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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화 〉 96. 다시 방문한 암시장 (3)

* * *

체셔를 따라 서둘러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가자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지하창고에게 광대가 걸어올라왔다.

그는 왼손엔 담배를 오른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찍을 쥐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저 채찍으로 노예를 패고 있었던 걸까?

얼굴과 몸 곳곳에 피가 튀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다.

내가 놈을 관찰하고 있자 광대는 피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또 왔군. 그것도 망할 가이드를 데리고...”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광대는 내가 체셔와 함께 온 게 영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손님인 우릴 쫓아내지는 못 하는 모양인지 한숨을 푹 쉬며 우리를 지하로 안내했다.

“여전히 더럽네.”

“흥.”

지하로 내려온 체셔가 냄새난다는 듯 손을 휘젓자 광대 노예상은 별다른 대꾸 없이 콧방귀만 뀌었다. 그러자 체셔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한 번 더 쏘아붙였다.

“짐승 같은 놈. 좀 치우고 살아라.”

“말다툼이나 하려고 온 건 아닐 텐데. 그리고 신경 좀 꺼라.”

곧 둘 다 말이 없어졌다. 나는 조용해진 틈에 주변을 둘러봤다.지난번엔 시간이 촉박해 내부를 제대로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철창들을 유심히 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역시나 서커스 장의 지하는 노예들이 갇혀 있는 철창들로 가득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철창들에는 별별 종족들이 갇혀 아우성치고 있었다.

‘온갖 종족들이 갇혀 있군...’

그중엔 개구리 인간이나 슬라임 같은 부정형 생물들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지성체는 죄다 붙잡아 가둬둔 모양새였다. 마치 종족별로 전부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신 병자의 일그러진 동물원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붙잡아둔 상태로 그냥 방치한다는 점이다. 병들고 맛이 가 버린 노예들로 가득한 철창에선 온갖 냄새가 들끓었다. 마치 어린아이마냥 그냥 모아두기만 했을 뿐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몇몇 노예들은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철창에 퍼질러져 미동도 없었다. 어째선지 죽은 시체에 벌레는 없었지만.

'진짜 제멋대로 운영하는군.. 체셔가 한 소리 할만해.'

난 역겨움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들이 불쌍해서 그런 게 아니다. 단지 앞으로 이곳을 몇번 더 이용할 텐데 노예들을 저런 식으로 막 관리하면 결국 저들 중 하나를 구입해야 할 내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무슨 병이라도 걸려 있으면 멋모르고 구매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엄청난 능력을 가졌을 지도 모르는데 내 수중에 떨어지기 전에 죽어 사라질지도 모르고.

솔직히 노예들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 상태가 좋아야 구입할 맛이 날 텐데. 광대놈은 장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니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앞서가는 체셔의 등을 보며 지하창고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오른편에 있던 철창 중 하나가 덜컹 거렸다. 그리고 웬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자 발작적으로 철창을 잡아 흔드는 여자가 보였다. 나의 주의를 끈 그녀는 내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인지하자 곧바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저! 저기요!! 다, 당신..! 한국인이죠! 지난번에 당신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한국어 쓰잖아요! 저도 한국인이에요!! 제발 저 좀 여기서 꺼내 주세요!!! 여기서 더는 못 버티겠어!! 나 좀 제발 꺼내줘요!! 뭐든 할 테니까!!”

나는 여자를 빤히 쳐다 봤다. 그러자 앞서 걷고 있던 광대가 나를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 봤다.

“왜, 궁금하나?”

“조금 궁금하긴 하네요.”

“그럼 저년을 상품으로 보여 줄까? 아무 능력 없는 인간인데 그래도 구해주고 싶다면야. 나야 쓸모도 없는 악성재고 파는 거니 좋지. 이참에 내 호감도 좀 올려보지?”

“아뇨. 됐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인간 따위 나도 필요 없다.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구해 줄 가치가 없어 보였다.

“자, 잠깐!! 그냥 가지 말고 제발 나 좀 도와줘요!! 야!! 나 좀 여기서 꺼내줘!!! 나.. 나 잘해! 엄청 기분 좋을 걸? 이봐!!”

“조용히 안 해!”

여자가 나를 향해 악을 쓰며 소리치자 광대는 들고 있던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은 마치 자아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여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보기보다 엄청 길었다.

­쫘악!!

“으아!!!”

