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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05화 (105/221)

〈 105화 〉 104. 빼곡히 박힌 눈동자

* * *

해가 지는 순간 숲이 변했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졌고 사람이 아닌 것들이 숲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그, 그만둬!!! 아아아아!!!

­시, 싫어!!

­푸화악..!

­우드득. 뿌드드득.

숲 곳곳에서 비명과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또한 살이 으깨지는 소리와 뼈가 뜯겨나가는 소리들도 곳곳에서 들려왔고 숲속에 죽음이 만연해졌다.

희생물을 찾으러 다니는 괴이들이 인간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인다.

산 제물을 먹기 위해 날뛰는 짐승들이 산 채로 인간의 배를 파먹었고 귀신들은 사로잡은 인간을 죽이지 않은 채로 죽을 만큼의 고통을 선사했다.

끝으로 이 숲에서 길을 잃어 목숨까지 빼앗긴 실종자들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 위장해 숲의 침입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끝도 없는 절망이 휘몰아친다.

숲의 중심에 세워진 낡아빠진 신사. 그 중앙에 떡하니 놓은 신의 우상이 덜덜덜 떨렸다.

그 떨림이 마치 여인의 흐느낌 소리 같기도 하고 재미난 장난을 치는 아이의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

나는 얼떨결에 저주를 덤터기 쓰고 말았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말의 의미를 전해 듣고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영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빌어먹을 저주가 나에게 옮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은지 언니 다른 내용은 없어?”

“응.. 빨리 도망치는 게 신상에 좋다는 말뿐이야.”

“도망칠 곳이 있어야 도망을 치지... 하아.. 진짜 좆 됐네.”

아마 제일 처음 버튼을 눌러 녹음된 음성을 확인한 나에게 저주가 덮어씌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누르지 말고 버릴걸 그랬나?

‘숲을 돌아다닐 힌트가 될지도 모를 녹음기를 틀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손에 넣은 단서는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보는 게 맞다. 설령 읽은 이에게 저주를 주는 문장이라 하더라도 펼쳐보기 전까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모르면 당하는 거지. 당할 줄 알았으면 보자마자 부쉈으리라.

그리고 카세트테이프가 문제였던 거지 수첩은 아주 많은 정보를 줬다. 가령 붉은 별을 쫓아 신사를 찾아가는 방법이라든지.

“준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이런 이상한 함정은 걸릴 수밖에 없잖아.”

“그러게요.. 희선 언니 말이 맞아요. 듣자마자 저주에 걸리다니.. 다분히 사악하네요.”

은지가 누나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숲에게 기운을 뺏기고 있어 좀 너무 예민해졌나보다. 여자들이 다들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보더니 얼른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한다. 하린이도 나에게 애교를 피우며 껴안아왔다.

이렇게나 걱정해주는데 언제까지고 우울해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미 저주는 씌었다. 나에게 닥친 불행에 주저앉아 있을 틈 따윈 없다.

다가오는 놈이 뭐든 그냥 부수고 나아갈 뿐이다. 이때까지 그래 왔듯이... 물론 싸워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당연히 죽어라 도망쳐야겠지만.

그때 나에게 애교를 부리던 하린이가 질문했다.

“그런데 도도메키는 뭘까요..?”

“그러게. 이름만 봐서는 일본 요괴 같은데...”

도도메키가 뭐냐고 묻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게 뭐 하는 놈인지, 무슨 능력을 갖춘 적인지, 특징은 뭔지. 단 하나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름은 약간이지만 익숙했다. 몇가지 일본산 게임의 잡몹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대강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공포 매니아인... 은지라면..’

나는 혹시나 은지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다.

“은지는 도도메키가 뭐 하는 놈인지 알아?”

“도도메키는... 여자 귀신이라는 정도만 알아요.”

“어... 허어.. 여자 귀신..”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그냥 사람 놀래 키는 여자요괴? 귀신?”

결국 일행 중 도도메키가 뭐 하는 새끼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너무 쫄지 말자. 솔직히 우리 전력이면 뭐가 나와도 한번 싸워볼 만할지도 몰라.”

