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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11화 (111/221)

〈 111화 〉 110. 열지 마시오

* * *

조준은 리주하가 나머지 일행에 대해 대답하지 않으려하자 그녀를 내려다보며 허벅지에 귀곡도를 살짝 박아 넣었다.

“끄으윽...!”

고통은 언제나 해답을 준다. 요즘 들어 조준은 부쩍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문제상황을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이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허나 리주하는 조금만 아파도 비명 지르며 자지러지는 그저 그런 약해빠진 인간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피가 흘러 죽어 가는 와중에도 동생의 존재를 조준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입을 꽉 다물고서 고통을 참았다. 본인의 아픔으로 동생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오.. 비명도 안지르네? 깡이 있어... 마음에 드네.”

조준은 리주하의 독기 어린 눈빛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마치 길가에 버려진 짐승 같았다. 상처 입은 짐승의 애환과 슬픔 그리고 오기와 독기가 그녀의 눈에 가득 묻어나 있었다.

그는 지금은 일단 그녀에게 상처를 더해 주기 보단 치유해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고통에 점칠 되어 죽어 가는 몸뚱이다. 상처를 새겨 넣어봐야 삶을 포기하고 체념할 뿐. 그래선 그녀를 굴복시켜 노예로 만들 수 없었다.

조준은 그녀의 상처투성이 몸에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했다. 연달아 몇 번이나 무자비하게 때려 박았다. 자존심 강한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들기 위해.

“끄아아아!!!!!”

차오르는 살점이 몸을 어루만지고 나서야 리주하는 참고 참았던 비명을 내질렀다.

상처가 서서히 나으며 오랜 기간 느껴야할 고통들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들이닥쳐 온다.

그녀를 괴롭히던 상처들이 점차 나아갈수록 리주하는 온몸이 난자당하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건 격정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로서도 참기 버거운 고통이었다.

“회칼도 박혀 있네. 뽑을게?”

“그, 그마아아아!!!!”

조준은 그녀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회칼을 쑥 뽑아 던지고는 피가 울컥 거리며 내장이 쏟아져 나오려는 그녀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틀어막고서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했다.

튀어나오던 그녀의 내장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며 벌어졌던 배가 강제로 아물어간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복도엔 고통스러운 리주하의 비명 소리만이 끝도 없이 울려 퍼졌다. 듣고 있는 사람이 질려 버릴 정도로 처절한 비명 소리였다.

결국 그 정신나간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음양사 호타루는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저거 마려야. 하지 아니므니까?”

“응? 아.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 하이.. 소데스.”

리주하가 치유(?)받는 모습을 고문당한다고 생각한 안경잡이 음양사 호타루는 걱정스럽게 성하린에게 조준을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성하린은 조준과 가까운 사이인 듯해 보였으니, 자신이 직접 조준에게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묻는 것보다 성하린에게 부탁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비명 지르는 여자가 걱정되는 한편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운 호타루였다.

“괜찮아. 저걸로 당신 상처도 치유했잖아.”

“그게 저거 이므니까? ああ、??のスキルですね。(아하, 주군의 스킬이었군요.)”

“뭐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킬 맞아.”

“そうですね。理?しました。(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그제야 호타루는 조준이 사용하는 스킬이 고문 기술이 아니라 치유술 임을 파악했다. 그도 팔에 기다란 자상을 입었을 때 조준의 치유를 받았었지만 그때는 너무 아파서 그의 스킬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식으로 치유가 진행되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고통을 동반한... 상처의 강제 회복... 마치 상처를 파괴하고 재생성하는 듯한...’

호타루는 안경을 바로 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무리 심하게 다치더라도 결코 조준에게는 치료받긴 싫다고 생각했다.

호타루 옆에 서 있던 갸루는 그저 아무 말없이 두렵다는 듯 남자 친구인 호타루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미 조준의 안중에도 없던 그녀로서는 믿을 구석이 남자 친구뿐이었다.

“자, 다 됐다.”

“으헤... 이... 남조선... 종간나.. 새끼.. 내래.. 죽어서도 가만 안 둘끼야...”

“네가 뭐 어쩔 건데. 정신 차리고 몸뚱이나 확인해라.”

