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4. 노예사냥은 '나만' 즐거워
* * *
“우어어...”
“저리 꺼져!”
콰작!
한태양의 분노어린 칼질에 좀비는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썩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한태양은 얼굴에 좀비의 피가 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좀비를 베어 넘겼다.
조급하다는 듯, 누군가에게 쫓기듯 움직인다.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하린아 윗층이라고 했지.”
“네. 다섯에서 일곱 명 사이요.”
다이소 내부는 엉망이었다.
곳곳에 죽지 못해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이 가득했고 쓰러진 가판대에서 쏟아져 내린 물건들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지난날 이곳에서 얼마나 처절한 사투가 벌어졌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후우... 후우...”
안 그래도 강화영에게 피를 빨려 좀 많이 피곤할 텐데 홀로 좀비를 죽이게끔 시킨 덕에 힘이 부치는지 한태양의 숨결이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
“벌써 지쳐? 그만하고 싶어?”
“아, 아니요.”
“못하겠으면 말해.”
“하, 할 수 있습니다.”
진짜 그냥 쓰러질까 봐 묻는 건데 이 녀석 끈기 있는 놈일세.
“그럼 멈추지 말게 계속 걸어.”
“예... 젠장...”
“방금 뭐라고?”
“아뇨. 아님다.”
한태양은 노예가 됐음에도 묘하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건 한태양의 누이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큭. 빌어먹을 새끼...”
입술을 깨물며 욕을 내뱉는 아름이.
“쉿... 아름아.. 참아.”
아람이는 동생이 혹여나 선을 넘지 않도록 말리면서도 증오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두 여자의 증오를 온몸으로 받으며 오른손으론 아람이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왼손은 당연히 아름이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고.
내 손길을 애써 참고 있는 아람이와 달리 아름이는 남자의 손길이 익숙하지 않은 듯 내가 주물럭거릴 때마다 불쾌한 신음을 흘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바로 따먹지 못해 아쉬웠는데 젖이나 만져야지. 기껏 잡은 노예인데 알뜰살뜰 써먹어야 안 되겠나.
특히 처녀인 아름이의 날것 그대로인 반응이라 상당히 마음에 든다.
“크흠. 주인님.”
“응?”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린이는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졌다.
볼이 살짝 붉은 게 이 둘이 부러운 듯했다.
하린이는 나에게 쓰다듬 받는 걸 좋아하니까.
새로 들어온 두 년이 자기 자리를 뺏을까 봐 내심 불안 하겠지.
와중에 은지는 내가 둘을 옆에 끼고 걷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와 조금 떨어졌다.
대놓고 질투한다. 질투 중이란 사실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 점이 좋다.
“은지야.”
“네, 오빠. 왜요?”
“이거 받아. 아까 네임드 죽이고 얻은 거야.”
“와아. 고마워요.”
나는 무기를 드는 것보다 맨손인 편이 전투에 유리하니까 케샥을 죽이고 얻은 검은 비후도를 은지에게 줬다.
무기효과는 별거 없었다. 그냥 보다시피 빛 반사가 되지 않아 어둠 속에선 칼날이 보이지 않고 날이 잘 상하지 않는 단게 전부다.
그런데 아무리 별 효과가 없다고 해도 기껏 챙겨준건데 단검을 받아 든 은지의 반응이 탐탁찮다. 이런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눈빛이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있는 아람이를 슬쩍 노려봤다. 자기 자리를 빼앗겨서 그런지 심술이 잔뜩 났나보다. 이거 좀 달래줘야겠네.
“야. 아람아. 네 동생 도와서 좀비나 죽여라.”
기회다 싶어 얼른 내 품에서 벗어나려는 아람이의 엉덩이를 때려 줬다.
짝!
착 휘감기는 손맛이 장난 아니네.
아람이의 엉덩이는 굉장히 찰지고 말랑말랑했다.
“으득..”
얻어맞은 엉덩이를 문지르더니 어금니를 깨물며 인상을 찌푸린 한아람.
그녀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한태양옆으로 가서 좀비 사냥을 도왔다.
