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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84화 (84/221)

〈 84화 〉 83. 몰아쳐라, 짓이기고, 망가뜨려라

* * *

벤디트들의 우두머리인 이찬성은 옛날부터 고어한 걸 굉장히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는 사람이 죽는 장면이나 사고를 당하는 장면들을 보기 위해 딥웹을 탐방하기도하고 피와 내장을 보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거나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기분을 받았다.

허나 엄격한 법과 도덕이 있던 현대사회에서 그런 특이취향은 어딘가에서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꽁꽁 감추며 살았다. 길고양이를 죽이거나 작은 동물들을 죽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 사이코패스에게 자기 취향을 마음껏 퍼트릴 기회가 왔다. 세상이 망해버림으로서.

“제, 제발요.. 이제.. 그만... 죽여주세요..”

이찬성은 자기 앞에 해체된 여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취미는 예술품 만들기였으니.

그는 사로잡은 사람들 중 특히나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만 골라 딱 죽지 않게 끔 고문했다.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희열에 빠졌다.

“자, 그럼.. 피날레..”

그러다 고문당하던 이가 제발 그만 죽여 달라고 말하면 그때 배를 갈랐다.

그 나름의 규칙이었다. 꼭 그렇게 행동해야 직성이 풀리는 진성 사이코패스였다.

"아.. 아윽..."

곧 매달려있던 여자가 축 늘어지며 숨을 거두었다. 그런 여인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찬성은 자신이 만든 예술품을 감상했다.

그러곤 흘러내리는 뜨뜻한 내장을 어루만지며 미소 지었다.

너무나 더럽고 역겨우며 끔찍한 취미를 가진 인간이다. 죽어마땅한 인간이었다.

“하아...”

곧 그는 이틀에 걸쳐 완성한 ‘작품’을 부하들에게 보여줬다. 마치 전시회라도 하듯이.

“자, 어떠냐?”

“우, 우와.. 대, 대박이십니다...”

얼떨결에 끌려온 무법자 몇명이 도저히 그의 저 정신 나간 취미는 어울려주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애써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치지 않았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역겨운 광경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박수를 치던 무법자 하나가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구토했다.

“우욱.. 우웩...”

곧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고 무표정해진 이찬성이 헛구역질 하는 부하에게 다가 갔다.

그러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름.”

“흐윽... 죄, 죄송합니다..”

“아니. 이름.”

“제, 제발..”

“이름!!!”

곧 그는 부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세번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때린다는 자기만의 원칙에 따라.

“지훈!! 지, 지훈이요!!”

“후우.. 그래. 지훈. 다음은 이 녀석으로.”

그리 그의 다음 예술품이 정해졌다.

‘저 미친 새끼...’

‘젠장...’

'저 새끼만 없어도... 더 살기 좋을 텐데..'

모두 그의 끔찍한 만행에 치를 떨었다.

허나 몇 번이나 반란모의가 있었지만, 그전에 다 실패했고 도망자는 처절하게 처형당했다.

이미 이곳에 소속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곱 명의 히든 클래스는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감히 반란이 일어나게 두지 않았다.

결국엔 이찬성의 미친 짓에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다들 몸을 사렸다.

무법자들의 마음속에 공포가 각인된 것이다.

그저 미치광이의 눈에만 안 띄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으니 참고 사는 놈들이 많았다.

아니면 같이 미쳐서 날뛰거나.

*****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납치한 여자들과 뒹굴다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비스트 테이머 임진수.

그는 비품실에 앉아 숙취로 매스꺼운 속을 컵라면으로 달래며 사역마인 여우와 송골매를 통해 스포츠 센터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후루룩... 꿀꺽. 뭔가 이상한데. 으음. 뭐지?”

그리 대략 2시간 정도 스킬을 통해 짐승들과 시야를 공유하며 주변에 돌아다니는 생존자나 특이한 네임드 개체를 찾던 중 그는 곧 평소와 다른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왜... 좀비가 없지?”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 맞았다.

오늘따라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어야 할 좀비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누가 거리를 청소라도 한 것처럼 깨끗했다.

