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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55화 (55/221)

〈 55화 〉 54. 위로 더 위로

* * *

“처음부터 너무 비싼 녀석들로 보여 준 거 아닌가?”

체셔가 옆에서 속닥였다. 그러자 노예 상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어차피 브로커와 만난이상 굳이 싼 놈들을 내줄 필요가 없지.”

만약 내가 다른 곳이 아닌 노예상부터 찾아왔다면 그는 나를 브로커와 연결시켜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브로커 연결비용인 1만 코인 이하의 값싼 노예들을 보여주며 고르라 했겠지.

“그럼 나는 계약서를 가져올 테니 빨리 고르고 둘 다 어서 돌아가 줬으면 좋겠군.”

곧 노예상은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톡 쏘아 붙인 다음 계약서를 챙겨 오겠다며 어디론가 가 버렸다.

“흠...”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지금도 착실히 시간을 흘러가고 있으니까.

어떤 놈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지만 체셔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말없이 나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녀석을 선택하든 나의 책임이라는 듯.

‘당장 무력으로만 보자면 크레톤이 제일 강해 보인다. 케시아는.. 수중 전을 벌일 때가 마땅히 없으니 자동 탈락이고.. 로우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될 테지만 태도가 너무 불량해. 문제는 저 타천사인데...’

어찌 되든 좋다는 식으로 눈을 감고서 그저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타천사.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관용적인 모습이다.

가격은 육만 팔천 코인. 실시간으로 노예들이 좀비를 죽이고 있는 덕에 코인은 계속 쌓여 가고 있다.

큰 지출이긴 하지만 구입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나간 가격은 아니다.

‘비싸긴 하지만.. 코인이야 특수 좀비나 네임드를 사냥하다 보면 결국 다시 모인다. 문제는 이 녀석에게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냐는 건데...’

난 다시 한번 타천사를 쳐다 봤다.

그녀의 조금 처진 어깨에선 체념의 정서가 엿보였다.

‘그냥 가슴이 커서 처진 거일 수도 있지만..’

왠지 자신을 선택하지 말고, 그저 이 갑갑한 새장에서 썩어가도록 내버려 두길 바라는 게 느껴졌다.

‘삶을 포기했다고 했었나?’

그녀는 자기소개하며 본인 스스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본인의 현재 상태를 굉장히 암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추락하며 날개와 헤일로를 잃은 게 그녀가 삶에 절망하게 된 원인이 아닐까.

그래, 우사인 볼트가 양다리를 잃었다고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다리를 하루아침에 잃으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봐. 메르헤레.”

나의 부름에 타천사가 살짝 눈을 떠 나를 응시했다.

“뭐지?”

“너, 정말 살기 싫은 거냐?”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이.

그러자 그녀는 대답하기 싫다는 양 고개를 돌려 내 눈을 피했다. 그러곤 씹어 뱉듯 힘겹게 답했다.

“그래.. 그렇다.”

그 목소리에는 방금 전까지의 단호함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정말 메르헤레는 자기 삶을 다 포기한 걸까? 아니면 단지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에 노력하길 포기한 걸까.

“지상으로 떨어져서 그런 거냐? 아니면 권능을 다 잃어서? 뭐가 너를 그리 부정적으로 만들었어?”

“너의 질문에 대답해 줄 이유가 없다. 내 대답을 듣고 싶거든 쓸모없는 나의 주인이 되던지... 뭐,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그저 젖만 큰 여자에 불과하다만.”

비루한 자기 처지에 대한 조소를 아끼지 않는 메르헤레.

본인의 가치를 한없이 낮게 보고 있다. 날개와 헤일로를 잃은 자기는 아무 쓸 모도 없다는 듯한 말투다.

허나 그녀는 아직 본인 자신을 똑바로 인지 못하고 있다.

아무 능력도 없고 젖만 큰 여자라니.

‘계정생성카드.’

