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0. 불행이 오고 있다
* * *
몽환의 영감이 내게 내민 두 개의 수정구.
붉은색은 바꿀 수 있는 단기적인 불행을 보여 준다.
파란색은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끝을 보여주고.
“둘 다 고르지 않는 선택지도 있네. 자네 선택이야.”
이걸 눈 앞에 두고 고르지 않는 다고?
그럴 순 없지.
“저는 빨간색으로 하겠습니다.”
빨간색 수정구를 고른 이유는 별거 없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선택지지.
누구라도 결말을 스포일러 당하는 건 싫을 테니까.
내 인생의 끝을 알고 산다는 건.. 더구나 바꿀 수도 없는데 결말이 이상하기라도 하면 앞으로 살아갈 나날이 고통스러울 거다.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고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물론 좋은 장면을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자면 새드엔딩이거나 베드 엔딩일 확률도 높다...
'뭐하나 쉽게 가는 법이 없었으니까...'
안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괜히 안 좋은 장면 봤다가 그대로 고정되어 버리면... 상상도 하기 싫다.
“다들 붉은색을 선택하더군."
노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푸른 수정구를 치웠다. 수정구는 마치 연기가 되듯 사라졌고 붉은 수정구만이 남아 은은하게 빛난다.
"좋아. 그럼 보도록 하게.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난 자네의 불행을.”
노인의 말과 함께 붉은 수정구가 섬광탄이라도 터진 것 마냥 반짝이며 나에게 다가올 미래의 일부분을 보여줬다.
*****
뼈다귀들.
거대한 해골.
마트 붕괴.
목 없는 기사
죽음.
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
*****
“이, 이런 미친!!!”
그 짧은 순간 수십개의 장면들이 눈 앞에서 지나갔다.
내가 본 것들을... 대체. 끔찍하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하하하하!!! 도대체 뭘 봤기에 그리 놀래나?”
난, 죽음을 봤다.
무수한 죽음.
잘려 나간 시신들.
그들은 전부... 내 여자들이었어... 시발..
“방금 제가 본 거.. 진짜 일어나는 일입니까? 정말이냐고요...”
“그렇겠지? 그래도 바꿀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게. 자네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미래였으니까. 그리고 이미 자네가 관측한 시점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네.”
“허...”
내가 보았던 것.
그건 아주 잔혹한 몇 가지 장면들이었다.
우선 거처로 삼고 있는 마트가 박살 나며 무너진다. 건물이 폭삭 내려앉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또한 곳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이때 몇 명이나 죽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셀 수 없었다. 그저 마트 내부에 있던 인물들은 각성자 몇명을 제외하곤 거의 다 죽은 것 같다.
그리고 마트를 무너뜨린 건 무수히 많은 스켈레톤들과 커다란 해골이었다. 수를 셀 수 없는 양의 해골들, 어째서 좀비가 아닌 해골들이 몰려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엔 스켈레톤이 기어나오나 보다.
이것도 업데이트를 하다 보면 생겨나는 놈들이겠지. 도대체 이 업데이트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 좀비를 넘어선 해골이라니... 이쯤 되면 나중에 용이나 뭐 그런 것도 나올 것 같아서 두렵다.
‘그리고 커다란 해골..’
도대체 그 괴물은 뭐였을까. 짐작도 안 간다.
3미터쯤 되는 워 보이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에 거의 4층 건물에 필적할 만큼 커다란 해골이었다. 썩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의 건물만 한 크기의 괴물..
‘놈은 눈구멍이 하나였어.’
눈이 하나인 거인 해골.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
어린 시절 그리스 신화를 좀 본 녀석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내가 아는 외눈박이 거인은 퀴클롭스뿐이다.
‘시발...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신화 속 괴물들도 언데드로 내보내나?’
진짜 나중엔 용이라도 기어나오는게 아닐까. 제발.. 그런 엿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가만 보면... 심층지주 키시리아도 주박궁전인지 뭔지의 보스였지... 이거 진짜 용도 기어나올 삘인데..'
그리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나중에는 키시리아 급의 괴물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니까.
'그래도 해골 거인은 어찌 처리가 가능한 수준의 괴물이었다.'
그냥 더럽게 커서 질량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 어찌 쓰러뜨릴 수는 있는 존재 같았다.
