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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92화 (92/221)

〈 92화 〉 91. 함부로 들여다보지 말라

* * *

소환수를 얻었으면 당장 소환해 봐야지.

“음지나방 소환.”

마나가 쭉 빠져나갔다. 칠흑바퀴 소환에 마나가 30정도 사용 불가 상태로 묶이게 되는데 여기다 음지나방까지 불러내자 총 80의 마나가 사용 불가 상태가 됐다.

‘마력 스탯이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소환수를 두 마리나 동시에 불러내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겠지.’

마력 수치 80이 사용불가 상태로 묶여 버리면 굉장히 큰 손실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난 여기서 키시리아까지 추가로 소환해도 스킬 펑펑 쓰면서 싸울 수 있으니까. 전부 흑사의 내단과 흑사의 뒤틀린 내단 덕분이다. 정말이지 이 두 내단 덕에 생존 난이도가 확 낮아졌다.

“푸스.. 푸스푸스...”

그리 흑사의 내단을 먹길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을 때쯤 내 앞에 어둠이 뭉쳐들더니 한 마리의 거대한 나방으로 변했다.

“우와...”

겉보기엔 칠흑바퀴만큼의 혐오감이 들지 않았다. 그냥 검은색에 흰색이 기묘하게 섞인 무채색 조합의 나방이었다. 크기가 조금 많이 커다란 평범한 곤충 같았다. 정면에서 얼핏 봤을 때는 말이다.

"으윽.. 역시."

허나 조금만 각도를 틀어도 놈의 꽁무니에 달린 네 개의 촉수인지 뭔지 모를 움찔거리는 생식기가 보였다. 털이 잔뜩 난 이상한 부위가 꿈틀거리는 걸 보고 있으니 절로 식욕이 감퇴하며 정수리가 찌릿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놈의 생식기를 보는 순간 오만정이 다 떨어지며 전신의 소름이 쫙 끼쳤다.

‘시발.. 그럼 그렇지. 내 소환수가 안 징그러울 리가 없지.’

목도한 순간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기분이다.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

‘이 새끼 이거... 가만 보니 빌어먹을 갠지스 나방이잖아..’

색 조합만 다를 뿐 신체적 특징은 거의 똑같았다. 오히려 크기가 커지니 더욱더 징그러워졌다.

칠흑바퀴를 처음 소환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정붙이기 힘들 것 같다는 기분.

‘뭐.. 결국은 칠흑바퀴도 성능 때문에 정이 들어 버렸으니..’

칠흑바퀴도 처음엔 엄청 못마땅했다. 생긴 게 워낙 징그럽고 끔찍해서. 그래도 칠흑바퀴가 몇 번이나 공적을 세우고 나니 이젠 그냥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마저 든다. 이 녀석도 몇번 활약하면 그리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너도 훌륭하게 칠흑바퀴를 따라 맡은바 역할을 잘해라.”

“푸스스...”

나는 애써 꿈틀거리고 꿀렁거리는 놈의 징그러운 생식기에서 눈을 떼고 격려의 말을 해줬다.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듬이로 내 손을 툭툭 치는 걸 보아하니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날개가 커서 그런지 칠흑바퀴보다 더 큰 것 같네.’

난 음지나방의 전체적인 외향을 살폈다. 본체의 크기는 딱 사람 몸통만하다. 그러나 비늘가루를 흘리고 있는 날개가 굉장히 커서 경차 정도의 크기로 느껴진다.

“콜록. 콜록.. 가루 엄청 떨어지잖아..”

또한 놈은 가만히 내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주위에 비늘가루를 흩뿌렸다. 근처에 오래 뒀다간 숨 쉬기가 굉장히 곤란해질 것 같다.

“일단 이 주변을 날면서 순찰해.”

“푸스...”

펄럭!

음지나방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녀석의 날개에서 분진이 우수수 떨어지며 주변에 흩날렸다. 무슨 꽃가루 같다. 미세먼지 장난 아니다.

‘가루가 옷에 잔뜩 묻었네..’

실시간으로 주인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소환수라니... 가까이에 두기엔 너무나 징그럽고 불쾌한 생명체였다. 심지어 밤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은 기괴해서 두려움을 유발 시켰다.

벌써부터 든든하기 그지없다. 칠흑바퀴와 함께 작정하고 적진에 풀어두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 벌써 기대된다.

