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94화 (94/221)

〈 94화 〉 93. 이벤트 입장 전 준비

* * *

“오빠 그게 뭔데 그래요?”

라면을 우물거리며 아름이가 물었다. 다른 여자들도 이게 뭔지 궁금한 눈치였다.

“이건 실종자들의 숲 출입권이야.”

“어.. 그거 업데이트 됐다는 이벤트?”

“응. 맞아. 그거.”

난 그녀들에게 오늘 아침에 보부상에게서 구입한 물건들에 대해 설명해줬다.

“흐음...”

보부상에게 들었던 것 그대로 실종자들의 숲에 대한 설명을 해주자 묵묵히 듣던 메르가 눈을 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가 가야겠군.”

“잠깐, 메르언니. 언니가 숲에 가서 뭐 하려구요?”

메르게 숲에 가려는 포부를 밝히자 곧장 화영이가 따지고 들었다.

“그야 내가 제일 강하니 주인을 도와...”

“숲에서 낫 휘두르려면 힘들 텐데요?”

추가로 은지가 메르의 동행을 말렸다.

“굳이 낫이 아니라도 나는..”

“언니가 제일 강하니까. 오빠 없을 때 마트 지켜줘야죠.”

“어...”

끝으로 예원이의 논리에 메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본인이 생각해도 내가 없는 사이 본진을 지키고 있는게 맞다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처음엔 희선 누나나 하린이 둘 중에 한 명이랑 갈 생각이었어. 숲이니까. 둘이 제일 적합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티켓이 2개가 됐네요.”

“그치. 그래서 하린이랑 희선 누나는 필참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남은 자리는 하나다.”

우리는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서로 의견을 조율했다.

은지와 화영이, 아름이와 아람이, 예원이와 메르.

이중에서 아람이와 메르는 마트에 남기로 했다. 사용하는 무기들이 워낙 커서 꽉 막힌 숲속에선 전투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아람이와 메르는 상당히 강하다. 둘이 남아서 듀라한과 나머지 각성자들을 통솔하며 아지트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없어진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런고로 소환수로 주변을 정찰하고 위험분자를 색출할 예원이도 여기 남아야 한다. 실종자들의 숲에 내가 칠흑바퀴와 음지나방을 데리고 가 버리면 예원이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줘야 하니까.

고로 남은 후보는 화영이, 아름이, 은지.

인간의 피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을 수 있는 화영이는 숲에 들어온 다른 플레이어들을 색출하는데 효과적이다. 아름이는 1대 1의 상황에서 상당히 전투력이 높고. 은지는 어둠으로 드리워진 숲속에서 아마 그림자에 숨어들어 적들을 다 잡아 죽일 수 있겠지.

“저는 그냥 언니 따라 마트에 남아 있을게요.. 저 벌레 엄청 싫어해서.. 으으 소름 끼쳐.”

아름이는 숲에 나올 벌레들을 상상하니 절로 닭살이 돋는지 팔을 문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곤 아람이와 함께 마트에 남고 싶다고 했다. 아름이는 후보에서 자동탈락.

남은 자리를 하나 두고서 은지와 화영이가 웃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묘한 기류가 흐르며 두 여자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화영이는 은근히 은지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고 은지 또한 그런 화영이에게 지기 싫어한다. 나이 차도 그리 크지 않고...

둘은 항상 내 오른쪽 자리를 노리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다.

“은지 언니가 양보하지?”

“헤헤.. 그 말을 들으니까 더 내가 가야겠는걸.”

“잠깐. 은지랑 화영이 둘 다 진정하고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

이게 가장 공평한 방식이다. 만약 내가 둘 중에 한 명을 지목해 버리면 남겨진 한 명은 감정 상할 수도 있으니까.

“앗싸!!!”

가위바위보를 이긴 은지가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좋아. 그럼 나랑 희선 누나. 은지랑 하린이. 이렇게 팀을 나눠서 가자.”

