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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12화 (112/221)

〈 112화 〉 111. 벌써 열어버렸네?

* * *

조준과 그의 일행들은 계속 건물 안을 돌아다녔다. 그들이 들어 온 지 벌써 3시간이 지났다. 허나 아직도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불상은 고사하고 출구조차 못 찾았단 말이다.

더욱이 건물 밖과 이어져 있어야할 창밖도 어둠에 물들어 있어 창문을 통해서도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하염없이 문을 열어야 했다.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조준이 콘크리트 건물에 들어와 얻은 이익이라곤 마력이 고갈된 구미호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이익을 본 샘이지만 욕심덩어리인 조준은 더 많은 걸 바랐다. 구미호의 여동생과 이 건물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위험한 무언가 까지도 그는 전부 얻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 하다면 적어도 이주하의 동생이나 건물에 숨겨진 물건 중에 하나는 가지고 나가고 싶었다.

‘거 아새끼 고거.. 어디 있나 몰라...’

그런 와중 이주하는 사라져 버린 여동생을 애타게 찾았다. 벌써 몇 시간째 이은하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서서히 이주하의 마음속에 절망감이 차올랐다.

어쩌면 이은하는 건물로 진입한 조선족들의 손에 이미 붙잡혔을 수도 있다. 아니면 건물에 도사린 어떤 위협이 이은하의 목숨을 앗아갔을 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자 이주하는 너무 불안 하고 무서웠다. 자신이 조선족들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도망치라 말했던 것이었는데, 오히려 자신은 살아남고 동생이 죽게 생겼으니. 그녀로서는 후회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은하야.. 제발.. 무사해라... 언니가 곧 찾으러 갈끼야..’

이주하는 목이 바짝 타고 동생이 잘못 됐을 까 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초조하고 다급해 보이는 이주하의 모습에 조준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를 건넸다.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괜히 너무 초조해하지 마라. 그러다 꼭 사고 난다.”

“아, 알겠습네다.. 그 아는 가진 능력도 없고 해서야. 내 너무 걱정 했나봅네다..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합네다..”

이주하는 탐색의 속도를 더 높이라고 닦달하고 싶었지만 이미 조준이라는 사내에게 기가 눌린 지라 그냥 그의 말에 변명하듯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곧 그들은 다시 문을 열었다. 이번엔 캐비닛과 책상이 하나 놓여 있는 방이 나왔다. 상당히 좁은 방이었다. 다섯 명이 전부 다 들어가기도 벅찬 크기의 작은 방. 마치 스테프룸 같았다.

“이번엔 마트 직원 휴게실 같은 곳이 나왔네. 주군, 들어가 볼 거야?”

“아냐. 너무 비좁다. 그냥 문 닫고 다시 열어 보자.”

“응!”

건물 내부엔 수천 개의 방들과 수많은 복도, 화장실 등 별별 공간이 다 있었다. 그런 다양한 공간이 나오다 보니 조준은 건물이 과거에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수술대가 놓인 병실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호텔의 침실이 나오거나 오래된 국민학교 시절의 교실이 나타나기도 했다. 건물 내부는 시공간이 죄다 꼬여 있는 것처럼 뒤틀려 있었다.

‘하나의 건물에... 이런 공간들이 전부 모여 있는 건 분명히 이상해.. 어쩌면...’

조준은 어쩌면 이 불특정한 공간들은 건물 내부에 실제로 있는 공간들이 아니라 단지 건물에 자리 잡은 무언가가 만들어 낸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건물은 인간의 기억 속에 각인된 장소를 무작위로 생성 중인 것 같았다.

‘분명.. 뭔가 규칙이 있다. 문제는 도무지 그 규칙이 뭔지 알 수가 없단 거지.. 그래도 빨리 빠져나가려면 찾아내야 해.’

조준은 각 잡고 규칙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그는 1시간 동안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문을 여는 시도를 했고, 덕분에 이 건물이 가진 규칙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이 가진 규칙 그 첫 번째.

이 건물은 문을 연 사람의 심리를 반영해 문 너머의 장소를 만들어낸다.

