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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56화 (56/221)

〈 56화 〉 55. 다시 아래로

* * *

“이런... 씹...”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온통 노란 벽지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묘하게 축축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카펫 깔린 바닥과 전등의 소음이 기분 나쁜 장소다.

“카쉬낙스님!! 인디크론님!”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녀들의 시선이나 존재감을 느끼려고 갖은 애를 써봤지만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느낌이었다.

“좆됐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 고장 났잖아..”

손목시계는 이동 중에 망가지기라도 한 듯 멈춰있었다. 가지고 있던 휴대폰도 꺼져 있고.

“칠흑바퀴 소환! 심층지주 소환! 샐러맨더!”

아무것도 응답하지 않았다. 소환술마저 전부 막혔다.

“체셔. 체셔. 체셔. 제발..!”

밀려오는 불안감에 가이드 체셔를 호출하는 버튼을 몇 번이나 눌렀지만 역시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미 버튼을 누른지 5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야. 야! 일어나.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난 옆에 쓰러져 태평하고 코를 골고 있는 메르헤레를 흔들어 깨웠다.

“으윽.. 여, 여긴...?”

“몰라. 눈떠보니 여기더라. 여긴가 어딘지 혹시 아냐?”

“모, 모른다. 뭐지. 이 음침하고 기분 나쁜 장소는.. 설마 우린, 죽은 건가?”

“그건 아닐걸? 아마도.”

메르헤레는 혹시나 우리가 죽어서 이런 이상한 곳에 떨어진 걸지도 모른다며 불안감에 몸을 살짝 떨었다.

“너, 뭐 아까는 죽어도 상관없다면서.”

“...”

내 말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메르헤레.

역시 진짜 죽고 싶었을 리가 없지.

난 대답 못 하는 메르헤레를 내버려 두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지상층인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와 이게 방인지 뭔지 모를 풍경의 장소였다.

나가는 길도 보이지 않고 그저 노란 벽지가 붙은 벽과 축축한 카펫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곳곳에 피어 있는 검은 곰팡이와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형광등의 소리까지. 음침하고 기분 나쁜 장소다.

뭐랄까. 마치 게임의 테스트 룸이나 개발자 전용 공간에 어쩌다 끼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만 고민하고 일어나. 나갈 방법을 찾아야지.”

“알겠다.”

“잠깐. 돌아다니기 전에 이거부터 받아.”

난 가방을 뒤져 그녀에게 계정생성카드를 건넸다.

혹시나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빨리 각성부터 시켜야겠다.

“이건...”

“너를 플레이어로 만들어 줄 거야.”

내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색 비닐을 잡아 뜯었다.

번쩍!

“뭐 나왔어?”

“어... 이런"

그녀가 뽑은 직업은 폴른 엔젤이었다.

딱 그녀의 처지에 맞는 클래스다. 타락 천사라니. 솔직히 예상하던 직업이다.

전직 천사가 날개와 헤일로를 잃었으면 이제 남은 건 타락뿐이지.

“뭐야. 잘 어울리네. 왜 그리 죽상이야?”

“대놓고... 타락 천사라고 하니.. 상당히..”

그녀는 자기 직업에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당연한결과 같은데 뭘 그리 슬퍼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 어찌 보면 당연한결과였나.. 이미 추락한 시점부터...”

중얼거리며 현실 부정중인 메르헤레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

이곳에 떨어진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모른다. 빨리 나갈 방법을 찾아야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하경비대가 이곳까지 쫓아오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오히려 경비대보다 더한 괴물이 이 안에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제발 무사히 이 요상한 곳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물론 나의 두 악신들에게.

“그런데 길은 알고 가는 건가?”

“모르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 저기. 저쪽에 뭔가 보인다.”

“어디?”

“안 보이나? 검은 형체가... 어?”

난 그녀의 손가락 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으아!!!”