내가 본 몇몇 장면 중엔 아람이가 망자분쇄로 놈의 머리를 깨부수는 장면도 있었으니까. 그런 놈이 수십 마리나 몰려 땅을 고르며 달려 오지만 않는 다면 처리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해골거인 다음에 나온 놈이지.’
그건 검은 갑옷을 입은 기골이 장대한... 목 없는 기사였다.
부서진 해골들 틈에서 걸어 나온 놈은 순식간에 검게 물든더니 갑옷과 검 그리고 해골마를 소환했다.
놈이 나타난 이유가 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굳이 짐작해 보자면 무수히 많은 스켈레톤들의 시체 더미에서 기어 나온 걸 볼 때 일정량 이상의 해골이 파괴됐을 때 나타나는 놈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전부 추측이지만.. 어쨌든..’
해골마를 타고 내달리는 놈은 사람만 한 특대 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놈의 커다란 검에 의해 무너진 건물에서 겨우 빠져나온 이들이 전부 죽었다.
하진성과 하진우는 겨뤄보지도 못하고 반 토막이 나버렸고 황수민이나 기타 등등 다른 각성자들마저 속수무책으로 찢겨나갔다.
‘그들 사이에서 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내가 본 장면들은 마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라고 할까.
그래서 마트 주변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나는 모든 일이 끝나고 일행들이 전멸하고 나서야 등장했다.
내가 무릎꿇고 울부짖는 장면으로 끝났으니.. 나는 일행들이 전부 죽어나갈 때 그곳에 없었다.
‘내가 없을 때 일어나는 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모두가 죽는다.’
나의 노예들.. 그리고 내 여자들까지 전부..
이거 골치 아파졌다.
나는 뭐 때문에 자리를 비우게 되는 걸까. 짐작 가는 바가 없다. 설마 암시장 간 사이에 저리 되나?
‘그런데 왜 이상하리만치 나에게만 좀비가 꼬이는 것 같지.. 설마, 만마의 총애 때문인가? 아니면 내 행운수치가 이상해서? 뭐지? 이유가 뭐지?’
미칠 것 같다. 내 여자들이 피떡이 되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분노와 짜증, 스트레스에 혈관이 다 터질 지경이다.
“하하하하!!! 반응을 보아하니 최악의 미래를 봤나 보군.”
내가 혼자 번뇌에 빠져 있자 노인은 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담배를 뻑뻑 피우며 박장대소했다.
나는 심각해 죽겠는데 혼자 좋다고 웃는 영감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상대는 정체불명의 신이다. 잘 못 덤벼들었다간 죽기보다 더한 심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대.
난 속으로 화를 삭였다.
‘화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야.’
방금 보았던 장면들... 비극이 일어나는 시간대가 언제인지 유추해야 한다.
‘벚꽃이 피었던가..?’
내가 보았던 장면들 속나무는 여전히 벚꽃이 피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3월이 지나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은 어땠지.’
장비들도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은지는 여전히 사슬낫을 쥐고 있었고, 아름이는 숏 소드에.. 아람이도 여전히 망치였고...
‘어? 하린이가 들고 있던 무기가...’
클로였다.
원래 하린이는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방금 본 장면에서 하린이는 도끼가 아닌, 클로를 양손에 낀 채 죽어 있었다..
‘그리고...’
희선 누나의 근처를 맴돌던 3개의 형체.. 그건 정령들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린이가 클로를 얻고 희선 누나가 3마리의 하급 정령과 계약한 시점.
그 이후에 침공이 시작될 것 같다.
‘그리고 업데이트 내역에 스켈레톤이 등장한다고 하면 그때부터 확실히 긴장하고 있으면 되겠지.’
잠시 고민해 본 결과 대충 그 빌어먹을 괴물 놈들의 침략시기를 유추할 수 있었다.
스켈레톤이 나타나고 하린이가 클로를 얻고, 희선 누나가 정령들과 계약을 끝낸 이후엔 자리를 비워선 안 되겠다.
‘앞으로 몸을 좀 더 사려야겠어.’
괜히 몸에 좋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가 봉변당하면 큰일이다. 내가 맛이 간 사이에 침략이 시작되면 안되니까.
‘그래도 이걸 알아낸 시점에서 미래는 바뀌었다... 결코 그따위 빌어먹을 미래가 찾아오게 내버려둘 순 없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막아 낼 수 있을 거다.
그 목 없는 기사도 스킬을 때려 붓고 나팔 총을 쏴 갈긴 다면 결국엔 뒤지겠지.
