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08. 콘크리트 건물 안으로
* * *
우린 야영지를 만들고 안에 들어갔을 이들이 다시 빠져나오길 한참이나 기다렸다. 그들을 습격해 주물을 빼앗을 생각을 하며.
다행히 기다리는 동안 음양사가 결계를 치고 무녀가 축복을 내려준 덕인지 요괴나 마수가 우리를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갔던 놈들이 빠져나올 생각을 안했다.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하린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 나오네요. 계속 기다려요?”
“어... 글쎄. 하린아 우리 몇 시간 정도 기다렸지?”
“어.. 거의 4시간이요.”
“하.. 시바.. 그냥 안으로 들어가야겠네. 더 기다려도 안나올 것 같다.”
4시간 동안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은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내부에서 다 죽었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출구가 있어서 거기로 빠져나갔단 소리다. 더 기다려봐야 좋은 소식은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출구가 있진 않을 것 같고... 음지나방이 본 인간들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많다고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수십 명은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리인데.. 아무소식도 없는걸로 봐선 그냥 다 죽은 게 아닐까 싶군.'
이젠 방법이 없다. 그냥 이 불길하고 불쾌한 건물에 굳이 들어가지 않고 지나친다는 선택지도 분명 있었지만, 만약 저 안에 삼신기 중 하나가 있다면 우린 시간을 허비하는 샘이 된다. 더욱이 여기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얘들아. 모여봐. 우리 저 건물에 들어가야겠다. 그런데 내 생각엔 네 명 정도만 들어가면 어떨까 싶어.”
“네 명만 들어간다고요?”
하린이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건물 안이라 공간이 협소할 테니까 우리 여덟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기엔 비좁을 것 같아서.”
“그럼 차라리 부부동침의 목걸이로 팀을 나눠서 돌아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은지의 말도 분명 일리가 있다.
허나 괜히 안에서 서로 엇갈리거나 한쪽이 이상한걸 건드려 몰살당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워리어 보다 조금 더 나은 클래스인 사무라이 히이로는 주물 탐색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고, 콘크리트 건물 내부에선 전투력이 급감할 희선 누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 같아 보이진 않았다. 차라리 그들에게 건물 입구를 지키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대인전에 강한 사무라이와 나무들로 가득한 곳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희선 누나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다면 뒤에 들어올 놈들도 처리하고 주물을 가지고 빠져나올 놈들도 쉽게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대인전에선 사무라이 보다 우위에 있는 섀도워커 은지와 괴이들과 마수들이 다가오지 못하는 빛을 생성하는 무녀 소라도 남겨 두면 딱 맞겠다.
“은지도 남아. 남아서 이 건물로 다가오는 놈들을 처리하고 있어. 혹여나 빠져나오는 놈들 있으면 다 잡아 죽이고 주물 있나 뒤져보고.”
“어.. 진짜요? 저도 남아요?”
"응. 은지 네가 남아 있어야 무녀하고 사무라이놈과 의사소통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은지 네가 남아 있어야 내가 안심이 된다."
"네..! 오빠가 안심 된다면.. 당연히 남아야죠!"
고로 저 건물 안에 들어가는 건 안경잡이 일본인과 갸루 그리고 나와 하린이. 이렇게 넷이다.
안경잡이는 한국어가 조금 서투르긴 하지만 일단은 조금이라도 할 줄은 아는 녀석이니 의사소통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안에 있는 괴이를 잡으려면 무녀나 음양사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데 울보 무녀는 밖에 남겨 두는 편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에 음양사를 데리고 들어가기로 했다.
'집에 가면.. 정신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야 겠어..'
나는 아까부터 들어가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무녀를 슬쩍 쳐다봤다. 분명 생긴 것도 귀엽고 몸도 말랑해서 최고였지만 겁이 너무 많았다.
'내 명령은 행동은 규제할 수 있어도 사기나 멘탈까지는 어떻게 해 줄 수 없으니...'
징징 거리지 말라고 하면 울지야 않겠지만 속으로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력이 떨어질 거다. 그러다 쓰러지거나 악귀나 괴이에 쓰여 버리면 답이 없다.
‘분명 지난번에 하진성이 귀신에 홀리는 건 한순간이라고 했으니까... 정신력이 흔들리는 상태라면 저 요상한 건물로 데리고 들어가기 너무 위험하다. 차라리 무녀보단 정신력이 그나마 좋아 보이는 음양사를 데리고 들어가는 게 맞아. 그리고 여자 친구인 갸루도 데리고 들어가니 살아남고자 더 열심히 움직이겠지.’
