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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10화 (110/221)

〈 110화 〉 109. 북한에서 온 구미호

* * *

“키아아아!!!!”

리주하의 외형이 변화했다. 그녀의 머리가 하얗게 새며 짐승의 귀가 자라났다. 또한 손톱이 길어지며 날카로워졌고 꼬리뼈 쪽에서 뚜둑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세 개의 꼬리가 자라났다.

“저, 저! 니미럴!! 또 지랄이니!!”

“마나도 부족한 년이 순순히 항복하라!!”

“닥쳐!! 이 호랑말코 놈들아!!”

곧 그들은 격돌했다. 삼미호로 각성한 리주하는 다가오는 조선족의 팔에 손톱을 휘둘러 살점을 뜯어내고 요력을 통해 그의 몸에 불을 붙였다.

"끄아아아!! 불!! 불이야!! 으아아!!!"

리주하는 불타는 조선족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클래스는 구미호. 한반도 전용 클래스다. 비록 아직은 레벨이 낮아 꼬리가 세 개뿐이지만 종족이 바뀌는 클래스답게 스탯 자체는 일반적인 인간들 보다 상당히 높았다.

“끄아아아!!!”

리주하의 손톱에 목이 찢겨나간 조선족은 멈추지 않는 피를 막아보기 위해 목을 붙잡았으나 연달아 얼굴을 찢어발기는 리주하의 손톱에 허망하게 죽어 버렸다.

‘젠장...!’

이제 다섯 중 하나를 죽였다. 그녀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남은 넷을 마력이 떨어지기 전에 다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마나가 부족했다. 비스트 폼을 유지할 만한 마나가 거의 남지 않았다.

완전한 구미호로 각성하지 않는 이상 비스트 폼은 마력을 소모해야만 유지할 수 있었다. 마나가 떨어지면 그녀는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되면 결국 조선족들의 손에 죽겠지.

이때까지 리주하는 숲의 위협들로부터 비 각성자인 동생을 지키며 싸우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잠도 못 잤다. 애당초 숲에 들어올 때도 삶은 감자 2개밖에 없었다. 숲에서 뭔가를 채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숲에 들어온 것 자체가 리주하에겐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녀의 고향인 북한은 재앙이 시작되며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금에 와서 북한엔 생존자가 거의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산에 모여 있던 이들 뿐이었다. 그녀들 또한 산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건진 이들 중 하나였다.

사실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각성자니 플레이어니 하는 것이 생소한 개념이었던 나라였기 때문에 재앙 초기엔 능력을 각성한 이들이 마귀 사탄으로 몰렸었다.

이는 참으로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혁명을 항상 경계했기에 발생한 참사인데, 수령 동지는 좀비나 각성자들을 공산주의 전복을 위한 외세의 침략세력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플레이어들을 인민의 적이라며 되도 않은 선전을 펼쳤고, 덕분에 비 각성자가 오히려 각성자를 때려잡거나 정부에 밀고하는 병신 같은 일이 발생했다. 레벨이 낮았던 초기의 각성자들은 북한군의 총칼 앞에선 너무나 무력했고 탄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북한은 각성자들이 힘을 길러야 할 재앙의 첫 주를 각성자사냥으로 무의미하게 소비해 버렸다. 차라리 빠르게 정부가 무너져 각성자들에게 아무런 간섭이 없었던 나라들이 훨씬 더 나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각성자를 소탕한 북한은 결국 업데이트가 진행되며 점점 강해지는 좀비들에게 손도 못 쓰고 멸망당했다.

더구나 현대무기의 종식이라는 미친 업데이트로 총화기가 무력화되며 핵도 쏠 수 없어졌으니 손쓸 도리도 없이 평양은 좀비들에게 전복 당했다.

그제야 수령 동지께서는 각성자들이 재앙의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었을 때였다.

게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했던 덕에 뭘 해볼 세도 없이 죄다 죽어 나간 거다. 아프리카나 일부 개발도상국들도 다들 비슷한 상태였다. 그중 북한이 가장 빨리 무너졌지만.

아무튼 늘 정부에게 수탈당하고 수동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게 당연했던 북한인민들은 각성자가 인민의 적이라는 프로파간다에 놀아나 괴뢰정부가 무너진 지금까지도 각성자들을 마귀 사탄의 자식이며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하기 바빴다.

그들은 수령님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질서를 바로잡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보같이 허황된 믿음은 3주를 채 넘기지 못하고 다 무너졌다.

군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인민들은 좀비의 주둥이에 물어뜯겨 죄다 죽었다. 지능이 낮은 순으로 빠르게 인생을 하직한 것이다. 주체적인 사유를 하지 못한 이들의 최후였다.

‘살아야 해. 살아남아서 신의 우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다들 살 수 있어.’

그리고 지금 북한의 얼마 없는 생존자이자 북에서는 굉장히 희귀한, 각성자 중 하나인 리주하는 주먹을 불끈 쥐고서 다짐했다.

꼭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신의 우상을 찾아 돌아가리라고.