아무런 저항도, 반항도, 거부도 할 수 없으면서 억지로 수치스러움을 곱씹는 여인의 표정이란 너무도 감미롭구나.
“도와줄게..”
“고맙습니다. 누님... 죄송해요.”
슬슬 비틀거리기 시작하던 한태양은 소중한 누나가 수치를 당했음에도 별말없이 다가와 자신을 돕자 작은 목소리로 미안 하다고 사과했다.
뭐가 미안하단 건진 잘 모르겠지만 놈의 절절한 회한이 느껴지는 목소리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령 절망감이라든지. 혹은 패배감이라든지.
“은지 이리 와.”
“헤헤.. 네에!”
“은지 안 안아줘서 질투했어?”
“네에? 아니예요. 질투 안 했어요. 헤헤.”
내 품에 들어와 쏙 안긴 은지는 이제야 만족스러운지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은지는 한아람 만큼 큰 가슴은 없었지만 그래도 최근 며칠 동안 내 곁에 딱 달라붙어 있다 보니 그녀의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편안 해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린이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자기는 탐지견으로 써놓고 아무런 보상을 안 해주냐는 표정이었다.
‘이거 여자 복이 많아서 큰일이네.’
난 여전히 뭐 씹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던 아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도 네 언니 따라서 오빠 도우러 갈레?”
“네... 보내주세요.”
“그럴까? 그럼 입술에 뽀뽀해 줘.”
“네? 뭐라.. 구요?”
일부러 명령하지 않고 ‘부탁’했다.
그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싶어서. 단순히 내 가학적인 욕망의 발현이다.
“큭... 차라리 그냥 명령하세요.”
“싫어. 네 의지대로. 내 입술에 자발적으로 뽀뽀해 줘.”
“제기랄 놈...”
노예주제에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내가 일부러 허용한 부분이다.
반항적인 모습이 보고 싶어서. 원래 발버둥 치는 인간을 지그시 짓밟아야 더 재밌는 법이니까.
“어? 너희 오빠 저러다 쓰러지겠다. 얼른 가서 도와줘야지. 이대로 내버려둘 거야? 저러다 죽겠는데?”
“빌어먹을 쓰레기가...”
“자, 어서. 네가 늦어질 수록 너희 언니오빠의 부담만 커지는 거야.”
아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주먹을 꽉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귀엽다.
이거 고귀하신 처녀를 내가 너무 막 놀렸나?
뭐 어떤가. 어차피 내가 다 따먹을 건데.
그리고 순애섹스는 은지와 하린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좀 더 다른 맛을 원한다.
노예라고 다들 내 말을 너무 잘 들으면 획일화되고 재미가 없으니까.
매운맛 플레이도 있어야지.
“쪽.”
“하. 좋다.”
볼이 새빨개진 아름이는 결국 내 입술에 뽀뽀했다.
입술이 닿는 순간 나에게 억지로 굴복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가슴을 꽉 붙잡았다.
“흐읏...”
그러자 한껏 일그러진 표정의 아름이가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그녀의 피어싱이 박힌 귓가를 살짝 핥았다.
차가운 금속과 말랑한 귓불을 혀로 느끼며 속삭였다.
“넌. 내꺼야.”
“큭...”
“내가 죽을 때까지 넌 내 거라고. 네 처녀도. 네 순정도. 네 모든 게 다 내 소유야. 알아들어?”
쪼옥.
아름이의 이마에 흔적을 남기듯 입술을 맞췄다.
삼류악당이 내뱉을 법한 대사를 내 입으로 지껄이니 기분이 묘하다. 정말 악당이 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아니, 악당 맞나?
“제발... 이제 보내줘요. 뽀뽀도 했잖아요.”
“그래, 알았어. 가 봐.”
아름이는 내 입술이 닿은 이마를 더럽다는 양 거칠게 문지르곤 누이와 오라비 곁으로 갔다.
“하린이 이리 와.”
“네! 주인님!”
떠나가는 아름이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던 하린이가 얼른 달려와 나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쓰다듬어 주길 바라는 하린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게 어느 순간부터 버릇돼서 그런지 하린이는 나에게 머리부터 들이밀고 본다.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오빠. 좀 괜찮아?”