갸루를 데리고 들어가는 이유는 음양사의 사기를 높임과 동시에 혹여나 잠겨 있는 문이나 캐비닛, 상자 등을 따려면 그녀의 스킬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힘으로 때려 부수거나 내 부정한 손길로 녹여 버릴 수도 있겠지만 때려 부술 경우 소음이 너무 크게 발생하고 녹여 버릴 경우 불쾌한 냄새 때문에 짐승들에게 들킬 수도 있다.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이상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뭐가 있을지 모를 때는 최대한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게 베스트지.’
체취제거제를 뿌려 냄새를 지우고 하린이가 다가오는 적들의 상태를 살피며 나아가기로 했다. 저 건물 내부가 밖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최대한 전투를 피해볼 생각이었다.
'조금 전에 우리가 쉬었던 고서로 가득한 창고도 안이 밖보다 훨씬 더 컸지.'
분명 저 건물 내부도 밖에서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크기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은지야 만약에 우리가 10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구하러와. 알겠지?”
“알겠어요.. 조심해요.”
“준아.. 무사히 돌아와야 해.”
“은지도 희선 누나도 다치지 말고. 뭔가 다가오면 대화도 하지 말고 무조건 죽여 버려.”
“응응..!”
“알겠어요. 다 죽이고 있을게요!”
어느 정도 한국어를 알아듣는 안경잡이한테 대충 상황을 전해 들은 무녀와 사무라이 그리고 시커. 그들도 자기들끼리 무사하라는 듯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사무라이 히이로의 어깨를 꽉 쥐었다.
“야. 위험하면 네가 몸으로 때워라. 위기 상황에선 희생하고. 대신 죽으란 말이다. 알겠냐? 명령이야.”
“어... 와카타...”
내 명령을 주입받은 사무라이 히이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리 엄청나게 강한 클래스는 아니지만 대신 죽어 주는 것쯤은 할 수 있겠지.
나는 칠흑바퀴, 음지나방을 남겨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
“하아... 하아...”
“언니... 여기.. 어딘지 알어..?”
“나도 몰라야. 기냥 잔말 말고 빨리 걸으라.”
콘크리트 건물 내부.
조선족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노리개로 전략하기 직전 건물 안으로 도망쳐 들어온 리주하, 리은하 자매.
둘은 지금 건물 내부에서 길을 잃었다.
“근데 언니, 너무 화내지 말어. 그놈아들 원래 미친놈들인 거 몰러?”
“제기랄, 야야. 지금 나가 화를 안내게 생겼어이? 그 썩을 호랑말코 같은 놈들. 단합하지 못할지언정 건들지는 말았어야지. 썩을 놈들.”
리주하는 동생 리은하의 말에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북한 탈북자들을 상대로 항상 등 처먹는 조선족 브로커들을 증오하던 리주하였다.
놈들의 만행을 듣고 자라다 보니 밖으로 빠져나갈 희망마저 사라진 채 공산주의 체제에 굴복해 살아간 자기 인생이 너무 서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까지 기어들어와 행패를 부리니 놈들을 찢어 죽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허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동생이 인질로 잡혀 버려 그녀는 싸우길 포기하고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마침 놈들이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가기 전 건물 입구에 진을 치고 잠시 쉬는 동안 그녀는 자신들을 감시하던 조선족의 목을 뜯어내 죽이곤 동생을 데리고서 안으로 도망쳤다.
“그 망할 돼지 머리 놈들. 다시 마주치기만 해 봐라야. 내가 아주 다 삶아 죽일 기야.”
“어, 언니.. 쉿.. 너무 흥분하면 클나. 그놈아들 어디 있을지 알 수가 없잖어.”
“으우.. 빌어먹을. 화도 못 내겠고. 당췌 나가는 길이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그들은 끝도 없는 복도를 숨죽여 걸었다.
이 건물은 그 속이 하도 요상해서 내부 구조가 잘 파악되지 않았다. 같은 문이라도 한번 열렸다 닫히면 전혀 다른 곳으로 이어져 버리니 마치 건물 전체가 커다란 전이 함정이자 무한히 이어져 있는 출구 없는 상자 같았다.
으아!! 고 망할 계집아들!! 어디간기니!!
이봐! 그만 열불내고 좀 가만히 있지 못하겠니!
그래 느 지금 소리 지른다고 답이 나오니? 좀 참으라.
아이 보소, 행님들. 그 아들 잡겠다고 요짝에 기어 들어왔다 이게 뭔 봉변이오! 우리 다 찢겨 난 거 알고는 있슴까? 내 그냥 가게 두라 그리 말했는데..!
