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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73화 (73/221)

〈 73화 〉 72. 청월의 주인

* * *

나와 그녀들을 머리를 맞대고서 ‘반인반마의 업’ 업적보상에 대해 고민했다.

“일단.. 봤다던 미래를 최대한 꼬아버리려면 일그러진 신앙심 말고 딴걸 선택하는 편이 좋겠죠?”

예원이는 최대한 내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미래를 오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최대한 미래를 비틀려면 망치나 십자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맞다.

“그렇긴 한데... 나는 솔직히 일그러진 신앙심이 좋은 것 같은...”

그런데 직접 ‘마인’의 힘을 사용해 본 아람이는 팔찌가 탐나는 듯했다.

하긴 아람이에게서 악마의 뿔이 자라나며 반마로 각성했을 때, 거의 악마 빙의자를 맨손으로 찢어버릴 수 있을 만큼 신체 능력이 높아지고 마기 흡수력도 증가했으니까.

‘진정한 마인이 되면 엄청 강해지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나는 간혹 이성을 잃을 수 있다는 문구가 영 신경 쓰인다.

만약 전투 중에 이성을 상실하곤 적·아군 구분 없이 공격하면 끝장이다. 심지어 마인화해서 강해진 상태로 공격한다면...아마 여기서 폭주 상태의 아람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나 메르정도겠지.

“망치로 가자. 언니, 망치로 다 때려 부수는거 좋아하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화영이가 아람이의 어깨를 슬슬 쓰다듬으며 말했다.

“십자가로 총쏘는 것도 간지 나지 않니?”

“그런가요?”

이번엔 희선 누나가 아람이를 흔들었다.

각자 개인의 취향에 맞게 아람이에게 바람을 불어 넣는 중이다.

“저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 음...”

개인적으로 해골 거인이 나타난다면 ‘훌륭한 대화 수단’으로 대가리를 부수기 좋을 것 같다.

설명에서부터 '무지막지한 크기'라니까 아마 진짜 무슨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정신 나간 크기가 아닐까 싶은데...

그보다 그런 무식한 크기의 둔기라니. 이건 또 로망이 있는 무기지.

기교나 기술이 끼어들 틈도 없이 무정하게, 무참하게 적을 으깨버리는 강력한 힘...!

“망치가자.”

“좋아.. 그럼 망치로.”

그렇게 업적보상은 전투망치로 선택됐다.

쿵!!!

순간 눈앞에 말도 안 되는 모습의 망치가 생성됐다...

옥상 바닥이 살짝 흔들리 정도의 무게감..

‘이걸 사람이 들고 휘두른다고..?’

정신 나간 크기다...

망치의 머리 부분이 거의 사람 몸통만하다. 심지어 망치 머리의 중심에 푸른 보석 같은 게 박혀 있었다.

‘이게 마기를 흡수하면 부스터가 나온다는 그건가? 부스터는 대체 뭐지?’

이따위 무식한 무기를 직빵으로 처맞았다간 그냥 다진 고기가 될 게 분명했다.

“우와... 진짜 무식하게 크다...”

“미친... 오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십자가가 나았을 것 같은데...”

망치 주위로 모여든 여자들도 다들 한마디씩 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무기를 과연 누가 다룰 수 있겠냐고.

“아람양. 이거 한번 들어봐도 되겠나?”

“아. 네, 언니.”

메르는 무기의 주인인 아람이에게 정중하게 부탁한 다음 훌륭한 대화 수단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흐읍... 흐아아아아!!!”

순간 메르의 야들야들한 팔에서 엄청난 근육이 솟아오르며 거의 아름이 허리만큼 팔 두께가 두꺼워졌다.

‘미친..! 내장형 근육....!’

순간 그녀는 스탯의 한계 따위 가뿐히 초과해 버리곤 망치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거의 항상 무표정하거나 혹은 온화한 미소를 짓는 메르의 얼굴에 핏줄이 돋으며 인상이 찌푸려진다.