서울에서 죽어 나간 인간이 몇인데, 이렇게까지 좀비가 없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이건 필히 우두머리인 이찬성에게 보고해야만 한다.

“이상해. 너무 이상해. 야! 준호야!”

“예!”

“대장보고 거리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좀비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알려.”

“어.. 예. 알겠습니다.”

비스트 테이머 임진수는 왠지 모르게 긴장감을 느꼈다.

그건 그와 연결된 사역마들의 감정을 공유 받으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긴장감이었다.

‘등골이 서늘해. 뭔가 있어. 뭔가..’

짐승의 육감은 굉장히 뛰어난 법이다.

송골매와 여우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단 의미였다.

‘지진이 일어날 때가 돼서 좀비가 대규모 이동을 했을까? 아니야. 그런 게 아닐 거야. 그렇다면 습격인데.. 어쩌면 그때 봤던 그 구울이란 좀비일지도.’

이번 주 월요일, 스포츠 센터도 구울이 이끄는 좀비들에 의해 소규모 기습을 당했었다.

대부분 장조준이 있던 마트에 갔다가 키시리아에 의해 도망쳐 온 잔당들이었지만 그것들만으로도 스포츠 센터에 자리 잡은 무법자 집단은 꽤 곤혹을 치렀었다.

‘인근에 있는 생존자 집단의 습격일지도 모르지만... 좀비가 사라진 것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리고 같은 플레이어라면 우리가 질 리가 없지.’

멸망이 시작되고 한 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 자만할 수 있었다. 이미 우물안 개구리가 된 상태였다. 적당히 먹고 살만해지니 무법자들은 더 이상 정찰도 잘 나가지 않게 됐고 스포츠 센터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하아.. 피곤하다.”

임진수는 기지개를 켜며 잠시 집중력이 떨어져 연결이 끊겼던 사역마들과 다시 시야를 공유하려 했다.

하지만.

“어.. 뭐야..”

그 짧은 사이 여우가 죽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여, 여우가...’

그가 그저 여우라고 불러서 그렇지 그의 사역마는 단순한 여우가 아니라 무려 삼미호다.

꼬리가 셋 달린 녀석으로 영물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똑똑하고 특수 좀비쯤은 싸워 이길 수 있을 만큼 사납고 거친 녀석이었다.

그런 영특한 삼미호가 잠시 기지개를 켠다고 눈을 땐 단 몇 초 사이에 죽었다.

적을 피해 경로를 이탈해 도망친 것도 아니고 아예 완전히 죽었단 말이다.

“야!! 준호야!! 아, 시발.. 방금 심부름 보냈었지.. 젠장.”

여우의 허망한 죽음은 뭔가 엄청난 존재가 이미 지근거리까지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상황의 심각함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얼른 송골매와 시야를 공유한 임진수.

“이런.. 씹!!! 비상!!!! 습격이다!!!!”

송골매와 시야를 연결한순간 임진수는 비명을 질렀다. 허나 너무 늦은 경고였다.

“으아아아!!!”

“이, 이게 뭐야!!”

“벌레다!!! 벌레가!! 으아아악!!!”

임진수의 비명과 동시에 스포츠 센터 곳곳에서 무법자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벽과 천장, 바닥을 비롯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구멍에서 벌레 떼가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송골매의 시선으로 임진수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 센터 주변의 맨홀뚜껑이 들썩이더니 죄다 터져 나가며 수백,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 떼가 스포츠 센터 안으로 기어들어 오는 장면이었다.

또한 어느 맨홀에선 십여 명의 인간들도 기어 올라와 스포츠 센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것까지 임진수는 확인했다. 대부분이 여자였고 하나는 머리가 없었다.

물론 그런 세세한 정보를 확인해봤자 이미 너무 늦었지만.

“젠장!! 이것들 그냥 때리면 죽는 다고!!! 당황하지 마!!!”

“그냥 벌레다!! 이 시발새끼들아!! 도망가지 말고 싸우라고!!!”

“씨발!!! 어떻게 싸우라고!! 존나 많은데!!!”

