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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 49. 승리한 자의 보상

* * *

밤이 깊어진다.

나는 그동안 살인강도를 잡고 달성했던 업적인 ‘모범 시민’의 업적 보상을 하나 골랐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보부상 호출권]

[2. 강도수배 전단]

[3. 소득 증가용 반지]

[보부상 호출권: 1회에 한해 보부상을 곧장 호출할 수 있습니다.]

[강도수배 전단: 3회에 한해 보부상으로 위장한 살인강도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소득 증가용 반지: 착용하고 있을 경우 코인을 15퍼센트 더 얻습니다.]

보부상 호출권을 선택하기로 했다.

당장 하린이와 강화영이 직감과 냄새로 살인강도를 판별할 수 있으니까 수배 전단은 별로 필요 없을 것 같고 소득증가반지보단 그냥 빨리 보부상을 불러 블랙마켓을 여는 편이 나아 보인다.

보부상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확정적으로 불러내려면 적어도 100명의 인원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가망이 없어 보이니까.

그리 보상을 고르고서 강희선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곧 날이 밝아왔다.

밤중에 별다른 일은 없었고 강희선은 많이 피곤했는지 쥐 죽은 듯 잘 잤다.

하긴 몇 시간이나 내 정력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다른 애들이었다면 진즉에 기절했을걸 그녀는 그래도 끝까지 견뎌 내려고 노력 했다. 스탯이나 스킬의 도움도 받지 못 하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뭐랄까 나를 수용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 수용력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하~암.”

슬슬 나도 피곤해서 하품을 하고 있자니 그녀가 살며시 눈을 떴다.

“어.. 일어나 있었어?”

자연스럽게 나의 가슴을 손으로 더듬으며 애정을 보내는 희선이.

“아니. 안 잤어.”

“뭐? 왜?”

“혹시나 밤중에 뭐가 찾아올지 모르니까. 한 명 이상은 깨어 있는 게 이젠 평범해졌거든. 누나가 잠들어 있던 2주 동안. 세상이 좀 많이 변해 버렸어. 밖에 나가면 굉장할걸?”

“어... 그렇구나. 미안 해. 나만 자버려서. 피곤하지? 좀 잘래? 이번엔 내가 깨어 있을게..”

“괜찮아. 눈치 주려던 거 아니야. 앞으로는 아마 밤중에 자주 깨어 있어야 할 테니까. 미리 알려 준 거야.”

“그렇구나... 지켜줘서 고마워..”

희선이 누나가 내 품에 얼굴을 비비며 고맙다며 목덜미에 뽀뽀했다.

난 그녀의 풍만한 가슴 감촉을 즐기며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아침이라 그런지 회복된 자지가 자기주장을 시작했지만 참았다. 이제 슬슬 마트로 돌아가 볼 시간이다.

“그럼 씻고 마트로 가자. 거기에 사람들 있으니까.”

“응. 어서 준비할게.”

벗어둔 옷을 주섬주섬 챙기던 강희선에게 말했다.

“아 참, 참고로 누나를 포함해서 거기 사람들 전원 내 노예야.”

“어..? 노, 노예?”

“응. 자해하지 말고. 배신하지도 말고. 팀에 피해도 끼치지 말라는 말. 기억나지?”

“응.. 설마..”

“그래. 내가 직업 스킬로 누나를 노예로 만들었어.”

“아하... 직업이랑 스킬?”

“응. 누나도 이제 클래스가 생겼으니까. 앉아봐 뭔지 알려줄게.”

난 그녀를 침대에 앉혀두고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클래스에 관한 것과 스킬, 스탯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강희선은 게임하곤 거리가 멀었다. 특히나 RPG는 해 본적도 없다고 해서 레벨과 스킬, 업적에 대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꼼꼼히 설명해줬다.

“그리고 어제 누나 업적보상은 내가 대충 받아 뒀어.”

좀비 기피제는 아직 스킬이나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던 멸망 초기인 저번 주엔 꽤 쓸 만 했지만 지금 와선 좀비 기피제나 해독제는 크게 효용이 없다. 둘 다 쓸 상황이 안 나오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사실 네임드 좀비까지 기어 나온 이상 별로 의미가 없고. 그런 이유로 인벤토리를 습득시켰다.

이걸로 이제 희선이는 5개의 물건을 아공간에 수납할 수 있게 됐다.

“그렇구나. 인벤토리?”

그리 말하자 그녀의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빈칸은 다섯 개.

총 다섯 개의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다.

“잠깐만 누나. 우리 실험 좀 해 보자.”

과연 어디까지 넣을 수 있을까.

난 집에 있던 생필품을 가득 채워 넣은 가방을 인벤토리에 넣어보라고 했다.