그곳에는 뭔가가 얼굴을 반쯤 내밀고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저, 저 시발.. 저거 뭐야..”

“나도 저런 건 처음 보는군. 악마도 아니고.. 어쩌면 악마보다 더 불길한 생명체다..”

미동도 없이 멀찍이 떨어진 코너에 서서 가만히 우리를 쳐다보는 검은 형체.

놈은 웃고 있었다.

“이, 일단.. 눈을 떼지 말고.. 최대한 멀어지자..”

“알겠다. 저건.. 많이 불길해 보이는군.”

우린 놈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채 손을 꽉 잡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놈은 여전히 우리를 보고 웃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저거.. 위험한 놈이 아닌가? 안 쫓아 오는데?”

“아니, 생긴 꼴을 봐.”

“생긴 것만 보면.. 확실히 더럽게 위험해 보인다.”

메르헤레는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친 결과 곧 등이 벽에 닿았고 우린 천천히 몸을 틀어 놈의 시야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하아.. 하아..”

“자, 잠깐..”

너무 긴장한 탓인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니 메르헤레가 내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왜?”

“저, 저기..”

놈은 우리와 좀 더 가까워져 있었다.

“이런...!”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어쩌지? 싸울건가?”

어찌할지 고민하는 사이 우릴 보고 있던 놈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굉음을 내며.

“이런!! 르뤼에!!! 어..?”

스킬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르뤼에라 외쳐도 손에서 보라색 빛이 모여들었다가 곧 해제됐다.

"이런!! 좀 같이가!!!"

메르헤레는 이미 도망가는 중이었다. 난 그녀를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때.

[이쪽으로 도망가.]

생전 처음 들어 본 목소리.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것 같은 소녀의 목소리였다.

“야!! 메르!! 여기!! 날 따라와!!!!”

그 목소리는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감이 말하고 있다. 이 목소리를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릴 뒤쫓고 있는 저건 이길 수 없는 종류의 적이다.

더구나 스킬도 쓰지 못하는 지금은 더욱더.

곧 메르헤레가 방향을 전환해 내 뒤로 바짝 붙었다.

“키이이아!!!!”

놈은 우리가 전력으로 도망가자 비명을 내지르며 네발로 뛰어왔고 나와 메르헤레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미친 듯 달렸다.

스킬은 봉인 됐지만 스탯의 영향은 그대로 받고 있는 덕분에 쉽사리 지치지 않았다.

“제기랄!!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나?!”

“나도 잘 몰라..! 그냥..! 여기로 오래!”

“뭐가 오라고 한 거냐? 그거 따라가도 되는 거 맞나?”

“아씨!! 모른다고!!”

“어! 저기!! 저기 문이다!!!!”

“키아아아아!!!!!”

놈을 피해 몇 번이나 코너를 돌고 도주하고 있으니 메르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거기엔 비상탈출구 모양이 달린 문이 있었다.

"저기로!! 저기다!!"

나보다 앞서나간 메르헤레가 문을 열었고 내가 튀어나오는 순간 문을 닫았다.

쾅!! 쾅!!!

튀어나옴과 동시에 문들 닫자 우리를 쫓던 정체불명의 괴물은 문을 부서져라 치며 비명을 토해냈다. 잠시 후 곧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나서야 나와 메르헤레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나, 나왔다!!”

우리가 빠져나온 문 밖은 어딘지 모를 건물의 옥상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마트 옥상은 아닌데..”

“여긴 인간의 도시 같긴 한데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조용하군.”

가로등하나 켜지지 않은 도시. 어둠에 휩싸인 이 유령도시엔 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았다. 좀비도 뭣도 없었다. 적막만이 감돈다.

우린 지금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이상한 공간으로 나온 거다.

“빌어먹을...”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군.. 이게 무슨 일인지..”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순간 도시의 풍경을 보고 빠져나온 줄 알았지만.

우린 여전히 ‘지상층’에 갇혀 있었다.

