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3. 싸워라, 이겨라, 굴복시켜라 (2)
* * *
옥상에 있던 이들 모두가 전투를 준비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쾅! 쾅! 쾅!
그사이 칠흑바퀴의 새끼들까지 전부 죽이고 마트에 도착한 선신의 하수인들은 마트 입구의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했다.
우선 그들은 프리스트 박기훈의 주신인 질서 신의 경고에 칠흑바퀴가 적의 소환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적의 소환체가 죽으며 본인들의 존재가 이미 적에게 발각됐음도 파악했고.
그렇기에 처음의 계획인 기습을 무위로 돌리고 거침없이 밀어닥쳤다.
적이 대처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위! 위에 있다.!”
박기훈이 그리 외치며 빛으로 어두운 마트 내부를 밝혔다.
의도적인 것인지 마트엔 불이 다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뒤쪽 다시 막아.”
강찬석의 말에 세 명밖에 남지 않은 빌리버들이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다시 바로 세우며 입구를 봉쇄했다.
여기에 좀비까지 몰려들면 진짜 난전이 된다. 그들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이미 바퀴에게 한 명 죽어 일곱이 된 그들은 적이 좀비마저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야 칠흑바퀴가 좀비의 배안에 알을 까는 충격적인 장면을 그들 모두 지켜봤으니까.
최대한 변수를 줄이고 싶었다. 마트 안에 또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뒤에서 밀려들어오는 좀비마저 상대해야 한다면 양각이 뜰 지도 몰랐다.
입구를 다시 막은 그들은 빠르게 몸에 버프를 두르며 위로 뛰어올랐다.
한편 옥상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조준은 다시 한번 칠흑바퀴를 소환하려 했다.
[소환수가 죽어 24시간 뒤 재소환 가능합니다.]
“페널티가 있네...”
아쉽지만 당장 칠흑바퀴의 재소환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인디크론의 경고가 없었다면 기습을 허용하고 말았을지도 몰라.’
자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하자 조준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인디크론의 경고를 받자마자 거의 그 다음날에 바로 선신의 하수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처지에선 소름 끼치는 일이다.
“하린아.”
“네. 일곱 명이요.”
“흠... 그리 많지는 않네.”
조준이 말을 걸자마자 이미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하린이는 적들의 수를 알려줬다. 그녀의 심박추적 덕분이다.
‘총 일곱이라. 여긴 각성자만 열 명이 넘어가...’
조준은 비 각성자들은 옥상에 남겨뒀다.
스킬이 난무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은 스탯을 가진 각성자들의 전투에서 비 각성자는 단순 노동력 이상으로 써먹기 어려웠다. 총이라도 들고 있다면 모를까. 오히려 전투에 휘말려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으니.
'적들에게 총화기가 있다면... 나는 어느 정도 회피가 가능할 것 같은데. 나머지는 어렵다.'
마력증가의 부가적인 효과로 신체능력이 증가한 조준은 총알마저 어찌 잘 하면 피해볼 엄두가 났으나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총들고 들어오면... 뒤틀린 갑각으로 최대한 저항하며 탄환이 다 떨어지길 기다려야겠지.'
촉수로 자동차를 끌어당겨 차폐막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일단 조준은 총화기의 등장을 어찌 막아낼지 대략적인 생각을 끝맞혔다. 하다 안되면 심층지주를 꺼내 놈들의 탄환을 낭비시킬 생각도 했다.
“흐음... 맛없는 냄새... 역겨워.”
그때 코를 벌름거리던 강화영은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핏빛 단검을 뽑아 들었다. 영 맛 없어 보이는 향이 난다며 몇번이나 중얼거리면서.
“빛... 빛이다.”
3층으로 내려가자 2층에서 빛이 비춰 들어왔다.
그렇게 전투는 3층 주차장에서 이뤄졌다.
은지는 곧장 그림자에 숨어들었고 뒤 따라온 하린이와 나머지 노예들도 침입자들과 싸우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순간 선신측 하수인들 중 최선두에서 달려 올라온 김예원이 조준을 향해 스킬 빛무리의 추적을 사용했다.
“빛이여!!”
그녀는 조준을 향해 철퇴를 높게 치켜들더니 이미 준비해 둔 영창 마치고서 빛을 쏘아냈다. 방금 전까지 조준이 서 있던 곳을 향해 총 세발의 빛무리가 날아들었다.
철퇴를 든 여자의 등장과 동시에 나머지 선신측 플레이어들도 3층으로 올라섰다.
“라시에리아!”
쾅! 쾅! 쾅!
조준은 곧장 뒤틀린 갑각을 써 곤충의 갑각 같은 방어벽을 전개했고 빛무리가 방어벽에 내리꽂히며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큭!!”