내가 전투력이 약한 희선 누나를 커버하고 은지와 하린이가 서로를 돕는 느낌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난 미리 은지와 하린이에게 보부상에게서 구입했던 ‘부부동침의 목걸이’를 반으로 쪼개 넘겨 줬다.

“너희 둘 중에 한 명이 그걸 차고 있으면...”

목걸이에 달린 금속이 허공에 떠올라 자신의 반쪽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이건 엄청 강한 자석 같은 거다. 나머지 반쪽과 달라붙으려고 한다.

“이렇게 상대방의 위치를 찾을 수 있어. 숲으로 전송되면 우린 둘씩 나눠져서 떨어지니까. 목걸이를 이용해서 최대한 빠르게 만나는 걸 목표로 하자.”

“좋아요. 이건 하린이가 차고 있어.”

“응, 언니!”

“나머지 하나는 내가 차고 있을게.”

나와 하린이는 이제 서로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럼 다음 물건들인데...”

나는 보부상에게 구입한 물건들을 분배했다.

“일단 여신의 눈물은 은지랑 하린이가 두 병 들고 가고. 마트에 1병 남겨둘게.”

메르가 16레벨이 되며 치유관련 스킬을 하나 습득했다. 나의 차오르는 살점만큼 성능이 뛰어나진 않지만 그래도 가벼운 자상이나 골절은 치유가 가능하다. 나는 마력 회복을 빠르게 해주는 녹마석 반지도 메르에게 넘겼다.

치유 스킬을 습득한 메르가 만약의 사태에 상시 대비하고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난 황수민이 끼고 있던 대마도사의 귀걸이를 돌려받아 착용했다. 이걸로 나는 45퍼센트 확률로 마력소비 없이 스킬을 쓸 수 있다.

“다음은 귀방부적인데...”

귀방부적은 5개가 있다.

‘실종자들의 숲... 이름부터 살벌한 곳이야.. 분명 귀신이나 영체가 튀어나올 거다.’

귀신들의 정신 공격에 대비하려면 들고 들어가야 하는 물건이다.

나는 이걸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가기 전날에 희선 누나와 은지에게 하나씩 주고 남은 3개는 마트에 두고 가기로 했다.

나야 귀신에 홀리지 않는 단 사실을 어젯밤에 알아냈고 하린이는 홀리기도 전에 다가오는 귀신을 미리 감지하고 죽일 수 있으니까 굳이 없어도 된다.

그리고 마트에 3개를 두고 가는 이유는 마트엔 인원수가 워낙 많아서 포제션 워리어인 이훈 혼자서 전부 커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3개 정도 두고 가는 거다.

이건 착용자 주변으로도 효과가 미치니까 마트에 남은 이들은 3그룹으로 나눠 함께 뭉쳐서 밤을 보내면 되겠지. 비 각성자, 각성자, 내 여자들로 그룹을 나누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다음 주에 우리가 한참 숲을 헤매고 있을 때 보부상이 또 마트에 들릴 테니 그때 또 구입해서 충당하면 된다. 부적이나 여신의 눈물은 상시품목이라 항상 팔고 있으니까.

“이훈이 귀신을 잡아먹을 테니 별걱정은 없겠지만.. 진성이한테 들어 보니까 홀리는 순간 반쯤 끝장나는 모양이더라고. 이거 사용하면 주위에도 효과가 가는 모양이니까 잘 끼고 있어.”

“알겠다, 주인. 걱정 마라.”

믿음직스런 메르가 있으니 내가 없어도 그녀들끼리 대부분의 일들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 같다.

여명 세븐은 10개 전부 우리가 가져가기로 했다. 마트에는 사람도 많고 보초 세우기도 쉽지만 숲으로 들어갈 우리는 며칠 못 잘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용량 가방은 은지팀이 가지고 들어가. 우리는 희선 누나가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희선 누나는 첫 업적을 달성하고 보상으로 좀비 기피제나 해독재가 아닌 인벤토리를 골랐었다. 덕분에 인벤토리 5칸에 생필품이 들어 있는 가방을 꽉꽉 채워서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1톤까지는 적재가 가능한 대용량 마법 가방은 은지와 하린이 쪽에서 챙겨 가는 게 맞다. 혹여나 전송된 당일 우리가 만나지 못한다면 접촉할 때까지 각자 숲에서 생존해야 하니까.