채찍을 맞은 부위의 살점이 찢기며 피가 터져 나왔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상처 부위를 손을 감쌌다. 그러곤 철창을 끝으로 기어가 어깨를 움츠리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어쩌다 저 여자가 여기에 갇히게 된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저 여자는 왜 여기에 잡혀 왔습니까?”

“악마들이 아주 싸게 팔았다. 놈들과 이상한 계약이라도 한 모양이지. 자기 자식까지 팔아넘기고 결국에 도착한 곳이 여기라니. 멍청한 년이지. 그래도 악마숭배자라면 쓸모가 있을 거야. 악마의 자식을 잉태하고 있으니. 산 제물로 써먹기 딱이지.”

“허...”

악마들이 팔아넘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저 여자에게서 신경을 꺼버렸다. 더욱이 자식까지 팔아넘겼다는 말을 듣자 아주 약간 생겨나던 호기심마저 완전히 사그라졌다.

악마들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면 악마 빙의자거나 뭔가 악마들과 요상한 계약을 맺었다가 속아 넘어가 여기까지 굴러떨어진 인간이겠지. 멍청하게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자식과 자기 운명을 구렁텅이에 빠뜨렸으니 동정할 가치도 없다. 더구나 악마의 자식을 잉태했다니. 도대체 뭐가 태어날지 짐작도 안 된다. 뭔 오멘의 데미안이라도 태어나는 건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자 광대가 멈춰서더니 노예들을 보여줬다.

“자, 오늘의 추천 메뉴다. 한 명만 골라라.”

이번에도 나체의 노예들이 내 앞에 섰다. 나는 그들의 자기소개를 받기 전 노예상에게 먼저 물었다.

“저.. 꼭 한 명만 골라야 합니까?”

“그래. 한 명 이상은 못 넘겨 준다. 뭐, 내 마음에 들법한 지성체를 데려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때는 2명까지 데려갈 수 있을 테지.”

“당신 마음에 드는 지성체라... 평범한 인간은 거들떠도 안 보겠네요.”

“특이하던지. 아니면 특별하던지. 뭔가 특색 있는 것들이 아니고서야 거들떠도 안보니 괜한 고생하지 말고 그냥 1명만 선택해.”

“예..”

2명까지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으나 광대 놈이 바라는 특이하고 특별하며 특색 있는 인간을 내가 구해다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한다 하더라고 아까워서 노예상은 못줄 것 같다.

‘그냥 한 명만 구입하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잡생각을 버리고 그냥 넷 중에서 제일 괜찮은 놈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거기. 너부터 자기소개 해라.”

노예상의 말에 대기 중이던 노예 하나가 덜덜 떨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그는 추래한 몰골의 늙은 노인이었다. 몸을 덜덜 떠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런 노친네를 어디다 써먹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나는 헬러스... 연금공방의 2급 연급술사.. 엘릭서 빼곤 다 만드는...”

“잠깐. 뭐요?”

“예..?”

방금 이 미친 노인네가 뭐라고 지껄인 거지?

연금술사?

“당신 플레이어입니까?”

“아이고..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늙은 연금술사에 불과한 노인입니다...”

아쉽게도 헬러스 이 양반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그 말은 곧 스킬을 가진 연금술사가 아니라 진짜배기 연금술사란 소리였다.

“정말 물약제조가 가능합니까?”

“예, 물론입죠.. 재료만 충분하다면.. 엘릭서는 못 만들어도 웬만한 건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재료와 시간만 주시면...”

무슨 매드사이언티스트도 아니고 재료와 시간만 주면 원하는 물약을 만들어 주겠단다.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당히 괜찮은데...’

아름다운 외모의 마녀가 아닌 늙어빠진 연금술사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어찌 보면 연륜 있는 연금술사라는 소리니까 썩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라면 분명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거기다 희선 누나가 스킬을 이용해 옥상 한 모퉁이에서 활력초를 재배하고 있으니 그걸로 뭔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알겠습니다. 노예상. 이 영감의 가격은 얼마입니까.”

“이 노인네는 4만.”

나는 보유 코인을 확인한 다음 노예상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늙어빠진 인간인데 너무 비싼게 아닌지..”

“이 정도도 싸게 주는 거다. 길어봐야 10년도 못살 것 같으니까 4만이야. 젊었으면 8만짜리다.”

"허어..."

가격흥정은 씨알도 안 먹혔다. 왜냐면 이미 싼 가격에 팔고 있는 거였으니까.

