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59. 끊이지 않는 위험 (수정)
* * *
양복쟁이의 몸이 급격히 커지고 옷이 터져 나갔다.
“우욱..”
희선 누나의 헛구역질... 그녀뿐만 아니라 나도 토할 것 같다.
왜냐하면 터져 나간 건 단지 옷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살가죽이 찢겨져 나가며 놈은 비인간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인간의 피부를 뜯어내며 드러난 놈의 새로운 피부색은 징그러운 적갈색이었다.
또한 눈동자의 수정체가 반전되어 마족의 역안같이 변했고 검은색 손톱이 자라났으며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
거기다 메르의 낫질에 잘려 나갔던 팔까지 재생되며 놈은 기쁨의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자간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악마의 형상이었다. 놈은 자간이라는 악마에게 힘을 부여받은 듯 했다.
‘저새끼는 악마의 하수인.. 그런데 악마와 악신은 무슨 관계지? 악마는 악신의 부하 아닌가?’
천사들은 선신의 하수인이나 대리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악마는 악신의 하수인 아닌가.
어쩌면 안싸우고 굴복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봐!! 너! 악신들에 대해 알고 있냐?”
“크하하하!!! 몰라!!”
악마로 변한 시점부터 일반적인 대화가 안 통하게 되어 버린 모양이다.
악마에 대해 아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째선지 인디크론과 카쉬낙스는 아직도 나와 연결되지 않았다. 기척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보타밀리의 기운은 어렴풋이 느껴지긴 하지만 굉장히 미약해서 감지하기가 어렵고.
설마 이대로 연결이 끊겨 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던 찰나.
[드.. 드.. 들.. 들리나?]
인디크론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예. 들립니다!”
[이런.. 대체 어디로 기어들어갔던 거지? 이토록 오랫동안 연결이 끊기다니... 실종된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아나? 아니, 그보다.. 이 기운은.. 흐음.. 잊혀진.. 아아.. 그런가.]
인디크론은 무언가를 감지하듯 입을 다물었다. 다시 말을 걸어 봤지만 집중해야 하니 말을 걸지 말라고 했다.
[하아.. 배고프다..]
그때 인디크론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느껴지지 않았던 카쉬낙스의 시선이 다시 느껴졌다.
[응? 킁. 킁.. 익숙한 냄새. 낯익은 향기. 그리운 비린내.. 으음.. 누구였지? 너. 누구와 만난 거냐..]
“어.. 저 그, 공허에서..”
[으음.. 알겠다. 그만. 더 이상의 발설은 위험해.]
그녀 역시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저 악마 새끼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두 악신들은 저놈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사이 놈은 완전히 악마로 변했다. 하렘 멤버들이 몇 차례 원거리 공격을 시도했지만 변신 중엔 무적이라는 듯 붉은 장막이 쳐져 다른 이들의 공격을 모두 튕겨 내버렸다.
심연아귀나 나의 촉수까지는 막지 못 하는 건지 놈은 변신하면서도 빠르게 피해냈다. 놈을 살려서 붙잡을지 죽여야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놈의 변신이 끝났다.
“크하하하!!! 이 힘!! 이 파워!!! 최고다..!”
변신을 마친 놈은 좀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포효를 내질렀다.
순식간에 마트 주변에 있던 좀비들의 어그로가 우리에게 집중됐고 여기저기서 키시리아를 피해 어젯밤을 넘긴 좀비들이 기어 나왔다.
“거기 이은지양! 놈의 근처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저놈이 내뿜는 붉은 기운은 위험하다!”
메르의 날 선 외침에 놈의 목을 따기 위해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갔던 은지가 얼른 뒤로 물러섰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건지.
기척도 못 느꼈다. 나날이 암살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은지다.
“원거리 공격을 감행하든, 신성축도를 사용하든 다른 수를 써야 해. 일반적인 인간이 저 검붉은 기운에 접촉하면 그 부위가 불타 녹아버린다.”
부정한 손길도 손바닥에 맞닿은 부위만 썩게 만들 수 있는데 저놈은 그런 기운을 아예 주변으로 흩뿌렸다.
“젠장. 저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그래도 나에겐 별로 통하지 않는다. 내가 놈의 힘을 뺄 테니. 주인이 원거리 공격으로 마무리를 지어라.”
