형체.
설마 늑대인가?
“일단 숨자.”
“네.”
우린 얼른 건물 모퉁이에 숨어 놈들을 관찰했다.
생전 처음 보는 생김새의 특수 좀비들이다. 색도 새까맣고 비정상적일 만큼 근육질적인 몸매에 위협적인 손톱과 바지만 입고 있는 상반신까지.
가장 특이한 점은 좀비답지 않게 검은 털이 상반신에 가득 자라나 있단 점이다. 마치 짐승처럼.
“저것들 처음 보는 놈들 맞지?”
“네. 덩치는 워보이 보다 작고 피부가 까만색이네요. 털도 있고. 오빠 저거 좀비 맞을까요?”
“몰라. 좀비 아닌 거 같기도하고. 이상하네.”
“주인님, 저것들 손톱도 엄청 길어요. 한 방 맞으면 살 다 찢길 것 같은데요...”
어젯밤 봤던 특수 좀비들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워 보이하고도 다르고 좀비지네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명을 지르며 주변 좀비를 끌어 모으는 빗치와 비슷하냐면 역시나 하나도 안 닮았다. 계통이 다르다. 저놈들은 좀비가 아닌 것 같다.
“하린아. 심박추적 써봐.”
“저것들 본 순간부터 쓰고 있는데...”
“응. 심장 박동 느껴져?”
“아뇨. 저놈들 좀비 맞아요. 심장 박동이 전혀 안 느껴져요.”
“죽은 놈들 맞네.”
어젯밤에 본 특수 좀비들은 하나같이 좀비를 기괴하게 꼬아둔 생김새였지 저렇게 아예 종이 다른 것 같은 놈들은 아니었다.
“엄청 단단해 보이는데.”
워 보이가 커다란 근육맨이라면 저놈들은 워 보이를 검게 물들여 압축시킨 모양새다.
드러난 상반신이 옹골찬 근육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사자 갈기처럼 자라난 검은색 털이 위압적이다.
아마 저놈들을 밤중에 마주했다면 발견하기도 전에 공격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검다. 그리고 놈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영 사이하다.
“불길해. 너희는 뭔가 안 느껴져?”
“저도 좀 소름 끼쳐요, 주인님.”
“오빠 우리 마트로 돌아가요?”
“글쎄. 어쩌지.”
촉수로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저놈들 죽일 수 있을 듯한데...
하늘을 올려다 봤다. 혹시나 카쉬낙스가 뭔가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대로해라.]
둔중한 울림이 머릿속에 퍼져나갔다. 카쉬낙스의 무관심한 듯 툭 던진 한마디에 확신이 섰다. 저놈들을 여기서 죽인다.
‘싸워봐도 된단 소리니까. 저놈들만 제대로 죽이면 레벨이 오를 거야. 충분히 싸워볼 만하지. 무섭다고 피해 다니는 게 상책이 아니니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두 놈 중 하나가 파먹고 있던 시체에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저 새끼 눈알이 하얀색이야.”
“보면 볼 수록... 기괴해요.”
“하린아 진짜 뭐 느껴지는 거 없지?”
“그냥 좀 많이 꺼림칙해요 언니.”
하린이가 대놓고 닭살이 돋으며 꺼림칙하다고 할 정도의 괴물들이다.
분명 저것들 잡으면 우리 다들 레벨 하나씩 오를 것 같단 말이지. 카쉬낙스가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설마 하니 네임드는 아니겠지? 물론 네임드라고 하더라도 시도할 생각이다.
무슨 세기말의 거인 좀비 같은 이상한 놈만 아니라면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당장 선신의 챔피언들도 찾아오는 마당에 좀비와의 전투를 피하는 건 아니지.
“잡을 수 있겠는데.”
“후우. 주인님. 스킬 사용할까요?”
“응. 우리 저것들 한 번 잡아보자. 너희 생각은 어때?”
일행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예의상 물어본 거다. 난 싸울 생각이 가득하다. 만약 은지나 하린이가 도망가길 원한다면... 명령을 내릴 수 밖에. 부탁이니 자의적으로 싸워줬으면 좋겠다.