“그런고로 초고성능 정화기도 너희가 챙겨 가고. 체취 제거제는 우리가 가져갈게.”

희선 누나가 있으니 우리쪽은 물걱정이 없지만 은지 쪽은 물이 떨어질 경우를 생각해야하니 정화기를 챙겨줬다.

그리고 체취 제거제 같은 경우는 은지 팀은 은지 본인은 은신을 할 수 있고 하린이가 다가오는 적들을 먼저 탐지 가능하니까 미리 적들을 피할 수 있지만 나와 희선 누나는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우리 팀이 가지고 들어가기로 했다.

쓸데없이 전투를 많이 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우리의 목표는 빠르게 신사를 털고 탈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거다.

“대신 벌레 기피제는 너희가 가져가고...”

조련용 밧줄은 내가 챙겼다.

실종자들의 숲에선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런데 보부상이 나에게 챙겨 준 물건들로 보아 벌레들과 짐승형 적은 분명 나올 것이다. 그러니 상태 좋아 보이는 짐승은 밧줄로 사로잡을 생각이다.

그리 우리는 숲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나머지 물품들도 챙겼다.

“아, 그리고 우리 돌아오기 전에 보부상이 나타나면 물건 좀 구입해놔 줄래?”

“6개 전부?”

“응. 6개랑 상시품목도 전부. 아람아 손목 좀 내밀어봐.”

“응? 손목은 왜?”

나는 지난날 암시장의 체셔에게 배운 대로 손목을 내밀어 나의 코인을 아람이에게 넘겨 줬다. 손목을 맞대고 보낸다고 생각하자 코인이 아람이에게로 넘어갔다.

“오...”

“넉넉하게 6만 코인 쯤 줬으니까 아마 좌판에 있는 물건들은 전부 구입할 수 있을 거야.”

“알겠어. 싹 사둘게.”

아람이는 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신기한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코인을 줬다 받으며 신기해했다.

‘자, 그럼 이제 무기상과 보석상만 나오면 된다. 금요일 저녁에 암시장에도 한 번 더 갔다 와야하고.’

암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쓸 만한 노예도 있으면 하나 사고 마약상점에 들러서 피임약도 파는지 물어봐야 한다.

‘체셔에게 고맙다고 인사도 해야 하고...’

비록 암시장에서 바로 탈출은 못했지만, 그래도 체셔는 나와 메르를 암시장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번에 가이드로 그녀를 불러내면서 고맙다고 인사나 해야겠다.

“아, 그리고 이것도. 여기 두고 갈게.”

“이건...”

나는 토츠미르의 나팔총을 메르에게 건네줬다.

“혹시나 귀문이 나타나거나. 필드 보스 기어 나오면 써. 일단은 그냥 한번 싸워 보고 영 안 되겠다 싶으면 쏴. 아마 대부분은 일격에 잡아 죽일 수 있을 거야.”

마트에 남는 인원들 중에 메르가 가장 근력이 높으니 그녀가 들고 쏘는 게 맞다. 근력이 낮은 예원이나 아름이가 이걸 사용하면 튕겨 날아가 죽을지도 모른다.

‘풀 메탈 재킷은 내가 챙겨 가고... 흠.. 이건 어쩌지?’

나는 세샤의 혈청을 떠올렸다. 허물 벗는 자 업적을 달성하고 얻은 보상이다. 뭐 먹기 전에 말 좀 해 달라고 했던 게 생각나 나는 그녀들에게 세샤의 혈청에 대해 알려 줬다.

“진정한 나가라자가 된다니... 이거 그냥 뱀으로 변한다는 소리 아닐까요?”