“내가 그냥 잡아 죽여도 되는데?"
"간만에 악마를 보니 피가 들끓는다. 제대로 몸 좀 풀어보고 싶은데..."
난 은근한 메르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아귀나 촉수발출로 작정하고 몰아 붙이면 결국엔 마력량이 넘사벽인 내가 무조건 이기겠지만.
천사와 악마의 묘한 신경전이라도 있는 듯 메르는 놈과 맞붙어 보고 싶어했다.
"알겠어. 그래도 위험하면 바로 개입할거야.”
"고맙다, 주인."
메르는 낫을 크게 휘두르며 놈에게 다가갔다. 그때 양복 악마는 우리를 모욕하며 비웃었다.
“크하하하!! 언제까지 떠들고만 있을 거냐! 어서 덤벼라! 쓰레기들!!”
“저런.. 되먹지 못한 개잡종이..”
순간 메르의 이마에 핏줄이 돋더니 순식간에 앞으로 박차고 달려 나갔다.
“시끄럽게.. 짖지 마라! 되먹지 못한 찌꺼기가!!”
그대로 메르와 양복악마는 다른 이들이 들어올 틈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격돌했다. 메르는 마치 물만난 물고기 마냥 낫을 휘둘렀다.
그녀는 붉은 기운을 최대한 피했고 설령 기운에 닿더라고 불타거나 녹아내리지 않았다. 다만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아하니 상당히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히아!!”
순간순간 놈의 빈틈을 노린 메르가 목을 낫으로 잘라 내려 했으나 그때마다 양복악마는 특이한 기운을 방출하며 공격을 막아 내며 피했다.
무엇보다 둘의 레벨 차이가 컸다. 메르는 아직 레벨 10도 되지 못했으니까.
만약 메르가 지금 레벨 12쯤 되었다면 저놈을 곧장 썰어 버렸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지금 그녀는 천사도 뭣도 아닌 상태니까. 아마 감당하기 버겁겠지. 저러다 다칠 수도 있으니 슬슬 마력을 끓어올렸다.
“오빠! 좀비는 우리가 담당할게요! 신경 안써도 돼요!”
"어, 그래!"
악마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다 실패한 은지와 나머지 하렘 멤버들은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좀비들을 밀어내며 놈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 나갔다.
우리와 같이 내려와 있던 하씨 형제와 나머지 노예들도 그녀들을 보조해 다가오려는 좀비들을 잡아 죽이러 갔고.
나는 적당히 빈틈을 노려 심연아귀로 놈의 사지 중 하나를 날려 버리기 위해 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아람.. 저 녀석 아까부터 왜 가만히 서 있지?’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한아람만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아람은 악마와 메르의 전투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야! 아람아! 너는 거기서 가만히 뭐 해.”
뭔가 위화감이 느껴져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 순간 아람이가 허물어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크으윽...!”
들고 있던 망치까지 떨어뜨리며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야! 정신 차려!”
“가, 가슴이.. 자꾸 요동처서.. 더는 못 참겠어..”
“뭐? 아, 너 데몬 슬레이어였지.”
실재 악마와 조우한순간 뭔가 클래스 특성이 발동된 모양이다. 뭔가 특이한 상황이다. 클래스 특성으로 멍청해졌던 강화영 처럼 아람이도 뭔가를 보여줄 것 같다.
“야, 너 괜찮냐?”
“커흑...”
아람이는 피를 조금 뱉어내더니 곧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죽인다..”
곧 다시 망치를 집어 든 그녀는 내가 미처 말릴새도 없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한참 전투 중인 메르와 양복악마 사이로 끼어들었다.
쾅!!!
망치가 아슬아슬하게 악마를 빗겨나 아스팔트를 박살 내며 틀어박혔다.
아람이는 곧장 귀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미친개 마냥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그러곤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악마를 향해 덤벼들었다.
살을 불태우고 녹여 버리는 악마의 검붉은 기운을 뚫고서.
“이, 이 미친년은 또 뭐야!!!”
붉은 기운에 닿고도 아무렇지 않은 아람이를 보며 기겁하는 양복악마.
메르에 이어 아람이까지 자기 필살기 같은 기술을 파훼하자 놈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건 옆에 있던 메르도 마찬가지였다. 아람이가 미쳐 날뛰는 통에 낫을 휘두르기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이봐! 주인!! 이 여자. 아니, 한아람은 또 왜 이러나!!”