“난 찬성. 지금의 오빠가 질 것 같진 않아서요.”
“저도 주인님이 원한다면 뭐든 상관없어요.”
두 사람이 믿음 가득한 눈빛을 보내 왔다.
그사이에 껴있던 강화영은 은지와 하린이를 번갈아 보더니 내게 물었다.
“어? 나한테도 물어본거예요?”
“아니. 너는 그냥 따라와야지.”
강화영의 의견은 따위는 듣지 않는다. 이 녀석은 그냥 내가 까라면 까야 한다.
“내가 먼저 촉수로 저놈들 붙잡을게. 하나는 잡자마자 죽일 테니까 남은 놈을 둘이서 처리해. 레벨 올려야하니까. 그리고 강화영 너는 주변에 좀비들 죽이고 있어라.”
굳이 내가 단박에 둘 다 죽이지 않는 이유는 은지와 하린이의 레벨을 올려주기 위해서다.
강화영 같은 경우는 아직 레벨 5도 안 됐으니 일반좀비만으로 충분해 보이고.
“자, 가자!”
대략적인 방침을 새운 우린 곧바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나는 놈들을 향해 양손을 내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르뤼에!!”
양손에 보랏빛 소환진이 맺히며 촉수가 뿜어져 나간다.
목표는 이름 모를 특수 좀비 두 마리.
왼쪽 놈은 바로 죽이고 오른쪽 놈은 은지와 하린이의 경험치로 양보해 줄 생각이었다.
“어?”
피했네?
오른쪽에 있는 놈이 몸을 뒤틀어 촉수를 피하며 곧바로 왼쪽 좀비를 붙잡으려던 촉수를 손톱으로 끊어냈다.
“이, 이런!”
설마 촉수를 피할 줄이야. 이런 놈들은 처음이다.
“키아아!!!!”
“크으으으....”
곧 두 놈이 허리를 낮춰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안광을 빛내며 우리를 노려본다. 마치 사냥감을 확인하듯.
그때 놈들의 머리에 무언가 글자가 떠올랐다.
[검은 손톱, 케샥]
[울부짖는 어둠, 크치아]
“우와. 진짜 네임드잖아...”
설마 하던 네임드다.
왜 네임드가 이런 곳에...
“크아아!!!!”
왜 네임드가 이런 누추한 곳에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도 잠시.
크치아의 비명 소리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막을 뒤흔드는 놈의 비명 때문에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놈의 비명에 주변의 좀비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우어어!!!”
“주인님. 좀비들의 눈이 검게 물들었어요...!”
“네임드의 영향...”
업데이트 내역엔 네임드의 영향을 주변의 좀비들이 받게 된다더니. 그게 이런 의미였군.
일반좀비들의 눈이 검게 물들며 손톱이 자라났다.
“야! 강화영! 저것들 다 죽일 수 있지!”
“어...”
“피 잔뜩 먹여줄게.”
“네! 할 수 있어요! 저 엄청 강해요! 잘 싸워요!”
“그럼 빨리 가서 조져! 강화영이 다가오는 좀비들을 감당하고 우리 셋이서 저 둘을 죽인다!”
퉁!
말을 끝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손톱 케샥이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놈의 검은 갈기가 바람에 휘날리며 한줄기 흑색 섬광처럼 잔상을 남겼다.
놈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곧장 나의 앞까지 날아들었다.
육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거지?
“히아!!!!”
놈의 육체 스펙에 대한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나를 향해 날아드는 놈에게 하린이가 야만인의 함성을 내지르며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도끼를 휘두른다.
이미 어그로가 끌린 이상 함성을 외치는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투쾅!!!
“젠장!!!”
야만인의 함성에 영향을 받았음에도 정신 나간 육체 능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날아드는 도끼를 피해낸 케샥.
허공을 가르며 아스팔트에 박혀든 도끼를 잡아 뽑으며 하린이는 이를 으드득 깨물었다.