시도해 봐야 알겠지만 계정생성카드를 쓰면 그녀에게 클래스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계정생성카드가 그녀에게 클래스를 준다면 메르헤레는 능력 있고 젖도 큰 여자가 된다.

‘크란의 신경 안정제.’

살기 싫다면 하루를 더 살고 싶게 만들어 주면 되는 일이다. 30일분이 있으니까 그 안에 그녀의 삶에 활력을 심어 주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온종일 진득하게 달라붙어 육욕의 쾌락을 느끼게 해주면 좀 더 살고 싶어질지도 모르지.

“저기 노예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뭘 고를지에 대한 선택은 도와줄 수 없지만 다른 건 아는 선에서 답해주지.”

“혹시 여기 노예도 플레이어가 될 수 있나요?”

“그야.. 당연하지? 참고로 노예들은 기본적으로 계정생성카드라는 물건이 있어야지만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어. 뭐,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이종족 대부분이 일반 인간보다 훨씬 강하지만. 그래도 정식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스킬을 못쓰니까 말이지.”

“그거라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문제없군. 누굴 고르든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다.”

체셔의 말에 확신을 얻는 나는 메르헤레를 지목했다.

“좋아. 역시 너로 결정했다.”

“하.. 어리석은 선택이다. 차라리 저 미노타우로스 아종을 고르는 게 어떤가? 혼자서 발록의 발목도 잡을 녀석인데.”

“아니. 털 복숭이 아저씨는 좀 별로거든..”

“그럼 저 케이시라는 어인 전사는? 대양인이라면 물속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로 한다. 최고의 창사다.”

“됐어. 조금.. 멍청해 보여서.”

“뭐라? 그럼 이 똑똑한 하프풋은 어떻지? 그라면 다양한 경험도 많을 거다. 필히 생존에 도움이 되겠지.”

“그만. 됐다고. 다 필요 없어. 이미 너로 결정했다. 내 선택에 번복은 없으니 그만해라. 나는 너의 그 쓸모없고 크기만 한 젖이 필요하다.”

“결국은 내 몸이 목적인가.. 파렴치한 목적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아닐까?”

"실망할거다.. 나에게.."

실망은 무슨.

저런 가슴이라면 품에 안겨 잠드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겠지.

강희선의 가슴도 풍만하지만. 그 걸로는 부족하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몸을 한 번 봐버린 이상 포기하기가 어렵다.

말도 안되는 크기의 탄력적인 폭유에 붙잡고 박으면 영혼까지 빠져나갈 것 같은 골반, 거기다 전직 천사답게 아름다운 외모와 나를 품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큰 키까지.

메르헤레의 몸은 뭇 남성들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남자란 결국 어미의 품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고 메르헤레는 그런 욕망에 최적화된 몸이니까.

“어리석은 결정이다. 난 너의 여정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할게 분명해. 그야 날개도 없고.. 헤일로도 없는데.. 난 고기 방패 이상의 가치가 없단 말이다.. 분명..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버릴 게 분명해.. 그건.. 너무 비참하다. 선택을 재고해라..”

“자꾸 이상한 자기 비하하지 말고 그냥 군말없이 노예답게 따라와라. 뭔 의견이 그리 많아?”

“...알겠다. 따르겠다.”

곧 계약서를 가져온 노예 상인에게 말했다.

“이 녀석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여기 싸인 해라.”

“잠시만요.”

난 그가 가져온 노예양도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뭔가 이상한 부분이 적혀 있거나 불리한 조건이 없는지 전부 확인했다.

암시장 이용수칙에 그러라고 했으니까.

읽어 본 결과 아무 문제없어보였다.

“저기, 계약서 검수도 해주나요?”

“응? 뭐, 어렵지 않지. 줘 봐.”

체셔는 계약서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다시 나에게 넘겨 줬다.

“아무문제없어. 싸인 하면 돼.”

“그럼 노예 메르헤르를 양도 받겠습니다.”

