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76. 넝쿨째 굴러온 머리통 (수정)
* * *
장조준은 마트로 돌아가 강화영과 이은지를 데리고 나와 다시 인근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강화영이 코를 벌름거리며 한참 듀라한에게서 도주 중이던 진심 공략조를 찾아냈다.
"저기서... 신선한 피냄새가 나..."
"얼른 가보자."
그리하여 그들을 뒤쫓았으나 놈들은 잡히기 직전에 도망가 버렸고 조준은 얼떨결에 듀라한과 대치 상태가 됐다.
조준은 그들이 갑자기 텔레포트를 사용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놈들이 빛에 휩싸이는 순간 심연아귀를 쏘아냈을 땐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제기랄...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심지어 조준은 여기서 듀라한과 마주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공략조의 인간들과 격전을 벌인 끝에 스킬에 내재된 마력을 제법 흡수해 듀라한은 이미 자기 애마까지 불러낼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하... 좆됐네.”
이로써 진심 공략조는 어쩌다 보니 조준 일행에게 듀라한을 떠넘기고 도망간 상태가 됐다.
윤지호는 일그러지고 뒤틀린 조준의 본질과 마주한순간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기때문에 조준과 힘을 합쳐 싸운다거나 조준일행을 돕는 다는 생각 따윈 일절 떠오르지 않았다. 무조건 도망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오빠, 방금 그놈들 멀리 떨어진 것 같진 않은데.. 우선은 저놈이 문제네여.”
강화영은 도주한 공략조의 기운을 어렴풋이 느끼며 당장은 눈앞의 괴물부터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듀라한을 경계했다. 저건 상당한 괴물이라고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놓친 것도 짜증 나는데 저런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다니...”
조준은 다음에 다시 한번 공략조 놈들을 마주치면 무조건 잡아 죽여 모조리 공양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커다란 선물을 줬으니, 죽음으로 보답해야겠지..'
조준은 은혜는 자주 까먹어도 복수는 꼭 하는 편이기에.
“흐아.. 흐아아아...”
그사이 듀라한은 자신의 머리통을 들어 올리고서 새로 나타난 세 명의 인간들 중 유독 마력이 많이 느껴지는 조준을 뚫어지게 쳐다 봤다.
해골의 눈구멍에 붉은 불꽃이 일렁이며 조준이 가진 마력량을 대략 파악했다.
듀라한은 본능적으로 강한 마력의 소유자에게 끌리는 존재답게 그는 조준을 보자마자 그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진심 공략조따위는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어졌다.
마력 스탯 700을 돌파한 장조준은 듀라한에게 있어선 최고의 먹잇감이었으니.
“흐아.. 흐아.. 흐아아아..”
“오빠 저거 웃는 거 맞죠..?”
“나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구나.”
조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을 들어 올려 촉수를 내뿜었다.
듀라한은 당연하다는 듯이 촉수를 걷어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조준은 듀라한의 대검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순간 양손을 비틀어 촉수들을 뭉쳐들게 만들었다.
양손에서 발출된 촉수다발이 하나로 엮어지며 마치 주먹처럼 듀라한에게 처박혔고, 대검을 휘두르려던 듀라한은 얼른 세로로 세워 겨우 조준의 촉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대로 듀라한은 뒤로 튕겨 나갔다. 아쉽게도 갑옷 때문에 충격이 많이 상쇄됐다.
곧 듀라한은 조준의 손에서 연달아 쏟아지는 심연아귀를 비롯한각종 스킬에 파묻혀 갑옷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허나 스킬을 맞으면 맞을수록 듀라한의 웃음은 더욱더 커졌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조준은 급히 스킬사용을 멈췄다.
“저, 저 새끼 뭐야..”
“사.. 살이 차올랐어요.”
듀라한은 조준이 사용한 스킬에 내제된 마력을 흡수하며 파괴된 것 이상으로 회복했고 급기야 뼈밖에 없던 듀라한의 몸에 피와 근육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곧 듀라한은 검은색 뼈만 남은 비루한 몰골이 아닌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모습이 됐다. 그의 손에 들린 해골머리에도 살점이 들어차며 이름 모를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건 구교한의 얼굴이었다. 살점이 차오른 구교한의 머리는 연신 목이 가렵다며 목이란 목은 죄다 뜯어내야 한다는 의미 불명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거... 맞으면 맞을수록 회복하는 것 같다..”
조준이 허망하게 중얼거리자 은지가 말을 받았다.