“끄아아아!!! 아파!!!”

말릴 새도 없이, 미리 준비할 새도 없이 하수도를 통해 밀어닥치기 시작한 바퀴벌레들의 파도에 곳곳에서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장조준은 지난번 구울과의 전투를 통해 그들이 하수도 아래에 모여서 세력을 구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칠흑바퀴를 재소환하자마자 곧장 하수구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의 생각대로 하수도를 비롯해 이젠 멈춰버린 지하철 등지에 2차전을 준비 중이던 구울과 진화 개체들이 모여 있었다. 수천 마리의 좀비들을 이끌고서.

장조준은 칠흑바퀴에게 그것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라 명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알까기 러쉬.

칠흑바퀴의 새끼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각은 단 3시간이다. 새끼들이 죽기 전 칠흑바퀴는 스포츠 센터를 쓸어버릴 군단을 만들기 위해 극단적으로 알을 까기 시작했고 그 결과 하수도와 지하철에 숨어서 때를 노리던 좀비들을 모조리 벌레 떼로 바꾸었다.

한번 불어나기 시작한 이상 그들의 진군을 막을 수 있는 좀비따윈 없었다.

이번에도 구울과 진화개체들은 기껏 모아둔 좀비들을 죄다 털리곤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 벌레들 하나하나는 약해..’

임진수는 바퀴 떼를 보며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 칠흑바퀴의 새끼들은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별다른 특색도 없고 특수능력도 없다. 그냥 무진장 커다랗고 공격적인 바퀴벌레일 뿐이다.

때리면 그냥 터져 죽는 잡몹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15레벨쯤 되는 각성자라면 굳이 이놈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스포츠 센터에 있던 백여 명이나 되는 각성자들이 힘을 합쳐 충분히 싸워 이길 수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정신만 똑바로 차릴 수 있다면.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 이래선.. 죄다 휩쓸려나간다.’

임진수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벌레들을 들고 있던 쇠 파이프로 처내며 생각했다.

상상 이상으로 수가 불어났을 때,바퀴 떼의 진정한 무서움이발휘되니.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손바닥 보다 큰 크기의 벌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미리 충격에 대비하지 못한 이들은 물결치며 밀어닥치는 바퀴 때의 시각적인 효과에 압도당해 얼 타는 동안 물어뜯기고, 쓰러지고 그대로 파묻혀 죽는 거다.

“머더 베어!!”

임진수는 하나 남은 소환수인 곰을 불러내 벌레 떼와 싸워 보려 했다.

허나 워낙 개체 수가 많고 이곳저곳에서 기어들어오다 보니 곰 한 마리만으로는 벌레들을 전부 다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다른 동료가 더 필요했다. 물론 이미 대부분 전의를 상실하곤 도망치거나 패닉에 빠져 죽어버린 상태지만.

곧 그의 상의와 바지 속으로도 기어들어간 벌레들이 살점을 물어뜯기 시작했고 고통에 비명 지르며 쓰러진 그의 머리카락과 입으로도 바퀴벌레들이 기어 들어왔다.

“크아!! 씨!! 씨바!! 으아아!!”

임진수는 팔을 휘저으며 몸에 달라붙은 벌레들을 털어냈다.

그 또한 다른 이들처럼 벌레들이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감각 때문에 불쾌감과 혐오감이 들어 미칠 지경이었다.

곧 그리 발버둥 치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곰... 히든 클래스.. 오빠가 말한 비스트 테이머.. 맞죠?”

다가온 것은 정체모를 어떤 여자. 임진수는 그녀에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몸을 물어뜯는 벌레들을 떨궈내야 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자가 점차 가까이 다가올 수록 임진수의 몸에 달라붙어 그를 괴롭히던 벌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여자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모습이었다.

­사아아아

“커억.. 퉷.. 우욱.. 우웩에엑...”

임진수는 입안에서 오도독 씹히는 바퀴벌레를 토해냈다.

해장용으로 먹었던 컵라면까지 전부 다 올려내야만 했다.