그 충격에 옆에 있던 자동차들이 옆으로 밀려나며 방어벽이 깨져나갔고 적들에게 향하던 다른 일행들도 주춤거리며 자세가 무너졌다.
바로 앞에 있던 조준은 옆으로 구르며 구강소환을 김예원에게 쏘아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심연의 그림자가 김예원이 철퇴를 든 오른쪽 어깨 옆에 뭉쳐들며 팔을 뜯어내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어딜!!”
심연의 주둥이가 김예원의 오른 팔을 앗아가려던 찰나, 그녀의 옆에서 하얀빛으로 휩싸인 남자 튀어나와 성화가 타오르는 검으로 심연을 잘라 냈다.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심연을 베어낼 힘을 선사했다. 조준은 그 빛을 보는 순간 극심한 역겨움과 증오, 두려움을 느꼈다.
‘저게 잘린다고..? 그것도 저리 쉽게.’
예상 밖의 사태에 조준은 촉수를 내뿜으며 그를 견제했다.
또한 자동차를 붙잡아 던지며 다가오는 이들을 일차적으로 막았다.
자동차가 날아가 처박히자 건물이 뒤흔들렸고 외벽에 쩌적 금이가며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렸다. 선신의 하수인들은 잽싸게 뒤로 물러서며 공격을 피해냈다.
‘건물이 무너지면 끝장이야... 그런데 저 검사 놈. 나와는 극상성이다. 저놈의 빛은 특히 위험해. 심연과는 정반대되는 위치에 놓인 힘 같아.’
조준이 한참 남자의 몸에서 피어오른 빛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을 때 그걸 지켜보던 인디크론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 빌어먹을 낙관주의의 창녀가 내린 빛이로군.]
“낙관주의 창녀요..?”
[그래. 쉽게 말해 희망의 여신이지. 나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래 봤자 덧없는 희망이지만.]
명백한 비웃음을 머금은 조소를 내보이며 절망의 주인인 인디크론이 마저 속삭였다.
[저놈을 붙잡아 타락시켜라. 빌어먹을 여신의 우는 얼굴이 보고 싶구나.]
“어, 일단 해보는데까진 해 보겠습니다.”
조준은 대충 그렇게 답하며 생각했다.
아무리 인디크론이 자기 주인이라지만 저런 놈을 사로잡으려다 역으로 모가지가 베이면 답이 없다. 그러니 상황봐가며 붙잡던지 안되면 죽이자고 생각했다.
그때 대머리 남자의 주먹질에 날아들던 촉수가 튕겨 나갔다.
‘대머리 남자와 철퇴를 든 여자, 그리고 몸에 불이 붙은 저 광인과 찢어진 양복을 입은... 목사? 나머지 셋은 일반적인 각성자들과 비슷하다. 허나 저네 명은 상당한 전력이야.’
그렇다고 못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조준은 판단했다. 자신이 저 빛에 휩싸인 사내만 잘 막아 낸다면 나머지는 다른 동료들이 어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그가 한숨을 내쉬니 넌지시 던져지는 인디크론의 짙은 욕망이 느껴졌다. 덩달아 카쉬낙스의 압력도 높아졌고 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거. 반짝이는 거 맛있겠다.]
[내꺼다. 꺼져라. 카쉬낙스.]
[허... 배고프단 말이다..]
미친 신들이 서로 저놈을 처먹겠다며 싸우고 있었다.
악신들의 정신 나간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허탈함과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지금 바로 꺼내야하나.’
심층지주의 소환을 두고 말이다.
‘선신들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바로 꺼내는 게 맞나?’
고민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지금의 전투를 인디크론과 카쉬낙스가 지켜보고 있듯 똑같이 선신들 또한 여길 보고 있을 거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의 전부를 지금 다 보여주는 게 맞나 싶었다.
‘이번 전투에서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하지만...’
다만 다음번에 찾아올 놈들이 문제였다. 선신들의 습격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리가 없었으니. 선신들은 어쩌면 조준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하수인을 보내올지도 몰랐다.
‘지금 바로 심층지주를 꺼내 든다면 아마 바로 전투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심층지주는 만마의 총애가 아니었다면 무려 보유레벨 50에 마력을 1000이나 요구했을 괴물이다. 명백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완벽한 조커로서 작용하겠지.
아마 불러내는 순간 선신진영의 플레이어들이 모조리 전의를 상실할지도 모를 정도의 괴물이니까.
‘그야말로 히든카드다. 저놈들 중에 레벨 20이상 도달한 놈은 아직 없어 보이는데. 지금 심층지주를 꺼내 드는 건 오버 파워야..’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일을 위해 아껴둘 필요도 있었다. 조준은 그런 생각까지 하며 자기 앞으로 다가온 사내를 마주 보았다.
“여기 숨어 있었군.”
“숨어 있기는. 기다린 거지 등신아.”