“으이? 어.. 어?”

고통에 몸부림치며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던 리주하는 조준의 말에 그제야 말끔하게 나은 자신의 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아아. 이건 치유술이란 거다.”

“치, 치유술..?”

“그래. 이제 멀쩡하지? 움직여봐.”

“아.. 진짜. 멀쩡하게 나았다니... 고, 고맙습네다.. 내래 이런 귀인을 못 알아보고.. 막말을..”

리주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처음엔 허벅지를 칼로 쑤시더니 이후엔 고통을 주기에 빌어먹을 놈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이에 리주하는 그가 어쩌면 아버지 몰래 보았던 남조선 드라마에 나오는 괜히 툴툴 거리지만 사실은 성격이 좋은 남자 주인공 같은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의 착각이었다.

“감사합네다!”

“흐흐흐..”

조준은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 리주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곤 들고 있던 검을 다시 허리춤에 찼다.

그다음 의식용 단검을 뽑아 들었다. 지근거리에서 상대를 협박하고 위협하기엔 귀곡검보다 짧은 의식용 단검이 더 유용했다.

당연하지만 조준은 결코 상처 입은 이를 공짜로 치료해주고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그런 이야기 속의 선인이 아니다.

그는 그저 상처 입은 짐승을 이용하기 위해 치료했을 뿐이다. 그의 친절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죽을 상처를 치료 받았으니 리주하는 장조준에게 대가를 지급해야 했다. 가령 목숨이라거나. 생살여탈권이라거나. 그런 거로 말이다.

“저기. 주하야. 너 나한테 ‘굴복’하지 않을래?”

조준은 일단 평화롭게 물어 봤다. 어쩌면 쉽게 넘어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무엇보다 때릴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리주하의 빈약하고 남루한 몸뚱이를 보고 있으니 그녀가 반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때리면 죽을 까봐.

“응?”

허나 리주하는 굴복하라는 그의 말에 거칠게 반응했다. 감사의 빛을 품고 있던 리주하의 눈빛이 순식간에 의문과 적대감으로 물들었다. 조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결국 그는 살살 쓰다듬던 리주하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꽉 움켜쥐었다. 그러곤 그녀의 목에 의식용 단검을 들이밀었다.

“이, 이게 무슨!!!”

“네가 쉽게 굴복하지 않을 년인 걸 깨달았거든. 그런데 나는 네가 꼭 갖고 싶어서 말이야. 우리 쉽게 쉽게 가자? 괜히 아프지 말고. 그냥 나한테 복종해.”

“그게 무슨 개망발이네!! 역시!! 이 빌어먹을 에미나이! 부모교양도 없는 놈!!! 남조선 간나 새끼는 내래 애당초 믿지도 않았다!!”

“어허. 그런 나쁜 말 하면 안 돼. 쉿..!”

조준은 그녀의 허벅지에 귀곡도를 찔러 넣었을 때 고통을 참아내는 그녀의 서슬퍼런 두 눈을 마주 본 순간 이 여자가 결코 쉽사리 굴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지킬게 있는 사람의 눈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가령 강희선을 지키려던 이한석이라거나 자신의 소중한 자매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던 한태양 같은 이들 말이다.

물론 아무리 지킬게 있는 이들이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때려 부수다 보면 굴복하는 법이지만. 밀어닥치는 고통 앞에서 오기와 독기는 결국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 여자 또한 계속 부수다 보면 굴복하리란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끄아아!!!”

“빨리 굴복해!! 봤잖아!! 넌 절대 못 죽어!! 응~ 자살도 못해!! 계속 치료하면 그만이야!!!”

“이 미친!! 오물장에 빠져죽일 간나새끼가!!! 끼아아!!”

단검을 들이밀며 리주하를 위협하면서도 조준은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콘크리트 건물에 들어 온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허나 10시간 뒤에 이은지가 찾으러 들어올 테니 길이 엇갈리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이 건물은 뒤죽박죽 꼬여있어서 한번 엇갈리면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그는 제발 리주하가 쉽게 굴복해 주길 바랐다.

곧 조준에게 몇 번이나 단검으로 괴롭힘 당한 리주하는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고문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는 조준의 예상보다 비교적 쉽게 굴복했다.