일단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다음. 자기소개.”

“케헷. 나는 말록. 땅굴파기의 달인이지. 광물 냄새도 기가 막히게 맡는다.”

두 번째는 두더지 인간이었다. 아쉽게도 딱히 땅굴을 팔일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사실 연금술사보다 끌리지 않았다.

“나는 에인케아. 독, 질병, 저주에 높은 내성이 있다. 그리고 밤 시중을 잘 들 수 있다. 구입해 달라, 인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평생 너의 새끼를 낳아주마.”

세 번째는 연신 혀를 날름거리는 여성 리자드 맨이었다. 초록색 비늘로 뒤덮인 몸에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이 꺼림칙했다. 나름 나를 유혹하려는 건지 윙크까지 해댄다. 거기다 밤 시중을 잘 들 수 있다는 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꼬무룩해지는 외형이라 패스했다.

“마지막이군. 자기소개.”

“크흠.. 나는 로란. 패망국의 근위 기사였다. 지금은 보다시피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검 한 자루만 쥐어 준다면 용의 목이라도 베어 줄 수 있다.”

마지막은 얼굴에 기다란 흉터가 새겨진 남자였다. 짧게 자른 머리가 꼭 군인 같은 느낌을 풍겼다.

“이놈의 가격은 1만. 별명은 허풍쟁이 로란이지.”

“자, 잠깐.. 장사 방해하지 마십시오. 크흠. 그래 나는 도플갱어 로란이다. 외형을 자유자재로 변화 시킬 수 있다. 남성 한정으로.”

로란은 자신의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나와 똑같은 얼굴로 변했다. 이건 꽤나 대단한 능력 같았다.

‘가격도 1만 코인짜리고.. 흐음...’

난 최종적으로 연금술사를 구입하기로 했다. 얼굴을 마음대로 변경시킬 수 있는 로란이나 땅굴을 잘 파는 두더지 인간, 적극적인 리자드맨도 괜찮았지만 역시 연금술사 노인이 가장 필요해 보였다.

곧 광대가 노예계약서를 가지고 나왔다. 싸인하기 전에 계약서를 체셔에게 한번 검토 받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확인 받은 후에야 싸인할 수 있었다.

광대는 이번에도 간단한 의복을 이천 코인 주고 판매했다. 늙어빠진 노인을 발가벗긴 채로 데리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 구입했다. 쭈글쭈글한 피부를 보고 있자니 외관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에게 주어진 의복은 갈색의 낡아빠진 로브와 흑사병 의사가 쓸법한 새부리 모양 가면이었다. 이렇게 입혀두니 미친 광신도 같아서 조금 놀랐다.

“살 거 다 샀으면 어서 나가라.”

“말안 해도 나갈 생각이었거든. 가자.”

"넵."

우린 쫓겨나듯 지하창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다 빠져나가자 지하창고의 출입문을 닫으려던 광대가 나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다음번에 혼자 오면. 더 좋은 놈들로 보여 주지. 여자 좋아하지 않나?”

“아, 예...”

여자가 좋긴 하지만 그래도 절대 혼자 오지 않을 거다. 차라리 질이 조금 떨어져도 체셔가 옆에 있는 편이 든든하니까. 괜히 혼자 왔다가 아까 잡혀 있던 그 한국인 여자처럼 저놈에게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특히나 악신들의 종복인데다 반인반사인 나는 아마도 광대 놈이 원하는 종류의 특별하고 특색 있는 상품일 테니까 절대 혼자서 여기 오겠다고 다짐했다.

내 반응이 별로 좋지 않자 노예상은 혀를 한번 차더니 지하창고의 입구를 쾅 닫았다. 그가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체셔는 노예상을 씹기 시작했다.

“미친 녀석. 저놈은 싸이코라서 한번 눈독들인 존재는 무조건 철창에 가둬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지. 혼자 오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예, 알고 있어요. 항상 체셔랑 같이 올게요.”

“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그럼 이제 중앙광장으로 가 볼까!”

난 체셔의 손을 붙잡았다. 연금술사 노인 헬러스는 얼떨결에 체셔에게 목걸미가 붙잡혀 그대로 중앙광장으로 순간 이동 당했다.

“오.. 사람들이 엄청 많네요..”

“그치? 이게 정상적인 평소 중앙광장의 모습이야.”