“어. 버틸 만해. 미안하다. 네 말대로 그냥 피해 갈걸. 전부 나 때문이야.”
아름이는 얼른 달려가 한태양을 도왔다. 딴에는 오빠라고 챙긴다.
“이제 와서 사과해도 너무 늦었잖아..”
“누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크흡.”
점차 피로도가 쌓여 공격이 무뎌지고 속도도 떨어져 가던 한태양은 누이들이 곁에서 돕자 억지로 힘을 냈다.
‘힘을 낼 수밖에 없겠지. 지 때문에 다 잡혀서 노예가 된 건데.’
듣자 하니 한태양이 우리를 습격하자고 강하게 주장한 탓에 세 남매가 전부 나에게 붙잡힌 것 같다. 우리 쪽에 여자가 많으니까 어찌해볼 생각이었겠지.
“젠장... 나 때문에...”
깊은 죄책감에 찌든 목소리다. 짙은 후회와 한탄이 뒤섞인 등이고.
저 새끼 혼자서 아주 후회·피폐물을 제대로 찍고 있다.
‘그러니 알아서 피해 갔어야지.’
한 인간이 무력감에 짓눌려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모를 희열을 느꼈다.
한평생 고개 숙이고만 살아와서 그런지 갑의 입장이 되니 더욱 즐겁다.
딱히 내 행동이 잘못됐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다.
만약 내가 약했다면 빼앗기는 건 나였을 테니까.
“아, 오빠. 아까 그 호루라기 같은 거 챙겼죠?”
“응. 챙겼지. 주머니에 넣어 뒀어.”
“헤헤. 역시. 오빠가 그런 걸 까먹을 리가 없지.”
은지 녀석 처녀의 등장에 위기감이라도 느낀 걸까. 평소보다 더 애교 부린다.
참고로 크치아의 검은 호각은 주변의 좀비를 불러들이는 효과가 있다는 데 당장은 쓸일이 없어서 주머니에 잘 챙겨뒀다.
다음에 좀비 때문에 곤란할 때 노예 하나 희생시켜서 좀비 어그로 끌게 하면 될 것 같은 물건이다. 아니면 적진에 잠입시켜 호각을 미친 듯이 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검은 호각을 어찌 사용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자 등 뒤에서 하품소리가 들렸다.
“하~암.”
강화영이 낸 소리다. 뒤돌아보니 태평하게 하품을 쩍 하던 그녀는 괜히 죽어 있는 좀비의 머리를 발로 툭 찼다.
피를 마셔서 그런지 조금은 얌전해졌다. 별다른 투정이나 말없이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얌전하니 좀 낫네.'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걸어올라 3층에 도착했다.
3층에 도착하는 순간 하린이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저 안에 모여 있어요.”
하린이의 말에 따라 도착한 곳은 다이소 내부의 스태프 룸, 일명 직원 휴게실이었다.
직원휴게실 앞에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좀비들로 가득했다.
휴게실 문에 손톱자국이 잔뜩 나있는 걸로 봐서 아마 먼저 들어간 놈들이 문을 잠가 밖에 남겨진 이들이 전부 좀비에게 처절하게 죽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까지 오는 길에 특수 좀비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다이소 입구에서 네임드는 봤지만 안이나 밖이나 특수 좀비는 없었다.
이곳만 특수 좀비가 운 좋게 비껴갔을 리는 없고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아하, 어제 우리 쪽으로 어그로가 다 끌렸나보네.’
그거라면 납득이 간다. 이 인근의 특수 좀비가 전부 우리 쪽으로 와서 다이소는 운 좋게 비껴갔나보다.
이거 본의 아니게 다이소의 생존자들을 구해 준 셈이 됐다.
공짜로 나에게 목숨을 구원 받으려 하다니.
이거 좀 괘씸하잖아.
“안 되겠다. 전원 노예로 삼아야겠어.”
“오빠, 원래부터 전부 노예로 삼은 생각 아니었어요?”