순간 진심전력을 다한 듯한 그녀의 얼굴이 흉신악살 같이 일그러지며 이를 꽉 깨물었다.

“크아아아!!!!”

들어 올렸다.

저 정신 나간 무기를 메르가 들어 올렸다!!

쿠구궁!!!

허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메르는 다시 대화 수단을 옥상에 내려놓았다.

거의 이 정도면 톤 단위로 넘어갈 무게 같은데..

“후우.. 후우... 이거. 이거 상당하다... 하아 하아...”

메르는 힘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

마치 전신의 힘을 전부 쏟아부은 느낌이었다.

“저, 저기 나도 들어볼래.”

입을 벌리고 보고 있던 화영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망치의 손잡이를 잡았다.

스탯 상으로만 따지자면 그녀도 만만찮다. 뱀파이어의 특성으로 전체 스탯이 고루 높기 때문이다.

“끄으으응...!”

물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와...”

“다, 다음!”

이후 그녀들은 돌아가며 다들 망치를 들기 위해 온 힘을 다 했다.

허나 들 수 있었던 건 메르헤레 뿐이었다.

‘보상... 잘못 골랐다...’

그냥 일그러진 신앙심이나 십자가 총을 뽑았어야 했다.

지금 와서 후회해도 보상을 바꿀 순 없지만...

“역시 전직천사.. 기본 피지컬이 다르네요.”

“하하... 뭘.”

희선 누나의 칭찬에 메르헤레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꽤 만족스러운 미소다.

“자, 그럼...”

나도 들어 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바닥에서 살짝 떴을 뿐 메르처럼 완전히 하늘 높게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마치 여기까지가 인간의 한계라는 듯 조롱당하는 느낌마저 주는 망치다.

내 차례가 끝나자 드디어 아람이가 앞으로 나섰다.

난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껏 전용템 같은 물건을 뽑았는데 쓸 수가 없으니까.

“그럼 드디어 내 차례네.”

아람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양쪽 어깨를 빙글빙글 돌려 몸을 풀었다.

그러곤 망치에 손을 뻗었다.

“후읍....”

역시 그녀도 들지 못...

“흐아아!!!”

순간 아람이의 손에서 검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건 악마 빙의자들에게서 빼앗은 마기였다.

우­웅

그녀의 마기가 망치의 중심에 달린 보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취이이이­익!!!

곧, 망치가 살짝 열리듯 갈라지며 증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 들린다...!”

이 망치는 마기 소유자들만이 진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악마와 관련된 클래스 전용 무기인 거다.

“끄읍...”

쿵!!! 쩌적..!

아람이가 망치를 놓자 옥상에 실금이 갔다.

“됐다... 됐어. 이거 물건이다.”

아람이 전용 템이 생겼다.

*****

“자, 그럼 다음은 이건데...”

난 만귀전 티켓을 꺼냈다.

“드디어...”

하린이는 티켓을 보더니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하린이가 다녀오는 거에 불만 없지?”

“응. 찬성이요.”

“저도요.”

다들 찬성했다. 더욱이 하린이가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중이고.

당장 언제 필드보스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이상 레벨을 올릴 방법이 없으니 최대한 레벨 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강해져야한다. 그래서 지금 만귀전 티켓을 쓸 생각이다.

‘내가 잘못 갔다간.. 어휴.’

이미 암시장에서부터 꿈속까지 생각 없이 움직였다가 여러 번 좆 될 뻔했기 때문에 이번엔 그냥 하린이를 보내주는 게 맞겠단 생각이 들었다.

괜히 또 내가 함 찍어먹어 본답시고 갔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사이에 듀라한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눈앞이 깜깜해질 거다.

‘근데 고대신들은 뭐 하는 족속들이지..?’

악신은 크툴루 신화에 나올 법한 인신 공양에 환장한 정신 나간 족속들이고 선신들은 착한 척하는 개쓰레기들이다.