계약서가 허공에 떠올라 불타며 동시에 코인이 쫘악 빠져나갔다.

'조금 비싼 감이 있지만 다들 이 종족이기도하고..'

무엇보다 나야 노예낙인 스킬로 노예를 밥 먹듯 양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에겐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노리개를 구입할 수 있는 엄청난 장소다.

향후 암시장이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오픈되면 별별 조합의 각성자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대로 데려갈 거냐. 아니면 옷을 입힐 거냐. 간단한 의복은 이천 코인으로 줄 수 있다.”

“아니 가격이 육만 팔천짜린데.. 서비스 없습니까?”

“암시장에서 서비스를 찾나?”

나체로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천 코인을 더 내고 옷을 구매했다.

“가급적이면 가이드를 달고서는 나에게 찾아오지 마라.”

노예상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 그를 보며 체셔는 비웃음을 담아 다음에도 같이 오겠다고 외쳤다.

“자, 그럼 중앙광장 쪽으로 가 볼까?”

“예. 저기 혹시 사람이 한 명 늘었는데... 추가 요금 붙나요?”

“뭐.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쯤이야 상관없지. 세 명 째부턴 특별한 요금을 받겠지만. 후훗..”

다행이다. 만약에 체셔가 추가 요금을 원했다면 조금 힘들 뻔했다. 단번에 7만 코인이 삭제돼서 여유가 없으니까.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멀뚱히 서 있는 메르헤레를 올려다 봤다.

7만 코인짜리인 그녀는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역시 구입하기 잘했다.

“메르헤레. 옷이 불편하진 않아?”

“상관없다. 뭐든 걸칠 수만 있다면.”

노예상이 내준 옷은 검은색 탱크톱과 갈색 카고 바지, 군용 워커와 우비 그리고 방독면이었다.

탱크톱이 묘하게 타이트해서 가슴이 미어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난 그녀에게 방독면을 씌워주며 넌지기 다가가 가슴에 손을 뻗었다.

“우와... 말랑하다..”

“크음..”

이 욕망을 어찌 참을까. 나는 곧장 메르헤레의 가슴을 열심히 만지작거렸다.

손이 착 달라붙어서 때기 싫어졌다. 이대로 계속 가슴을 만지고 싶은 욕망.

“크크. 귀여운 인간.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해야지. 시간 없잖아?”

“아, 예.”

체셔가 가슴에 집중하던 나를 보고 웃더니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진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메르헤레를 구입한순간부터 아랫도리가 자기주장을 하려 했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면 허리를 약간 수그려야 했다.

“자, 그럼 가 보자고! 암시장 마지막 코스. 암시장 최대의 번화가인 중앙광장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나는 체셔의 손과 메르헤레의 손을 동시에 붙잡았다.

곧 쑤우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우리는 슬픈 축제의 장을 벗어나 암시장의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자. 여기가 바로 중앙.. 광장... 인데? 어라..?”

중앙광장은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컴컴한 하늘이다.

또한 바닥이 뭔지 모를 모피로 이뤄져 있었고 곳곳에 특이한 형태의 기둥과 특이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나름 번화가 같은 분위기긴 한데...

중앙 광장엔 아무도 없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가게의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포차도 전부 문을 닫았고. 뭔가 분위기가 쌔하다.

그리고 왜인지.. 나를 보고 있던 카쉬낙스와 인디크론의 시선이 엄청 옅어졌다.

그녀들의 시선이 점차 옅어져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약해지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저기 여기에 왜 아무도 없어요? 우리 어디 잘못 온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거 서, 설마... 하필 지금.. 근 5년간 잠잠했는데!! 왜!?”

체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다시 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뛰어..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서, 설명은 나중에…….”

체셔가 내 손목을 붙잡고 달리려는 그때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3차 경고입니다!!! 경고!!! 경고!!!

­빠르게 중앙광장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경고!!! 경고!!! 빌어먹을!! 이제 우리도 도망가자고!!

­달칵.