“물론이지.”
직원 휴게실 입구에 서성이던 좀비들을 마저 죽이고 문 쪽으로 다가 갔다.
바로 문을 열지 않고 거리를 좀 뒀다. 문을 여는 순간 안에 있는 놈들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까.
지난번에 왔을 때 활을 들고 있는 놈들이 몇 놈 보였었다. 활 든 아처가 이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 방심할 순 없지.
“안에 사람 있죠? 자기 발로 나올래요. 아니면 내가 열고 들어갈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쥐죽은 듯 조용하다.
“참고로 내가 열고 들어가면 많이 다칠 텐데.”
촉수로 문들 부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자 문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갑니다! 나가요!”
곧 걸걸한 아저씨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덜컹.
우그러진 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겨우 열리고 안에서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총 여섯 명의 인간들이다.
50대는 되어 보이는 건장한 아저씨 한 명에 굉장히 살찐 남자 하나,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40대 아줌마 둘, 못됐게 생긴 영감 하나랑 껄렁해 보이는 애새끼까지.
“와. 시발.”
제대로 된 여자가 없네? 뭐, 없어도 크게 불만은 없다. 한태양 덕분에 이미 둘이나 얻었으니까.
그런데 저 비대하게 살찐 놈이랑 영감은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껄렁한 애새끼는 영 좆 같은 눈깔로 나를 보고 있어서 별로 마음에 안들고.
'어쩌다 이런 놈들만 여기서 살아남았지?'
각성자가 몇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 중에 각성자 손.”
“각성자? 그게 뭐시여. 아이고. 나 죽네.”
영감이 시작부터 딴죽을 걸었다. 한번은 참는다.
“후.”
그래도 이 인간들이 너무 위기의식이 없는 것 같아 의식용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덩달아 은지와 하린이도 무기를 꼬나 쥔다.
분위기가 싹 바뀌자 나를 보는 여섯 쌍의 눈동자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한씨 세 남매는 피곤한 건지 별생각이 없는지 무감정한 눈빛으로 상황을 관망했다.
그리고 강화영은 입맛을 다시며 사람들의 숫자를 샜고.
“하나... 둘... 와. 여섯. 와. 츄릅.”
벌써 처먹을 생각뿐이다. 미친 괴물 같은 년.
“다시 물을게요. 각성자 손.”
“이, 이봐. 총각, 진정해요. 우리 대화로...”
“아줌마. 뒤지기 싫으면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아, 아니! 이보게!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영감. 계속 나불대다가 죽어.”
“아, 아니... 그게 무슨...”
영감. 2스택. 인신 공양 확정.
“마지막으로 묻는데 각성자 없어?”
인상을 찌푸리며 물으니 뚱뚱한 남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그, 그게. 다들 싸운다고. 안 들어와서...”
뭐? 싸운다고 안 들어와? 못 들어오게 막은 건 아니고?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새끼 여자였네?
목소리를 들으니 겨우 알겠다. 생긴건 영락없이 남자다.
“야. 그런데 안 들어온 게 아니라 문 잠그고 버린 거 아냐?”
“그, 그런 게 아니라...”
“됐고. 그럼 이 중에 각성자는 없는 거네?”
좀 더 위압적으로 묻자 이번엔 껄렁한 애새끼가 눈을 부라리며 말대꾸를 시전 했다.
“아니. 아저씨. 뭔데 자꾸 위협해요.”
“양아치가... 말대꾸?”
이 또라이는 멸망 이후의 일주일을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보낸 걸까.
주변에서 오냐오냐 해준 건지 아니면 칼든 놈을 보고도 두렵지 않은 개쩌는 배짱을 가진 건지.
자기는 칼에 찔려도 안 뒤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
“하아.”
한숨밖에 안 나온다.
내 생각엔 여기 여섯 연놈들은 다이소에 빌붙은 기생충 새끼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적어도 강화영에게 먹일 피 주머니는 넉넉히 구한 거니까.
피 빨려서 기진맥진한 한태양을 보면 알다시피 강화영 전용 피 주머니가 된다는 것은 꽤 고통스럽고 아프며 피곤한 일이다.