아군마저 꺼려지는 외형에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가루까지. 심지어 음지나방의 비늘가루는 부식성 가루로 변환시켜 공중에서 살포해 지상을 타격할 수도 있었다. 미국 농경지에서 드론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짓이 나도 가능해진 거다.

‘부식성 가루를 공중폭격하다니..’

적으로 만나면 골치 아픈 종류다. 내가 생각해도 상대하기 답답하고 껄끄러운 생명체인데 음지나방을 직접 상대하게 될 적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와 적대할 놈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마트 주변을 날며 이곳저곳에 알을 까서 스켈레톤도 죽이고 부식 뎀을 먹일 수 있는 어찌보면 칠흑바퀴보다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가진 소환수.

‘하지만 인간 출신인 칠흑바퀴보단 머리가 안돌아가겠지.’

난 인디크론에게 혹시 저 녀석도 인간출신이냐고 물었다. 인디크론은 곧장 아니라고 대답했다.

본명이 아퀴나스인 칠흑바퀴는 인디크론이 확실히 인간이었다고 공언했으나 음지 나방은 아니다. 저건 심연태생의 생명체. 칠흑바퀴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도 하늘을 날면서 지상을 공격할 수 있단 건 굉장히 큰 메리트지.’

난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하얀 가루가 묻은 패딩을 벗어 탈탈 털었다.

고양이 털 마냥 옷에 달라붙은 가루는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부식성 가루도 이런 식으로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면, 옷이나 피부에 뭍어 그 부위를 계속 썩게 만들겠지. 사실상 공격당한 적들은 그냥 반쯤 죽은 셈이나 다름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군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단 것이다. 이건 내가 잘 조율해서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자, 그럼 다음은...”

심연계통은 음지나방을 소환하며 영구계약 슬롯에 빈칸을 다 채웠다. 그러니 이번엔 혼돈을 관측해볼 차례다.

기왕 뽑기를 성공한 거 끝까지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대충 경계를 좀 더 서다가 잘 생각이었는데 지금 뽑기를 시도하면 하나 더 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강렬한 촉이 왔다.

“크롤­빈­케시오”

심연관측과 마찬가지로 양손가락을 맞대 삼각형을 만든 다음 혼돈관측용 주문을 외웠다.

'크롤­빈'이라는 단어까지는 심연관측 주문과 똑같은걸로 봐서 이게 무언가를 본다는 의미인 듯했다.

스킬을 사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으로 만든 삼각형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극채색으로 물들어갔다. 마치 우주에서 온 색체마냥 형형색색 계속해서 변화하며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빛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혼돈관측인가...'

심연 관측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기분이 우울해지고 묘하게 절망감에 빠지는 느낌이 든다면 이건 정신이 붕 뜨고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으윽..”

난 얼른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더 보고 있었다간 뇌가 이상하게 꼬여 들어갈 것 같았다. 진짜 물리적으로 뇌가 꼬여 버린다는 말이다.

[관측실패.]

“젠장.”

아까운 업이 하나 날아갔다. 업 하나에 사람 목숨 하나라고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다. 점차 재앙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난이도가 급증해 계속해서 공양할 인간이 줄어드는 판국에 업 하나가 그냥 날아가자 너무 아까웠다.

‘휴우.. 첫트에 성공할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어.’

될 때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도 그래 왔으니까. 하다보면 되겠지.

뭔가를 뽑는 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냥 마음을 비우고 돌리는 거다. 나올 때까지. 업은 충분하다. 그동안 잡아 죽인 인간이 제법 많으니까.

“크롤­빈­케시아”

그리 몇 번이나 더 모아둔 업을 무용하게 소모해가며 혼돈관측 스킬을 사용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대략 12번쯤 관측을 시도했을 때 드디어 뭔가 반응이 왔다.

[꾸룩.. 꾸루룩..]

이 기기묘묘한 소리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뭔가 꾸덕한 것들이 꽉 쥐어짜네지는 소리? 마치 어린 애들이 가지고 노는 슬라임이라는 장난감을 꽉 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날 것 같은 소리였다.

“뭐, 뭐지..?”

왠지 야릇하기까지 한 살이 겹쳐지고 뭉개지는 소리에 의문이 들었다.

난 그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혼돈과 연결된 구멍으로 귀를 가져다 댔다.

­할짝..

“으아!! 시발!”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자 구멍 뭔가 튀어나와 내 귓가를 핥고 사라졌다. 이건.. 마치 카쉬낙스가 나를 맛봤을 때 느꼈던 감촉과 비슷했다.

