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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93화 (93/221)

〈 93화 〉 92. 숲의 출입권을 얻다

* * *

눈을 떠보니 나는 텐트 안이었다.

어느새 잠들어 버린 나를 그녀들이 여기로 옮긴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팔을 꼭 껴안고 잠든 예원이와 아름이가 보였다.

다른 여자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잠들어 있었다. 인원수가 많아 잘 때는 텐트를 2개로 나눠서 자는데 오늘은 나, 예원이, 아름이, 하린이가 한 텐트에서 자는 날이었다.

“음..”

아름이와 예원이가 내 팔을 꽉 껴안고 잠들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름이 녀석은 나에게 다리까지 하나 올린 채 잠들어 있었다. 꽤 만족스러우면서 불편하다.

“응..? 오빠 일어났네?”

“어. 하린아. 좋은 아침이다.”

“흐음..”

하린이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쪼옥, 쭈읍..”

난 어찌 거부하지도 못한 채 그녀와 입을 맞췄다.

“하아..”

곧 한참이나 내 혀를 빨던 하린이가 입술을 땠다. 그러곤 아직도 잠들어 있는 예원이와 아름이를 흔들어 깨웠다.

“다들 아침이야. 일어나.”

“응.. 하~암..”

둘 다 별다른 저항 없이 일어났다.

“오빠.. 이제 안아파요?”

잠이 덜 깬 예원이가 눈을 비비며 물어왔다.

“이젠 괜찮아.”

어제 코코아를 한잔 마시고 메르의 손길을 느끼며 잠들었었다. 잠들기 전까진 계속 내 정신이 그 촉수 괴물에게 지배당하면 어쩌지 싶어서 불안했지만 자고 일어나니 조금 나아졌다.

마치 나쁜 악몽을 꾼 느낌이다.

이후 우리는 텐트 밖으로 나갔다. 이미 옆 텐트의 그녀들은 전부 깬 상태였다. 그녀들이 말해 주길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단다. 그냥 평화롭게 하룻밤이 넘어간 것이다.

“혹시 지난주처럼 며칠 뒤에 갑자기 해골 병사 대군이 습격할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주변 순찰이나 돌자.”

“예!”

일단은 하수도에는 칠흑바퀴를 들여보내 정찰시킬 생각이다.

‘문제는 음지나방인데...’

음지나방은 빛을 싫어하는지 낮에는 활동을 거부했다. 그저 마트 외벽에 달라붙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강하게 명령하면 활동을 시작하겠지만 그러면 실시간으로 친밀도가 떨어짐과 동시에 음지나방이 햇빛에 데미지를 입어 소환해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떴다.

‘낮에 못쓰면 좀...’

생긴 것도 역겨운데 낮 중엔 잠을 자야 한다니... 심연태생 소환수라 그런지 빛에 민감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칠흑바퀴가 최고구만..’

인간출신인 칠흑바퀴는 오히려 낮 중에 더 활발하다. 보아하니 어둠 속에서 갇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기어 나와서 그런지 태양 아래에서 활동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우린 아침을 대충 때운 다음 듀라한과 이훈, 강은정에게 마트를 맡겨두고 다 같이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거리엔 좀비나 스켈레톤이 거의 없었다. 업데이트 내역을 보아하니 이놈들은 이제 서로 모여드는 습성이 생겼다던데. 아마 높은 확률로 지하나 어딘가 모일만한 곳에 한가득 모여 들어 방심했을 때를 노려 갑자기 튀어나오겠지.

그런 생각하고 있으니 아름이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저기.. 저 옷집 좀 들렸다가요.”

“그래. 어차피 주인도 없으니까. 가지고 싶은 거 다 서리해가자.”

이후 우린 빈 가게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옷이나 물건들을 서리했다. 간혹 어떤 가게엔 뼈만 남은 가게 주인이 이를 딱딱 거리며 우리를 환영해줬지만 우린 거칠게 가게 주인을 박살 냈다.

