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3. 노예사냥은 즐거워
* * *
다가온 놈들은 셋.
뭔가 하나 같이 심상찮아 보이는 조합이다.
피로 물든 전투망치를 들고서 풍선껌을 씹고 있는 분홍 머리 여자와 검은색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서 사슬낫을 잡은 피어싱을 잔뜩한 단발머리 여자.
그리고 가죽 갑옷을 입고서 게임에서 자주 봤던 플랑베르주를 어깨에 걸친 채 내 쪽의 여자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금발 머리 태닝남까지.
‘뭐지 이 새끼들은...?’
놈들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처음든 생각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자발적 노예들인가?’
저 여자 둘은 일단 노예로 만들고.
금발 태닝남은... 철저히 망가뜨리고 싶다.
딱 봐도 저 분홍 머리와 단발머리는 저 새끼 여자 같은데 붙잡아서 망가지는 꼴을 보여주면 저 태닝남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몹시.
‘버젓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던 걸로 보아 당연히 셋 다 각성자겠지.’
실력에 나름 자신 있는 놈들일 거고. 그렇다고 우리보다 강한 것 같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하고 있으니 금발 태닝남이 건들건들한 자세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아저씨. 방금 그 새끼들 우리 먹잇감이었는데 말이야. 당신네들이 가로챈 거 알아? 내 경험치를 보상 좀 해 줘야겠는데.”
놈의 표정에서 저열한 욕망이 번들거린다.
놈은 은지와 하린이의 몸을 쓱 훑어보더니 이내 멍청하게 서 있는 강화영에게로 시선이 꽂혔다.
그러더니 역겨운 눈초리로 추잡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하얀 머리 년만 남기고 꺼져! 도망가면 봐줄 테니까! 왜 대답이 없냐? 귀먹었어!”
금발 태닝남은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혹시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그만큼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만큼 굉장한 기연을 얻은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설마 저 새끼들이 선신들이 보냈다던 챔피언은 아니겠지? 아니야, 저 정도 수준이면 인디크론이 그렇게 경고했을 리가 없어.’
더구나 나는 지금 두 악신의 성흔이 찍혀 있어서 선신 진영의 플레이어는 나를 보자마자 혐오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
그런데 저 셋은 그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단 말은 선신들의 개가 아니란 소리겠지. 무엇보다 선신 측 챔피언이 저렇게 태평하게 나를 노릴 리가 없다.
어쩌면 선신측 챔피언이 고용한 놈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해봤지만 썩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동료가 더 있나?’
앞에서 어그로를 끌고 뒤에서 치고 들어올 생각일 수도 있다.
물론 심박추적을 가진 하린이 앞에서 기습 따윈 안 통한다.
난 놈들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채 도끼를 꽉 쥐고 있던 하린이에게 물었다.
“하린아.”
“네. 주인님.”
“주위에 다른 놈은 없어?”
“네. 저 셋이 전부예요. 다이소 내부에서 기척이 몇 개 느껴지긴 한데. 저놈들 하곤 관계없어 보여요.”
“좋아.”
추가인원이 없다는 것도 확인 받았다.
저놈들은 실력에 대단히 큰 자신감을 가질만큼의 힘이 진짜로 있거나, 아니면 멍청하게 주제 파악 못 하는 놈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못 봐서 저러는 걸 수도 있지. 그래 아까 하린이의 심박추적에도 감지되지 않았으니. 방금 온 놈들인가본데.’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못 봤다면 저런 안일한 태도로 다가온 것도 납득이 된다. 방금 우리가 죽인 것들이 네임드란 사실도 모를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높은 가능성은 전투를 막 끝낸 우리가 지쳤거나 마력이 동났을 거라고 생각하고서 덤볐다는 가정이지만.'
흑사의 내단이 그리 쉽게 나올 물건 갖지는 않고, 그런 물건의 정체조차 파악 못 하고 있는 놈들이라면 전투에 지친 우리를 어찌해볼 수 있다고 판단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력이 무려 745나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분홍 머리랑 단발... 두 년 다 맛있겠어.’