“으.. 더러워..”

임진수에게 다가가던 여자는 곧 그가 구토를 시작하자 역겹다는 듯이 뒤로 물러섰다.

“으욱.. 시발..”

곧 그는 갑자스레 소란이 사라진 현상황에 이상함을 느끼고서 고개를 들었다.

어째선지 여자의 목소리 말고는 자신이 불러낸 곰이 싸우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기에.

“어...?”

촤아악!!!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하나 남은 사역마인 머더 베어가 속수 무책으로 얻어맞는 장면을 보았다.

머더 베어를 몰아붙이고 있는 건 입이 네 갈레로 벌어지는 대형견 크기의 털 하나 없는 검은 짐승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얼굴을 가진 새와 기다란 독침을 머더 베어의 등에 찔러대는 나방 같은 곤충도 있었다.

그 세 마리의 마수는 김예원의 소환수들이었다. 어젯밤 조준과 함께 이름을 지어준 해실이, 토실이, 방실이였다.

세 마리 마수는 귀여운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끔찍한 방식으로 머더 베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임진수는 식은땀이 흘렀다. 곧 그는 한참 싸우고 있던 곰에게서 눈을 돌려 자신을 빤히 처다보고 있는 여자를 향해 물었다.

“그거 뭐야. 손에 들고 있는 그거. 설마...”

“뭐긴요.. 당신의 소환수들이죠.”

김예원의 양손엔 죽은 송골매와 삼미호가 들려 있었다.

곧 그녀는 한참 머더 베어와 싸우고 있던 마수들에게 죽은 송골매와 삼미호를 던져 줬다.

그러자 인면조가 얼른 날아들어 임진수를 비웃으며 송골매를 씹어 삼켰고 사령충이 내던져진 삼미호의 시체에 달라붙어 척추에 독침을 박아 넣고선 기생상태로 돌입했다.

그건 애완동물의 주인 앞에서 보란 듯이 애완동물을 죽이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어쩌면 그보다 더 끔찍한 행위였다.

"이.. 이이이. 이 씨발 년이!!!"

완전히 멘탈이 터져 버린 임진수는 이마에 혈관이 터질 듯한 분노를 느끼며 자신을 비웃는 금발의 여인을 향해 뭐라 소리치려 했다.

허나 그전에 김예원은 소중한 주인인 조준에겐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소름 끼치는 눈웃음을 지으며 임진수에게 말했다.

“헤헤.. 아저씨.. 사역마 너무 약해요. 좆밥.”

일순 그녀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미소에서 느껴진 광기에 임진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 여자, 정상이 아니다.'

분명 어딘가 심하게 결핍되어 뒤틀린 종류의 인간이다.

임진수는 김예원에게서 마치 자신의 정신 나간 보스인 이찬성이 엿보였다.

사람을 해체하며 기괴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 이찬성처럼 비슷한 눈웃음을 짓는 김예원을 보며 임진수는 몸을 떨었다.

잘못 걸렸단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벌레 떼부터 같은 인간이라 여겨지지 않는 눈웃음을 치는 저 싸이코 같은 여자까지.

‘도대체 뭐가 여길 습격한 거지. 분명 저 여자가 전부가 아닐 거야... 싸워 봐야 승산이 없어.’

그렇게 임진수는 싸움을 포기하려 했다.

그때 김예원의 뒤로 누군가 또 비품실로 들어왔다.

“이 곰은 또 뭐야...?”

임진수가 김예원에게 넋이 나간 사이 비품실로 들어온 강화영은 머더 베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괴할 정도로 팔이 길쭉한 곰과 더 기괴하게 생긴 김예원의 소환수들이 싸우고 있으니 평범한 심미관을 가진 그녀로서는 심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예원 언니. 내가 그냥 끝내도 되지?”

“응. 미안.. 빨리 못 끝내서..”

“됐어. 그런 거로 사과좀 하지 마.”

“응.. 미안.”

“하아..”

곧 강화영의 스킬에 의해 머더베어가 속수무책으로 찢겨나갔다.