“그건 그렇죠.”

필드 보스도 잡아 죽이는데.. 숲에 나오는 귀신하나 못 잡을까. 방심하면 안 되지만 겁먹고 있을 필요도 없다.

“준이 오빠.”

“응?”

“우리.. 그 귀방부적인가 그거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아.. 그거. 맞네. 가만 보니 그거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으니까.”

보부상에게 구입했던 물건이다. 효과는 2주라고 했으니 그게 있으면 도도메키인지 뭔지도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지 않을까?

“그래. 부적도 있으니까 일단 쫄지 말고 계속 움직이자.”

“네!”

다시 움직이기 전 나는 혹시나 해 귀신을 민감하게 느끼는 양지상을 뽑아 들었다. 늪지의 귀곡검에 영혼이 갇힌 양지상은 숲에 들어온 이후 계속 주변의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며 덜덜 떨던 중이었다. 악귀를 다루는 그라면 뭔갈 알고 있지 않을까?

“야,뭔가 느껴져..?”

[... 도대체...]

“왜? 뭔데.”

[거대한... 악의.. 저로서도 다룰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영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흐느낌? 아니면.. 비웃음.. 모르겠네요.]

“허... 그거 혹시 여자야?”

[아뇨.. 여자나 남자.. 그런 구분이 안 되는 거대한 원혼의 집합체... 이건 죽은 이들의 영혼을 모으고 있어... 강림을 위해. 다시 깨어나려고...]

양지상 이놈.. 지금 도도메키가 아닌 다른 놈을 느낀 모양이다. 신의 우상을 감지한 건가? 도도메키를 감지하는 것보다 신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난 양지상에게 계속해서 그 기운을 느끼라고 명령했다.

"위치를 찾을 수 있겠어?"

[꼭... 가야 합니까?]

"당연하지."

[위치를 탐지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양지상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찾아낼 수 있다고 답했다. 이제 붉은 별을 따라 양지상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신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그리 우리는 다시 걸어 나갔다. 그래도 이젠 지표가 생겼으니 다행이다. 양지상이라는 나침반도 생겼고. 비록 자살자가 남긴 테이프 때문에 귀신을 떠넘김 당했지만... 그냥 똥밟았다고 생각해야겠다.

“저기로 가자.”

“네!”

양지상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명확한 방향이 정해지자 우리의 걸음은 절로 빨라졌다.

우리 일행은 전원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나는 변형된 시야가 있었고 은지는 들추는 시선, 하린이는 제육감, 희선 누나는 숲지기의 심안이 있었다. 다들 비교적 저렙 때에 얻은 스킬들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광원 없이 숲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죄다 어둠뿐인 곳에서 불을 키는 순간 온갖 것들이 불나방처럼 우리에게 모여 들 수도 있으니까. 특히나 숲의 미움을 받는 나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 위험한 상태다.

그때 은지가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했다.

“저기 좀 봐요.”

“저건...”

“불빛이네요.. 플레이어일까요?”

“아닐 거야. 푸른색 조명을 들고 다니는 놈이 정상은 아니겠지.”

“응.. 사람 아닌 것 같아.”

멀리서 불빛이 보이긴 했는데 대부분 사람이 아닌 무언가였다. 희선 누나와 하린이도 굉장히 꺼림칙해했다. 특히나 양지상은 아예 저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고.

괜히 가까이 다가가 봤자 별로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전부 무시한 채 신사를 향해 다가 갔다. 그리 나아가던 중 우리는 주저앉아 도움을 청하는 사람과 마주쳤다.

“어.. 당신들은..? 나 좀 도와주시오!”

그건 다리가 다친 듯한 중년 남자였다. 그의 차림새는 마치 등산을 나왔다 길을 잃은 사람 같았다. 꼭 나무 곳곳에 매달려 있던 자살한 인간들 중 하나와 비슷한 차림새였다.

“누구세요..?”

“그게.. 여기 표류돼서.. 부탁인데.. 나 좀 도와주쇼! 다리가 다쳐서 나갈 수가...”