가령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문을 열면 달릴 수 있는 복도가 연달아 나오며, 휴식을 원하는 사람이 문을 열면 방금처럼 직원 휴게소나 텅 비어 있는 호텔 객실이 튀어나왔다.

또한 배가 고픈 이들이 문을 열면 식당이나 슈펴 마켓이 나왔다. 물론 죄다 형태만 음식을 뿐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조준은 이주하에게 문을 열어보라고 시켰다. 그녀가 동생인 이은하를 찾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문을 열면 이은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허나 이주하가 문을 열자 나온 거라곤 흥신소 사무실 같은 공간이나 경찰서로 보이는 장소뿐이었다.

‘원하는 것은 결코 주지 않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의 방을 만든다는 거군. 그렇다면 다음은 이 방들의 세부적인 형태와 세세한 디자인을 어디서 가져오는지에 대한 건데...’

이에 대한 해답도 그는 곧 구할 수 있었다.

“ここは...おばあちゃんの家にみえるんだけど...?(여기는... 할머니 집으로 보이는데..?)”

“?にもそうみえる....(나도 그렇게 보여....)”

“뭐라고?”

“아, 그거시. 여기가 하르머니 지브 가스므니다.”

“여기가 할머니 집 갔단 소리지?”

“하이.”

호타루가 열었던 방은 다다미가 깔린 낡은 목조 주택의 거실이었다. 그런데 호타루는 문득 등장한 다다미방을 보곤 자기 할머니 집과 같은 정취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더구나 옆에 서 있던 갸루, 그러니까 호타루의 여자 친구인 나나사와 레이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조준은 이 이상한 건물은 자신에게 들어온 이들의 기억을 반영해 만들어진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현재 느끼고 있는 욕구나 감정에 따라 방의 종류가 달라지고... 문을 여는 사람의 기억의 단편을 끌어모아 공간의 세부적인 디자인을 구축한다... 그렇다면...’

이걸로 이제 이주하의 동생을 찾을 수 있을 만한 단서는 전부 모았다.

일단 문을 여는 사람이 이주하여야 한다. 이주하와 이은하는 둘 다 북한 사람이자 자매로서 서로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을 테니까. 또한 이주하가 조선족들을 피해 도망치던 이은하가 느꼈을 감정을 가지고서 문을 열어 나간다면.

어쩌면 이은하가 닿았을 곳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알겠지? 이은하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 그리고 문을 여는 거야. 네가 동생을 찾을 열쇠다.”

“아, 알겠습네다... 그 아가 도망치면서 느꼈을 감정...”

이주하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고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런 능력이 없었을 동생이 숲에서 느꼈을 답답함과 공포, 언니를 버리고 간 것에 대한 죄책감과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염원까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은하는 무엇보다.. 여기서 나가고 싶었을 끼네... 그렇다면... 정말 간절히 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담아서...’

­끼익...

이주하가 문을 열자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복도가 나왔다.

굉장히 오래되고 낡아빠진 느낌의 복도였다. 먼지도 가득해서 앞서 이 복도를 지나갔을 사람들의 발자국이 바닥에 찍혀 있었다.

그녀는 단번에 정답을 뽑아냈다. 이은하가 느꼈을 감정을 거의 유사하게 느낀 결과 그녀는 이은하게 마지막으로 지나갔던 복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은 조준의 예상대로 문을 여는 사람이 가진 감정과, 기억을 토대로 공간을 구축한다. 건물 외부의 장소는 전부 배제하고 대상자가 가진 기억 속에서 발견한 건물 내부의 장소만을 만들어 냈다.

또한 콘크리트 건물은 들어온 이들이 무언가를 찾거나 얻고자 하거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마음을 가지면 지칠 때까지 안을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주하, 이은하 자매를 찾고 있던 조선족들이 계속 다른 장소로 이동하며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주물을 노리고 들어온 장조준 일행도 길을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조선족들에게서 도망치려고 도피처를 찾던 이 씨 자매들도 이 안에서 뺑뺑이 돌았다.

이 건물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진 이들만을 그 최심부로 인도 한다. 분명 대부분의 인간들은 숲속에 떡하니 지어진 이 거대한 건물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들어왔을 것이다.