“악마 사냥꾼이라서 그런가봐!!”
“뭐? 그게 무슨...?”
“악마만 보면 미치나 봐! 한번 싸우게 내버려 둬 보자! 위험하면 개입하고!”
살짝 궁금해졌다. 과연 어떤 전투를 보여줄지. 그래도 죽거나 다치면 안되니까 나와 메르가 둘의 격투를 지켜보기로 했다.
“일단 알겠다!”
메르는 내 말에 당황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군말없이 뒤로 물러서 자리를 비켜줬다. 자기도 싸우고 싶었을 텐데 그녀는 아람이에게 사냥감을 양보했다.
“죽어.. 죽어!!! 죽으라고!!!”
광증에 빠진 아람이는 주변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놈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나와 몸을 섞을 때를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어딘가 나른하고 의욕 없던 그녀였지만, 악마를 마주한순간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여 준 적 없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한아람은 굉장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광전사 마냥 오직 적을 죽인다는 생각으로만 움직였으니.
심지어 정확한 타이밍에 발동되는 부분적인 흑갑 방호와 적절한 패링이 일품이었다.
이성을 버린 대신 극단적인 전투 센스를 손에 넣은 거다.
‘더구나 악마가 뿜어내는 검붉은 기운이 몸에 닿는데도..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아. 대단한데..’
오히려 그 기운을 흡수해 더욱더 강해지기만할 뿐.
‘저 검붉은 기운이 바로 정제되지 않은 마기로군... 아람이는 그걸 흡수해서 더 강해지는 거고.. 그야말로 악마 계열 클래스의 천적.’
악마한정 하드 카운터였다.
저대로 두면 양복악마는 오늘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아람이의 손에 무참히 죽을 것이다.
“크아악!!! 뒤져!!!! 죽어!!”
“이런 미친년이!!!”
콰작!!!
양복악마의 공격을 흑갑으로 대충 맞아주며 더욱 파고들어 망치로 놈의 머리를 후려진 아람이.
이제는 아예 악마가 내뿜는 검붉은 기운을 역으로 잡아 뽑아서는 집어삼키듯 흡수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그런데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걸까.
무지성으로 마기를 집어삼키던 아람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야!!! 이런! 메르!! 개입해!!”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메르는 이미 낫을 크게 휘두르며 양복악마를 아람이에게서 밀어낸 상태였다. 나도 놈에게 심연아귀를 사용하며 견제했다. 물론 그보다 아람이의 상태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얼른 그녀에게 달려갔다.
“크으으으...”
"야! 왜그래! 어..?!"
뿌드득...!
곧 침을 질질 흘리던 아람이의 한쪽 이마에서 뿔이 튀어나왔다.
마치 산양의 뿔처럼 둥글게 말려들어간 뿔이었다.
과하게 마기를 흡수한 끝에 그녀는 반인반마가 되었다.
“카아... 카아아아..!!!!!”
“야!! 한아람!! 이런 미친! 진정해라!!”
뿔이 자라난 순간 그녀는 완전히 맛이 가 버렸다.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날아가 버렸다.
진정하고 멈추라는 내 명령을 대놓고 캔슬하더니 더욱 거칠게, 마치 야생의 맹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본인 자신도 방대한 마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컨트롤이 안 되는 거다.
“야!!! 그만!!”
두 번째 명령마저 무시당했다.
허나 그 반동 때문인지 아람이의 몸이 덜덜 떨리며 악마에게 빈틈을 내주고 말았다.
순식간에 메르를 밀쳐 낸 악마가 아람이를 최대의 위협이라 느꼈는지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일그러진 비늘로 막아내기 직전 악마의 주먹이 먼저 아람이에게 닿았다.
쾅!!!
“카학..!”
양복악마의 공격에 뒤로 날려진 그녀.
얼른 메르가 끼어들어 악마의 추가타를 끊어냈고.
난 촉수로 날려지는 그녀를 받아냈다.
‘젠장.. 내 명령실수다.. 그냥 싸우게 뒀어야 했는데..’
만약 여기서 더 그녀를 억제하려 했다간 오히려 아람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이상 차라리 저놈을 죽이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낫겠다. 멈추라는 내 명령을 무시하고 자꾸 싸우려다가 아람이가 죽을 판이다.