지난날 귀신에 홀려 그녀의 삼촌이 죽었다. 그 정신 나간 망령들이 집으로 침입하는 걸 막기 위해선 신의 우상이 절실했다. 또한 집단에 받아들여지고 믿음을 주기 위해서도 우상을 필수적이었고.

비록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이라고 해봤자 산속에 지어둔 움막 같은 곳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곳이라도 집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가족들이 있으니까. 믿을 구석하나 없는 이 세상에 가족이란 꽤 의지하게 되는 존재들이었으니.

허나 그녀의 가족들은 리주하와 리은하를 사실상 버려도 되는 패로서 숲에 들여보낸 것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에 찌들어 아들인 막냇동생만 중요시하는 아버지와 그걸 당연하다 여기는 어머니 그리고 그녀들의 희생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어수룩한 남동생은 리주하와 리은하가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여겼다.

각성자인 리주하가 가진 힘을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고 도움도 받았던 그들이었지만 정부의 선전에 놀아나 여전히 자기 딸인 리주하를 마귀사탄의 피가 흐르는 괴물로 여기는 인간들이었으니.

특히 그녀들의 아비 되는 작자는 항상 남조선을 선망하던 리주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런 찰나 리주하가 각성까지 하니 대놓고 무시하거나 막대했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를 구타하며 마귀의 자식을 낳은 년이라며 욕하기까지 했다. 또한 그들이 자리 잡은 산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생활하게 된 이들 또한 리주하를 괴물 보듯이 봤다.

리주하도 그런 사람들과 가족의 냉대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인정받고자 자진해서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온다고 한 거였다. 리은하는 언니 혼자 위험한 곳에 간다는 생각에 따라나선 것이었고.

물론 방해밖에 안 됐지만.

“하아... 하아... 시발... 간나 새끼들... 뭐 하나!!! 빨리 들어오라!!!”

약 5분간의 전투. 리주하는 그사이 피로 물들었다. 그녀의 옆구리에는 조선족이 죽어 가는 와중에도 쑤셔 박은 사시미가 하나 박혀 있었고 둔기에 타격당한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런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녀는 조금 전 두 명의 조선족을 더 찢어 죽였다. 눈앞이 핑 돌고 당장 쓰러져 죽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꿋꿋이 버텼다. 도망친 동생이 붙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쓰러지지도 못했다.

안타깝게도 거기까지가 그녀의 한계였다.

다섯 명 중 셋을 죽였으나 남은 둘을 죽일 여력이 없었다. 마력도 없었고 레벨도 낮았다.

곧 변신이 풀릴 것이다. 쉬지도 못하고 비 각성자인 동생을 데리고서 숲을 방황했던 게 너무 컸다.

마력이 회복할 틈이 없었으니.

그녀의 패배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아.. 하아.. 쿠헉...”

리주하는 결국 자세가 무너지며 피를 토해냈다.

그녀와 싸우던 조선족들은 곧 쓰러지려는 그녀를 보면서도 웃을 수가 없었다. 계집년 하나 잡으려다 셋이 죽었고 자신들 또한 상처를 꽤 입은 상태였다. 더구나 리주하도 곧 죽을 상태였다. 이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큰 상황이었다.

조선족 둘은 귀기 어린 눈빛을 보내는 리주하를 보며 정말 독한 년이라고 생각했다.

“더럽고 추잡한 년. 이제 그만 죽으라!!”

리주하의 독기어린 시선을 받아 넘긴 조선족은 들고 있던 손도끼를 들어 올리려 했다. 피를 토해내는 리주하는 그의 공격을 피할 힘이 없었다. 막아 낼 힘은 더 없었고.

도끼가 머리에 찍힌다면 그걸로 끝이겠지. 리주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도망친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능력을 얻은 뒤로도 유일하게 자신을 계속 살갑게 대해준 가족이다. 언제나 언니처럼 강한 사람이 될 거라 말하던 아이였다.

‘여기까진가... 갈 땐 가더라도... 은하 니 앞길은 터주고 싶었거늘...’

그녀는 부디 자기 여동생이 무사히 이 숲을 빠져나가길 바랐다. 신의 우상을 구하든 못구하든 이 지옥 같은 숲에서 동생이 무사히 벗어나길 바랐다.

‘그러니 네놈들을 내 길동무로 삼아야겠다.’

그녀는 죽어 가는 자신과 함께 조선족들을 불태워 세상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죽어 가는 그녀였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방법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했다.

클래스 구미호의 필살기. 사용할 경우 본인도 매우 높은 확률로 죽을 일회성 스킬.

여우구슬 터트리기.

구미호가 가진 생명의 징표이자 요력이 담긴 보주를 속에서 끄집어내 자기 손으로 터트린다. 그러면 이 복도는 여우 불에 휩싸여 살아 있는 모든 걸 불사 지를 것이다. 여우구슬 터트리기는 구미호가 가진 자폭기였다.

비록 그녀의 레벨이 낮고, 마력도 부족한데다, 모아둔 요력도 거의 남지 않아 목숨 바쳐 구술을 터트려도 건물을 통째로 날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눈앞의 조선족들은 확실하게 태워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구슬에 담겨 있었다.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호랑말코 놈들. 타죽는 고통을 느껴보라우...!’

