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38화 (38/221)

〈 38화 〉 37. 다가오는 위협

* * *

우리는 무사히 마트로 돌아왔다.

살인강도와의 전투로 완전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버린 은지와 하린이는 먼저 씻으러 갔고 다이소에서 데려온 비 각성자들에겐 대충 역할을 분담했다. 일단은 남자 둘은 청소부고 아줌마 둘은 식사담당이다.

그리고 강화영은 배가 고프다며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애새끼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새끼는 안 일어나네?”

한태양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발로 툭툭 차도 미동도 없다. 숨을 쉬고 있고 건들면 미약한 신음도 흘리긴 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아, 하지 마세요...”

한아름은 내가 자기 오빠를 발로 툭툭 건들이자 진절머리를 내며 나의 발을 막았다.

“허. 지금 나 막은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젠장...”

왜 또 나를 겁내는 거지?

이상하게 사람들은 내가 웃으면 두려워하고 자리를 피하더라. 분명 스탯이 오르며 꽤 잘생겨 졌음에도 나의 미소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지와 하린이 말곤 없었다.

“언니, 오빠 이제 진짜 어쩌지..”

“나도 잘 모르겠어... 저, 여기에 의사는 없나요?”

한아람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리 물었다.

내가 쳐다 볼 때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 눈을 빤히 응시하던 년이 자기 가족은 끔찍이 아끼나보군.

이거 가족도 뭣도 없는 나 같은 고아는 서러워서 살겠나.

“여기엔 의사는 없어. 아직 의사는 노예로 못 만들었거든. 기회 되면 의사 좀 잡아보고 싶네. 여의사라거나. 흐흐흐.”

“아...”

“어떡하지...”

언제까지나 이 빌어먹을 버러지 새끼 걱정하는 꼴만 볼 순 없지.

레벨도 올려야 하고 할 일도 많은데 죽어 가는 머저리 새끼 하나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노릇이다.

“됐고. 둘 다 이제 씻으러가. 이새낀 좀 있다 일어나겠지.”

“읏..”

“알겠어요.”

둘은 나의 명령에 마지못해 한태양을 남겨두곤 일어서서 화장실로 갔다.

한아름은 끝까지 나를 노려봤다. 마치 저주라도 걸듯이.

“기대되는구만.”

난 떠나가는 두 여자의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여자들끼리 씻게 내버려 두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 형님. 들어오는 거 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노예입니까?”

“어. 대박이지? 너희 이제 옥상청소 같은 거 안 해도 된다. 비 각성자도 잡아 왔으니까 그놈들 시키면 돼. 그리고 아줌마 2명 있는데 밥 잘한다더라.”

“미시요? 꿀꺽... 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한참 나의 업적을 칭송하던 하진성은 우리가 나간 이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알려 줬다.

그런데 찾아오는 이도 없고 지나가는 좀비도 별로 없었다는 그의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마음속 어딘가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마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야.’

나는 애써 불안감을 지우곤 황수민을 불러 대마도사의 귀걸이를 다시 받아 냈다.

내가 마트에 없는 동안은 화력이 가장 강한 그녀가 여길 지켜야 하니 잠시 빌려 준 거지 완전히 준 게 아니니까. 녹마석 반지까지 빼앗자 황수민은 굉장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떡갈나무 지팡이까지는 굳이 빼앗지 않았다. 여기서 저걸 쓸 만한 클래스는 황수민 뿐이니까.

‘자, 그럼 녹마석 반지는 하린이 주고. 귀걸이는 은지 줘야지.’

주로 전면전을 펼치는 하린이는 움직일 일이 많으니 녹마석 반지를 쥐어 주고 은지는 스킬 사용이 잦으니 귀걸이를 분배하기로 했다.

나야 뭐 굳이 이것들 없어도 마력이 차고 넘치니 됐다.

“그럼... 어서 씻고...”

이제 한씨 자매를 맛볼 시간이다. 피곤하지만 처녀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잘 생각은 없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데 맛있는 것부터 빨리 먹어야지. 아끼다 똥되면 나만 억울하니까.

물론 무지성으로 섹스만 할 생각은 아니다. 일단 한씨 자매는 새로 영입한 노예 하렘이니 클래스도 좀 면밀히 알아보고 스킬도 찍어 주고 그러다 보면 오늘 하루가 다 가지 않을까 싶다.