상처를 치유하고 치유시킨 부위를 다시 찌르길 세 번쯤 반복하자 그녀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항 해 봐야 계속 아픔이 이어질 뿐이니까. 또한 굴복하면 노예가 될 거란 사실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녀는 쉽게 굴복할 수 있었다.

“구, 굴복.. 히끅.. 하겠습네다.. 사, 살려주시라요..”

조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심하게 고문했다가 망가지거나 극도로 자신을 증오하게 되면 그건 또 나름대로 곤란한 일이었으니. 적당한 선에서 굴복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됐다..!’

조준은 드디어 떠오른 문구를 보며 곧바로 리주하의 이마에 지장을 찍었다.

­치이이익..!

“크으윽... 이건 또 무슨...”

“네가 내 노예가 됐다는 의미지. 자, 리주하. 아니, 이주하. 너는 이제 자해를 할 수 없다. 나를 결코 배신하지도 마라. 그리고 우린 이제 ‘한팀’이다. 팀에 위해를 가하지 마라. 또한 항상 너의 주인님인 나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봉사해라. 이상이다. 죽을 때까지 이 명령을 어기지 마라.”

“끄윽... 어째서.. 거부할 수가..”

“거부 못해. 이게 내 스킬이야. 넌 이제 내거고. 잘부탁해?”

"흐윽.. 제기랄놈..."

노예로 만들고 나서야 조준은 진심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었다.

이주하는 조준의 일그러진 애정을 느끼며 치욕스러움에 몸을 덜덜 떨어야 했다.

반항하고 싶어도 반항할 수조차 없다. 이미 그녀의 이마엔 조준의 지장이 찍혔다. 그녀는 이제 죽을 때가지 주인인 조준에게 감사하며 봉사해야 했다.

조준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빠져나갈 도리도 없이 폭풍의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자, 이제 너의 나머지 일행에 대해 말해. 어서.”

“끄으윽... 끄윽.. 일행은.. 내 여동생이다..”

이주하는 조준의 거듭된 명령에 억지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결국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몸이 그의 명령에 따른다. 그녀의 굳은 의지는 불복종이 선사하는 고통 앞에 빠르게 무너졌다.

조준은 이미 이주하의 일행이 그녀의 가족일 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목숨바쳐 지키려고 했겠지.

만약 남동생이나 남자 가족일 경우 클래스 보고 쓸모없다 싶으면 적당히 굴리다 사지로 보낼 생각이었고, 여자 형제나 여성 가족 구성원일 경우 얼굴과 클래스를 보고 그녀와 함께 자기 노리개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여동생이란다. 이건 상당히 즐거운 이야기였다. 조준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생겨났다.

“주하야. 주인님한테 존대해야지. 알았지?”

“네.. 알겠습네다. 동무..”

“동무 말고. 음.. 오빠? 아니다. 오라버니라고 불러.”

“예.. 오라버니..”

이주하의 북한 사투리를 듣고 싶었던 조준은 억지로 존대를 강요했다. 이주하는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동생은 몇 살인데?”

“두, 두 살 터울이니.. 올해 스무 살...”

“소라랑 동갑이네. 좋아. 그럼 여동생은 무슨 클래스지?”

“어, 저기 그게.. 무.. 무직.. 직업이 없습네다..”

“뭐? 허. 흠. 별로네.”

한창 이주하의 여동생을 그녀 앞에서 먼저 따먹을 생각에 웃음꽃이 피어 있던 조준의 얼굴이 급격히 무감정해졌다.

그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자기 하렘에 집어넣을 여자들은 일단 예쁘고 클래스가 좋아야 했다. 그러나 이주하의 여동생은 얼굴도 모르고 클래스도 없는 여자다. 굳이 구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는 이주하에게 이은하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는 티를 팍팍 냈다.

조준이 대놓고 관심이 떨어진 티를 내자 이주하는 똥줄 타는 강아지마냥 조준에게 매달렸다.

여동생에 대해 생글생글 웃으며 물어보는 조준의 표정을 보며 그녀는 어렴풋이 그가 여동생을 구하러 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클래스가 없다는 말에 급격히 흥미를 잃어버린 그를 보자 차오르던 희망이 단숨에 꺼져버렸다.