그 모습에 임진수는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들이 습격했다는 사실에 그는 여기서 자신이 더 발버둥 치고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대봤자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는 고통스러운 죽음뿐이란 사실을 깨달은 거다.

곧 머더 베어를 찢어 버린 강화영이 얼굴에 묻은 피를 쓱 닦으며 임진수에게 다가 갔다.

“하.. 별거 아니잖아. 주인님이 긴장하라고 해서 잔뜩 긴장했는데. 실망스러워. 정말이지. 수준이하라고. 하아..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그냥 곱게 따라 갈래?”

“하, 항복. 항복!!”

임진수는 김예원과 강화영을 보며 생각했다.

둘 다 눈이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외형의 미인들이며 또한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고 두려운 괴물들이라고.

“자, 그럼.”

강화영은 임진수의 턱을 후려갈겨 기절시킨 다음 그의 손목과 발목을 핏빛 단검으로 강하게 그어 힘줄을 죄다 끊어놓았다.

“후우... 언니. 이 자식 끌고 가자.”

“응..!”

그리 일곱 명의 히든 클래스 중 하나인 비스트 테이머 임진수가 무력화 됐다.

*****

스포츠 센터 2층 헬스장.

그곳에선 메르헤레와 포제션 워리어가 싸우고 있었다.

이미 메르의 낫질에 몸이 썰려 죽어 버린 무법자들의 시체 위에서.

“이 망할년이!!!”

메르헤레는 비명 지르는 포제션 워리어 이훈의 복부를 발로 후려 찼다.

콰앙!!!!

“끄억..”

발길질 한 방에 뒤로 몇 미터나 날아가 벽에 처박힌 이훈.

그의 몸은 이미 멍투성이에 상처투성이었다.

메르헤레가 작정하고 죽일 생각으로 낫을 휘둘렀다면 이미 진즉에 몸이 3등분되어 죽었겠지만 특이한 놈들은 일단 최대한 붙잡으라는 조준의 명령에 곧장 죽일 수가 없었다.

“끄아아아!!!!”

그렇게 이훈이 메르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며 쓰러지길 벌써 다섯 번째.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망신창이가 된 이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도리질 쳤다.

‘수백 명의 영혼을 갈아 마신 내가... 여자한테 진다고..?’

이훈은 참을 수 없었다. 이미 몸에 한계치까지 영혼을 강제로 빙의시킨 상태인데 지금으로서도 당해낼 수 없는 적이라니.

이미 내추럴을 포기하고 영혼 도핑을 잔뜩했는데 저런 여자하나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헬창 이훈은 치가 떨렸다.

마치 자신의 근본부터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는 메르헤레가 천사란 사실을 모른다.

근본부터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천사였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다면 아마 힘의 차이를 납득하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으리라.

“너, 너는 대체 뭐야! 어디서 너 같은 게 기어 나오고 지랄이냐고!!”

메르헤레는 이훈의 외침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대답 대신 바닥에 널브러진 아령을 몇 개 주워 들고는 도망치는 다른 무법자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집어던졌다.

콰직!! 꽈드득!!

“커헉!!!”

"끄아아아!!"

도망치던 무법자들의 뒤통수에 아령이 처박히고 몸통에 바벨이 틀어박혔다. 곧 쓰러진 놈들의 몸을 바퀴벌레들이 뒤덮었다.

'저 무게를 그냥 집어 던진다고? 도대체.. 나는 뭘 한거지..'

절망한 이훈은 점차 전의를 상실해갔다.

허나 메르는 항복하려는 이훈의 말을 끊고서 그저 무자비하게 후려팼다.

“커억...”

“얼마나 많은 영혼을 처먹은 거냐. 전부 토해내야 할 거다, 인간.”

그녀는 포제션 워리어인 이훈의 등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의 영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의 악행에 화가 났다는 그런 이유도 아니었다. 그저 등 뒤에서 비명 지르는 망령들의 울음소리가 듣기 거북했을 뿐이다.

타천사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조준의 아래로 들어간 이후 선과 악에 대한 문제나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들먹이지 않게 된 메르였다. 그저 자신의 행복과 기분에 따라 행동하게 됐다.