뭔지 모를 생물의 모피로 이뤄진 바닥과 여러 건축양식이 뒤죽박죽 섞인 이상한 건물들.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와 기둥들까지. 중앙광장은 묘하게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지하경비대가 출현해 노점상들이 죄다 철수하고 가게 문이 전부 닫혀 있었는데 오늘을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멀쩡하게 가게들이 오픈되어 있었다.

밤의 야시장 같은 분위기다.

“먹을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지. 우리 잠시 같이 관광이나 할까?”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체셔가 워낙 급하게 돌아다녀준 덕에 빠르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시간이나 넘게 남았으니 조금 놀다가도 되겠다.’

무엇보다 체셔가 엄청 들떠보여서 거절하기 어려웠다. 1시간쯤 남았을 때부터 꼬인 골목으로 돌아가 문을 찾으면 어렵지 않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지난번에 체셔가 자신과 함께 문을 찾으면 늦어도 30분 안에는 출입구를 찾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흐흐. 저야 체셔랑 놀면 좋죠.”

“그래, 좋아! 잔뜩 즐겨보자고!”

“어... 저기.. 여기는 대체...”

그리 체셔와 함께 중앙광장 데이트를 할 생각에 들떠 있으니 우리를 뒤따라오던 영감이 주변을 둘러보며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특이한 생김새의 이족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꽤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흐음.. 영감.”

“어.. 예..”

“저기서 좀 쉬고 있어.”

“예..?”

연금술사 영감을 빤히 쳐다보던 체셔가 중앙광장의 한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건물 간판엔 뭔지 모를 문자가 쓰여 있었는데 목줄이 채워진 인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볼 때 저곳은 대충 애완견 호텔 같은 느낌의 가게였다. 인간 버전의.

“어... 어...”

말을 잇지 못한 채 우리에게 끌려가는 헬러스.

입구가 없는 가게에는 3미터쯤 되어 보이는 외눈박이의 대머리가 앉아 있었다.

“뭐지? 둘 중 누굴 맡기려는 거냐.”

“여기 이 영감.”

“1시간에 오백 코인이다. 선금.”

나는 외눈박이 거인에게 손목을 내밀어 넉넉하게 3시간 결제했다.

결제가 완료되자 헬러스의 목에 목줄이 채워지며 그는 침대와 작은 간이 화장실이 딸린 방으로 끌려갔다. 살펴보니 곳곳에 애완용 인간들이 갇혀 있었다. 꼭 비인간적인 외계 감옥 같았다.

“자, 그럼 우리는 놀러 가 볼까?”

“예.”

이후 나는 체셔를 따라 중앙광장을 돌아다녔다. 이상하게 생긴 두족류 꼬지도 먹었고. 살아 있는 소인 족에게 다트를 던져 죽이는 별 정신 나간 길거리 게임도 즐겼다. 상품으로 중앙에 눈알이 박힌 별 모양 인형을 받았는데 그냥 체셔에게 선물로 줬다.

“귀여운 인간이 주는 귀여운 선물이라. 이거 기쁜걸.”

인형이 귀여운지는 둘째치고 인형을 선물 받은 체셔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거면 된거지.

그리 1시간 정도 그녀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고 난 후 우린 붉은 물을 내뿜는 분수대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설마 저거.. 피는 아니겠지...’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액체는 높은 확률로 인간의 피일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니 살짝 비릿한 향이 나는 느낌이든다.

불쾌한 피 냄새에 자리를 옮겨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체셔가 내 어깨에 살짝 기대며 말을 걸었다.

“이런 평범한 데이트는 난생 처음이야. 이 동네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몇 없거든. 누군가와 이렇게 마음 편하게 돌아다녀 본적이 없었지.”

“아.. 그러셨군요.”

“응. 너는 참 편해. 몸에서 기분 좋은 냄새도 나고. 무엇보다 나보다 약해서 좋아.”

“허...”

약해서 좋다니. 이건 또 신선한 고백이다.

“그래서 말인데.. 남은 시간 동안.. 내 거처에서 같이 시간 보내지 않을래?”

“예..?”

체셔의 거처라니... 그녀는 지금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2시간 10분쯤 남았다. 문을 찾으러 나서기 전까지. 그러니까 1시간 30분 정도는 그녀와 더 놀 수 있을 거다.

“좋습니다.”

“하핳.. 그럴 줄 알았어.”

체셔는 은근히 내 가슴팍을 문질렀다.

난 체셔와 팔짱을 낀채 그녀의 거처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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