종국엔 마트에 있던 카트까지 끌고 나와 빈 가게들에 남은 물자들을 옮겼다. 그리하다 보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정말로 우리마트에 찾아온 불행은 전부 불길한 초커가 원인이었던 건지 그게 사라지니 이상 하리 만치 평화로웠다. 그런데 나는 이 기묘한 평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터져야 하는 풍선이 터지지 않고 계속 커지는 느낌이다. 더 크게 폭발하려고 이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이번 업데이트는 무탈하게 지나가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 묘한 조용함에 닭살이 돋고 있을 때 칠흑바퀴에게서 정신파가 날아왔다.

[사샤삿..]

그 목소리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수도를 한참이나 돌아다닌 칠흑바퀴조차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분명 하수도엔 지난날 스포츠 센터를 습격한다고 떼 몰살시킨 좀비들의 시체가 가득했을 텐데. 어찌 스켈레톤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걸까.

이건 명백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폭풍전야일까.. 아니면 드디어 좀 휴식기간이 생긴 걸까. 아니지. 내 삶에 휴식이라니.. 쉬다가 세계 멸망한 것도 몰랐는데.. 나에게 휴식은 어울리지 않아. 분명... 지금 우리는 태풍의 눈에 있는 걸 거야.. 잠깐의 평화겠지.’

나는 설 연휴 게임한다고 세계가 멸망한 것도 몰랐었다. 무려 남들보다 3일이나 늦게 좀비 사태를 알아차렸었지. 내 인생이 그랬다. 항상 좀 잘 풀리려고 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좀 쉬려고 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고로 지금의 평화는 닥쳐올 거대한 폭풍에 대비할 시간임이 분명했다. 평화가 길어질 수록 나는 더욱더 불안 해졌다.

그리 시간이 더 지나고 수요일 아침이 됐다.

퓨웅!

옥상에 빛줄기가 하나 떨어지더니 그사이로 허름하고 낡은 복장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보부상이었다. 안 그래도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안 와서 걱정하던 참이었다. 이미 실종자들의 숲 이벤트가 시작됐는데 남들보다 늦게 출발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이미 월요일, 화요일을 놓쳤지만... 그래도 아예 보부상이 안 나타나서 기회조차 없는 놈들보단 내가 낫지.’

분명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가고 싶은 놈들이 수두룩할 거다. 숲의 어딘가에 있을 신사에서 신의 우상을 찾으면 생존에 유리한 성역을 지정할 수 있으니까.

성역만 지정할 수 있다면 마트는 더욱 안전해진다. 귀신들은 아예 들어올 수도 없고 인근의 좀비들도 약해지며 근처에 귀문이 열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으니까.

“이야, 또 보는군.”

“오랜만입니다.”

“허허. 거의 매주 보는 것 같군 그래. 아, 자네 지크와는 만나 봤나?”

“예. 엄청 호탕하고.. 크시던데.”

“하하하! 맞아. 그 친구가 누굴 닮았는지 좀 크긴 하지. 그에게서 어떤 보상을 받았나?”

“이 검하고 토츠미르의 나팔총이랑 나가라자의 즙까지 받았습니다.”

“허어. 자네 이야기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지? 용잡이의 보상이 후하기까지 했다하니 부럽구만.”

그는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지크와 만나 보았냐고 웃으며 물어왔다. 그와 만나 꽤 후한 보상을 받았다고 하자 보부상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즐거워했다.

나는 그와 잠시 잡담을 더 나누다가 넌지시 실종자들의 숲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실종자들의 숲에 대한 소문을 아십니까?”

“허허.. 자네도 그 끔찍한 곳에 대한 소문을 들었나보군.”

내가 이벤트에 대해 언급하자 보부상은 마치 연기자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음을 확인하고선 나에게 상체를 수그려 소문에 대해 알려 줬다.

“자네. 혹시 그 숲에 들어가 볼 생각인가?”

“예. 거기에 있는 신사를 찾아낼 생각입니다.”

“허어... 쉽지 않을걸세. 일단은 나에게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하나 있어. 2인 동반으로 숲에 들어갈 수 있지.”

곧 보부상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낡아빠진 기차표 같은걸 하나 꺼냈다. 거기엔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실종자들의 숲 출입권: 실종자들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권입니다.]

