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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76화 (76/221)

〈 76화 〉 75. 폭탄 돌리기

* * *

대적 불가능한 적을 마주했을 때 끝까지 싸우려는 인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적이라고 한탄하면서 도망치겠지.

불굴의 의지라거나 꺾이지 않는 강인한 마음 같은 건 만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의, 그것도 현대인의 감성으론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각오가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도 죽음은 여전히 두렵고 삶에 초연하던 은자조차도 목에 칼을 들이밀어지면 자연스레 몸이 떨리는 법이니까.

인간은 겁쟁이다.

그리 진화해왔고 발달해 왔다.

그야 겁 대가리를 상실한 놈들은 이미 옛적에 다 죽었으니. 미친놈들이 아니고서야 누구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 공포나 두려움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감정들이다.

또한 판단력과 침착함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단지 두렵다고 해서 패닉에 빠져 생각이나 행동을 멈추면 그순간 죽음은 한 발 짝 더 가까이 다가오기에.

“도망가야해...!”

한차례 듀라한의 검을 막아 낸 진심공략조의 리더인 이선재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의 선택으로 인해 팀의 명운이 결정된다. 조금만 판단이 늦어도 전멸을 피할 수 없다.

이선재는 생각했다. 저건 어찌 상대할 방법이 없는 괴물이라고. 본체가 구교한이란 사실을 알지만 저렇게까지 변해 버린 이상 이젠 구교한으로 되돌릴 수도 없으리라고.

짐꾼 구교한은 죽은 거다.

남은 건 최대한 멀리 저 괴물을 피해 도망치는 것뿐. 이선재는 모든 미련을 버리고 당장 여기서 도망가야 한다고 외쳤다.

“뛰어!!!”

다른 일행들이 건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이선재는 마검을 휘둘러 듀라한의 대검을 세 번 정도 더 막아 냈다.

듀라한은 공간이 좁아도 전혀 개의치 않고 검을 휘둘렀다.

검이 나아갈 길을 가로막는 벽과 천장을 통째로 베어내고 부수며 집요하게 이선재의 머리만을 노린다.

듀라한의 검격에 건물에 쩌적 금이 가더니 곧 불길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이선재의 마검에도 살짝 금이 갔다. 그만큼 강대한 공격이었다.

“부유!”

그 사이 윤지호는 쓰러져 있던 김기성을 염동술로 허공에 띄운 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앞서 1층으로 내려가 근처에서 서성이던 좀비들을 지팡이로 패 죽이고 있던 차지태는 눈물 글썽한 얼굴로 이선재와 구교한이었던 것이 싸우는 2층을 올려다 봤다.

­와장창!!!

곧 유리창이 깨져나가며 이선재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달려! 달려!!!”

도망치는 그들을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듀라한.

놈은 허공에 손을 휘젓더니 무언가를 불러냈다.

­히이잉!!

검은 마갑을 입은 해골마.

머리 없는 기사의 상징과도 같은 소환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듀라한이 가볍게 말에 올라타 2층의 벽면을 일격에 박살 내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순간 건물이 흔들리더니 폭음을 내며 무너졌다.

“저 새끼 더럽게 빠르잖아!!!”

“젠장. 젠장, 젠장!!!

이선재는 얼른 허공에 떠 있던 김기성을 받아 업었다. 부유술은 마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

윤지호는 김기성이 이선재의 등에 업히는 걸 보고 나서야 부유 마법을 해제하곤 연신 땅을 뒤집어엎고 장애물을 만들며 달려오는 듀라한의 진로를 방해했다.

차지태는 달리는 중에도 집중력을 발휘에 기절한 김기성을 결국은 깨워냈고.

“으.. 시발.. 머리...”

“야!! 빨리 등에서 내려와서!! 뛰어!!!”

“어..? 이, 이런!! 저 시발!!!”

곧 적당한 속도로 그들을 쫓던 듀라한이 방금 막 깨어난 김기성을 보며 공기 빠지는 듯한 소리를, 마치 비웃는 듯한 숨소리를 냈다. 그러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머리통을 집어 던졌다.