‘이미 두 선례를 봤다... 만귀전 이 새끼들도 분명 미친놈들 일 거야...’

내 생각에는 세계수를 필두로 한 녀석들인 것 같은데.

고대신이라는 명칭답게 아마 자연물에 가까운 신들이 아닐까.

악신들이 우주적인 공포를 형상화한 존재들이고. 선신들이 인간이 만든 개념, 그러니까 정의나 질서, 희망과 같은 것을 인격화 시킨 존재들이니. 고대신은 토테미즘적인 원시신앙에 가까운 존재들일 것 같다.

나무나 동물 혹은 용 같은 그런 것들.

한번 직접 가서 만나 보고 싶지만.. 만약 고대신들이 정말 세계수를 중심으로 하는 놈들이라면 나는 갈 수 없다.

‘지난번에 생화반지를 착용했을 때도... 세계수가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세계수는 그때 나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드루이드를 내가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만귀전으로 가는 순간 찢겨지지 않을까?

“희선 누나.”

“응?”

“뭔가.. 그, 신이 말을 건다거나 하진 않아?”

“신? 아~ 준이가 저번에 이야기했던 그 선신인지 뭔지 이상한 것들?”

“응.. 가령 세계수라거나.”

“글쎄.. 가끔 명상하고 있으면..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네. 직접 대화해 본 적은 없어.”

“그렇구나..”

사실 희선 누나를 보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누나를 보내면... 못 돌아올 것 같단 말이지..’

세계수가 나에게서 드루이드인 희선 누나를 뺏으려고 별의별 개수작을 다부릴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하린이를 혼자 보내는 것도 영 마음이 걸리지만.’

난 기대에 찬 하린이를 봤다.

그녀는 왠지 이번 기회에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하린아. 정말 갈 거지?”

“네. 가보고 싶어요.. 왠지 강한 끌림이 느껴지거든요. 저번부터 계속... 뭔가가 저를 부르고 있어요.”

“세상에.. 신의 부름이라니... 하린아.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신들은 대부분 정신이 이상하거나.. 미친놈들이었는데..”

하린이에게 신들의 실태에 대해 더 이야기하려고 할 때였다.

[뭐라? 너는.. 나를 그리 생각하고 있어나?]

[우리가 인간 처지에선.. 좀 무섭긴 하잖아.]

카쉬낙스가 충격적이라는 듯 물어왔고 인디크론이 뭘 그런 당연한 걸 놀라고 있냐는 듯 대답했다.

[무섭다니.. 내가 뭘 했다고..]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큭...”

이 미친 신들이 또 내 머리통을 매개체로 대화 질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얼른 둘을 제지시켰다. 빨리 말리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말다툼하니까.

원래는 이렇게까지 인간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리된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자 거의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보타밀리가 대답했다.

[그야. 호감이 쌓였으니까.]

[우린, 인지 영역 밖의 존재.]

[그대가 우리를 받아들이는 대로. 우린 변화한다.]

[물론 이 또한 그만큼 그대를 소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대는 우리의 원망(??)을 이뤄줄 존재니까, 컬티스트.]

보타밀리의 특성상 여러 명의 목소리가 돌아가며 말했다.

‘호감도가 높아져서... 내가 보고자 하는 대로 변화한다라..’

인간다워졌다니.

설마 곧 인간화해서 강림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겠지?

“후우...”

그보다 세 명의 악신들은 하린이가 만귀전으로 떠나는 걸 말리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움직이는게 아니므로 어찌 되든 상관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조심해서 다녀와. 다치지 말고.”

“네. 저 꼭.. 강해져서 올게요.”

“너무 무리하지 마. 알겠지?”

“네, 언니.”

우리는 무기를 챙겨 떠나는 하린이를 돌아가며 안아줬다.