허나 그런 이들은 결코 최심부로 갈 수 없다. 이제 그만 나가고 싶다고, 다 포기하고 바깥공기 좀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만을 가장 깊은 안쪽으로 유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걸 포기한 채 오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만을 가장 깊숙한 곳으로 불러들였다. 이제 그만 건물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만을 선별해 최심부로 유인하는 것이다. 굉장히 악의적인 수법이었다. 지치게 만든 다음 나가고 싶어하면 잡아먹는.. 그런 저주 받은 장소였다.

이은하는 언니인 이주하를 버리고 도망치며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꼈다. 그러던 중 이제 그만 이 이상한 건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니도, 주물도, 신의 우상도 다 필요 없으니 이제 그만 여기서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건물은 이은하를 가장 깊은 심처로 초대했다.

결국 이은하는 이 낡은 복도를 지나 붉은 문 앞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주하는 그런 동생의 마음을 정확히 캐치해 안식처에 인위적으로 도달했다.

“이 너머에 왠지 네 동생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동감입네다..”

꿀꺽..

낡은 복도를 지나온 일행들은 복도의 반대쪽 끝에 있던 붉은 문 앞에 섰다. 이주하는 이 문 너머에 이은하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 자기 동생은 이 문을 열었고, 지금 저 안에 갇혀 있으리라. 이주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럼. 연다..”

콘크리트 건물에서 유일하게 목적지가 하나로 고정된 붉은 문.

그 문을 장조준이 열었다.

­끼이익...

“어...”

문 너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둡고 음침했다. 벽면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이 붙어 있었을 양초들은 죄다 불이 꺼져 있었다. 아니, 아예 녹아내려 있었다.

그리고 기괴하게 목이 돌아간 불상이 그들을 향해 험악한 인상을 쓴 채 노려보고 있었다.

조준 일행은 스산한 분위기의 방 안으로 선뜩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방앞에서 기웃 거리건 성하린이 뭔가를 발견했다.

“저기에 목함이 있어요..”

“맞네.. 부적이 잔뜩 붙어 있었던 목함이네. 지금은 활짝 열렸지만...”

방의 한구석에 정사각형 모양에 갓난 아기를 넣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목함이 널브러져 있었다.

부적이 뜯겨나가고 뚜껑이 활짝 열린 채로.

이미 누군가 저 목함의 뚜껑을 열어본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건 이은하 일지도 몰랐다.

‘저게 코토리바코인건 분명하다.. 문제는 이미 누가 봉인된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안에 있던 뭔가가 빠져나왔단 것..’

조준은 호기심에 방 안으로 발을 집어넣으려던 성하린의 어깨를 잡아 얼른 자기 뒤로 보냈다.

방의 입구를 연 순간부터 양지상이 지랄 발광을 하며 도망가야 한다고 고함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린아 기다려. 저기 안에 뭔가 있어. 들어가는 순간 전투가 시작될 거야... 생존을 장담할 수가 없다.”

“아.. 죄송해요..”

성하린은 얼른 뒤로 물러섰다. 어디서든 앞장서서 걷는 청월야수의 습성 때문에 이번에도 그녀는 제일 선두에서 위험을 떠맡으려 했다. 그걸 방금 조준이 말린 거였다. 잘못 들어갔다간 그대로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잠시 한눈 판 사이 이주하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조준은 이주하를 뒤에서 껴안아 못 들어가게 말렸다.

“오, 오라버니.. 은하.. 은하 냄새가.. 납네다. 은하야..! 은하야!!! 언니왔서야!! 빨리 나와!! 은하야!! 아니!! 은하가 저기 있다니까는!! 그러니 좀 놔라!! 이 간나야!! 놓으라고!! 동생 찾아 나올 기니!! 손 좀 놓으란 말이야!!”

“야 이 미친년아! 저기 들어가면 안 된다고! 죽는다고!!!”

“놓으라!!! 제발..! 내 기냥 죽으삘끼니..! 흐으윽.. 기냥 좀 제발 놓아 주시오... 아이고 은하야...”