쾅!!!!

진심 공략조가 도망가던 방향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에 듀라한의 머리가 틀어박혔고 자동차가 뒤로 밀려나는 걸로도 모자라 거의 폭발하듯 박살 나버렸다.

자동차가 박살나며 발생한 커다란 소음으로 인해 인근의 좀비들이 몰려든다.

“씹...!!!”

해골은 다시 듀라한의 손으로 돌아갔다. 회수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말은 곧 다시 머리가 날아들거란 얘기였다.

“쉴드!!!”

쾅!!!

콰자자작!!!

시기적절하네 펼쳐진 윤지호의 보호 마법은 단 2초를 버티지 못하고 깨져나갔다. 가볍게 방어마법을 부수며 듀라한의 머리통이 다시 한번 일행을 향해 날아든다.

“이 씨발!!!!”

방금 막 깨어난 김기성이 기합을 내지르며 해골을 받아 냈다.

그대로 뒀다면 멍청하게 서 있던 차지태가 으깨져 죽었을 테니까.

뿌드드득!!!

대신 김기성의 팔이 작살나며 그의 복부에 해골이 틀어박혔다.

“쿠헉...!! 끄아아아!!!!”

김기성의 입에서 선혈이 쏟아져 내렸다.

신체 회복력이 극단적으로 높은 혈전사인 그가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공격이다.

“치유!!! 치유!!!!”

차지태가 비명을 지르며 연달아 치유 술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겨우 김기성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일어섰고 그 사이 이선재와 윤지호가 듀라한을 막아 내고 있었다.

“으아!!! 테, 텔레포트 못쓰냐!!!?”

“제기랄!! 마력이 부족해서 단거리 이동 밖에 안 된다!!! 써도 곧 따라잡힐 거야.. 그리고 집중력 딸려서 당장 못써!!!”

“이런 시발!!”

일행의 발이 잠시 늦춰진 사이 그들을 따라잡은 듀라한은 마치 재밌는 놀이라도 즐기듯이, 마치 벌레를 가지고 놀듯이 대검을 휘두르며 윤지호의 마법을 베어내고 이선재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깽!!! 촤하악!!!

결국 이선재의 한쪽 무릎이 꺾이고 그의 마검이 두 동강 나며 어깨에 듀라한의 대검이 박혔다.

어깨의 상처는 차지태가 치유할 수 있지만 마검이 다시 붙으려면 적어도 3일은 걸릴 거다.

마검 사용자가 자신의 마검을 잃었단 말은 사실상 전투력이 0에 가까워진 것과 다름없단 의미다.

“흐아... 흐아... 흐아아아하...”

바람 빠지는 소리가 진심 공략조의 귓가에 울려퍼진다.

듀라한은 무릎 꿇은 채 피를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이선재를 비웃었다. 멍청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차지태를 비웃었고 마력이 모자라 번뇌에 빠진 윤지호를 비웃었다.

곧 전투에 다시 참가한 김기성이 얼른 이선재를 뒤로 날려 듀라한의 사정거리에서 빼낸 다음 혈폭술을 사용해 혼자서 듀라한을 상대했다.

그렇게 다시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제, 젠장..”

윤지호는 어지러운 머리를 겨우 붙잡고서 남은 마력을 긁어모아 텔레포트를 준비했다.

이 정신 나간 괴물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져야 한다.

‘주문이 꼬이면 다 죽는다... 젠장...’

지금과 같이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텔레포트를 쓰는 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런데도 살기 위해선 적은 확률에라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것 말고는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였다.

무언가 등뒤에서 거대한 인기척이 느껴진 건.

“어..? 저, 저 시발!! 저 괴물 새끼가 왜 여기 있어!!!”

당황한 듯한 남자의 외침에 윤지호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뒤에서 다가오던 중인 세 명의 플레이어들을 쳐다 봤다.

‘저건 대체.. 뭐지...?’

순간 윤지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대성통곡할 뻔했다.