“이봐..!”

그때 뒤편에서 누간가 우릴 향해 다가왔다.

메르헤레는 자연스럽게 양손을 들어 올리고 전투자세를 잡았고.

나는 곧장 가지고 있던 의식용 단검을 뽑아 겨눴다.

여기서도 스킬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다.

“너희도 여기에 갇힌 거냐? 이봐! 긴장하지마! 나도 표류자다! 협력하고 싶다!”

우리를 향해 웃는 얼굴로 다가온 건 붉은 머리의 외국인이었다.

분명 외국어로 말하고 있을 텐데. 뇌 내에서 자동 해석됐다.

상대가 게임에 속한 NPC도 아닌 외국인인데 나와 대화가 통한다는 게 조금 의아하다.

‘어째서 저 새끼 말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설마 만마와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효과가 지금 발동 중인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이 장소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뭐든 상관없다. 저 새끼가 의심스럽단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까.

“이봐.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노예낙인 스킬이 봉인된 이상 결코 안심할 수 없다.

특히나 이런 이상한 장소에서 만난 타인을 절대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자, 잠깐..! 너희와 협력하고 싶다니까!!”

“협력은 무슨. 너를 어찌 믿으란 거야? 못 믿어. 절대.”

“자, 잠깐. 내 이야기를 좀..!”

그리 말하며 놈은 허리춤에 매여져 있던 도끼를 슬쩍 붙잡았다.

도끼에 손을 가져다 댄 시점에서 아웃이다.

난 곧장 놈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고 놈은 내 단검을 가까스로 피하더니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젠장! 이래서 동양인이란!!! 눈치가 더럽게 빠르잖아!!”

역시 악의적인 목적으로 다가온 놈이었군.

그렇다면 더욱더 여기서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혹여 동료를 불러오거나 더 큰 집단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릴 지도 모르니까.

아예 마주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마주쳐 버린 이상 이제 죽이는 수밖에 없다.

“잡아!!”

“알겠다!!”

노예답게 내 명령에 곧장 달려 나간 메르헤레. 그녀는 얼른 그의 뒤를 따라잡아 드롭킥을 날렸다.

“끄아아!!”

신장 190의 풍만한 육체를 가진 메르헤레의 드롭킥이 놈의 허리에 직격했다.

놈은 마치 폴더 폰을 반대로 꺾은 것처럼 허리가 활처럼 휘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 크아아!!! 시이발!!! 년이!!!!”

난 쓰러진 놈을 꽉 붙잡고 있던 메르헤레에게 다가 갔다.

“야. 메르. 네가 이놈을 죽여라.”

“뭐라?”

“빨리 죽여. 너 레벨 올려야지. 아무리 스킬을 못써도 스탯은 올려야 안되겠어?”

“확실히 맞는 말이군. 알겠다.”

메르헤레는 나에게 단검을 받아 바닥에 쓰러진 놈의 몸에 가져다 댔다.

“자, 잠깐!! 제발..! 한 번만 봐..”

푹찍..!

“미안하군. 부디 천국으로 가길 바라마.”

메르헤레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목을 찔러 단검을 한 바퀴나 돌렸다.

자상이 아니라 아예 목에 구멍이 꿇려 버린 놈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펄떡이다가 곧 추욱 늘어지며 절명했다.

“레벨이 올랐군. 스탯도 높아졌다.”

“그러네. 휴우. 어디 보자...”

메르헤레의 스킬은 카니지 뱀프인 강화영처럼 선택지가 1개뿐이었다.

그리고 레벨이 1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스탯이 레벨 15짜리 플레이어 급이었다.

종족 값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물론 마력 증가의 효과로 보정을 받는 내가 더 높지만.

스탯이 없었을 때도 그녀는 나보다 빨리 달렸으니까 그런 것까지 다 따지자면 실제 스탯보다 높은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정한 축복... 신체 강화계열이네.”