그녀는 요즘 들어 내심 본인이 가장 약하고 쓸모없다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충분히 강한데도 워낙 우리 파티 원들의 능력이 출중하니까. 비교적 평범한 스킬을 가진 그녀는 항상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고대신의 화신이 되어 강해지고 싶은 거겠지.

혹여나 만귀전에서 노예낙인이 지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다시 한번 찾아내서 나의 것으로 만들 뿐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하린이는 티켓을 살짝 뜯었다.

퓨웅!!

곧 보부상이 이동할 때처럼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떨어져 하린이를 데려갔다.

*****

“으윽...”

성하린은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눈을 떴다.

“여, 여긴...”

생전 처음 보는 장소.

그녀는 혼자가 됐다는 사실에 순간 두려움을 느꼈지만.

“후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도끼를 꽉 쥐며 일어섰다.

‘일단 숲에서 빠져나가야 할까? 분명 만귀전에 속한 고대신 중 하나와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점차 나무들이 줄어들며 만월이 뜬 하늘과 드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커다란 푸른색 달과 노란 달이 서로 교차하듯 떠 있는 풍경.

“우와...”

판타지 세계의 한 장면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그녀는 넋을 잃고 달을 올려다 봤다.

“키아아아!!!”

그때, 짐승의 울음소리가 숲과 초원에 한가득 울려 퍼졌다.

파스슥!

푸더덕!!

곧 그녀가 빠져나온 숲이 흔들리며 누런 눈을 번뜩이는 검은 형체의 괴물들이 달려 나왔다.

놈들에게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 이런..!”

성하린은 얼른 도끼를 고쳐 쥐었다.

가만히 당해 줄 생각 따위 전혀 없었으니.

“으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야만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그녀를 에워싸려던 검은 짐승들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고 그녀는 얼른 가장 가까이에 있던 짐승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쳐 쪼갰다.

‘이길 수 있어..!’

성하린은 자신의 승리를 점쳤다.

그녀는 항상 이길 거란 생각으로 싸운다.

패배 따윈 염두 하지 않는 우직한 성격이기에.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저따위 짐승들에게 죽을 수는 없어.’

곧 검은 짐승들은 시뻘건 이를 드러내며 성하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두쿵!

일순 숲이 흔들린다.

­아우우우!!!

­아우우우우우!!!

숲 곳곳에서 순식간에 늑대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려 나왔다.

그들은 성하린을 둘러싼 수십 마리의 검은 짐승들을 물어뜯었고, 검은 짐승들을 걸레짝이 되어 찢겨나갔다.

“이, 이게 대체...”

성하린은 여전히 도끼를 치켜든 상태로 늑대들과 대치했다.

하나같이 커다란 차체만한 크기의 들짐승들이다.

그들은 마치 품평이라도 하듯 성하린을 내려다봤다.

그때 숲이 흔들리며 무언가 성하린을 향해 걸어 나왔다.

‘제, 제기랄...’

압도적인 존재감.

다른 늑대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

성하린은 자신을 내려다 보는 야수의 두 눈을 마주한순간 의지가 꺾일 것 같았다.

허나 그녀는 도끼를 놓을 수 없었다.

무기를 손에서 놓는 순간 패배하는 거니까.

포기하는 순간 끝이니까.

그녀의 요동치는 심장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맞서 싸우라 말하고 있다.

[아직도 싸울 생각인가?]

[과연.]

[용맹한 자로다.]

늑대는 웃었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결코 도끼를 내리지 않는, 여전히 싸워 이기겠다는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작은 인간을 내려다보며.

[마음에 들었다, 인간.]

초원의 여왕이 아직은 작은 늑대에게 묻는다.

[만월의 축복을 받을 자. 그대의 이름을 밝혀라.]

그녀는 용맹한 전사들의 여신이자.

모든 늑대들의 우두머리이며.

누구보다 앞서 달리는 전장의 선봉이니.

푸른달의 주인, 청월의 가리아가 성하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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