굉음에 가까운 사이렌 소리가 중앙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다급한 목소리의 남자가 이곳에서 벗어나라며 소리쳤다.

투쾅!!!! 쿵!!

경고음이 꺼지는 동시에 맨홀뚜껑 하나가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날아가는 맨홀 뚜껑을 보며 체셔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젠장.. 경비대가 온다.”

곧 열린 맨홀 아래에서 무언가 기어 나왔다.

그건 몸에 붙은 어둠을 털어내며 착용하고 있던 뒤틀린 가스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푸하아아아아.....”

기어 올라온 괴인이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러자 놈의 등 뒤에 달린 파이프 관으로 붉은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놈들이.. 경비대...?”

새하얀 머리와 누런 피가 흘러내리는 상처들 그리고 몸 곳곳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

눈을 가린 검은 안대와 입술이 뜯겨나가 다물어지지 않는 역겨운 입.

온몸 곳곳에 박혀 있는 쇠말뚝과 칭칭 휘감겨 있는 쇠사슬.

그리고 목줄이 잡힌 기괴한 형상의 사냥개들.

“키아아아!!!!!”

“키아!!! 키아아!!!!”

맨홀 아래에서 빠르게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 괴물들은 서로 맞고함을 지르며 목줄 잡힌 사냥개들을 풀었다.

털이라곤 하나도 자라지 않은, 눈도 귀도 코도 없이 오직 커다랗고 길쭉한 주둥이와 갈고리 같은 이빨만 가득 달린 사냥개들이 채찍처럼 꼬리를 휘두르며 달려온다.

“뛰어뛰어뛰어뛰어!!!”

체셔가 선두에서 빠르게 달려 나가며 나와 메르헤레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아악!!! 저것들 못 죽여요?!!!”

“못 죽여! 아니 죽여도 의미 없어!! 무한 생성이다!!! 맨홀에서 계속 나와!”

“젠장!!! 순간 이동은!?”

“못해!! 출입구가 없잖아!! 그냥 닥치고 달려!!!”

쾅!! 쾅!!!

미친 듯이 달리며 터져 나오는 굉음에 뒤를 살짝 돌아보자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난 지하경비대와 그들이 풀어 버린 미친 사냥개들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때려 부수며 우리의 뒤를 쫓았다.

건물 몇채가 무너져 내리고 길가에 세워져 있던 포장마차들이 터져나가며 자재가 허공을 날았다.

“키아!”

쿵!

경비대 놈들이 쇠사슬을 칭칭 감아 우리 쪽으로 던진다. 사방에서 놈들이 던져대는 물건들에 맞아 죽을 것 같다.

기어코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날아들자 얼른 뒤틀린 갑각으로 막아 내고 다시 달려야 했다.

사방에서 괴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온다.

또한 그들이 풀어둔 사냥개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우리를 계속 뒤쫓았다.

“시이이바!!!!”

좀비보다, 아니 좀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압박감.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메르헤레마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력을 다해 뛰고 있다.

심지어 어찌나 빠른지 나를 살짝 앞서간다!

“야!!! 같이 가!!! 이런!!!”

곧 내 뒤를 따라잡은 사냥개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놈의 입에선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썩은 내가 풍겨져 나왔다.

그건 찐득하고 역겨운 죽음의 향기였다.

“쿠아아아!!!!!”

“르뤼에!!!”

푸화악!!!

습관적으로 촉수를 내뿜어 놈을 붙잡아 죽이려고 했으나.

“쿠아!!!”

놈은 재빠르게 고개를 틀어 촉수를 모조리 씹어 뜯어 버렸다.

“미친..!!!”

그래도 견제는 됐는지 놈은 뒤로 밀려났고 동시에 뒤에서 달려오던 사냥개들에게 물어뜯겨 찢겨졌다.

놈들은 적아군 구분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달리는 모든 걸 찢어 버리는 거였다.