'각성자만 열명이 넘는다. 올테면 와봐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씻으러 갔다. 무엇이 오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

새벽녘, 어느 빌라의 3층.

끼이익!

녹슨 경첩이 다죽어 가는 소리를 내며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열지 않아 닫혀 있던 방문이 열렸다.

방안엔 안막 커튼이 쳐져있어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답답한 공기와 썩은 내만이 가득한 그곳에 이제야 한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뚜벅. 뚜벅.

특수 좀비와 네임드를 수없이 잡아 죽이며 얻은 물건들로 온몸을 무장한 남자.

그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희선아... 나 왔어.”

그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여인을 향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어어...!”

그러자 쇠사슬에 묶여 있던 좀비가 사납게 답한다.

텅! 텅! 우어어어!!!

한때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미소로 그의 이름을 불러 주던 여인이었으나 이제는 망가져 버린 좀비로 변해버린 그녀는 다가오는 사내의 살 내음을 맡고선 쇠사슬을 풀기 위해 거칠게 발버둥 쳤다.

허나 단단히 묶인 쇠사슬은 풀릴 기미도 없이 오히려 썩어 들어간 좀비의 살점만을 뜯어냈다.

그 모습에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하아... 희선아, 그만해.”

좀비에게 천천히 다가간 그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지난 며칠간 한 번도 벗지 않고 쓰고 다녔던 하얀 가면을 벗었다.

가면 속에서 드러난 그의 맨얼굴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흉측한 흉터와 상처들로 가득했다.

오른쪽 이마에서부터 턱까지 베인 자상을 비롯해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흉터들이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멸망이 시작된 지 아직 이주가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얼굴엔 이상하리만치 상처가 많았다.

그 상처와 흉터들은 그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투를 벌였을지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그가 죽인게 비단 좀비뿐만이 아니란 사실도 알려줬다.

그녀가 좀비가 되어 버린 순간부터 남자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으니.

그저 주어진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야 드디어 그 노력에 결실이 맺히려 했다.

“희선아. 오늘 나와 함께 싸워줄 사람들도 같이 찾아왔어. 다들 나랑 똑같은 계시를 받았더라고. 그런데 데려오진 않았다? 너 손님 너무 많으면 부끄러울까 봐. 다들 1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어... 우어어어... 딱 딱 딱.”

남자는 아련한 눈빛으로 좀비에게 말을 걸었다.

만약 실패할 경우 이제 두 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는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만큼이나 더욱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비록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을지라도 그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다짐을 새우기 위해서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그녀와... 그녀였던 것과 대면했다.

“나쁜 사람이 한 명 있데. 그 사람을 죽여야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 진다더라. 이미 여러 명 죽였지만... 이번 상대는 더 힘들 거래.”

“우어... 키아... 딱. 딱 딱. 우어아아!”

마음을 잃고 죽어가던 그를 거둔 것은 ‘희망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사내를 향해 이렇게 속삭였다.

‘사이한 것들의 권속이 이 땅에 나타났다.’고.

사내는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했다.

그러자, ‘그 존재를 내버려 둘 경우 모두가 지옥에 떨어질 거다.’라고 경고했다.

물론 사내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미 그는 지옥에 떨어진 상태였기에.

그럼에도 여신은 ‘그 사특한 존재를 죽여 없애 인류구원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사내는 완전히 귀를 닫았다. 세계평화 따위 관심 없었다.

결국 완전히 귀를 닫고 죽으려는 사내에게 희망의 여신은 이리 속삭였다.

이번 위업을 이뤄낼 경우 ‘한 가지 바람을 이뤄 주겠다.’고.

설령 그게 이미 죽은 이의 부활이라 할지라도 되는데까진 힘써 보겠다고 여신은 말했다.

그렇게 여신은 찢겨져나간 사내의 마음을 억지로 봉합해,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를 지폈다. 결과 사내는 미친듯이 적들을 도륙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그땐. 그땐 그분께서 다시 되돌려주신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우리 그때까지만 좀 더 참자... 알겠지 희선아...”

그는 이지를 상실한 채 그저 산자의 혈육을 탐할 뿐인 좀비를 보고 있는게 아니었다.

사내는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그건 가슴속 깊이 박아둔 추억이자 애정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한때 아주 뜨겁게 사랑했고, 그리하여 백 년해로를 약속했으며, 결국은 자기 모든 걸 내준 하나뿐인 ‘사랑’을 보고 있었다.