원래 헛된 희망이 무너지면 절망이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자, 잠깐!! 여, 여동생을... 여동생을 제발..."

조준의 인상이 확 변하는 것을 본 이주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 무릎 꿇고 조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강한 남자라면 분명히 이 건물 안에서 길을 잃었을 여동생을 찾아줄 저력이 있을 테니까.

당장 자신이 죽어 가던 상황에선 다른 방법이 없으니 도망친 동생이 막연히 알아서 잘 빠져나갈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 이주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조선 종간나에게 가랑이를 벌려서라도 동생을 구하고 싶었기에.

당연하지만 그녀는 아직 한 번도 남자를 안아본 경험이 없었다. 결혼할 상대가 재앙 첫날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흐음.. 주하야. 내가 네 여동생 구해 줄까?"

"부, 부디.. 부탁드립네다..! 제발!!"

"주하가 그렇게까지 부탁하면 내가 한 번 노력은 해볼게. 대신에 앞으로 오빠 말 잘 들을 거지?"

"무, 물론입네다!! 잘 듣겠습네다!! 오, 오라버니!"

"좋아. 주물 찾는 김에 한번 찾아보자."

"흐윽.. 가, 감사합네다... 동무.. 아니, 오라버니.. 감사합네다.."

당연히 조준은 처음부터 가능한 한 이주하의 여동생을 구해 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이주하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낄 테니까. 일종의 호감도 쌓기다.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모양인데 구해주면 그가 자신을 잡아 팼다는 사실보다는 동생을 구해줬다는 은혜가 더 깊이 남겠지.

이미 하렘 멤버로 집어넣을 생각이었기에 벌써 조준은 그녀에게 약을 치고 있었다. 만약 뭔가의 사정에 의해 노예낙인이 지워지더라도 그를 쉽사리 떠나거나 배신하지 못하도록.

“자, 그럼 다시 찾으러 가 볼까.”

조준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고 있던 이주하를 일으켜 세운 뒤 며칠 동안이나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을 그녀에게 초코바를 하나 쥐어 주며 빙그레 웃었다.

그의 미소가 이젠 소름 끼치는 악마의 웃음으로 보이게 된 이주하였으나 거부하기엔 초코바가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이주하는 얼른 동생을 찾아 동생에게도 초코바를 하나 쥐여 주고 싶을 따름이었다.

비록 그게 악마가 건네는 마약과 같은 것일지라도.

*****

“흐윽.. 언니...”

이은하는 언니를 두고 도망가며 출구를 찾기 위해 홀로 건물을 돌아다녔다. 건물은 마치 미궁과 같았다.

벌써 몇 개나 되는 문을 넘나들며 그녀는 그녀로서도 당최 이곳이 어딘지 모를 장소까지 넘어와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와 함께 돌아다녔던 곳보다 몇 배는 더 낡고 어두우며 곳곳에 부적이 붙어 있는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 복도의 끝에서 붉은 문을 발견했다. 붉은 문은 처음이었다.

“여... 여기는 제발 출구였으면...”

곧 그녀는 붉게 물든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붉은색 문이 조금씩 열렸다.

“어... 이건...”

이은하는 온통 피 빛으로 점철된 기분 나쁜 방에 도달했다. 방은 창하나 없이 꽉 막혀있었다. 골방이었다.

또한 붉은 방안은 요상하리만치 서늘했고,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음침했으며, 곳곳에 피워진 양초의 불길이 일렁이며 사이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어...”

둥글게 놓여 있는 양초의 중심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괴하게 미소 짓고 있는 어린 아이만한 불상이 놓여 있었다.

또한 그 불상 앞에는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자도 하나 놓여 있었다.

마치 이 상자를 결코 열어선 안 된다는 것처럼 집요하게 부적들이 붙어 있었다.

“이게... 주물...”

이은하는 두려움을 참으며 불상 앞으로 걸어갔다.

­쾅!

곧 그녀가 완전히 방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은하는 붉은 방안에 점점 더 크게 웃고 있는 불상과 단 둘이 갇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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