[가격: 10000C] [개수: 1개]

“저한테 파시죠.”

“흐흐.. 그러지. 자, 받아 가게.”

나는 얼른 입장권을 품에 챙겨 넣었다. 1만 코인쯤은 아깝지 않다. 신의 우상을 얻을 수 있다면 만 코인쯤이야. 뭐, 전혀 아깝지 않지.

“실종자들의 숲은 이번 주 일요일 밤에 열릴 걸세. 아마 자정이 되는 순간..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이 되는 순간 출입권을 가진 이들이 일제히 숲으로 전송이 될 거야. 그때 함께 들어갈 사람의 손이나 신체 부위를 꼭 붙잡고 있게. 2인까지는 동반 출입이 가능하니까. 참고로 3인 이상 신체를 접촉하고 있을 경우 랜덤으로 2명을 날려 버리니 주의하게.”

“예. 감사합니다.”

이거 일요일에 일제히 전송되는 구조였다. 다행히 실종자들의 숲에 나보다 먼저 들어간 놈은 없다는 이야기다.

“아 참, 참고로 전송되면 불특정한 위치에 떨어질 걸세. 그리고 실종자들의 숲은 7일짜리 던전이니 주의하게.”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들어가면 7일 안에 빠져나와야 한다는 소릴세.”

“만약에 7일 안에 못 빠져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거야.. 뭐... 다음에 실종자들의 숲 이벤트가 복각할 때까지 숲에서 생존해야지.”

“어, 언제 복각할지는...”

“아무도 모르네. 이 엿 같은 게임의 운영자들만이 알겠지... 이크. 메타발언은 대충 넘겨야하는 거 알지?”

“아, 예.”

“크흠.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장사치가 이야기에 빠져 있으면 안 되지. 자, 어디 둘러보게. 이번엔 상비물품이 들어왔어. 세 가지 다 유용한 물건들이네. 부디 전부 사갔으면 좋겠네.”

서둘러 이야기를 마친 그는 능숙하게 좌판을 깔고선 이런저런 물건을 올려 뒀다. 6개의 물건들과 추가로 놓인 3종류의 물품들이 보인다.

“이것들이 새로 들어온 물건들이야. 둘러보게. 가격도 적당하고. 솔직히 성능에 비해 무척이나 싸게 파는 중이지. 상부의 지침이 그렇더군.”

길쭉한 유리병에 들어 있는 물약이 3개. 일본 신사에서 팔법한 모양의 부적이 5개. 캔 음료가 들어 있는 상자가 하나.

각각 여신의 눈물과 귀방부적, 여명 세븐이다.

[여신의 눈물: 진짜 여신의 눈물은 아닙니다. 모방제품입니다. 상처나 질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플리카라서 신체결손이나 만성질환까지는 치료하지 못합니다.]

[가격: 1000C] [개수: 3개]

[귀방부적: 퇴마사들의 염원이 깃든 액막이 부적입니다. 귀신들의 정신 공격을 방어해줍니다. 부적 소유자 주변에 영체들이 다가오지 못합니다. 착용 후 2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 500C] [개수: 5개]

[여명 세븐: 복용할 경우 피로도가 낮아집니다. 너무 많이 복용할 경우 급사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연달아 4일 이상 복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약효가 떨어지면 졸음이 몰려옵니다.]

[가격: 200C] [개수: 10개]

나는 그가 꺼내둔 상비물품들을 전부 구매했다. 총 7천 5백 코인이 소모됐지만 간지럽지도 않을 수준의 소소한 지출이었다. 이미 출입권으로 1만 코인을 태웠는데 고작 칠천 코인 언저리는 가소롭다.

더욱이 내 노예들이 사냥한 좀비들의 코인이 전부 나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이 정도 소비는 이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난 좌판에 놓인 다른 물건도 둘러봤다.

[체취 제거제: 정수리에 뿌릴 경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해 줍니다. 짐승형 생물들의 후각을 교란 시킬 수 있습니다. 5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됩니다.]