쑤욱.

“좋아.”

5개의 개별적인 물건을 넣는 게 아니라 5칸의 물건 보관함이 생긴 거였다.

가방에 물건을 잔뜩 욱여넣은 뒤 인벤토리에 가방을 집어넣으면 그걸 1개의 객체로 취급하곤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까지 다 같이 보관가능해지는 사양이다.

그리고 수용가능 크기는 캐리어까지였다. 작은 캐리어는 쑤욱 들어가지만 그 이상의 크기는 넣을 수 없었다.

“그다음엔 스킬인데. 누나.”

“응응. 듣고 있어.”

“내 생각엔 정령 감응이나 자연교감 둘 중에 하나가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럼.. 어.. 자연 친화적 교감. 이걸로 할까?”

“응. 그걸로.”

당장 그녀는 공격력보단 정령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편이 좋아 보였다. 싸울 사람은 나를 포함해 이제 여럿 있으니 그녀는 일단 빨리 정령과 계약을 하거나 교류를 할 수 있는 스킬 위주로 찍어 주면 좋다. 샐러맨더를 통해 정령이 얼마나 유용한지 깨달았으니까.

‘더구나 떡갈나무뿌리 소환은 어쩌면 내 촉수소환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제약이 걸려있을지도 모르고.’

그리하여 강희선은 자연 친화적 교감을 선택했다.

“마트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좀비들 팔다리 다 분질러 둘 테니까 누나가 전부 머리 깨부숴. 알겠지?”

“응. 그럴게. 레벨 빨리 높여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흐흐. 그리고 누나, 마트에 가면 나랑 관계를 맺은 여자친구들이 제법 있으니까. 친하게 지네야해? 알겠지?”

“으응.. 알겠어.”

그녀의 눈엔 여전히 약간의 공포가 남아 있다. 어제 그렇게 지랄 발광을 하며 미친 짓을 했으니 당연하겠지.

사실 저 상냥한 모습도 전부 연기일지도 모른다. 그녀도 살아남기 위해 타협중일거다. 어쨌든 자기의 생살여탈권을 내가 쥐고 있으니까.

하린이도 그렇고 다들 노예가 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순종적으로 변하거나 고분고분 해진다.

“그럼 가 볼까?”

“응! 기대돼.”

곧 방문이 닫히고. 난 누나의 손을 꼬옥 붙잡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 집에 남은 건 싸늘하게 죽어 버린 이한석의 시체뿐이었다.

*****

마트까지 걸어오는 길에 강희선은 레벨을 다섯 개나 더 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건네준 쇠 지렛대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좀비들의 대가리를 미친 듯이 깨부쉈다.

그리하여 그녀가 새로 얻은 다섯 개의 스킬은 각각 [정령감응], [하급정령계약], [숲지기의 심안], [소규모 생장], [마력초 재배]였다.

전투계통 스킬은 일단 빼놓고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스킬 위주로 찍었다.

우선 [정령감응]은 자연 친화적 교감과 함께 정령과 계약하는 걸 도와주는 스킬이고 하급정령계약은 교감한 하급 정령을 4마리까지 계약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숲지기의 심안은 정령을 비롯한 다양한 영적 존재를 볼 수 있는 영안을 개안 시켜 준다는데 그걸 습득 시키고 나니 그녀는 내 곁에 있는 샐러맨더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뭔가 굉장히 불길하고 꺼림칙한 존재가 둘이나 내 뒤에 달라붙어 있다며 잠깐 소스라치게 놀랬다.

내 생각엔 칠흑바퀴와 심층지주를 얼핏 본 게 아닐까 싶다.

그다음은 소규모 생장과 마력초 재배인데. 일단 마력초 재배는 흙과 햇빛, 물과 마나만 있다면 ‘마력초’라는 식물을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스킬을 사용하면 씨앗이 세 개가 생긴 다는데 그걸 땅에 심고 매일 아침 흙이 흠뻑 젖을 정도의 물과 마나를 5정도 부여하면 알아서 쑥쑥 자란단다.

이렇게 재배한 마력초의 효과가 상당히 좋은데, 일단 뿌리엔 마력 회복 증진 효과가 있어 먹으면 마력이 점차 회복된단다. 전투중에 마력 고갈 상태일때 씹어먹으면 될 것 같다.

그 다음 마력초의 잎은 달여 마시면 심신 건강에 좋단다. 그리고 마력초에서 자라난 열매는 다시 심을 수 있다고 하니 벌레나 새가 안 쪼아 먹게 잘 관리해야 한다.

열매는 마력초 하나당 1개에서 많으면 3개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잘만 키우면 인삼밭처럼 만들 수 있겠다.