다른 이들은 모조리 내버려 두고 오직 조준 하나 만을 노리고서 달려온 남자.
성기사 이한석. 조준은 그와 눈을 노려봤다. 짙은 투지와 열망이 엿보이는 눈을.
“시발. 사내새끼 한테 인기 있어 봤자 개별로거든.”
“개소리 집어치우고 죽어라.”
“너나 뒤져라! 르뤼에!”
조준의 양손에서 창처럼 꼬인 촉수가 남자를 노리고 쏘아졌다.
쾅!!!
하나는 피해냈고 나머지 하나는 칼로 베어냈다. 조준은 곧장 스킬들을 연달아 터트리며 남자를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마력이 500이하로 떨어지기 전에...’
그전에 남자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는 곧장 심층지주를 불러낼 생각이었다.
스탯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저 불꽃이 너무 거슬렸기 때문이다. 괜히 저런 꺼림칙한 불꽃을 두른 적과 가까워질 필요가 없다고 조준은 생각했다.
“크아아!!!”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을 내지르는 이한석.
그는 쉼 없이 날아드는 스킬들을 마주하며 당황했다.
‘도대체... 마력량이 얼마나 높은 거지?’
스킬을 사용함에 있어 마력계산을 전혀 하지 않고 무작정 난사하는 걸로 밖에 안보였다.
문제는 그게 굉장히 치명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빌어먹을... 성화의 불길이 꺼지면... 놈의 공격을 막아 낼 방도가 없다.’
이한석은 기합을 내지르며 좀 더 그에게로 다가 갔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그 어둡고, 답답한 집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희선아...!"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작게 되뇌이며 그는 거의 신기에 가깝게 촉수를 극적으로 피해내며 앞으로 달려갔다.
“흡!!!”
곧 조준의 앞까지 다가온 그가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뭐..?”
그리고 당황했다.
순간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른 조준을 보곤.
“끄으윽...!”
불완전한 피막을 사용한 조준은 등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날개 때문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미친... 이렇게 아플 줄은...!’
어찌 된 게 적에게 공격당하는 것보다 본인 스킬 사용으로 더 고통스러운 조준이었다.
허나 고통에 아파할 틈 따위 없었다. 조준은 곧장 이한석을 공격했다.
“이런!!!”
한편 이한석은 촉수에 처맞으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곧장 공중에서 날아드는 축수다발을 피해내며 품에 있던 단검들을 연달아 집어 던졌다.
또한 업적 달성으로 받은 보상인 ‘신성폭탄’에 성화로 불을 붙여 조준에게 집어던졌다.
신성폭탄은 악신의 종복이나 만마의 권속들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히는 물건이다.
이번 전투를 위해 특별히 얻어낸 보상이었다. 조준이 직경 당하면 아무리 그라도 무사하기 어려웠다.
[저거. 위험.]
“어림도 없지!!!”
카쉬낙스의 경고와 동시에 조준은 눈을 부릅뜨며 폭탄이 더 다가오기 전에 촉수로 잡아냈다.
단검을 막아 낼 새도 없이 조준은 날아드는 둥근 폭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큭..!”
조준의 어깨와 다리에 단검이 스쳐 지나갔다. 독이라도 묻어 있었다면 큰일이지만 조준은 거기까진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단검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 순간 촉수에 딱 붙잡혀 휘감겨 있던 폭탄이 터져 나갔다.
“끄헉..! 라시에리아!”
급히 펼친 방어벽이 날아드는 신성력의 파도를 막아 냈다.
콰장창!!!
하지만 깨져나간다. 업적보상인 신성폭탄의 위력이 어마 무시했다.
“윽...”
밀어닥치는 충격에 피막 날개마저 해제되고 떨어져 내린 조준.
“쿠헉...”
땅바닥에 떨어진 조준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고통어린 신음만을 내뱉었을뿐.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조준에게 이한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그는 드디어 장조준의 마력이 다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연달아 몇 번이나 강력한 스킬을 사용했으니 이제 마력이 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곧 이한석의 몸에 붙어 있던 성화가 꺼졌다. 이한석이야말로 마력이 거의 다 떨어진 거다.
“하아...”
이한석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쓰러진 조준의 심장을 향해 검을 박아 넣으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멸망한 세계에서 결코 해선 안 되는 실수를 범했다.
“웃기는... 등신새끼.”
바로 ‘방심’이었다.
“뭐?”
갑자기 활짝 웃으며 말하는 조준의 놀림에 멍청하게 되묻는 이한석.
순식간에 조준은 그의 다리를 걷어차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시에 자세가 흐트러진 그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
조준은 흑사의 내단과 뒤틀린 내단을 복용하며 높아진 마력 스탯 덕분에 다른 스탯도 전반적으로 높아져 있었다.