“그치? 나도 그런 것 같아서. 아직 복용 안 했어.”

“흐음... 잘한 것 같아. 너무 위험해 보여.”

다들 별로 탐탁찮아 하는 분위기다. 나는 이번에도 세샤의 혈청을 스킵 했다. 나가라자가 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투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동네 순찰이나 다녀올까?”

“네!”

“좋아요!”

멸망한 세계에서 순찰이란 거의 반쯤 데이트 같은 거라 보면된다. 그래서 그런지 순찰나가자니 다들 신나했다. 거의 온종일 살풍경한 마트에만 갇혀 있는 건 고달픈 일이니까.

그리 또 다시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하진성과 각성자 노예들이 근처 건물에서 빈 물탱크를 몇 개 옥상으로 가져 왔다. 희선 누나가 나와 숲으로 들어간 사이 마트에 남은 사람들이 사용할 물을 미리 여기다 받아 둘 생각이었다.

덕분에 희선 누나가 불러낸 운디네 2마리는 24시간 달라붙어 물탱크에 물을 채워 넣어야만 했다.

*****

시간이 더 지나 드디어 금요일이 됐다.

그동안 해골 병사들의 습격이 한차례 있었고 마트로 도망쳐 온 난민들도 몇 명 더 수용했다. 슬슬 노예가 너무 많아져서 불안할지경이다.

사람이 많아질 수록 식량문제가 두드러지니까. 먹을 입이 늘어나니 6개월도 안 가서 마트의 식량이 동날 것 같았다.

아무리 아껴 먹는다고 해도 말이다.

‘역시 오래 살아남으려면 변두리로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해...’

인구가 늘어나니 어쩔 수가 없다. 되도록 농사에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의사나 약사도 하나 있으면 좋겠고.

그런 생각하고 있으니 하진우가 나를 찾아왔다.

“저기, 형님.”

“어? 왜.”

“그게.. 1층에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가 찾아와?”

“예. 그런데 행색이나 말하는 걸로 보아하니. 그 보부상 같은 존재 같은데요.”

“아..”

올게 왔구나.

분명 1층에 와 있다는 건 NPC일 거다. 보부상은 이번 주에 이미 다녀갔으니 아마 무기상이거나 보석상이겠지.

난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하자 고딕풍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외모가 마치 아주 아름다운 ‘인형’ 같았다. 피부도 뱀파이어인 화영이보다 더 하얀 것 같고. 눈동자는 양족 다 보라색이었다. 그리고 표정이 없었다.

“반갑습니다. 혹시.. 보석상이십니까?”

“그래. 맞아. 그런데 너는 악신의 종복인가?”

“어.. 예. 맞습니다.”

“여기 인간들은 전원 노예고?”

“예...”

뭐지? 노예를 싫어하는 NPC인가?

이때까지 만난 NPC들은 노예들을 보고도 별로 싫은 내색을 안 하기에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흐음.. 그럼 내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건 너뿐이겠네?”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노예가 문제인 게 아니라 단순히 1층에 고객이 없었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어디 탁자랑 의자가 있는 방 없어? 땅바닥에 귀금속들을 늘여놓아야 하나?”

“아, 잠시만요. 야! 여기 의자 2개 가져와!”

나는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해 하는 그녀를 얼른 마트 1층의 계산대로 데려가서 앉혔다.

보부상이 털털한 아저씨라면 그녀는 굉장히 깐깐해 보이는 성격의 아가씨였다.

말투나 행동이 조금 싸가지가 없어 보이지만 상인 NPC를 공격했다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녀가 바라는 대로 맞춰주기로 했다. 아직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부탁을 한 것도 아니니까.

“보부상에게는 들었어. 통이 아주 크다던데.”

“그렇죠. 노예들이 많아서 코인 수급이 잘되는 편입니다.”

“좋네. 나는 돈 많은 인간이 좋아. 코인은 언제나 중요하지. 참고해 둬.”