[가격: 1500C]

[대용량 마법 가방: 안이 밖보다 큽니다! 1톤에 달하는 양의 물품을 안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아공간 주머니로 취급됩니다.]

[가격: 25000C]

[부부동침의 목걸이: 한 쌍의 목걸이입니다. 반으로 분리가 가능하며 목걸이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남은 반쪽에게 향하려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가격: 3300C]

[초고성능 정화기: 오염수를 넣으면 깨끗한 물로 정화시켜줍니다. 대부분의 이물질을 걸러내지만 방사능까진 처리하지 못합니다.]

[가격: 1200C]

[살인해충 기피제: 몸에 뿌려 둘 경우 각종 위험한 벌레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살인 진드기나 다양한 종류의 해충들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8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됩니다.]

[가격:1600C]

[조련용 밧줄: 길들이고 싶은 짐승의 목에 밧줄을 채우십시오. 밧줄이 채워져 있는 동안엔 당신의 말을 따를 것입니다. 그게 설령 인간이라 할지라도...]

[가격: 8000C]

나는 보부상이 보여 준 물건들의 보며 어떤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하나같이 이번 실종자들의 숲에서 유용할 것 같은 물건이다...’

어쩌면 보부상은 일부러 나에게 꼭 필요할 법한 물건들만 보여줬을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보수상에 뭔가 말을 건네려니 그가 먼저 나를 향해 찡끗 윙크를 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발언하지 말고, 넘어가게. 너무 챙겨 준 게 티 나면 나중에 징계 들어와.”

“정말 감사합니다. 전부 구입하겠습니다.”

나는 좌판에 올려진 물건들을 싹 쓸어 담았다. 이번에 그는 대놓고 나를 지원해줬다. 다음에 은혜를 갚을 때가 있으면 오늘 일을 꼭 기억해 뒀다 도움을 줘야겠다.

“역시 자네는 통이 커. 항상 전부 다 구입해 줘서 고마울 따름일세.”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나는 떠나려는 그에게 문득 보타밀리의 조언이 생각나 질문했다.

피임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린이의 피임 때문에 고민이 많았으니까. 어쩌면 보부상이 무언가 정보를 줄지도 몰랐다. 아니면 다음에 올 때 피임약을 가져온다거나.

“흐음.. 피임이라. 하긴, 멸망한 세계에서 피임은 굉장히 중요하지. 이런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를 원망할지도 모르니까... 자네 지난번에 암시장 열쇠 받았었지?”

“아, 예.”

“약은 약사에게. 이게 내 조언일세.”

약은 약사에게. 암시장에 약사라 하면 마약상 밖에 없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머리 둘 달린 마약상에게 찾아가라는 소리구나.

“그럼 건투를 비네. 다음에도 살아서 만났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나는 떠나가는 보부상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곧 보부상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흐음...”

일요일 밤에 실종자들의 숲으로 가기 전에 암시장에도 들려야 하고 될 수 있다면 무기상과 보석상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누구를 데려갈 것인가 인데...’

나는 두 명을 후보에 올렸다.

탐지견이 된 하린이.

숲지기인 희선 누나.

“흐음...”

이 두 명이 아마 숲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환수를 다루는 예원이나 화영이도 생각해 봤지만 탐지성능은 하린이가 더 낫고 숲지기인 희선 누나가 더 능숙하게 숲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준아!!”

“어? 희선 누나. 왜요?”

“저, 저기. 사람들이 오고 있어.”

“뭐요?”

옥상에 앉아 있던 나는 난간에 몸을 반쯤 내밀어 마트 쪽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총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었다. 그들 중엔 아직 어린 아이도 두명 정도 끼여있었다. 그리고 다들 어디서 도망이라도 친 모양인지 행색이 초라했다.

“거기!! 다들 정지!!”

내가 옥상에서 소리치자 선두를 걷고 있던 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일행들을 정지시켰다.

난 어느새 완전 무장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람이와 아름이를 양쪽에 끼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가 보니 벌써 은지와 화영이가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무기를 쥐고서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위협 중이었다.

메르는 팔짱을 끼고서 다가온 인원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예원이는 세 마리의 소환수를 전부 불러내 대기 시켜둔 상태였다.