“어차피 스킬은 못쓴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 일단 확인만 해본 거야.”

우린 죽은 남자의 가방을 뒤졌다.

놈의 가방엔 다양한 도구가 들어 있었다.

가령 밧줄이라거나 불을 피우기 위한 도구들부터 생존을 위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내가 유용하게 써 주마.”

난 놈의 품도 뒤졌다. 그러자 낡은 사진 한 장과 수첩이 나왔다.

사진엔 방금 죽은 남자와 누군지 모를 여자가 찍혀 있었다. 사진은 대충 버렸다.

“어디 보자..”

수첩의 글자는 한국어가 아니었다.

영어로 쓰여 있었다. 당연하게도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그래도 살아온 짬밥이 있어 단어 몇 개가 해석이 되긴 하지만 필기체로 적힌 글씨라 안 그래도 영어실력이 좋지 않은 난 도저히 수첩의 내용을 전부 알아볼 수 없었다.

“못 알아 보겠네.”

“줘 봐라.”

“읽을 수 있어?”

“이래 봬도 천사였다. 인간의 언어쯤이야.”

“과연, 여기서 쓸모가 나오네. 유용하잖아, 메르.”

“크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곧 메르가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건 그의 일기였으며 이곳에 떨어진 이후의 생존 기록이었다.

“빌어먹을.. 그럼 여기가..”

“그렇군. 오류들의 집합소. 여긴 세계선이라는 걸 망치는 오류를 가둬두는 장소 같다.”

놀랍게도 이 비정상적인 모습의 도시는 ‘오류자’라고 명명된 존재들.

그러니까 빙의자, 환생자, 전생자, 귀환자, 회귀자들이 갇히는 장소였다.

“허... 시벌.. 계속 읽어봐.”

“알겠다. 크흠. 이 도시에선 스킬 사용이 제한되며. 최대 레벨은 아마도 20렙으로 제한된다. 그리고 여기에 떨어진 오류자들은 전원 레벨이 리셋 된다.”

“잠깐. 나는 들어왔을 때 레벨 그대로니까 오류자가 아니란 소리네?”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들어온 방법이 이들과는 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

이놈들은 문득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는데 우린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다른 법칙이 적용하는 것 같다. 정당하게 문들 열고 들어왔으니 방문객 취급 해주는 걸지도 모른다.

“계속 읽어봐.”

“알겠다. 이 안에서 발견되는 음식은 죄다 썩거나 맛이 가 있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간혹 발견되는 레몬 향의 물과 이곳에 갇힌 다른 오류자들 뿐이다. 식인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군.. 욱..”

정 먹을게 없다면 식인이라도 해야겠지만 역시 좀 떨떠름하다.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계속해서 수첩에 적힌 내용들을 읽어나갔다.

“또한 이곳에 자리 잡은 전생자 중 중국인인 장 취엔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특히나 오류가 심해 하루를 기점으로 자신이 복사되며 그는 자신을 잡아먹어 레벨을 올렸다. 여기서 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한계 레벨이라 여겨지던 15레벨을 돌파했다는군.”

“하아.. 산 넘어 산이네.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없고?”

“잠깐. 읽고 있는 중이다. 흐음.. 이 자도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 전부 실패했지만 의심되는 장소를 찾았던 모양이다.”

“그게 어딘데.”

“도시의 중심부. 거기에 싱크홀이 있다고 적혀 있군. 그런데 거기엔.. 뱀이 있다는데... 뱀이라.”

“뱀?”

“뱀이다. 주기적으로 뱀이 기어 나와 오류덩어리들을 집어삼키고는 다시 사라진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싱크홀 주변은.. 장 취엔이 자리 잡은 곳이란다. 여기 이 녀석이 그려 둔 지도가 있군.”

“결국 그 중국인 새끼를 잡던지 눈을 피해야겠네.”