겨우 15레벨 따위가 범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조준은 승리에 방심한 이한석의 다리를 차며 그가 검을 들고 있던 손목을 붙잡아 부정한 손길로 녹여 버렸다.
그는 사실 기다리고 있었다. 성화가 꺼지길.
그리고 드디어 꺼림칙한 성화가 꺼지는 순간 조준은 자신이 이겼음을 직감했다. 조준이 힘겨워하는 연기에 이한석이 제대로 낚인 거였다.
사실 조준은 만약 이한석이 끝까지 성화를 끄지 않고 전력으로 스킬을 쓰며 쓰러진 자신을 공격하려 했다면 심층지주를 꺼내 볼 생각이었다.
“그러게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뒤늦게 서야 조준을 피해 스킬을 사용하려던 이한석은 연달아 휘둘러지는 조준의 주먹에 턱을 맞아 균형을 잃었다.
조준은 얼른 그의 음부를 발로 차서 반쯤 으깨버렸다. 끔찍한 고통에 무릎 꿇은 한석의 왼쪽 팔꿈치를 손으로 붙잡은 조준은 거리낌 없이 부패시켜 녹여 버렸다.
“내가 이겼네?”
이걸로 신들은 아직 심층지주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준은 웃었다.
그의 생각대로 선신들은 이번 전투에 등장하지 않은 심층지주의 존재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심연의 존재들을 불러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선신들은 그저 다음번에는 칠흑바퀴에 대비해 어중이떠중이는 전부 배제하고 최강의 조합으로 도전할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선신들조차 이한석의 패배를 직감한 순간 지금 남은 이들로는 결코 저 괴물 같은 존재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을 마친 상태였다.
곧 하수인들의 시선으로 전장을 주시하던 선신들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오직 희망의 여신만이 얄팍한 희망을 붙잡고서 쓰러지는 이한석을 보며 눈물 흘릴 뿐이었다.
인디크론은 웃고 있었다. 굉장히 즐겁다는 듯이. 절로 그녀의 호감도가 높아진다. 원수 같은 년의 하수인을 자신의 종복이 패죽이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끄아아아!!!”
“허. 팔이 뜯기는데도 굴복을 안 해?”
“끄아!!!! 시발!!!!”
신들에게 뭔가를 들은 걸까.
이한석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눈의 실핏줄이 다 터지는 와중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허 참.”
어느 의미로 초인적인 정신력이다.
저런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바로 굴복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이한석을 타락시키기 어렵단 의미였다.
‘도대체 뭐가 저놈을 이리도 독하게 만들었을까.’
조준은 그가 자기 소중한 아내를 위해 저리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몰랐다. 그렇기에 그의 저 처절한 반항이 이해되지 않았다.
조준은 순식간에 뜯겨나간 그의 팔을 뒤로 던져 버리고 피가 쏟아지려는 단면을 차오르는 살점으로 치유했다.
“으게겍!!! 으아아아아아!!!!!!”
“야. 항복해. 굴복하라고.”
“크어억...”
여전히 그는 고개를 숙이고 피가 섞인 침만 질질 흘릴뿐 굴복하지 않았다. 그꼴을 보며 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그의 허벅지에 부정한 손길을 사용한 손가락을 쑤서넣었다.
“끄으으읍....!!!!!”
“야. 나 치유술 쓸 줄 알 거든. 온종일 너를 고문할 수도 있어. 그냥 곱게 항복해라.”
“그, 그만... 제발...”
결국 인간이란 고통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법이다.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굴복함과 동시에 이한석은 그대로 혼절했다.
곧바로 조준은 그의 이마에 노예낙인을 찍었다.
그러곤 기절하듯 쓰러져버린 이한석을 뺨을 그가 깰때까지 휘갈겼다.
짝! 짝! 짝! 짝!
“끄윽..”
“야. 명령이니까 잘 들어라...”
조준의 자해금지, 배신금지, 팀원간 불화나 공격금지 등의 명령에 이한석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희망의 여신은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저버린 채 그의 곁을 떠나갔다.
"야. 그리고 남자 하나 너희가 죽인거다."
"나... 남자...?"
"그래. 한태양. 한태양은 너희가 죽인거야. 알겠지? 나중에 내가 말꺼내면 대답 잘해라."
"끄윽... 알겠... 다..."
이후 이한석은 완전히 혼절했다. 그때 굉장히 만족스럽고 포근한 목소리로 인디크론이 말을 걸었다.
[하아. 참으로 훌륭하군.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알지?]
“알고 있습니다. 인디크론님.”
[그래. 기대하마, 나의 아이야. 그 머저리를 완전히 망가뜨려라.]
“예. 알겠습니다.”
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석이란 남자를 어떻게 해야 완전히 부숴 버릴 수 있을지 고민 하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