“앞선 명령은 취소한다. 마음대로 날뛰어!”
명령과 동시에 내 품에 안겨 고통을 호소하던 아람이가 벌떡 일어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에게 감사인사라도 하듯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쿠궁..!
순식간에 아람이가 들고 있던 망치가 마기로 검게 물들었고 그녀 주변만 중력이 높아지기라도 하듯 공기가 무거워진다.
아람이가 달려드는 동시에 메르는 곧장 다시 악마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낫을 프로펠러처럼 회전시켜 둘의 싸움에 끼어들려는 좀비들을 육편으로 만들었다. 아람이가 좀 더 날뛰기 쉽게.
“너, 넌... 대체.. 이건. 이런 존재가 있다곤 듣지 못했어.. 자간님!!! 이게 대체 뭡니까!!! 자간님!!!! 어디 가신 겁니까!!!! 으아!!!”
아람이에게 속수무책으로 얻어터지던 양복남자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곧 놈은 입을 다물었고 멍청하게 서 있던 양복남자의 머리로 검게 물든 망치가 날아들었다.
쾅!!!
“크하아아!!! 젠장!!”
둔중한 충격에 양복악마는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난 빈틈이 생기는 순간 놈의 다리를 심연아귀로 뜯어냈고그 순간 아람이는 놈의 뿔을 붙잡아 미친 듯이 망치로 얼굴을 후려져 놈의 턱을 박살 냈다.
망치질에 순식간에 뜯겨 나간 턱.
턱이 뜯겨나가자 혓바닥이 가슴께까지 길게 흘러내렸다.
저놈 노예로 삼기는 글렀다.
“키아아아!!! 으아!!!”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아람이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악마의 발버둥은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기운을 폭사시켜도 아람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서 놈을 때려 부셨다.
마치 그것만이 자기 행복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난 더 이상 둘의 사투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미 아람이의 승리가 확실했기 때문에.
“쿠하하학...!!!!”
양복악마를 원 없이 후려 팬 아람이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던지고 놈의 양쪽 뿔을 붙잡았다. 그대로 천천히 힘을 주더니 놈의 뿔을 잡아 뽑아버렸다.
푸확!!!
양복악마가 뚫린 입으로 보랏빛 점액질을 토해 내며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꺼억... 커어억...”
처음엔 노예로 붙잡을 생각이었는데... 저거 곧 죽겠다.
어차피 죽을 놈이라면 내가 빠르게 공양하는 편이 낫지.
광증에서 풀려나 숨을 헐떡이며 무릎 꿇은 아람이를 지나쳐 죽어 가는 양복악마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급히 놈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숨이 끊어지자 양복쟁이의 악마화가 풀리고 곧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바칩니다!!”
서둘러 카쉬낙스에게 준다는 생각으로 외쳤다.
그러자.
[아.. 이런 썩은 거.. 안 먹는다.]
거부당했다.
“아니, 뭐라고요?”
[저리 치워라. 그거 상했어.]
대놓고 불쾌해 한다.
카쉬낙스는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단박에 거절하다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썩은 거라뇨?”
[이미 오염된 영혼이야. 으으.. 그거.. 지지야. 지지.. 얼른 버려라.]
그녀는 진절머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바삐 물러나듯 기운이 옅어졌다.
여기서 더 권유했다간 호감도가 떨어질 판이다.
“저, 그럼 인디크론님은..?”
[하아.. 나의 아이야. 잘 듣거라. 그 영혼은 우리 처지에선.. 굳이 비유하자면 기생충이 낳은 알과 같은 거다. 심히 껄끄럽고. 역겹지. 지금 상황은... 그래, 너희 인간의 관점으로 표현하자면 귀여운 고양이가 밖에서 시궁쥐를 잡아 온 느낌이군. 그걸 주인에게 주는 거다. 어떤가. 받고 싶나?]
“아, 아뇨. 아..”
아.. 고양이가 쥐나 새를 잡아다 집사에게 선물로 주는.. 그 뭐랄까 대견하긴 한데 진심으로 받기 싫은 그런 상황...
더구나 기생충이 낳은 알이라니. 나 같아도 그런 건 진짜 싫겠다.
이거 어쩌다 보니 신님들에게 몹쓸 짓을 해 버렸구만..