‘그야말로 농장주의 자질을 가진 클래스..’

굉장히 자연 친화적인 스킬들이다. 요구하는 것도 명상뿐이고. 나는 인신 공양을 요구하던데. 그보다 훨씬 평화적인 직업이었다. 더구나 결과도 상당히 유용하니 엄청 좋다.

‘심지어 마력초 하나 자라는데 일주일이 걸린다는데.. 소규모 생장을 사용하면 3일 정도로 단축된다.’

성장 기한이 반으로 줄어 버리는 거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마녀라든지 뭔가 포션 제작과 관련 있을 것 같은 직업을 가진 이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어쩌면 마력초로 즉효성 마력 회복약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은 상상의 영역이지만 드루이드가 나온 시점에서 뭐든 안 나올까 싶다.

아무튼 진짜 복덩이가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그녀의 존재 하나로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사라질 수 있으니까.

“오빠! 기다렸어요!! 어..? 또.. 새로운 분이시네요?”

“아. 은지야. 이쪽은 강희선씨. 서른넷이고 누나야.”

“안녕하세요. 은지씨죠? 이야기는 오면서 들었어요. 엄청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하던데. 진짜네요.”

미리 지금 있는 하렘 멤버들에 대해 대강 알려 줬다. 실질적인 하렘 멤버 실세는 은지니까 그녀에게만 잘 보여도 쉽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미리 말해 뒀다.

“헤헤.. 오빠, 쑥스럽게 그런 칭찬을. 헤헤. 언니도 어서 와요. 그리고 말 놔요, 언니.”

“으응.. 그럴게? 고마워.”

그리 은지의 환영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 내부는 평화로웠다. 어제 청소를 싹 했는지 깨진 유리 파편 같은 것도 싹 치워져 있고. 시체들도 전부 옥상에 내던져져 있었다.

“야, 수민아.”

“네. 말씀하세요.”

“이제 저 시체들 싹 태워 버려.”

“이제 태워도 돼요?”

“어. 당장 위험한 일도 지나갔고. 저대로 계속 방치할 수도 없고. 태워.”

“네. 알겠어요.”

그리 옥상에 방치되어 있던 시체들이 황수민의 화염구에 의해 불타기 시작했다.

썩은 인육이 타오르는 냄새는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나를 따라 마트를 둘러보던 강희선은 불타는 시체의 산을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콜록콜록 기침했다.

나에게 보이기 싫은지 고개를 살짝 돌리고선 약간 헛구역질도 했고.

“저거 대부분 좀비야. 밤이 되면 사람이 많은 곳을 좀비들이 습격하거든.”

“그, 그렇구나. 난 또, 살아 있는 사람을 저렇게 많이 죽인 줄 알았어..”

살짝 질린 눈빛으로 불타는 시체더미를 보는 희선.

역시 아직 그녀는 이런 상황이 많이 얼떨떨해 보였다.

멸망 첫 주부터 아득바득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더구나 그녀는 업데이트 첫날밤도 겪지 않았으니까.

내 생각엔 업데이트 첫날밤을 제대로 겪은 이들은 정신적으로나 레벨적으로나 상당히 성장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다 죽었을 테고.

마치 전쟁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됐다고 해야 하나.

그만큼 업데이트 당일 밤의 좀비 러쉬는 답이 없었으니까.

“누나.”

“응..?”

“살기 위해서는 이런 거에 적응해야 해.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한 명이상 죽여 본 사람들이야.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든. 그러니까 이제 누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죄책감이나 그런 감정들과 거리를 좀 둬. 남을 죽여야 살 수 있어.”

내 말을 가만히 듣던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다시 불타오르는 시체들을 봤다.

지금은 멸망의 시대다. 사람의 죽음 하나하나에 감정을 쏟았다간 버틸 수가 없다. 뭐, 나야 원래부터 그다지 깊은 고뇌 따윈 없이 죽여 왔지만. 은지도 하린이도 처음에 우물쭈물하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다들 생존해나가며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으응..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게 좀. 아직은 쉽지 않네..”

“아마 며칠만 있으면 자연스레 적응될 거야. 좀비나 사람이나 머리 깨부수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응.. 노력할게.”

그리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아직 잠들어 있던 다른 하렘 멤버들에게 소개해줬다. 그래도 이제 한솥밥 먹게 생겼는데 서로 얼굴은 익혀둬야지.

난 그녀들에게 강희선의 클래스에 대해 소개하며 그녀가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알려 줬다.

특히 이제 물이나 전기가 끊길 경우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하니 다들 엄청 반겨 주는 분위기다.