사내가 보고 있는 건 이지를 상실한 채 자신을 씹어 삼키려는 좀비 따위가 아닌.

한 명의 아리따운 ‘아내’였다.

“선아... 희선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기이한 소리로 울어댈 뿐인 좀비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썩어 들어간 좀비의 얼굴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그의 눈엔 무엇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졌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는 지나가 버린 과거의 한때를 회상했다.

함께 거리를 거닐며 손을 맞잡고서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던 풋풋했던 학창 시절을.

나아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누워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입을 맞추던 그때 그 단칸방을.

끝으로 조금 어색하고 실수 가득했던 엉성한 프러포즈에도 해맑게 웃어주며 포옹해주던 그녀의 따스했던 품을.

“우어어어...”

좀비의 울음소리에 사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의 눈앞에 비춰진 것은 너무나 적나라한 절망이었다.

현실이란 녀석은 마음부터 무너져 내려 일어서지 못할 만큼 좌절해 버릴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했다.

이제는 완전히 썩어 들어가 과거의 모습을 찾기 더 힘들어져 버린 아내의 모습에서 남자는 그녀와 함께 있어 주지 못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피를 토할 만큼 후회스러운 그때의 순간들이 제멋대로 플래시백 되며 그를 괴롭혔다.

역겨우리만치 생생하게 떠오른다. 멸망이 시작된 그날 그 밤이.

그날은 웬일로 아내가 빨리 집으로 돌아와 주길 바랐었다.

사내는 그런 아내의 문자에 무심하게 오늘은 바빠서 좀 늦는다고 답장했다.

결국 뒤늦게야 이상함을 감지하고서 급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땐 이미 거의 모든 게 끝나버린 후였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방에선 아내의 비명이 들려왔다.

‘희선아!!!’

‘꺄아아아..! 여, 여기!’

좀비에게 습격당해 도와달라고 손을 뻗어오던 아내.

그녀의 팔은 이미 좀비에게 물어뜯겨 있었다.

좀비로 변하며 고통에 발버둥 치는 그녀를 보면서도 남자는 순간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더 다가가지 못하고 멈춰 선 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선 아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허나 그땐 이미 아내가 완전히 좀비로 변한 후였다.

그는 늦었다. 몇분 사이에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잃은 거다.

단 10분이라도 아니, 1분만 더 빨리 집에 돌아 왔더라면. 혹은 그녀의 문자를 받자말자 당장 달려왔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까.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을 저주했다.

“우욱....”

다시금 떠오른 그날의 기억에 남자는 쏟아져 나오려는 구토감을 억지로 되삼켰다.

아내를 구해 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자책을 억지로 내려눌렀다. 지금은 그런 회한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사내는 생각했다. 이미 숱하게 반복해온 생각이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는 결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함께 죽는다 하더라도 그녀를 껴안고서 그날을 보냈을 거라고 수도 없이 후회했다.

“그래. 희선아.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면... 우리, 다시 같이 살자.”

남자는 좀비를 향해 다정하게 오른손을 내뻗었다. 일말의 주저함이나 두려움도 없이.

이제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 하는, 그저 본능에 따라 산자의 피와 살을 탐할 뿐인 흉측한 좀비를 향해.

빠드드득!

까드득. 우그적. 우드득...

좀비는 자신에게 다가오던 사내의 손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서 인정사정 없이 물어뜯었다.

물어뜯고, 씹어 삼켰다. 게걸스럽게 사내의 거친 손가락을 탐했다.

좀비에게 버젓이 자기 오른손을 내어준 남자는 인상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없이 다정한 미소로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를 위해 오른손을 가만히 내주었다.

씹히고 뜯겨도 아픈 내색 한 번하지 않고서.

그저 묵묵히 감내했다.

홀로 자신을 기다렸을 그녀는 이보다 더 아팠을 거라고. 더 괴로웠을 거라고. 더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롭고, 두려웠을 거라고 생각하며.

치가 떨리도록 밀려올라오는 격통을 씹어 삼켰다. 그에게 이제 아픔이란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으니.

그는 아직 물어뜯기지 않은 왼손을 뻗어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를 쓰다듬듯 삭아버린 좀비의 모발을 쓸어내렸다.

피로 물든 손으로 사랑했고, 사랑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여인의 머리를 그리 한참이나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를 되돌려 줄게.”