이런 일은 밥이나 축내는 비 각성자 놈들이 해야지 각성자들 시키면 인력 낭비야.
“아줌마. 된장찌개 잘 끓여요?”
“어. 자, 잘 끓여요. 엄청 구수하게 잘 끓여요.”
“거기 아줌마는. 뭐 잘하는데.”
“제, 제육볶음. 바, 반찬 가게 알바도 했어요.”
“오케이 둘은 합격. 옆으로 빠지시고.”
“어? 어. 고, 고마워요 총각...”
식사 당번 구했고. 식사나 청소, 빨래 같은 잡다한 일들은 전부 저 아줌마들한테 시키면 되겠다.
“그런데 아저씨. 아까부터 말이 없던데. 잘하는 거 있어요?”
“나는 저기 뭐야... 공구 좀 만질 줄 알고, 전기도 좀 볼 줄 알고, 농사. 그래 농사도 할 줄 알어. 옥상에서 토마토랑 상추도 막 키우고 그랬지. 흙이나 거름 종류도 다 볼 줄 알고. 도움될 거야.”
“오케이. 일단 합격. 아저씨도 아줌마들 옆에 가서 서요.”
50대 아저씨도 일단은 합격.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될 것 같으니 한번 지켜보자. 도움이 안 되면 피 주머니로 강등이다.
난 세명의 이마에 지장을 찍어 노예로 만들었다.
“자, 그럼 남은 건 당신들 셋인데.”
나를 노려보는 살찐 여자와 주제 파악 못하는 애새끼 그리고 빌어먹을 영감까지.
“너는 뭐 할 줄 아는 거 있니?”
“저, 저는...”
이 추운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우물쭈물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여자.
피에 지방이 많아 화영이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화영아. 저거 먹고 싶어?”
“어... 글쎄요. 주면 먹는 느낌?”
“으응. 그렇구나.”
다시 살찐 여자를 노려봤다.
잘하는 게 없다면 이 자리에서 공양할 거다.
“저는! 이, 일본어! 일본어를 잘해요!”
“뭐? 하. 탈락.”
여기가 일본도 아니고 일본어를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그냥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어라.
“영감은 뭐 할 줄 알아.”
“나, 나는...”
“화영아 저 인간 피는 어떨 거 같아?”
“어... 너무 오래되서 쓸 거 같은데. 배고프면 먹는 느낌?”
“예끼 놈! 그냥 죽여! 이 빌어먹을 개자슥들! 내가 이런 더러운 꼴 봐가며 살고 싶은 줄 알아!”
“넵. 영감도 탈락.”
영감은 최후의 호통을 갈기고 자발적으로 제물이 되기로 했다.
난 마지막 남은 애새끼를 노려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노려보던 놈은 이제 와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 사이 예의가 주입됐나보다. 이제야 주제 파악을 하는구나.
“자, 네가 마지막이다.”
“저, 저는 건강합니다. 저, 병치래 한 적도 없고. 엄청 건강해요.”
“몇 살?”
“스, 스무 살이요.”
“주인님. 저 애한테서. 달달한 냄새 나요. 맛있겠다. 어? 나 지금 배고픈가?”
벌써 배가 고프다니. 미치겠네.
“자, 그럼 네 명이 살아남고 두 명이 죽으셨습니다.”
“자, 잠깐! 아직 안 죽었다고요!”
발악하는 뚱뚱한 여자의 목을 붙잡았다.
“이제부터 죽을 거야.”
치이이익!!!
“끄아아!!!!!”
살이 녹아내리는 소리와 함께 역겨운 냄새가 퍼져나갔다. 그 사이로 여자의 비명이 묻혀 사라진다.
후두둑... 철퍼덕!
비명을 지르며 발악하던 인간 하나가 목이 잡아 뜯겨 죽었다.
“바칩니다.”
부정한 손길로 한 사람의 영혼을 카쉬낙스님의 곁으로 보냈다.
[느끼하군.]
신의 맛 평가는 신랄했다.
그렇게 또 업이 하나 쌓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