분홍 머리는 하린이보다 가슴이 커 보였다. 엉덩이고 때리면 찰질것 같고. 얼굴도 꽤나 예쁘다. 아니, 저 정도면 상당히 예쁘지. 화장기 없는 쌩얼이 예쁘다니. 거의 은지 바로 아래, 하린이 급 외모다. 강화영은... 뱀파이어가 되며 독보적으로 예뻐져서 미의 기준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
어쨌든 분홍머리의 저 무심한 듯한 눈초리가 묘하게 꼴린다. 차가운 듯 맹해 보이는 인상도 꽤 먹음직스럽고 좋다.
무지성으로 처박고 있으면 끅끅 거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서 신음을 참으려고 할 것 같은 스타일이다.
실제 경험은 아니고 그냥 야동에서 많이 봤다.
그에 반해 단발머리는 적대심을 감출 생각도 없이 새초롬하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데 은지와 비슷한 슬랜더 체형이다. 메스가키인가? 분홍머리보다 더 귀엽게 생겼다.
‘몇 살이지? 하린이 보단 확실히 어려 보이는데.’
24살인 하린이보다 단발머리가 좀 더 어려 보인다. 이제 막 대학 입학할 새내기라 해도 믿겠다.
그렇다고 미성년자라기엔 귀에 피어싱을 잔뜩 박아둔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덜익은 과일은 줘도 먹기 싫다.
뭐, 붙잡아서 물어보면 알겠지.
어쨌든 단발머리 년의 저 새초롬하고 적대적인 눈빛이 마음에 쏙 든다.
'그래, 처음 하린이와 만났을 때도 저런 적대적인 눈빛이었지.'
하린이는 노예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빠르게 굴복하고 복종했다. 아마 은지와 둘이서 샤워할 때 뭔가 이야기가 오고 간 것 같은데. 물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른다. 그저 하린이의 태도가 좀 유순해졌단 걸 느꼈을 뿐.
'하긴, 주인인 나에게 반항 해 봐야 득 될 게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기 전에 좀 더 괴롭혀서 순해지지 않도록 말렸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스윗 했다.
‘하린이가 순둥이로 변한 건 묘하게 아쉬웠지.’
너무 쉽게 굴복하니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부디 저 두 년은 나에게 처절히 반항하며 저항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련하는 맛이 있지.
‘흐음. 레깅스에 힙업 된 엉덩이. 츄릅.’
둘 다 내 아래에 깔아뭉개서 자지로 굴복시킬 생각을 했더니 벌써 입에 침이 고이고 심장이 두근거리는군.
요 며칠 너무 바빠서 제대로 성욕을 풀지 못했다.
노예강간순애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슬쩍 커진다. 정말 즐거운 상상이다.
“어이! 너희들 뭔데 쑥덕거리는 거냐! 죽고 싶어! 빨리 하얀 머리 여자만 이쪽으로 넘겨! 그럼 그냥 보내주마!”
“오빠. 그냥 빨리 다 죽이고 가지? 오늘 마트 털 거라면서.”
단발년이 나를 흘겨보며 금발 태닝 남에게 어서 죽이고 가자고 재촉했다.
그런데 설마 저놈들이 턴다는 마트가 내가 생각하는 그 마트는 아니겠지.
‘이 주변에 대형 마트는 우리 마트뿐이니까. 맞겠네.’
저 새끼들은 모르겠지만 상황이 빈집털이 하려다가 집주인과 우연히 마주친 상황이다.
과연 마트의 지배자가 나란 걸 저놈은 알까?
“잠만 기다려 봐. 저 여자... 저런 놈 밑에 두기엔 너무 아깝다고. 살려서 데려가고 싶다.”
“진짜 저질이야...”
이미 화영의 미모에 맛이 가 버린 금태양은 단발머리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투지를 끌어올렸다.
좆에 지배를 받는 새끼인 것 같다.
나는 놈의 저런 태도가 어느 정도 공감된다.