“수첩에 내용에 따르면 장 취엔은 여기서 자신들로 구성된 군단을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그걸 우리 둘이서 뚫고 갈 수 있을까?”

“해 봐야 알겠지만.. 여기 오래 있어 봐야.. 식인밖에 더할까 싶으니 가보는 수밖에.”

난 가방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확인했다.

“하아..”

아까 구입했던 약들과 혹시나 해서 가져온 폭죽밖에 없었다.

내 행운이라면.. 분명 한 방에 이 다섯개의 복불복 폭죽 중에서 용의 숨결을 뽑을 수 있을 거다.

제발 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해 보는데 까진 해 봐야지.”

다섯 묶음의 폭죽중 하나를 골라잡자 아까 도망치던 중 들었던 목소리가 또 들렸다.

[그거 아냐. 오른쪽 거...]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분명히 환청은 아닌데.. 아니다.”

이번에도 메르헤레는 못 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나만 들리는 목소리다.

뭔가가 나를 돕고 있다. 난 얼른 방금 뽑은 폭죽을 가방에 집어놓고 오른쪽 폭죽을 잡아들었다.

‘느낌이 마치 카쉬낙스나 인디크론과 처음 조우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어.’

설마 여기서 새로운 악신의 등장인가.

“이제 내려가보자.”

“그러지.”

우린 옥상에서 주변을 살펴 지금 여기가 어딘지 대략 파악했다.

그다음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옥상 출입구를 열자 아까와 같은 이상한 장소로 이어지지 않고 확실히 건물 배부로 이어졌다.

우린 1층에 도착해 수첩에 적힌 대로 도시의 중앙을 찾아 걸었다.

가는 길에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 싱크홀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딸칵..!

사방에서 조명이 켜지며 우리를 조준했다.

“하하하!!! 이거 새로운 오류자들이로군!!! 환영한다!!! 나의 왕국에 온걸!!!”

수백 명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전부 똑같은 생김새. 그중에서도 인골로 만들어진 지팡이와 장신구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저놈이 장 취엔들의 우두머리겠지.

“저놈이 대장 장 취엔이구나..”

빌어먹을 중국인 전생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여자는 살리고! 남자는 죽여라!!! 오늘은 고기 파티다!!”

놈은 자기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똑같이 생긴 놈들이 일제히 기합을 내지르며 저마다의 무기를 쥐고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여기서 끝인가 보군. 단검 좀 빌려주겠나? 저런 놈에게 윤간당할 바에는 죽고 싶다.”

“기다려 봐!”

급히 라이터로 폭죽에 불을 붙였다.

그사이 이미 우리 앞까지 바짝 다가온 장 취엔 무리들.

곧 폭죽에 달린 점화선이 전부 타들어 가고.

나는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폭죽을 내밀었다.

그러자 기다란 폭죽 끝에서 뭔가 터져 나오더니...

쿠과과광!!!!!

고막을 마비시킬 정도의 폭발음을 내며 겁화가 쏘아졌다.

순간 너무나 강렬한 빛 때문에 시야가 잠시 멀어졌고 충격파에 몸이 뒤로 밀려났다. 살아남은 장 취엔들도 마찬가지였다.

“뛰어!!”

메르헤레와 함께 싱크홀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잡아!!!!”

어찌 살아남은 건지 대장 장 취엔과 나머지 졸병들이 우리의 뒤를 쫓아온다.

“젠장!! 방금 그건 뭔가!?”

“용의 숨결!!”

“그, 그런 물건이..!”

곧 우린 싱크홀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어서 와줘...]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등 뒤엔 장취엔 무리로 가득하다. 도망칠 곳은 없다. 이제 와서 뛰어내리길 겁먹을 이유도 없고.

“손잡아. 하나! 둘! 셋!!”

난 메르헤레의 손을 붙잡았다.

“빌어먹을. 나는 또다시 추락하는군.”

그녀의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들으며 우린 끝을 알 수 없는 싱크홀로 뛰어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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