조준은 이주하를 꽉 붙들고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이주하는 잃으면 굉장히 아쉬운 존재였다. 이 건물에 들어와 유일하게 이득본 게 이주하를 노예로 만든 거다. 그런데 여기서 이주하를 잃으면 그는 시간만 허비한 샘이었다.

‘젠장... 도대체 저 안에 있는 게 뭐지... 존나 불길해..’

조준은 언젠가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건 암시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마주했던 눈알이 가득 담긴 나무상자를 머리에 쓰고 있던 박스맨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소름이었다.

너무 불길하고 소름 끼쳤다. 질척질척한 악의가 문밖으로까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일행들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갈 것 같았다. 자신과 하린이만 겨우 살아남아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 큰 손해였다.

‘악신님들.. 계십니까.. 도움 좀 구하고 싶은데요...’

조준은 결국 치트키를 꺼냈다. 24시간 자신이 잠든 모습 하나하나까지 밀착관측중인 악신들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벤트 규정상 정보를 많이는 알려줄 수 없었던 악신들이었지만 이미 끝까지 도달한 이상 어찌 빠져나올지 쯤은 알려줄 수 있었다.

[흠. 대놓고 함정이라 굳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건만... 이미 손쓸 도리가 없다. 그 공간에서 나오기 위해선. 저 방에 자리 잡은 것을 죽여야 해.]

인디크론의 말에 조준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함정이었을 줄이야. 행운 666을 또 너무 맹신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저기에 자리 잡은 잡것을 잡으면 보상이 주어질 거다. 그러니 키시리아를 꺼내라. 아니면 그 흉악한 용잡이를 부르던지.]

인디크론은 그냥 필살기를 쓰라고 조준에게 조언했다. 마침 키시리아의 쿨 타임도 다 찼고, 용잡이는 그에게서 보상을 받으며 그를 한 번 불러낼 수 있는 '용잡이의 수호부'를 하나 얻었었기 때문에 불러낼 수 있었다.

참고로 키시리아를 소환하면 약 3분간 엄청나게 거대한 키시리아가 주변을 초토화 시킨다. 그 대가로 현실에 현현하며 얻게 된 소환의 부담을 전부 조준에게로 떠넘기게 된다. 그리되면 조준은 기절하겠지. 또한 한번 소환할 경우 2주간 다시 불러낼 수 없다.

그에 반해 소환에 아무런 위험성이 없는 용잡이는 위험성이 없는 대신 1분밖에 불러낼 수 없으며, 한번 소환권을 사용하면 끝이었다. 더욱이 용잡이가 바쁠 경우 소환을 무시한다.

‘젠장 누굴 불러내야하지...’

두 존재 모두 별거 아닌 싸움에 불러낼 경우 호감도나 친밀도가 크게 감소하는 존재들이다. 과연 코토리바코가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적일지 의문이 들었다.

우습게도 조준은 이젠 오히려 적이 너무 약한 게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방에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맡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음양사 호타루가 만약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면 조준을 정말 미친놈 취급했으리라. 그는 키시리아도 용잡이도 직접본적이 없으니까.

‘만약 그들이 시시한 적이라고 여긴다면... 젠장.’

그렇게 이젠 적이 너무 약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하던 조준에게 카쉬낙스가 말을 걸었다.

[내 첫 번째 촉수도... 있다.. 그 아이는 네가 뭘 하든 절대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아.]

‘아니, 그건 오히려 불러내는 게 더 두렵습니다..’

[크흠...]

카쉬낙스가 헛기침하며 사라졌다.

지난번 강제 계약을 맺고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었던 조준은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난 에이낙스를 굉장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 덕에 카쉬낙스의 음흉하고 음탕한 계획은 방금 수포로 돌아갔다.

‘당장 키시리아를 불러내기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에이낙스는... 끄집어냈다간 내가 역강간당할지도 몰라. 고로 남은 방법은 용잡이를 불러내는 것뿐...’

조준은 용잡이의 수호부를 안쪽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만약 용잡이가 바쁘다면 소환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되면 아까운 소환권만 날아가는 거다.

‘용잡이가 제발 한가하길... 그리고 저 새끼로 만족해 주기를...’

곧 조준은 수호부를 찢었다.

[경고!! 경고!!]