그런 와중 하린이는 코를 벌름이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킁킁.. 별다른 위험한 냄새는 안나요.”

“오.. 그런 것도 알아?”

“헤헤.. 기본이죠.”

나는 하린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곤 마트 입구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언제든지 촉수발출을 사용할 수 있게끔 준비한 다음 마트로 다가온 일단의 무리를 향해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무릎 꿇어. 안 그러면 죽인다!!”

내가 소리치자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저씨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곧장 그의 발치에 그림자 비도가 타다닥 박힌다. 그림자 가면을 쓴 은지의 날 선 경고였다. 더 이상 다가왔다간 죽이겠다는.

저들이 어쩌면 만신전 소속의 플레이어들일 수도 있어서 우린 날이 곤두선 상태였다. 무엇보다 세상이 멸망한 판국에 노예가 아닌 놈은 결코 믿을 수 없다.

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무조건 첫 시작은 노예부터다. 아니면 죽던지.

“지, 진정하십시오! 우린 그저 도움을 좀 구하고자..”

“야! 됐고. 무릎 꿇고 손 머리 뒤로 올려!!”

“큭..”

곧 스무 명의 사람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은 다음 손을 머리 뒤로 보냈다. 그중엔 결국 두려움에 눈물을 터트린 아이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애라고 봐주지 않는다.

"무, 무릎 꿇었습니다!"

생각 이상의 전력이 자신들을 위협적으로 맞이하자 난민들은 다들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난 양지상이 깃든 검을 뽑아 들고는 우두머리 아재에게 다가 갔다.

“순순히 복종해라.”

“이, 이게 무슨..”

푸욱..

“끄아아아!!!!”

나는 그의 어깨를 살짝 검으로 찔렀다. 순간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재.

곧장 무릎 꿇고 있던 그의 일행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때 어느새 내 옆에 선 메르가 달려들던 남자의 손을 쳐 무기를 떨군 다음 그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차 날렸다.

“크억!!!”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남자.

“저 시발!!”

“죽여!!”

그러자 무릎 꿇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무기를 꼬나 쥐고 우리와 싸우려 했다.

“다들 가만히 있어!!”

그때 나에게 어깨를 찔린 아재가 고함쳐 일행들을 말렸다.

“싸웠다간.. 우린 몰살이야. 다들 다시 무릎 꿇고.. 기다려.. 크으... 미안 합니다.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아재의 외침에 무기를 쥐고 일어서던 사람들이 일제히 다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곧 복중한다는 알림 메시지가 연달아 떴고 나는 차례차례 사람들의 이마에 지장을 찍었다.

이제야 우린 겨우 대화할 준비가 됐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지?”

“저희가 속해 있던 곳이.. 어젯밤에 해골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탈출하던 중에... 여기에 연기가 나는 걸 보고...”

그들은 어느 생존자 캠프의 도망자들이었다.

어젯밤 갑작스레 밀어닥친 해골 병사들에 의해 그들의 터전이 파괴됐고 급히 도망쳐 나온 모양이었다.

어쩐지 우리 쪽으로 해골들이 안 나타나더라니. 싸그리 다른 곳으로 간 거였구나.

“일단 알겠다. 진성아!”

“예! 형님!!”

“새로운 일꾼들이다. 역할 분담시키고... 씻겨라.”

“예!”

난 냄새나는 도망자 일동을 하진성에게 맡겼다.

그리 몇 시간 뒤.

“형님!”

“응?”

한참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던 중에 하진성이 나에게 급히 달려왔다.

“왜?”

“아, 그게. 오늘 붙잡은 놈들 중에 한 명이 이런 걸 가지고 있어서요.”

“응?”

나는 하진성이 내민 종이 쪼가리를 받았다.

“어..”

그러곤 먹던 라면을 반쯤 뱉어냈다.

[실종자들의 숲 출입권]

“허...”

그들 중 하나가 보부상에게서 구입한 출입권이었다.

이걸로 이제 우린 네 명까지 실종자들의 숲에 출입이 가능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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