맛있게 생긴 년을 보고도 욕망을 내비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지. 그냥 고자새끼지.
그런 이유로 나도 저열하고 추저운 욕망을 한껏 드러내기로 했다.
‘네놈이 내 여자를 건들고 싶듯이. 나도 네 여자들이 탐나는 구나.’
저 두 년이 걸레든 아니든 지금 당장은 크게 상관없다.
먹기 거북할 정도로 냄새 나는 걸레라면 하씨 형제나 다른 노예 남들에게 대충 갖고 놀라고 던져 줘도 되고.
어차피 노예가 되면 임신 상태를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돌림 빵을 당해도 임신걱정도 없고 좋지.
물론 까보고 먹을 만하면 내가 잘 비벼먹을 생각이지만.
어찌 되었든 병 걸린 보지만 아니라면 사용처는 충분하단 말이지.
“야! 양아치 새끼야. 너나 그 두 년 내놓고 항복하지? 그럼 내가 두 년 다 맛있게 먹어 줄게. 어때?”
놈이 내비치는 더러운 욕망을 나도 똑같이 내비쳤다.
아예 대놓고 혀를 날름거리며 모욕까지 줬다.
그러자 놈의 양옆에 서 있는 분홍 머리와 검은 머리 단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무기를 고쳐 쥔다.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만족스럽군.
좀 더 도발하기 위해 왼손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오른손 검지를 고리 사이로 넣어다 빼며 씩 웃어줬다.
“이... 이 개새끼가! 내 누님과 동생을 그런 눈으로 봐!”
“어? 뭐야. 너희들 남매였냐?”
분노한 금발 태닝남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몸을 날린다.
설마 남매였을 줄이야. 그리 생각하고 다시 보니 묘하게 셋다 눈매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자매 덮밥... 개꿀...’
눈앞에서 장녀와 막내가 외간 남자에게 개처럼 따먹히는 모습을 보면 저 새끼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당연히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내 스탯만 해도 평범한 레벨 10의 문턱은 진즉에 넘어선 상태고.
마력량이야 말할 것도 없지.
흑사의 내단이 뒷집 똥개도 아니고. 멸망이 시작된 지 이제 일주일이 넘어선 이 세상에 마력량 700을 돌파한 미친 새끼가 과연 어디 있을까.
선신이 손수 키워 낸 개종자들이 아니고서야 일반 각성자가 악신의 관심과 무거운 사랑을 듬뿍 받는 지금의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이건 자만이나 방심을 넘어선 이야기다.
객관적으로 판단해 봐도 저놈들에게 긴장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애당초 666의 정신 나간 행운 수치를 가진 새끼도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만약에 777의 행운을 가진 놈이 진짜로 만약에 존재한다면. 그 새끼 말고는 이런 기연을 최단기간에 얻은 각성자는 아마 나밖에 없겠지.’
처음부터 피할 수도 없는 싸움이었다.
마주친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저 연놈들을 다 죽이거나 노예 삼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난 내 뜻대로 힘을 써야겠다.
큰 힘에는 큰 쾌락이 따르는 법!
“하린이가 분홍 머리. 은지랑 화영이가 단발 잡아.”
“네!” “옙!” “배고픈데.”
강화영의 대답이 조금 삐딱하지만 일단 달려 나가는걸 보니 명령을 거부할 생각은 없나보다.
그리고 다행히 주변의 좀비는 방금 전 거의 다 죽여 놓은 상태라 좀비에게 전투를 방해받을 일도 없었다.
“르뤼에.”
내 양손에서 촉수가 뻗어 나간다.
동시에 몸을 날려 피하는 분홍 머리와 단발머리.
처음부터 내 목표는 저 둘이 아니었다.
몸에 마나회로가 생겨서 그런지 상대방의 기운이 약간이지만 느껴지는데 두 자매보다 저 금발 태닝남이 좀 더 위험하다고 판단된다. 그런 이유로 내 목표는 처음부터 저 금태양이었다.
“으랴!!!”