난 곧바로 귀곡검을 휘둘러 남자의 머리를 따버렸다.

이런 숲에 저리 태평하게 다쳤다며 도와달라 말하는 인간이라니. 죽일 수밖에 없지. 이 숲에 있는 놈들 중에 도움이 되는 NPC는 없다고 생각된다. 차림새를 보아 높은 확률로 실종자였겠지.

"바칩니다."

말하는 적이니 지성체로 취급해 줄 거 같아 바로 인신 공양을 사용했다. 허나 공양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건 남자가 목이 베였음에도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아!!!”

잘려 나가 땅바닥을 구르는 놈의 대가리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또한 놈의 잘려 나간 목의 단면에서 식물 줄기 같은 게 자라나 서로 이어지려고 했다.

“허어...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네요.”

“괴이는 아닌 것 같고. 짐승 새끼도 아니고. 그럼 이놈이 실종자... 인가?”

“그런가 봐요...”

나는 잘려 나간 실종자의 머리를 부정한 손길로 녹여 버렸다. 머리가 녹아내리자 꿈틀거리며 줄기를 내뻗던 몸둥이도 축 늘어지며 죽어 버렸다.

"바칩니다."

[건강해지는 맛...]

별로 선호하는 맛은 아닌 모양이었다. 건강해지는 맛이라니. 실종자 놈들 몸에 기생식물이라도 자라나고 있는 건 아닐까? 목을 베었는데도 피는 안 나오고 단면에서 식물의 줄기가 기어 나오는 걸 보아하니 숲의 뿌리에 몸이 잠식된 상태인 것 같다.

“시체 뒤져볼게요.”

“어..”

그사이 은지가 죽은 남자의 가방을 뒤졌다. 혹여나 새로운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면서.

남자가 매고 있던 가방엔 유통기한이 진즉에 지난 음료와 썩어 버린 초코바가 튀어나왔다. 가방엔 쓸 만한 물건이 없었다. 전부 오래되고 낡아빠져서 당장 버려야 할 것들 뿐이었다.

“어.. 여기 종이요.”

시체의 안쪽 품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하린이가 꼬깃꼬깃 접힌 오래되고 낡은 종이를 한 장 찾아냈다.

“흠... 신사로 들어가기 위해선 세 개의 주물이 필요하다..?”

“주물?”

“응. 뭔가 열쇠 같은 건가 본데?”

종이엔 주물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하린이가 적혀 있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그마한 사당이 놓여져 있다. 각 사당에 있는 여래상과 함께 목함이 놓여져 있으니. 목함에 들어 있는 주물을 꺼내 사당의 문을 열어라..."

"목함..? 오빠. 코토리바코.. 그것도 목함에 들어 있는..."

"씹..."

신사로 가는 방향은 찾아냈다. 허나 신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문을 열 열쇠가 필요하고.. 그 열쇠를 찾기 위해선 또다시 숲을 뒤지며 사당을 찾아야 한단다. 더구나 사당을 찾더라고.. 거기 놓여 있는 물건이 정말 열쇠인지 아니면 그저 저주받은 상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미친 운영자 새끼들.. 그냥 죽으라는 소리구만.."

악랄하다. 평범하게 신의 우상을 얻게 해 줄 생각이 1도 없었다.

"안 되겠어. 우리 대신 상자를 열어 줄 노예를 붙잡자."

내가 멸망한 세상을 살아보면서 느낀 건데. 대부분의 문제는 노예사냥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 대신 희생해 줄 노예를 찾아야겠다.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히히히히히...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굉장히 꺼림칙한 소리였는데....

­팡!!

"꺄아아!!"

"부, 부적이!!"

순간 희선 누나와 하린이가 가지고 있던 부적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귀곡검이 덜덜덜 떨렸다.

[으아!! 눈..! 눈동자가!!]

순간 누군가 우리 일행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건 머리카락을 느려뜨린 여인이었다.

여인의 팔에 빼곡히 박혀 있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 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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