처음엔 조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가 클래스 설명을 들으니 어서 오라며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아까 은지에게 들어 보니까 슬슬 물이 뚝뚝 끊기거나 쪼르륵 힘없게 나온다고 했다. 곧 완전히 수도가 끊기겠지. 생활하는데 물은 필수적이니까. 어서 그녀가 물의 정령과 계약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샤워하기 위해 한강까지 가야 하는 건 사양이야.

“와. 언니 가슴 엄청 크.. 예쁘다.”

하린이는 그녀의 가슴을 보곤 아람이의 가슴을 번갈아 보더니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며 크기를 비교했다.

하린이 본인도 글래머인데 아람이나 희선이는 거의 폭유의 반열에 들어가니까.

심지어 희선이의 몸매는 상당히 육덕진 맛이 있어서 그런지 하린이가 자꾸 그녀의 몸매와 자신의 몸을 비교하며 신경 쓰는 눈치였다.

아람이는 그저 살짝 고개만 끄덕여 인사했고 아름이는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뒤에서 몸을 떨고 있던 김예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그녀의 처지에선 지금 포로로 잡혀 있는 거니까 상당히 두려워 보인다.

“하~암.”

강화영은 강화영이었다. 대충 고개를 까딱이더니 다시 잔다.

오늘 밤엔 강화영을 조질 생각이다. 김예원의 처녀부터 딴 다음에.

“아무튼 다들 편하게 대화 나누고 있어.”

“네!”

여자들끼리 대화할 시간을 마련해 줬다. 그러곤 옥상의 한구석으로 가서 모범 시민의 보상을 받았다.

‘보부상 호출권..’

작은 종이 티켓이 한 장 떨어졌다. 이걸 뜯으면 보부상이 소환된다.

‘당장 보부상에게 줘야할 건 블랙칩이고..’

그밖에 보부상에게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는 살인강도를 잡고 드랍 된 '잃어 버린 등산모'와 '황금동전'이 있다.

황금동전은 코인이 모자라 살 수 없는 물건이 나왔을 때 써야 하고 보부상과의 호감도를 크게 높여주는 ‘잃어 버린 등산모’도 물건 하나를 반값에 주는 쿠폰 같은 거니까 당장을 쓸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자, 나와라.”

바로 티켓을 찢었다.

퓨웅!

곧 눈앞에 빛이 번쩍이며 보부상이 등장했다.

역시나 낡은 옷차림에 등산모를 쓴, 나이를 알 수 없는 생김새의 커다란 가방을 지고 있는 남자였다.

“하하. 금방 다시 만나는군. 어때? 좀 살만한가?”

그는 아는채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지난번에 일찍 퇴근 시켜줘서 호감도가 올랐던 게 적용이 된 것 같다.

“예,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도 꽤 상등품을 가져 왔으니 둘러보게.”

좌판에 6개의 물건이 깔린다.

지난번에 살인강도가 5개의 물건만 깐걸 봐서 그런지 유심히 물건의 개수를 샜다.

“허허. 뭐든 골라잡게.”

난 좌판에 깔린 물건들을 확인하기에 앞서 그에게 검은색 칩을 건넸다.

“저기, 이걸 드리면 ‘암시장’에 갈 수 있는 출입증을 주신다고 하던데..”

“자네, 야수의 심장을 가졌나보군. 목숨을 담보로 도대체 뭘 먹은건가? 허어. 그걸 벌써 얻다니.. 블랙 칩을 이리 줘 보게.”

보부상은 내 손에 있는 블랙칩을 받아가더니 이리저리 살펴봤다.

“진품이군. 벌써 이게 나돌아다닐 줄이야. 상당히 빨라. 아직 초반일텐데...”

“어.. 그렇습니까?”

“크흠. 방금 내 말들은 잊게나. 일종의 메타발언이니까.”

“네..”

곧 품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뒤적 거리던 보부상은 나에게 까만 열쇠를 하나 꺼냈다.

“자, 받게. 이게 암시장 출입증이야. 혼자 혹은 둘까지 출입이 가능하지.”

“어.. 오..”

“열쇠를 꽂을 수 있는 문에 그 열쇠를 꽂으면 암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리고 암시장이 열리는 날은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라네. 그때가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하고.. 만약 그 시간 안에 암시장을 빠져나올 수 없다면.”

“못 나오면요...?”

“끝이야. 암시장의 제품 중 하나가 되겠지.”

난 숨을 확 들이켰다. 4시간 동안 이용하고 그 안에 빠져나와야 한다.

“나오기가 어렵나요?”

“글쎄 문만 잘 찾아 두면 괜찮을 거야. 아참,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네. 암시장의 안내서를 받겠나?”

“네..”

난 보부상이 건네는 암시장 이용수칙이 쓰인 종이를 받아 읽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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