“여기!! 꼬인 골목 입구!!! 빨리!!!”

이미 저 멀리 앞까지 앞서나간 체셔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새 앞에 서서 나와 메르헤레를 불렀다.

그다음 체셔는 허공에서 뭔가 기관총 같이 생긴 기계 장치를 꺼내 우리 뒤편을 조준했다.

“어서 들어가! 그리고 골목에서 문을 찾아!! 찾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

“예!!”

우리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체셔는 기계 장치의 버튼을 눌렀고.

투쾅! 파자자작!!!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기계 장치에서 푸른색 빔이 발사됐다.

동시에 깨진 유리관이 탄피마냥 밖으로 배출되었고 체셔가 푸른 액체가 담긴 2번째 유리관을 기계에 끼워 넣었다.

골목에 완전히 들어서기 직전 살짝 뒤를 돌아보니 빔이 쏘아진 전방이 싸그리 날아가며 우리를 뒤쫓던 사냥개와 지하경비대가 지워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나 뒤따라온 무리가 금세 비워진 자리를 메우며 다시 밀어닥쳤다.

“으아!! 죽어!!! 죽어!!!”

체셔는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연달아 빔을 쏘아냈다.

그 모습을 끝으로 골목 안에 완전히 들어가자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허어.. 허어...”

암시장에 왔을 때 제일 처음 봤던 그 골목이다.

역겨운 오염수를 내뿜는 파이프가 가득 자란 곳.

“젠장.. 쿨럭.. 미쳤어... 미쳤다고..”

여기서 이제 문을 찾아야 한다.

시간은 이제 1시간 10분 남았다.

체셔는 자신과 함께라면 문을 찾는데 아무리 오래 걸려도 20분 정도 밖에 안 걸릴 거라고 했다.

허나 지금은 체셔가 없으니 그보다 더 걸리겠지.

“문.. 열쇠달린 문을 찾아야 해.”

메르헤레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찾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서 서로 떨어졌다간 영영 못 찾을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쥐었다.

“젠장.. 문이 없어..”

15분 가까이 돌아다녔지만 열쇠달린 문은 보이지 않았다.

“키아아!!!”

여기서 더 최악인건 꼬인 골목 어딘가에서부터 지하경비대 놈들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려온단 사실이다.

“아까는 오른쪽에서 들리지 않았어?”

“그, 그랬다.. 방금은 왼쪽에서 들렸고..”

“설마 우리 포위 중인 건 아니겠지..”

내 안 좋은 예감은 왜 이리 잘 맞는 건지.

“온다온다온다!!!”

곧 사방에서 벽을 타고 기어 나오는 놈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골목 곳곳의 맨홀이 터지며 안에서 경비대가 쏟아져 나온다.

메르헤레의 손을 붙잡고서 달렸다. 뛰고 또 뛰었다.

숨이 차 돌아버릴 것 같아도 멈추는 순간 놈들에게 붙잡혀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가 없으니 감히 발을 멈출 수 없었다.

“저, 저기!! 문! 문이다!!!”

그때 메르헤레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거기엔 문이 있었다.

“으아!!!”

기쁨을 함성을 내지르며 우린 골목의 한쪽 끝에 놓인 문 앞까지 달려갔다.

“어...?”

그건 하얀색 문이었다.

그리고 문의 중앙엔 피로 그린 듯한 문양이 있었다.

“이건 위를 가리키는 화살표 문양이군.”

메르헤레의 말에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문양 아래에 적힌 글씨를 보며 입을 벌렸다.

문양 아래에 적힌 문자. 어째선지 알아볼 수 있는 정체불명의 단어.

“지상층...”

뒤에 있는 건 우리를 찢어 죽이려는 지하경비대들이고 눈앞에 있는 건 이용수칙에서 결코 들어가선 안 된다는 지상 층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어쩌지?”

“어...”

고민은 짧았다.

고민할 새로 없이 지상층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고.

“으아!!!”

나와 메르헤레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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