‘그런데 기생충과 알이라니. 기생충이 악마고, 알이 저 양복쟁이면... 저 양복쟁이는 악마와 계약한 하수인 같은 놈이란 소리로구나.’
인디크론의 설명을 곱씹으며 궁금했던 걸 물었다.
“저기.. 악마는 악신의 부하 같은 놈들 아닙니까?”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혀. 우린 우리 나름의 노예종족을 따로 만든다. 나에겐 딸과 같은 키시리아가 그렇지. 악마는 운명의 뒤틀림이 낳은 사생아일뿐. 우리의 권속이나 하수인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권역에 빌붙어 살아가는 놈들이지.]
“아하..”
[아 참, 그리고 이런 악마의 수하는 노예로도 만들 수 없다. 대충 보이면 그냥 거리낌 없이 죽이도록.]
뭔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관계였나보다. 어쩐지 별로 관심이 없더라니. 죽이든 말든 어쩌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족속들이었다.
“보, 보타밀..”
[나의 이름을. 언급하지 마. 다쳐.]
“아, 예.”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못 먹어. 미안.]
혹시나 해서 물어보려 했는데 역시나 거절당했다.
“아람아. 괜찮아?”
“으응.. 미안.. 나도. 내가 조절이 안 돼서..”
난 주저앉아 숨을 고르던 아람이를 안아 들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흐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네!”
거리의 좀비들을 대강 해치우며 서둘러 마트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입구를 봉쇄했다.
“노예 사냥갈 생각이었는데. 이대로 무방비하게 나갔다간 큰일 나겠어.”
“분명 중앙회가 어쩌고 거렸죠?”
은지는 내 말에 동의하며 아까 그 양복쟁이가 소리치던 걸 읊었다.
향우회와 전우회, 교우회가 뭉친 전천후 최대 규모의 생존자 집단. 그게 바로 중앙회라며 놈은 가입을 권유했었다.
“그리고 가입을 권유하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저 정도 수준이라면.. 어쩌면 본진은 상당히 규모가 있고 강한 집단이라고 봐도 되겠지?”
희선 누나의 의견에 다들 동의했다. 누나는 아까 그 악마의 모습이 아직도 좀 소름 끼친다는 듯 팔을 문질렀다.
확질히 인간의 탈을 찢어발기며 악마로 변하는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고 끔찍했지.
“그럼 어쩌지? 이대로 여기 틀어박혀 있나? 저놈이 돌아오지 않으면 분명 찾으러 나오는 놈들도 있을 거다.”
메르의 말도 맞는 말이다. 놈들이 정신 똑바로 박힌 놈들이라면 미리 돌아다닐 경로를 짜두었을 거고 만약 동료가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경로를 따라 찾으로 다니겠지.
“주인님 아까 그 사람 말 듣던 특수 좀비있잖아.”
“어. 그거 워 보이.”
“나 그거 좀 꺼림칙한데. 분명히 그 좀비를 다루던 녀석이 죽은 걸 바로 눈치챘을 거야.”
“하아. 그렇겠지.. 젠장. 곧 개 때처럼 몰려올지도 모르겠네.”
나도 칠흑바퀴가 죽으며 소환해제 될 때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어째 평화로울 날이 없구나..”
아포칼립스니까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단 노예 사냥을 위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대신 마트 내부를 치우고 나는 칠흑바퀴를 불러내 인근을 정찰시켰다. 뭐라도 찾아내면 바로 나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게끔.
그리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됐다. 아직 뭔가 이변은 없다.
“그런데. 이건 어쩌죠?”
저녁 밥을 먹기전 잠시 짬이 생겨 가방에 들어 있던 붉은 구슬을 꺼내 신들에게 물었다.
보타밀리에게 받은.. 운명을 뒤틀게 해준다는 구슬이다.
혹시나 해 먹지 않고 악신들에게 물어보려고 가지고 있었다.
[흐음... 나는 먹어도 된다고 본다. 상당한 인과율이 느껴지는군.. 그 녀석이 존재말소까지 되면서 얻어낸 것이니..]
인디크론은 한 번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꿀꺽... 맛있겠네.. 그렇지만.. 나는 못 먹어..]
카쉬낙스는 자기가 더 먹고 싶은 것 같고.
“일단 그럼...”
난 구슬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