금태양은 10개나 되는 촉수를 전부 막아 낼 생각인지 피하지도 않고 무게가 제법 나갈 것 같은 플랑베르주를 크게 휘둘러 촉수를 끊어냈다.
촤학!!!
다섯 가닥의 촉수 중 세 개가 잘려 나가고 두 개가 금태양의 왼팔과 오른쪽 다리를 휘어감았다.
곧바로 힘을 줘 터트리려던 순간 놈의 손에 들린 플랑베르주가 푸른 불꽃을 내뿜더니 촉수를 태워 낸다. 뒤늦게 다가온 다섯 가닥의 촉수도 놈은 같은 방법으로 파훼했다. 푸른 불꽃이 촉수를 태우고 플랑베르주가 빈틈을 막는다.
‘나댈 정도의 실력은 있었구나.’
저 푸른 불꽃은 뭘까. 스킬인지 검이 특이한 건지 모르겠다. 설마하니 마검사인가?
어찌 됐든 어젯밤을 버틴 생존자답다.
나의 촉수를 잘라낼 정도의 실력은 있단 거지.
“죽어!!! 이 핑챙년아!”
“야만적인 년이...”
그 사이 분홍 머리와 하린이가 붙었다.
하린이는 함성을 내지르며 분홍 머리에게 달려들었고 분홍 머리는 그 특유의 무심한 눈빛으로 도끼를 피하며 니킥을 날린다.
싸울 줄 아는 여자의 몸놀림이다.
하린이는 얻어맞은 배의 고통을 억지로 삼키며 뒤로 물러서 거리를 벌렸다. 상대가 만만찮다는 걸 깨달은 듯 긴장한 표정이다. 그렇게 둘은 다시 대치 상태가 됐다.
한편 네임드를 잡으며 마력이 꽤 소모된 은지와 화영이가 사슬낫을 든 단발머리와 맞붙었다.
휘잉휘잉
단발머리는 한 손으로 쇠추가 달린 사슬을 빙글빙글 돌리며 타이밍을 쟀다. 이쪽은 일절 대화 없이 서로 죽이려는 기색뿐이다.
피를 못 마셔 불만 많아 보이는 강화영만이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고 있다.
그 사이 은지는 눈을 반개하곤 허리를 낮추고서 그림자 직조로 단검을 뽑아냈고 강화영은 씩씩거리면 서도 내가 사용하라고 줬던 핏빛 단검을 역수로 쥐고서 자연스럽게 양각을 만들었다.
슈욱!
사슬낫에 달린 추가 은지에게로 날아들었고 그 순간의 빈틈을 노린 강화영이 단발머리에게로 달려들었다.
투쾅!!
쇠추가 틀어박힌 곳은 은지의 잔상이 남은 곳.
은지는 순식간에 건물의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곧 어둠 속에서 은지가 내던진 단검이 단발머리에게로 날아든다.
순식간에 쇠추를 회수하곤 강화영의 저돌적인 공격을 낫으로 막아 내던 단발머리는 은지가 쏜 비도를 보더니 급하게 강화영의 복부를 발로 차날렸다.
그러곤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그림자 비도를 향해 사슬을 휘둘러 전부 튕겨 낸다.
아무리 은지와 화영이가 마력을 꽤 소모한 상태라고 해도 둘을 상대로 저렇게나 잘 싸울 줄이야.
‘진짜 다들 뭐 저리 잘 싸우지?’
스탯이 어느 정도 오르면서 저런 다채로운 움직임이 가능해지는 것 같긴 한데. 전투가 꽤 화려하다.
“르뤼에”
한편 나는 금발 태닝남에게 양손으로 끝없이 촉수만 쏘아내고 있다.
나를 베어 죽일 거라며 야욕을 드러내던 녀석은 더 이상 나에게 한 발짝도 다가오지 못하고서 날아드는 촉수들을 쳐 내기 바빴다.
‘이렇게 양손으로 쏘아내고 있는대도 저 정도까지 반항하는 걸 보니 적어도 하씨 형제보단 훨씬 강한 놈이 분명해.’