안 죽으면 수호부 찢어서 지크를 불러내거나 심층지주를 소환하면 된다.
그리 최선을 다해 불행을 막아 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가만히 담배를 피우던 노인이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네.”
“아, 예.”
“그런데 자네 꿈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선 알고 있나?”
“네? 그건 또 뭡니까..?”
또 새로운 키워드다. 설마 암시장 때처럼 뭔가 복잡한 규칙이라도 있나?
안 그래도 지금 생각할 것들 천지인데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라면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별거 아니네. 꿈은 깨고 나면 까먹는 법이라네.”
“예...?”
“자네가 나를 찾아온 방식은 꿈을 통해 서지. 그러니 깨는 순간 기억이 흐릿해지며 까딱 잘못하면 꿈속에서 겪었던 모든 일을 잊을 걸세.”
“자, 잠깐!”
다 까먹는다고?
기억해야 한다. 내가 보았던 그 엿 같은 미래를...
그래야 대비할 수 있...
“만나서 반가웠네. 부디 끝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지.”
노인은 그리 말하며 박수를 쳤다.
곧 공간이 일그러지며 노인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푱!
그 즉시 의식이 끊기고.
난 잠에서 깼다.
*****
“으윽...”
찌걱찌걱 찌걱...
“뭐, 뭐야...”
몸이 뻐근하다... 잠을 전혀 잔 것 같지 않은 이 느낌은 뭘까... 그리고 이거, 무슨 냄새지?
굉장히.. 야릇하면서.. 질척한 살 내음..?
“아앙...♡”
쏘옥, 뽕..
“으읏..!!!”
순간 저 아래에서부터 밀려올라오는 사정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나는 양다리를 쭉 뻗으며 정액을 한가득 싸버렸다.
그리고 그걸 놓칠 새라 얼른 자지를 붙잡아 쏟아져 나오는 정액을 빨아 마시는 저 여자는...
“뭐, 뭐야!!”
그녀는 예원이었다.
금발을 늘어뜨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 자지를 빨고 있다니.. 왜 울면서 빨고 있는 거지?
“왜... 왜 내가 꼴찌야.. 흐윽..”
뭐가 꼴찌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내 자지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양 딱 붙잡고는 잡아 먹듯 빨아들였다.
“자, 잠깐...!! 나, 까먹으면 안 되는 게 있는데!! 으읏..!!!”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커다란 가슴이 내 얼굴을 짓누른다.
이 묵직함과 육중함... 메르인가?
“일어났군. 그래, 좋은 꿈은 꿨나?”
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입을 여니 메르의 젖꼭지가 쏙들어왔다.
말랑말랑한 감촉에 순간 난 무지성으로 그녀의 젖을 빨아버렸다.
‘이, 이게 아닌데! 이 미친 여자들..! 내가 잠든 사이에 얼마나 해댄 거야!!’
흥건하게 느껴지는 정액의 양으로 보아 나는 인정사정 없이 면간을 당한 것 같다.
물론 좋다.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깨어 있을 때 같이 하면 더 좋았겠지만... 깨자마자 따먹히고 있는 중인 것도 꽤..
“우읍.!! 푸하..! 자, 잠깐.. 기다려!”
이러는 와중에도 점차 기억이 흐릿해져간다.
심지어 처음 꿨던 일상의 악몽인지 뭔지는 이제 완전히 흐릿해져 무슨 꿈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뭘 기억하려고 했지?
“응? 오빠 일어났네..? 하~암..”
옆에서 나체로 잠들어 있던 은지가 나에게 안겨들었다.
사방팔방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여자들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일단 소리쳤다. 기껏 보았던 꿈이 휘발되어 다 날아가기 전에 일단 내가 본 내용을 외쳤다.
“다들 잘 들어. 우리 곧 다 죽어!”
잠깐 중간과정을 너무 생략한 것 같은데..
“무슨 잠꼬대야.. 오빠..”
나름 심각하게 말했지만씨알도 안 먹힌다.
그저 나의 잠꼬대라고 여기는 것 같다.
“아니아니!! 우리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왜 그러냐면...”
“무서운 꿈 꿨구나. 안심해라.”
심지어 메르는 나를 암심시키려는 듯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뭔가 포근함에 다시 눈이 감기려...
"악! 해골거인! 듀라한! 하린이 클로! 정령 세마리!!"
결국 나는 생각나는 대로 외쳤다. 꿈을 까먹기 전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