흐우.. 알지. 알지만서도 지금 와서 후회해도 방법이 없잖니.
으우.. 그 니미럴 시불 것들... 아주 잡으면 가만히 안 둘 낌다. 아쇼?
으이구.. 승질 엿 같아서..
멀리서 그녀들을 뒤쫓던 조선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은하와 리주하는 입을 막고서 자세를 낮췄다.
“여기로 안 오것지야?”
“응.. 근디 언니.. 그거 얼마나 남았어?”
“그거? 마나?”
“응. 그거.”
“몰러야... 이제 별로 안 남았어이.”
“후우.. 그럼 걸리면 끝이것네.”
“그래야.. 걸리면 끝이니까.. 제발.. 기냥 가라 좀. 이 호랑말코 놈들아...”
두 자매는 그리 숨죽여 조선족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어차피 정상적으로 이어져 있는 건물이 아닌지라 저들이 복도로 이어지는 문만 열지만 않는다면 아마 다른 곳 어딘가로 날려질 것이었다.
끼익...
물론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지라 언제나 바라던 일은 이뤄지지 않는 법이지만.
“어! 어!! 저기!! 저깄슴돠!!!!”
“이야!! 고년들!! 여 숨어 있으면 모를줄 알았니!!! 자자!! 빨리 잡으라!!”
“고얀 년들!! 아주 도륙을 내버릴끼니!!”
조선족 다섯이 그녀들을 발견했다. 조선족들도 실종자들의 숲에 상당히 많이 들어온 상태였다. 더욱이 시스템이 조선족들을 모조리 중국인으로 취급해 버렸기 때문에 중국인의 인구수에 조선족도 포함된 상태였다.
어쨌든 숲에 있는 중국인보단 수가 적었지만 조선족들도 수가 굉장히 많았고 그들은 말투로 서로를 알아본 다음 동포라며 빠르게 팀을 꾸렸다.
그리 팀을 꾸리고선 신사나 사당은 찾지 않고 엄한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들을 잡아다 죽이거나 처먹든지, 아니면 강간이나 해대고 있었다.
그들은 애당초 이 숲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본인들이 뭔가를 할 생각 보단 신사에 들어가 신의 우상을 가지고 나올 이들을 습격해 알맹이만 쏙 빼먹을 생각 중이었다. 그들의 얌체 같은 습성은 생존엔 아주 유리했다.
“어, 언니!!”
그때 달려드는 조선족들을 피해 도망치던 중 리은하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이런 씨!!!”
리주하는 넘어진 동생을 보며 고민했다. 이대로 버리고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멈춰 서서 저들과 싸울 것인가.
버리고 도망친다면... 아마 그녀의 동생은 끔찍한 꼴을 당하고 놈들의 노리개로 전락해 고문받다가 끝내 죽임 당하겠지. 어쩌면 산 채로 먹힐지도 몰랐다.
저들은 식인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미친놈들이니까. 조선족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들 저렇게 정신 나간 짓을 일삼는 건 아니었지만, 저들은 확실히 미친놈들이었다.
“은하야!!”
결국 리주하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놈들과 싸우기로 했다.
“일어서라야!! 빨리 일어서서 도망가!!!”
“어, 언니!!”
“빨리 가라!!! 이놈들 죽이고 따라갈 기니까 기냥 좀 가라고!! 방해된다!!”
리은하는 조선족 각성자 다섯과 마주선 언니의 등을 한번 본 다음 달려 나갔다.
비각성자인 그녀는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성자인 언니의 발목만 잡을 뿐이었다. 힘없는 리은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언니를 방해하는 일이나 도망치는 일뿐이었으니까.
비각성자인 그녀는 자신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사실을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오고 약 3시간 만에 깨달았다. 그녀는 그저 짐일 뿐이었다. 그러니 괜히 옆에서 얼쩡거리다 아까처럼 인질로 잡히기보다 차라리 도망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하나뿐인 언니인 리주하라면 저들과 싸워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언니를 등지고 도망치며 리은하는 눈물을 흘렸다.
“그래. 어서 가라. 은하야...”
리주하는 떠나가는 동생을 곁눈질로 흘겨보곤 다시 앞을 주시했다. 조선족들이 막칼이나 각종 연장을 꺼냈다.
리주하가 가진 거라곤 두 손뿐이다.
몇 시간 전에 붙잡혔을 때 그들에게 무기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는 두 손이면 충분했다.
곧 그녀의 손톱이 길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