“스킬 없이 공격해야 하는 타입이란 말이죠..?”
“그렇지. 젠장. 저런 새끼는 또 처음인데..”
이런 종류의 적은 조준으로서도 새로웠다.
스킬을 맞을수록 강해지는 타입이라니.
사령술사가 불러냈거나, 자연 스폰 되는 그런 일반적인 듀라한이었다면 이미 회복 속도가 파괴를 못 따라가 진즉에 박살 나서 죽었겠지만, 이건 불길한 초커의 각성이라는 특수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일반적인 듀라한의 상위 격이며 '플레이어' 취급받는 괴물이었다.
조준과 같이 직접전투가 아닌 스킬에 치중된 전투 법을 구사하는 법사계열 플레이어들의 카운터에 가까도록 설계된 녀석이고.
‘한 번에 소멸시킬 각오가 없다면 스킬 사용 없이 근접전으로 갔어야 했지만.. 저 빌어먹을 괴물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으니.. 젠장..’
조준은 평소처럼 스킬로 놈을 압사시킬 생각이었지만 그 방식으로 죽이려면 마력을 거의 다 쏟아 부어야 할 판이었다.
이미 꿈의 세계에서 한번 목격한 괴물이지만 그때 보았던 대부분의 기억들은 진즉에 희석되어 버렸고 더구나 놈이 저런 식으로 강화된다는 사실도 단편적인 장면들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래서 모르면 맞는 거다. 아포칼립스의 세상은 생존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하...”
현재 조준의 일행들 중에서 당장 저 괴물과 근접전을 펼칠 수 있을 만큼 기량이 높은 건 메르뿐이다.
이미 기술에 있어선 완성에 단계인 메르가 만약 여기 있었다면 아마 다른 동료들의 보조 하에 듀라한의 검격을 막아 내며 저놈을 두 동강 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메르는 만약을 대비에 마트에세 상주중이었다. 조준은 보다시피 듀라한을 상대로 최악의 상성이었고 화영이 또한 스킬 없이 듀라한을 상대할 만한 저력은 없었다.
은지는 기습과 암습 전문이지 근접전 전문이 아니었고 까딱 잘못해서 듀라한의 검에 얻어맞기라도 하면 바로 두 동강 나리라.
“일단 마트까지 도망갈까요?”
“그럴까? 메르랑 아람이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자. 우리 셋이서 저거 잡으려면.. 진짜 개고생할 각오해야 할 것 같으니까.”
당연히 죽일 방법이야 있다.
가령 가장 간단한 방법으론 이은지와 강화영, 장조준이 가진 마력을 전부 소진할 때까지 스킬을 미친 듯이 때려 붓다 보면 듀라한도 결국엔 죽을 거다.
하지만 조준은 이놈을 마트로 끌고가서 메르헤레와 아람이에게 던져 주고자 했다.
700을 넘어선 마력을 저놈하나 잡자고 여기서 다 써버리면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 정도로 날뛰면 인근에 있을 새로운 적들이 자신들을 노릴지도 몰랐다.
만약 마력을 다쓴 상황에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또한 조준은 자신의 말도 안 되는 행운 스탯 666이 단순 행운이 아닌 개고생을 불러오는 이상한 수치임을 이젠 안다.
암시장에서부터 꿈의 세계까지 한 바퀴 순회하고 나니 확실히 깨달았다.
더욱이 본진인 마트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은 몸을 좀 사릴 필요가 있고.
괜히 나대다가 엄한 놈에게 걸려서 죽기 살기로 싸우긴 싫었으니까.
끝으로 아람이가 새로 뽑은 망치의 성능을 테스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부스터 기능을 사용한다면 저 미친 괴물을 박살 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킬이 안 통하는 상대는 아니니까 일단 저 해골마를 최대한 견제하면서 도망가자.”
“네!”
“알겠어요.”
조준과 은지, 화영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조준은 일그러진 비늘로 듀라한의 머리통을 막아내고 촉수로 듀라한이 타고 달리는 해골마의 앞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은지와 화영이도 비슷하게 놈을 견제했고.
‘내 마력량으로도 확실한 승부를 내기 애매한 놈이 있구나... 역시 스킬이 전부가 아니란 건가..’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마력량만 믿고 까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조준은 오늘 새로이 깨달았다.
앞으로 등장할 적들은 아주 다양하리라 예상되기에. 언제 또다시 이런 이레귤러를 마주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종류의 적은 메르처럼 스킬 없이도 적을 썰어버릴 수 있는 기량이 높은 강자가 필요하다.