그때 당황한 나를 향해 혼돈의 존재가 의사가 담긴 소리를 냈다.

[꾸룩.. 꾸루룩..]

저건 웃음소리다.

왜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저쪽에서 내가 강제로 알아듣게 만들었다고 봐야한다. 나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감정을 주입하고 있다.

[귀... 여? 운? 인간... 꾸룩.. 인간... 인간.. 인간. 인간. 컬티스트. 나의 인간. 나의 작은 인간. 나의 것. 내 것. 내꺼.]

“미친.. 뭐라는 거야..”

저것의 의사가 대략적으로 나에게 전달된다.

그 속엔 나에 대한 집착이 가득 담겨있었다. 격한 감정들이 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저건 많이 위험하다. 키시리아 급으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꿈틀거리는 악의가 만마의 총애에 격하게 반응합니다.]

[뒤틀린 곳에 자리 잡은 존재. ‘첫 번째 촉수’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계약조건: 레벨 15 이상일 것. 마력 스탯이 500 이상일 것. 카쉬낙스의 종복일 것.]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된 상태입니다.]

[‘첫 번째 촉수’와 Áü Å×½ºÆ®…….]

[경고! 오류발생! 경고!¹®ÀÚ ±úÁü Å…….]

“이, 이게 뭐야!!”

문자가 깨져나간다. 동시에 혼돈과 이어진 구멍에서 촉수다발이 튀어나와 내 얼굴을 감쌌다.

끈적끈적하고.. 따스한 촉수가 내 숨통을 조여왔다.

그러다 얼굴을 감싼 촉수중 하나가 귓구멍으로.. 들어... 와서.. 파고들어서... 어.. 이게.. 뭐지..?

“으아아악!!!!”

고통.

뇌를 헤집는 듯한 끔찍한 아픔.

아님.

따스함.

존중받는 듯한 포근한 감각.

비슷함.

즐거움.

간지러운 듯한 기묘한 쾌락.

발견.

쾌락. 기쁨. 웃음. 미소.

주입.

“하하하하!!!!”

“오, 오빠!!!”

“아니 시발!! 저게 뭐야!!!”

“칼!! 빨리 잘라야 해! 칼 가져와!!!”

“이거 안 잘려요!!! 메르언니!!! 뒤에서 오빠 좀 당겨봐!!”

“빌어먹을!! 꼼짝도 안 한다!! 연결된 손, 손목을 잘라야..”

“무슨 미친 소리야!!”

어렴풋이 여자들의 비명이 들린다. 그러나 곧 사라졌다.

나는 어딘가에 서있었다. 여긴 어딘가였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풀들이 드러눕고 밤하늘에 떠오른눈동자가 나를 주시한다.

나를 주시한다. 나를 주시한다. 나를 주시한다.

무언가가 나를 보고 있다.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에이낙스.

우린 친구다. 친한 친구. 내 단짝.

[귀여운 인간. 나랑 계약할래? 내가 잘해 줄게.]

“응. 좋아! 우리 계약하자!”

사고가 완전히 정지한다.

나는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계약해야 한다.

“굴라­드­빌레.”

입이 멋대로 움직여 영구계약 주문을 읊었다.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동시에 귀로 파고들었던 촉수가 쑤욱 빠져나갔다.

촉수가 빠져나간 귓가에서 피가 흘러내렸으나 빠져나가며 촉수가 내뿜은 점액질이 찢어진 귀의 상처에 스며들더니 곧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다. 파괴된 고막이 치유됐다.

그것까지 확인한 후 내 얼굴을 감싸고 있던 촉수다발이 꼼지락거리며 다시 혼돈 속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풀리지 않던 혼돈관측 스킬이 해제되며 나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여 미친 듯이 구토했다.

“우욱! 우웨에엑...”

오늘 먹었던 저녁 메뉴가 그대로 올라온다. 속이 메스껍다. 머리가 빙빙 돈다. 시야가 정돈되지 않고 세상이 이상한 색으로 비춰 보였다. 반짝인다. 온통 반짝이가 가득하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감정들이 남아 나를 미치게 만든다.

왜 지금의 상황이 즐겁다고 느껴지는 거지?

이건 내 감정이 아니다. 그 촉수의 감정이다.

지금 내 정신은 살짝 오염된 상태 같다.