아마 마트에 내가 없는 상태였다면, 이 세 남매가 들이닥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메이지 황수민이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하지 않는 이상 상대하기 좀 어렵지 않았을까.
물론 나에겐 좆도 아닌 것들이지만.
“크으아!!! 빌어먹을 새끼가! 허억. 허억. 도대체 마력이 얼마나 높은 거야. 시발..”
결국 촉수소환 10회째, 100이나 되는 마력을 사용한 시점에서 금발 태닝 남이 촉수에 붙잡혔다.
난 혹여나 놈이 비장의 수를 숨긴건 아닌지 촉수로 놈의 몸을 쪼여 고통을 줬다.
"끄아아!!! 그만!!! 항복하겠다!!!"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문구가 뜨자마자 곧바로 촉수를 내쪽으로 끌어당겨 놈의 이마에 노예낙인을 찍었다.
[플레이어 ‘한태양’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끄으윽... 오빠!”
보아하니 단발머리도 이제 막 은지의 마비 독니에 당했는지 바닥에서 바르르 떨고 있고.
콰직! 퍽! 콰직!
누군가 찰지 게 처맞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돌팔매질 스킬로 도끼를 내던져 빈틈을 만들어 낸 하린이가 ‘파괴자의 주먹질’로 분홍 머리를 무자비 하게 후려패고 있었다.
“크헉... 그, 그만... 내가 졌어.. 그, 그만...”
“후우... 후우. 닥쳐 씹년아. 네년 니킥에 뼈 맞았다고. 아프잖아.”
결국 개 맞듯이 두들겨 맞은 분홍 머리는 반쯤 기절하듯 무릎을 꿇었다.
살기로 번득이는 하린이의 눈이 엄청 매섭다.
처음 나에게 활을 겨누던 그때 그 사나운 눈빛이다.
“하아.. 주인님. 이겼습니다.”
“어, 어! 수고했어.”
하린이는 오줌까지 지려 버린 분홍 머리의 머리끄덩이를 손으로 돌돌 말아 쥐더니 나에게로 끌고 왔다.
무섭다... 하린이...
“우리도 그쪽으로 갈게요, 오빠!”
“그, 그래. 너희도 수고했다.”
은지는 해맑게 웃으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단발머리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끌고 오려 했다. 그런데 좀 힘에 부치는 지 화영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화영아. 이 애 다리 좀 잡아줄래? 우리 같이 들고 가자.”
“아. 니가 왜 나한테 명령질이야! 으아!!! 짜증 나! 배고파!”
강화영은 정신병자가 확실하다. 미친년이 갑자기 지랄병이다.
당황한 은지는 뻥진 표정으로 머리를 잡아 뜯으며 발광하는 강화영을 멍하니 쳐다 봤다.
“야! 강화영! 왜 갑자기 지랄인데 씹탱아!”
“아니! 시발! 밥도 안 주고! 피 마시고 싶은데! 자꾸 못 먹게 하고! 주인님 나빠! 흐윽... 피 줘! 이제 못 참아! 피 달라고! 명령대로 잘 싸웠는데. 왜...! 왜! 피 안 줘요? 왜? 주인님은... 나만 미워해!”
“아, 저 미친년이 진짜...”
머리가 어지럽다.
“아 시바 피 줄게. 피 준다고.”
이미 나에게 굴복해 이마에 노예낙인이 찍힌 금발 태닝남, 이름도 한태양인 웃긴 놈의 왼팔을 의식용 단검으로 내리 그었다.
“끄아아아!!!! 시발!!!!”
망연자실하게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놈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자 피 냄새를 맡은 강화영은 부끄러움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단발머리를 아예 들쳐 업고선 나에게로 달려왔다.
“피! 피! 피! 하아. 냄새 개 좋아요.”
“이! 이시발!!! 미친년이!!! 꺼져!! 으아!!”