[‘무인 지대’의 광폭한 파괴자가 간이 던전에 등장합니다!!!]

[마룡 사냥꾼, ‘위대한 용잡이 지크프리트’가 현세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현재 버전에 존재해선 안 되는 NPC입니다!!!]

[소환의 부담을 용잡이가 대신 짊어집니다!!]

[페널티가 삭제됩니다!!]

[소환 가능 시간은 약 1분. 수호부가 찢겨집니다!!]

눈 앞을 가리는 알림창이 지나가고.

조준의 든든한 우군이자 그가 아는 인간 중 가장 강력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신의 인간. 아니, 과연 저걸 같은 인류라고 봐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강인한 패기를 주변에 흩뿌리는 남자였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 사람 몸통만 한 용의 대가리가 들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는 용을 사냥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건 또 뭐지..?’

용잡이의 등장에 호타루는 몸의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그저 마주한 것 만으로도 패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이주하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은하를 구해야 한다며 발광하던 그녀는 용잡이의 등장에 딸꾹질까지 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하하! 이거 오랜만인지 벌써 보는 건지 모르겠군!”

용잡이는 들고 있던 용의 대가리를 대충 바닥에 던지고서 호탕하게 웃으며 조준의 등짝을 쳤다. 조준은 실시간으로 HP가 깎여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죽여야 할 적을 알려주게! 이 안경잡이인가? 아니면 여기 여우? 청월야수도 끼여 있지만 그녀는 아닐 거고. 자! 둘 중에 누군가!! 누가 그대의 적인가!!”

역류하려던 내장을 겨우 다시 삼킨 조준이 손가락으로 붉은 문 너머를 가리켰다.

“저, 저기. 저 안에 있습니다.”

“호오.. 저건.. 상당히 악독한 것이.. 인간의 몸에 붙었군. 기다리게.”

­쾅!

멍하니 서 있던 일행들을 지나 용잡이가 몸을 날렸다. 그는 들고 있던 검을 허리 춤에 꽂고 방에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파괴의 여파가 밖으로 퍼져나가 조준과 그의 일행이 죽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곧 뭔가가 으깨지고, 짓이겨지며, 박살 나는 소리가 붉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끼이익..

눈깜짝할 사이에 다시 문이 열렸다. 어두컴컴했던 골방의 곳곳에 불이 붙어 환해져 있었다.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던 불상은 박살이나 돌 조각이 되어 있었고 코토리바코를 품고 있던 나무 상자는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기절한 이은하가 용잡이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녀의 피부 곳곳에 검댕이가 묻어 있었다.

‘도대체 저 안에서 뭔 짓을 한 거지...?’

조준은 도무지 골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상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일행 중 절반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괴물을 용잡이는 몇십초 만에 찢어 버리고 붙들려 있던 이은하까지 구해 냈다.

“하하하! 별거 없군. 간만에 본 녀석이라 공략법을 까먹어서 시간이 더 걸렸지 뭔가. 참고로 아이 뺏는 상자는 제법 신선했네. 만약에 다시 저놈을 상대할 일이 생기면 주변이 있는 일그러진 불상부터 때려 부수고 상자를 파괴하게. 다들 잘 모르던데 사실 그 두 개가 놈의 본체야. 검은 아지랑이는 때려봤자 의미가 없어. 그 두 개를 부숴야 진짜 싸움의 시작일세.”

“어, 저기 그. 감사합니다!!”

“허허. 그럼 슬슬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지. 아, 참고로 방안에 출구와 보상이 떨어져 있을 거야. 그럼 다음에 보지! 언제 한번 술이나 먹자고!”

“아, 예! 정말! 감사했습니다!!”

소환 25초 만에 코토리바코를 찢어 버리고 이은하까지 멀쩡하게 구해 낸 용잡이였다.

심지어 그는 코토리바코의 공략법까지 손수 전달하곤 드랍된 보상과 소환되며 들고 들어온 용의 머리는 그대로 남겨둔 채 떠났다.

그에게 있어선 별로 중요한 물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 의미로 정신 나간 스팩의 NPC였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조준이 그런 이와 친분을 가지고 있단 사실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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