아니면 좀 더 고화력의 스킬로 단박에 소멸시킬 수 있던지.
“다, 다 왔다! 메르! 메르헤레!!”
조준은 마트 인근에 도착하자마자 옥상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메르를 불렀다.
조준이 부르기도 전에 이미 듀라한이 오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본 메르는 낫을 꺼내 들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죽음의 기사..! 으아!!!”
메르가 기합을 내지르며 해골마와 듀라한을 통째로 베어내려 했다.
허나 듀라한은 날렵하게 낫을 피하며 해골마에서 뛰어내렸고 해골마는 메르의 낫에 목이 잘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조준은 아람이도 불렀다.
한참 옥상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람이는 밖의 소란과 조준의 부름에 곧장 밥그릇을 내려 두곤 훌륭한 대화 수단을 챙겨 아래로 내려갔다.
쾅!!!
메르가 가볍게 듀라한의 대검을 피하더니 낫을 휘둘러 듀라한의 대검을 밀쳐냈다.
순간 놈의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언니!! 피해!!!”
메르의 등 뒤 사각에서 아람이는 부스터를 전개한 대화수단을 횡으로 휘둘렀다.
대화수단의 한쪽 면에서 푸른 불꽃이 내뿜어지며 속도가 몇배나 증가한 망치가 듀라한의 가슴팍에 직격했다.
콰아앙!!!
마기는 흡수가 안 되는지 그대로 터져 나가듯 갑옷이 박살 나며 나가떨어지는 듀라한.
압도적인 질량 앞에선 놈도 방법이 없었다.
“흐으윽... 흐아아아아!!!”
듀라한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일어서려고 했다.
허나 그전에 언니를 따라 달려내려온 아름이가 쌍검을 휘둘러 듀라한의 양팔을 잘라 냈고 메르가 놈의 다리를 썰었다.
쿵!!!
“하아.. 어찌 쓰러뜨리긴 했네.”
조준은 금세 듀라한을 오체 분시 해 버린 여자들을 보며 놈이 떨어뜨린 머리를 찾아들었다.
“흐아... 흐아... 목... 뜯어야.. 가려워 가려워 가려워 가려워... 흐아아..”
구교한의 머리는 고장 난 장난감마냥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부짖었다.
“이거... 살아 있는 놈일까.. 말을 계속하네. 노예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빠.. 머리가 떨어진 시점에서 이미 죽은 거 아닐까요?”
“그렇지? 그렇긴 한데.”
조준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칠흑바퀴가 죽을 때 분명 매우 강한 다섯 명에게 죽었다고 했어. 그건 내가 봤을 때 거의 백 퍼센트 공략조 그놈들이다. 그리고 놈들이 초커를 주워갔을 거고. 그런데 나와 마주쳤을 때는 넷뿐이었지. 고로 한 놈이 이미 듀라한한테 죽은 상태였거나.. 초커를 끼고 있던 놈이 듀라한이 되었거나.’
물론 그냥 단지 일행 중 하나가 그 장소에 없었을 수도 있지만 장조준은 이 듀라한이 아마 공략조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느낌상 이놈도 노예로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해.. 중요한 건 어찌 굴복시키냐다..’
조준은 구교한의 머리통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야. 야!”
“아. 흐아.. 목이 가려워...”
당연히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때 조준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양지상이 빙의된 검이 떨렸다.
“왜?”
[그놈의 머리에 나를 박아 넣어 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마치 효시하듯이.]
“너를?”
[지금 그놈의 영체가 매우 크게 흔들리는 상태 같아서... 내가 조금 손대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조준은 구교한의 잘려 나간 목의 단면에 양지상이 깃든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으아.. 으아아아아!!!!!”
곧 멍청하게 같은 말만 되풀이 하던 구교한의 머리가 비명을 질렀다.
사실 목이 잘려 나간 시점에서 공기가 빠져나올 폐가 없으니, 머리만 남은 구교한은 말이나 소리를 못내야 정상이지만 그런 자잘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겠지.
“그그그그그 마아아아안!!!! 아아아아 파아아앙!!!!”
도대체 양지상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구교한의 머리통은 비명을 지르며 침을 질질 흘렸다.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돼, 됐다!!!”
조준은 얼른 비명을 지르는 구교한의 이마에 지장을 찍었다.
치이이익!!!
“아아.. 아아아아...”
그리 조준은 새로운 터렛을 얻었다.
아주 성능이 좋은 녀석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