강화영에게 음습한 시선을 보내던 한태양 녀석. 강화영이 자기 팔에 난 기다란 상처에 고개를 처박고 피를 쪽쪽 빨아 마시자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도망치지 말고 가만히 대주고 있어라.”
“끄흐읍... 네... 흐윽... 시발...”
한태양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역시 사내 새끼가 저리 우는 꼴은 좀 보기 역겹군.
“오빠. 저대로 놔둬도 돼요?”
은지가 한태양의 팔에 제법 길게 난 상처를 보며 저러다 죽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한태양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죽는지 아닌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런 무감정함이 은지의 연기인건지 그냥 은지가 좀 사이코패스 적인 기질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이런 자상쯤이야 차오르는 살점으로 금방 치료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어.”
“아하. 역시 오빠! 대단해!”
해맑게 웃는 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컷 노예 새끼가 아프든 말든 크게 관심 없다.
어디 써먹기도 전에 안 뒤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써먹을 만큼 써먹으면 뒤져도 상관없지.
‘그래도 이 새낀 자기 누나랑 여동생이 나에게 따먹히는 걸 직관해야 하니까. 살려 둬야겠징!’
벌써부터 보람차다.
다이소에 숨어 있는 새끼들만 싹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어서 마트로 돌아가서 거사를 치러야겠다.
츄릅! 쪽! 쪽!
“야, 맛있냐?”
“네헤... 마시써여... 주인님...”
“피준 사람한테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 쪼옥. 고마스니다... 헤에...”
“흐윽... 그만... 그만... 제발...”
“야. 화영아. 우리 집에 가서 더 먹을까?”
“네에? 아. 한 모금만...”
“그러다 피 주머니 죽어. 그럼 너 밥 또 굶어야 돼.”
“아... 네엥! 그래도 맛있었어요! 고마워! 금발 아저씨!”
“흐윽... 씨발...”
난 금발 태닝남의 상처로 손을 가져다 대곤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했다.
“슈드세라아캄”
보랏빛이 뿜어져 나오며 상처가 치유된다.
“끄아아아!!!!”
상처가 치유되자 고통 어린 한태양의 비명도 점차 커진다.
수컷 노예녀석의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멸망한 세계라는 건 참 좋은 변명거리야.’
거리에서 마주친 타인을 무작정 이유 없이 망가뜨리고 박살 내도 별다른 명분이 필요 없으니.
만약 이놈들이 예의 바르게 굴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연놈들을 붙잡아 끝내 노예로 만들었겠지.
그저 나와 마주친 게 네놈들의 잘못이다.
약탈당해도, 죽임당해도, 강간당해도 전부 약한 놈이 잘못한 거니까.
“너희가 약한 게 잘못인 거야. 그러니까 참아.”
“끄아아!!!”
이후 마비 독니에 바르르 떨고 있던 단발 계집과 피떡이 되도록 처맞은 분홍 머리도 노예로 만들었다.
[플레이어 ‘한아람’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플레이어 ‘한아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동생 쪽이 아름이고 누나가 아람이다. 둘 다 좋은 이름이구나.
난 한태양의 상처를 다 치료하고서 피 떡이 된 아람이의 얼굴도 치료했다.
“끄으으으아아아!!!”
어떻게든 고통을 참으려던 한아람은 결국 비명을 내질렀다.
“우어어!!!”
이런, 슬슬 좀비가 다시 꼬이기 시작한다.
“휴우. 다됐다.”
빠르게 얼굴을 낫게 한 다음 두 자매를 무릎 꿇리고서 물었다.
“혹시 너희 중에 처녀가 있니?”
해맑게 웃으며 질문했다.여자 노예를 잡았으니 ‘처녀확인’은 중대 사항이다.
그리고 혹여나 나에게 과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웃었다. 웃는 얼굴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니까.
“끄윽... 저, 저요...”
한아름이 손을 들었다. 동생은 처녀였구나. 나이스.
“몇 살?”
“스물... 하나...”
참 좋구나.
월척이로군.
이제 다이소만 털고 집에 가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