남자의 눈에선 이제 눈물 따윈 흘러내리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눈물샘마저 전부 메말라버린 그의 심장은 한없이 차갑고도 공허했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는 돌아왔던 그대로 다시 일어서서 좀비에게서 멀어졌다.

곧 뜯겨 나갔던 그의 오른손이 서서히 회복됐다.

물어뜯긴 손가락이 있던 자리에 뼈가 자라나고 근육이 붙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레벨 13에 올라 얻게 된 스킬 ‘말단부 재생’.

이제 그는 손과 발의 결손쯤은 마나만 충분하다면 재생이 가능했다.

또한 그는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로 변하지 않는 신성한 육신를 얻게 됐다.

레벨 15에 도달하며 얻어낸 스킬인 ‘시독면역’ 덕분이다.

그로서 그는 이제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를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전투를 앞두고 사내는 드디어 방치되어 있던 아내에게 찾아와 볼 수 있었다.

“내가 너를. 너를 ‘꼭’ 원래대로 되돌려 줄게. 기필코. 너를 되돌릴 거야...”

그는 자신의 순정과 순애를 줬으며 마찬가지로 순정과 순애를 받았던, 세상 단 하나뿐인 소꿉친구이며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녀를 향해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건 필사의 각오이자 결의였으며 굳은 다짐이었다.

실패는 없다.

목표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는다.

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바위처럼 단단한 정신과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그럼, 다녀올게.”

다시 방문이 닫혔다. 집을 나서며 사내는 다시 가면을 썼다.

어둠으로 가득한 방안엔 사지(死?)로 떠나가는 남편을 붙잡듯 처절하게 울부짖는 한 마리의 좀비만이 남았다.

****

“늦었잖아.”

“죄송합니다. 교주님.”

앙크(Ankh) 형태의 십자가를 든, 다 찢어진 양복차림의 남자가 사내에게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박기훈. 한때 사이비 교회의 목사였으나 세상이 멸망하자 진짜 ‘프리스트’로 각성해 진실로 교주가 되어 버린 사내였다.

“아씨. 교주라 부르지 말라니까 그러네.”

그리고 현재 그는 ‘교주’라 불리는 걸 몹시 싫어한다. 팀의 실질적인 리더면서도 교주만큼은 이제 진절머리 난다는게 그의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목사님.”

“빌어먹을 놈... 나는 이제 목사도 아니라고.”

그의 뒤로도 다양한 무장을 갖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전부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가진 플레이어들이었으며 제각기 숭배하는 신은 다르지만 선신진영에 속해 있는 프레이어(prayer)들이었다.

“아저씨. 손에 그 상처는 뭐야? 내가 치유해 줄까?”

“아니다. 이미 재생됐어.”

황금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다가온 소녀, 김예원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내의 손을 보며 그리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름 모를 오래된 경전과 좀비의 피와 살점이 가득 묻은 철퇴가 들려 있었다.

‘세인트 메이든’으로 각성하며 머리색마저 바뀐 그녀는 팀에서 가장 뛰어난 축복을 받은 이였다.

일명 ‘성녀’라 불리는 소녀다.

물론 말이 소녀지, 진짜 소녀라기엔 이미 20대를 훌쩍 넘겼지만 그 특유의 엣 된 미모 탓에 다들 그녀를 애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얼른 가자고. 빌어먹을 ‘이교도 사냥’의 시간이야.”

그때 괜히 멋진척하며 다가온 대머리의 근육질 남성 강찬석이 김예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또한 레벨 15에 도달해 ‘시독면역’을 얻은 강자이자 ‘몽크’로 각성해 강인한 육체를 얻게 된 사내였다.

“그래, 가자. 다들 나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하다.”

남자는 자신을 기다려 준 사람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그런 그에게 신뢰 가득한 미소로 회답했다. 사내는 믿을 만한 전위이자 전투에 미친 투귀였으니.

악신 숭배자를 죽이기 위해 모인 8인의 결사대는 저마다의 무장을 갖추고서 같은 목표를 향해 거침 없이 나아갔다.

각자 다른 미래를 상상하며,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결의하며, 나아가 잃어 버린 이를 되찾기 위해서.

‘기필코 죽여주마... 컬티스트.’

사내는 멀리서나마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마트 건물을 눈에 담았다.

'홀리 나이트'로 각성한 그의 이름은 이한석.

레벨 15의 성기사이자 광전사와 같은 투지를 보이는 사내였다.

성기사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걸 쳐부수며.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