하린이의 도끼질을 억지로 피해낸 케샥은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잠시 균형을 잃었고.
‘이게 네임드의 위용인가.’
확실히 특수 좀비보다 훨씬 터프한 놈들이다.
“알라쿰플로토”
놈이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는 사이, 난 이미 준비해 두었던 스킬을 사용했다.
푸확!
놈의 오른쪽 어깨 부분으로 눈 깜박할 새에 어둠이 뭉쳐들더니, 곧 어둠은 기괴한 생김새의 구강으로 변했다.
검은 케샥보다 더 짙은 어둠으로 이뤄진 수백 개의 이빨들.
음침한 이빨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심연의 주둥이는 꽤 역겨운 생김새였다.
콰직
심연의 주둥이가 깨물고 간 자리엔 오른팔이 잘려 나간 케샥만이 남아 비명을 지른다.
“키아아!!!!”
좀비인데도 고통을 느끼나?
“르뤼에.”
놈은 이번엔 나의 촉수를 피하지 못했다.
거리가 더 가까워진 덕분에 순식간에 뻗어 나간 촉수가 놈의 사지를 제대로 결박했고 힘으로 촉수를 끊어내려는 케샥의 머리를 하린이가 도끼로 내려찍었다.
콰자작!!!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지며 케샥은 죽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노예 ‘성하린’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케샥의 검은 비후도’가 드랍 됩니다.]
[플레이어 ‘장조준’의 민첩이 1 오릅니다.]
[플레이어 ‘성하린’의 근력이 1 오릅니다.]
네인드 답게 보상이 후하다.
일단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만 얼른 주웠다.
‘케샥의 검은 비후도’는 빛 반사가 없는 검은색 무광의 단검이었다.
“크아!!!”
이제 남은 것은 울부짖는 크치아
전투 시작 직후 은지는 어둠 속에 몸을 숨겨 놈에게 다가갔다.
울부짖는 크치아를 암살할 생각이었겠지.
확실히 크치아의 양쪽 어깨에 숏 소드가 틀어박혀 있는걸 보아하니 은지의 기습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크아아아!!!”
쿠구구궁!!!
크치아의 고통 어린 비명에 충격파가 발생하며 땅이 가볍게 흔들렸다.
충격파에 휘말린 은지는 튕겨 나가 길가에 세워져 있던 봉고에 처박혔다.
“이런.!”
다행히도 이미 은지 쪽으로 가 있던 강화영이 쓰러진 은지에게 다가오는 좀비들을 핏빛 단검과 손톱으로 찢어 죽이며 기절한 듯한 은지를 지켰다.
“크아...!”
방금 그 울부짖음이 마지막 발악이었던 듯 크치아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노예 ‘이은지’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크치아의 검은 호각’이 드랍 됩니다.]
[플레이어 ‘이은지’의 민첩이 2 오릅니다.]
하린이와 함께 얼른 그쪽으로 다가 갔다. 드랍템이 들어온걸 보니 크치아는 죽은 게 확실하다.
“와... 난자당해 있네.”
쓰러진 크치아의 등은 만신창이였다.
부러진 그림자 비도가 잔뜩 처박혀 있었고 놈의 다리 곳곳에도 구멍이 뚫려있는 거로 보아 은지가 그림자 가시로 다리부터 조지고 들어간 것 같다. 스킬을 다 때려부어 죽인게 아닐까 싶다.
“은지야. 괜찮아?”
“아... 오빠. 헤헤. 나 혼자서 잡았어...”
“진짜 대박이다. 대단해.”
은지는 그저 충격파에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곧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은지도 터프하구나.
“하아...”
얼떨결에 네임드를 사냥했다. 보아하니 둘이서 한 세트인 놈들이었나보다.
어쨌든 은지와 하린이도 레벨이 올랐고 나는 심지어 레벨 10의 벽도 돌파했다. 열심히 강화된 좀비를 잡아 죽인 강화영도 레벨이 5까지 올랐다.
다가오던 좀비들까지 싹 치우고 서로를 칭찬할 때.
누군가 나타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