그의 마안은 대상을 살짝 꿰뚫어 본다.

또한 흘러가는 마력을 볼 수도 있고 물건의 본질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스킬인 ‘현인의 마안’이 외치고 있다.

당장 저 괴물에게서 도망치라고.

‘미친.. 정신 나간 마력량... 그리고 등 뒤에 붙은 끔찍한 괴물이 두 마리... 저 여자들도 만만찮지만.. 저건.. 저건 진짜배기 괴물이다.’

윤지호는 보았다.

조준과 이은지 그리고 강화영을.

‘두 명의 여자는 솔직히 우리들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저 남자는...’

그의 마안에 비치는 장조준의 모습은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폭발적인 마력은 물론이고 그의 등 뒤엔 서슬 퍼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거대한 거미 괴물과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끔찍하고 혐오스런 생김새의 바퀴벌레가 있었다.

윤지호는 특히 거미 괴물, 명왕 키시리아의 살기 가득한 눈동자에 완전히 기가 눌렸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한 거다.

윤지호는 키시리아가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마치 '네 까짓게 어찌 감히 나를 관측 하는 것이냐'라는 듯.

심층지주 키시리아는 나락의 끝에 자리잡은 주박궁전 최심부에서 윤지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 심연 속의 저 괴물은 대체...’

듀라한 따위와 비교를 거부하는 괴물이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전멸의 위기로 몰아 넣었던 듀라한을 감히 '따위'로 치부해야 할 정도의 괴물을 달고 있는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심지어 현재 장조준이 착용 중인 기억변환의 반지로 인해 그는 윤지호의 눈에 깨진 유리 파편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충격과 공포.

윤지호는 당장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듀라한 같은게 문제가 아니다.

저런 괴물에게 붙잡힌다면 결코 곱게 죽지 못하리라.

형상화된 죽음이 당장 눈앞까지 밀어닥치고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만 남게 되자 집중력이 극도로 올라갔다.

생존욕구의 극한에 다다른 무의식이 순식간에 공간 이동 술식을 완성했고 윤지호는 자신을 포함해 어깨가 박살 난 이선재와 그를 치유 중이던 차지태, 한창 듀라한의 공격을 피하던 김기성까지 전부 끌고서 텔레포트했다.

“이런! 잡아!!”

순간 텔레포트에 반응한 조준이 고함쳤고 은지가 급히 그림자 비도 3개를 만들어 술자인 윤지호를 향해 날렸다.

그렇게 그림자 비도 또한 텔레포트에 휘말려 같이 빨려 들어갔고...

퓌웅!

그들은 단거리 순간 이동에 성공했다.

“쿠허억...!!!”

윤지호는 자기 복부와 어깨, 허벅지에 틀어박힌 비도를 잡아 뽑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몸을 떨었다.

은지가 그 찰나에 마비 독니를 이용해 비도에 마비 독을 묻힌 탓이었다.

“이, 이런!!!”

간발의 차로 듀라한과 조준 일행에게서 벗어난 그들이지만 그리 멀리까지 도망치진 못했다.

당장 두 블록 정도의 거리. 언제든지 따라잡힐 수 있는 거리다.

“시발 시발 시발!!!”

순간 이동 중에 같은 흡혈귀인 강화영의 기운을 느끼고 소름이 쫙 끼쳤던 김기성은 얼른 바닥에 널브러진 윤지호를 등에 업고 내달렸다.

이곳에서 멍청하게 멈춰 있다간 그 괴물 같은 년과 그보다 더한 괴물이 자신들을 뒤쫓을 거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달리는 김기성의 뒤를 따라 어깨 부상이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연신 피를 흘려 안색이 굉장히 안 좋은 이선재와 마력 고갈로 쓰러지기 직전인 차지태가 달렸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 하루를 또 살아남았다.

멸망한 세상에선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이유로 죽을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오늘 아무 물건이나 함부로 주우면 안 된다는 아주아주아주 뜻깊은 교훈을 얻었으리라.

소중한 동료인 구교한을 잃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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