그녀의 속에서 천불이 일렁였다. 곧 요력이 담긴 여우구슬이 입으로 올라오려 했다.

그렇게 그녀가 최후의 수단인 여우구슬을 꺼내기 직전...

­끼이익...

복도와 이어져 있던 문이 하나 열렸다.

“아니, 시발.. 무슨 건물이 이렇게 뒤죽박죽이야. 괴물도 없고. 기분만 나빠.”

“맞아 맞아! 이상한 건물! 어? 주군님... 저기 피 냄새.”

“응? 뭐야 저것들.”

조준 일행이 조선족들 뒤로 나타났다.

리주하를 끝장내려던 조선족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들 때문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느그들은 뭐니!”

“응? 저 새끼 저거 말투 왜 저래.”

“오빠, 저 사람들 조선족 같은데?”

“아.. 조선족.. 시발새끼들..”

인류가 멸망하기 전부터 조준은 평소 조선족들에게 아주 불만이 많았다. 특히 휴일마다 늦잠 좀 자려면 오전 중에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070 스팸 전화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조준의 뇌에 조선족이란 기분 좋은 휴일을 망치는 좆 같은 놈들이었다. 그밖에 그들이 저지른 온갖 범죄들 때문에 조준은 중국인들 만큼이나 조선족을 싫어했다.

그런고로 거의 조건반사에 가깝게 조준은 스킬을 사용했다. 노예로 만든다거나 대화할생각도 없이, 그의 손에서 어둠이 방출됐다.

순식간에 조선족들 옆에 생성된 심연아귀가 입을 쩍 벌렸고.

­콰직.

조선족 두 명의 상반신이 날아갔다. 심연아귀에 씹어 먹히는 그 순간까지도 조선족들은 자신들이 뭐에 당했는지 몰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깨닫기도 전에 씹어 먹혔다. 동시에 그들의 영혼은 인디크론과 카쉬낙스에게 넘어갔다.

­푸화악!!!

“이, 이게 대체..”

상반신이 순식간에 날아가 하반신만 남은 조선족들. 그들의 시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리주하는 그들의 피 분수를 맞으며 새롭게 나타난 이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장신의 남자와 자신과 같은 짐승의 귀를 가진 여인. 그리고 괴상한 생김새의 금발 머리 여자와 안경 낀 못생긴 남자까지.

그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녀는 당장 자신을 죽이려던 조선족을 눈 깜박할 사이에 처리해 버린 그들을 보며 결코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 저기도 한 명 있네?”

곧 상반신을 잃은 조선족들의 하반신이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그제야 그들에게 가려져 있던 여인을 발견한 조준.

“너도 조선족이냐?”

“아, 아입네다!! 내는 조선민주주의인민...”

“오케이. 거기까지. 북한인이네?”

“아... 예.. 맞습네다..”

“이름은?”

“리, 리주하입네다...”

“리주하.. 허어.. 중국놈에 일본인에 조선족 다음은 북한 사람이야? 종류별로 모아 뒀나. 뷔페네. 그쵸?”

조준은 조선족을 먹고는 누린내가 난다며 불평하는 인디크론의 말을 대충 받아 넘기며 허리춤에 매여 있던 귀곡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겁에 질린 리주하에게 천천히 다가 갔다.

‘저놈은 대체... 뭐지...? 아앗.. 마나가..’

그때 마침 마력이 완전 고갈된 리주하는 변신이 풀렸다. 그녀는 다리에도 힘이 풀려 조선족들의 피로 얼룩진 바닥에 주저앉았다.

“생긴 건 제법 괜찮은데. 살집이 너무 없어서 애새끼 같네. 야, 너 몇 살이냐.”

“어.. 스물 두 살입네다..”

“진짜? 성인인 거 확실하지?”

“예... 마, 맞습네다...”

“클래스는?”

“구, 구미호...”

“구미호? 클래스 명이 그냥 구미호야?”

“예... 그게 그냥 구미호라고.. 쓰여 있던데..”

“허어, 클래스 신기하네. 레벨은?”

“구.. 구 레벨입네다..”

“뭐? 고작 9렙? 아니, 북한 사람이라 겁 대가리를 상실한 것도 아니고.. 구렙 주제에 무슨 용기로 여기에 기어들어 온 거야.”

“어.. 저 그게...”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하네. 근데 일행은? 혼자 온 거 아니잖아.”

“아..”

“눈 흔들리는 거 보니까 죽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살아 있겠네. 나머지 일행 어디 갔어. 방금 죽은 조선족들이 네 일행이야? 아니잖아. 그치?”

리주하는 순간 여동생의 존재를 이 남자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눈앞의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동생의 존재를 밝힐 수가 없었다.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한 자기 정보는 어느 정도 공유해주더라도 동생의 정보를 공유하면 이 남자가 동생까지 손대려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조선족 둘의 상반신을 뜯어 버린 그의 능력이 그녀는 너무 두려웠다.

마치 이 괴물 같은 힘을 가진 남자에게서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생마저 휘말려 들게 할 수는 없었다.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고. 말할 수밖에 없게 해 줘야지.”

조준은 리주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굳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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