역시 돈독이 오른 컨셉의 NPC였구나.

“자, 내가 보여 줄 물건은 총 3개야. 전부 구입해도 되고. 하나도 구입하지 않아도 되지. 살 생각이 없으면 확실하게 말해.”

“어.. 그럼 퇴근 못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보부상들이랑은 달라서. 가고 싶을 때 가면 되거든. 위에서 압박하는 놈도 딱히 없고. 그래도 하나라도 사주면 좋겠네.”

“예..”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그녀는 숨을 전혀 쉬고 있지 않았다. 역시... 보석상은 인간이 아니다. 내 생각엔 인형인 것 같은데... 물어보진 않았다. 혹시나 실례라며 호감도가 깎여 나갈까 봐.

나는 보부상과 거래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호감도는 무조건 높아야 한다. 이번에 실종자의 숲에 들어간다고 하자 보부상이 나에게 챙겨 준 물건들만 봐도 그의 호의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곧 보석상은 품에서 마법적인 문양이 가득 그려진 가죽을 하나 꺼냈다. 그러곤 그걸 계산대 위에 올려놓더니 끼고 있던 검은색 장갑을 벗고는 손가락으로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가락 관절은 인형의 그것이었다.

­딱!

그녀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 순간 계산대 위에 펼쳐둔 가죽위로 세 개의 장신구가 떠올랐다.

피처럼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하나. 하늘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하나. 오팔로 만든 듯한 팔찌가 하나.

[피렌체의 혈석 반지: 적이 피를 흘릴수록 착용자의 상처가 회복됩니다. 점차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주의. 오래 사용할 경우 종족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가격: 38000C]

[창성의 목걸이: 착용자의 마력 스탯을 100 높여줍니다. 근력과 민첩, 체력 스탯이 30씩 떨어집니다.] [주의. 장신구로 인한 스탯 증가로는 업적이 달성되지 않습니다.]

[가격: 45000C]

[과부화의 팔찌: 착용자는 수명을 대가로 육체 능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팔찌의 효과를 사용할 수록 늙어갑니다.] [주의. 남은 수명이 얼마 없을 경우 효과 발동과 즉시 사망합니다.]

[가격: 22000C]

하나같이 문제가 있는 물건들이다. 또한 굉장히 끌리는 도구기도 하고.

‘비싸지만... 구입할 만하다. 그리고 굳이 전부 다 구입할 필요도 없으니까.’

하나만 사도 호감도가 오를 것 같았다.

‘과부화의 팔찌는 필요 없다. 굳이 수명을 갈아 가며 스탯을 올릴 필요는 없지. 피렌체 반지는 구입하고. 종족이 바뀐다는 것을 보니 뱀파이어가 되는 모양인데. 내 노예라면 피에 대한 충동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단 사실을 화영이로 알아냈으니까 변해도 상관없어. 오히려 변하면 음문을 새길 수 있으니 좋을지도...’

창공의 목걸이는 신체 능력을 낮추는 대신 마력을 높여주니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황수민 같은 법사는 마력이 높을수록 더 좋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코인을 태워도 되나...’

2개를 구입하면 8만 3천 코인이 날아간다. 곧 암시장에도 들러야 하는데 너무 큰 지출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필드 보스 잡고 거의 10만 코인을 넘게 벌었으니...’

나는 눈딱 감고 과감하게 2개를 구매했다.

“진짜? 허.. 정말 통이 크군. 과부화의 팔찌는 안살 거지?”

“예. 그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좋아. 괜찮은 거래였어. 역시 독재주의로 돌아가는 쪽이 물건 팔기가 더 쉽네. 다음에도 또 오도록 하지. 그동안 잘 살아남으라고. 고객님.”

“예, 감사합니다.”

보석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살아 있는 인형이라...’

피그말리온 같이 피규어에 성욕을 느끼는 특이 취향은 좋아하겠다. 상당히 예뻤으니까.

난 구입한 장신구를 챙겨 옥상으로 다시 올라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