“시... 시발.. 방금.. 내 머릿속에.. 뭔가 들어왔어.. 코.. 코코아가 마시고 싶어.”

“오빠아아... 흐윽.. 오빠.. 코코아.. 끓여줄게요.. 오빠아.. 제발 아프지 좀 마..”

은지가 울면서 나를 껴안았다.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은 달래줄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망가진 내 시야를 바로 잡기도 벅찼다.

곧 나의 여자들이 횡설수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나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갔다.

희선 누나가 운디네를 불러내 내 몸에 묻은 점액질과 토사물을 깨끗히 씻겨 줬다.

나는 그녀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옷을 갈아입고 옥상에 놓인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곧 따뜻하게 데워진 코코아를 한잔 받았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코코아를 마시자 점점 오염된 정신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다, 다들.. 미, 미안.”

“하아... 진짜 오빠는 왜 항상 혼자서.. 휴우. 이번엔 또 뭘 먹으려고 한 거예요..?”

“아냐. 그런 게 아냐. 그냥.. 소환수를 찾고 있었는데. 이상한 게.. 나타났어.”

“이상한 거요?”

“어.. 그게...”

난 방금 전 내가 계약한 소환수인지 뭔지 모를 괴물을 떠올렸다.

촉수가 내 귀를 파고들어온 순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뇌가 만져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의 감촉을 떠올리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곧 메르가 나를 뒤에서 껴안아 진정시켜줬다. 묵묵히 내 가슴팍을 쓰다듬어 주는 그녀의 손길에 나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건.. 거대한 눈이 달린 괴물이었어.”

그 촉수가 보여준 것. 난 어딘지 모를 장소에 혼자 서 있었다. 그런 환각을 보았다.

들판이었다. 무너진 세계의 일부였던 것 같다. 어딘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리고 그곳의 달... 달인 줄 알았던 그 괴물이 하늘에 떠올라 나를 빤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존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 괴물을 아주 친한 나의 하나뿐인 소꿉친구라고 여기게 됐다.

항상 왕따였던 나한테 소꿉친구 같은 건 단 한 명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나는 그걸 내 소중한 소꿉친구라고...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정신 공격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이후 나는 오직 계약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일종의 강박증처럼 같은 말을 되뇌며 결국 그 괴물이 원하는 데로 영구계약해 버리고 말았다.

이건 명백히 선을 넘은 행위다. 난 따져 묻듯 카쉬낙스를 불렀다.

‘카.. 카쉬낙스님.. 이게 대체...’

그러자 카쉬낙스는 우물쭈물 거리며 답했다.

[그건.. 내 첫 번째 촉수다. 훌륭한 아군이 되어 주겠지. 축하한다.]

“아니, 지금 축하받을 때가 아니잖아요!! 이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건 그저 너와 하나가 되고 싶었을 뿐. 위험하지 않다.]

“아, 아니.. 시발.. 그게 위험한 거잖아요...”

[...]

카쉬낙스의 존재감이 다시 옅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잇지 않고 다시 뒤로 물러서 버렸다.

곧 그 자리에 인디크론이 나타나 끼어들었다.

[부끄러워서 도망쳤군.]

“예? 아니, 방금 저 진짜 뒤질 뻔했는데.. 부끄러워서 도망을 쳤다고요?”

[그래. '첫 번째 촉수'란 그 촉수 괴물의 욕구나 욕망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종복이지. 일종의 감정동조 상태다. 그러니까 아마 너와 하나가 되고 싶은 건 그 소환수가 아니라 그 소환수의 본체나 다름없는 카쉬낙스 본인이겠지.]

도대체 혼돈이란 장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첫 번째 촉수가 나에게 품은 그 질척거리고 기분 나쁜 집착은 본체인 카쉬낙스의 것인 모양이었다.

[닥쳐라. 음침한 년아.]

[음침한 건 네년이고.]

곧 갑자기 서로를 비방하며 싸우기 시작한 악신들을 얼른 내 머릿속에서 쫓아냈다. 머리가 웅웅 울려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또 다시 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젠장...”

악신의 사랑이 너무 무겁다.

무겁고 무거워서 소름 끼치고 두렵다.

나와 하나가 되고 싶다니.. 대체..

나는 아찔해지는 정신을 추스르며 코코아를 마셨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게 마시고 싶어진 거지? 모르겠다.

고민하니 또 혼란스러워질 뿐이라 나는 그저 메르의 손길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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