“그, 그 마안... 커허억..!!”

메르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죽일 기세로 이훈의 얼굴을 내려쳤다. 그리 때릴 수록 먼지를 털어내듯 이훈의 등에 달라붙어 있던 영혼들이 빠져나갔다.

“끄르륵...”

결국 얼굴을 몇 대나 얻어맞은 끝에 축 늘어진 이훈.

그의 입에서 소화가 덜된 영혼들이 무더기로 빠져나간다.

메르헤레는 기절한 그의 오른 다리를 붙잡고서 질질 끌고 나갔다.

이 인간의 처리는 주인의 몫이기에.

*****

“하아.. 하아.. 제기랄.. 너희는 또 뭐냐..”

바바리안 노지국은 갑작스럽게 부하들을 집어삼킨 벌레 떼를 피해 유리창을 깨곤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대로 도망가려는 그때 스포츠 센터의 입구에 서 있던 한아람과 강희선을 마주치고 말았다.이미 그녀들의 주변에는 사람몸통만 한 망치에 으깨져 피 곤죽이 된 무법자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저년들은 뭐지...? 안에서 날뛰던 그 단발머리 여자와 한패인가?'

그는 날뛰는 한아름을 피해 달아난 거였다.

“후우.. 야. 너. 클래스가 뭐야..?”

한참 어찌 도주할지 간을 보던 노지국에게 한아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그녀의 이마엔 산양 뿔과 같이 말려들어간 뿔이 하나 자라나 있었다.

한아람과 강희선은 건물 밖으로 도망치던 무법자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는 범상치 않은 플레이어를 보곤 저 놈이 히든 클래스겠구나 싶었다.

“아, 알아서 뭐 하게!!”

노지국의 외침에 강희선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줄 수도 있어요.”

“이.. 씹년들이..”

노지국은 아직도 몸에 달라붙어 있는 벌레들을 대충 털어내며 그녀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녀들과 마주치는 순간 그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절대 못 이긴다는 사실을.

‘저 무식하게 큰 망치는 대체.. 주변에 시체들도 죄다 터져 죽어 있고.. 겨우 벌레 떼를 뚫고 나왔더니 저 미친 여자들은 뭐야..!’

달리며 노지국은 생각했다.

자신도 분명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을 만큼 강하다 생각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특히 저 분홍 머리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상상 그 이상이다. 마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뭔가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건 바바리안 클래스인 노지국의 오감이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한아람의 마기였다.

한아람의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와 마기를 노지국은 싸워 보기도 전에 깨닫곤 자신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라 단정 짓고서 도주를 선택한거다.

개인의 생존에 특화된 클래스의 소유자답게 노지국은 팀원들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야.. 도망가지 마!!!”

“자, 잠깐 아람아 그러면 저 사람 죽... 었네.. 하아...”

끓어오르던 마기를 겨우 통제 중이던 한아람은노지국의 도주에순간 분노했다.

결국 그녀는 고함을 지르며 망치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냅다 집어던졌다.

휘웅­! 콰지지직!!

“어. 어?”

망치가 도주하던 노지국의 다리를 박살 내곤 그를 깔아뭉개며 몸을 짓이겼다.

그대로 으깨지며 죽어 버린 노지국.

“아. 젠장. 죽였다. 언니.. 나 좀 말려주지..”

“아니, 아람아.. 내가 말리기도 전에 던져놓곤..”

"어, 언니. 제발 비밀로 해줘요. 준이한테 말하지 말고."

"그게 되겠니..?"

순간 한아람은 최대한 잡을 수 있는 놈은 살려서 붙잡아 두라는 조준의 명령이 떠올랐다.

“끄윽... 젠장.”

물론 순간적인 분노에 사로잡힌 그녀는 본의 아니게 자꾸만 명령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강희선이 말려본다고 말려봤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칠 인의 히든 클래스 중 셋이 무력화됐다. 하나는 사로잡기도 전에 죽어버렸지만.

어찌되었든 조준의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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