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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17화 (117/221)

〈 117화 〉 116. 살아있는 주물

* * *

“그래, 은지야. 네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고마워요, 오빠.”

은지는 해맑게 웃었다. 이제 자기 몸에 요괴를 품게 될 텐데 두려움이라곤 없는 모습이었다. 하긴, 내 곁에 있다 보면 별 희한한 놈들을 다 보게 되니까 나름 저런 존재들에게 내성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당장 신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요괴가 대수랴. 더구나 화영이의 습관 적인 음문 자랑으로 가뜩이나 바짝 독이 오른 상태라 그런지 은지는 당장에라도 오니를 받아들이고서 나와 섹스할 생각에 흥분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지원자도 없고. 솔직히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면 나나세 소라의 의붓오빠인 히이로를 제물 삼아 실험해볼 생각이었는데 은지가 이리 나서 주니 그녀에게 기회를 돌려야겠지.

‘별다른 일 없이 잘 성공해야 할 텐데...’

허락해놓고도 불안하다. 내 행운 수치 666이 결코 행운만 가져다주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지금. 혹여나 은지가 잘못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기대하는 녀석을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사자인 은지는 이미 각오를 마친 일이다. 은지의 주인으로서 나도 각오를 다져야겠지. 곧 나는 붉은 눈을 번뜩이는 오니를 향해 외쳤다.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좋다. 나를 짊어질 마음이 있는 자는 앞으로 나와라.]

오니의 음침한 목소리에 은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혹여나 저 요괴 놈이 은지를 붙잡아 인질로 삼거나 죽일지도 몰라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은지의 옆을 따라갔다. 내가 옆에 있다면 바로 구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대의 이름을 말하라.]

위압적인 목소리로 묻는 오니. 은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은지입니다.”

곧 어둠 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오니가 무녀의 빛이 닿는 공간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아직 완전히 모습이 보이진 않았다. 저 어둠 너머는 변형된 시야로도 살펴볼 수 없었다.

일종의 결계라도 둘러쳐진 모양인지 스킬을 써도 어둠이 사라지지 않았다.

[좋다. 그대는 이제 나의 봉인체가 된다. 나의 힘을 쓸 수 있으며, 나와 소통이 가능해지겠지. 대신 인간이길 포기하고 만마에 귀의해야 한다. 너의 인생이 꼬여 버릴 거다. 이의 있나?]

오니는 마치 두 번 다시 원래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경고하듯 물었다. 그런데 애초에 우리에게 평범한 삶이란 게 있었나 싶다. 이미 세상은 난장판이 됐고 일상이 비일상이 되어 버린 세계인데.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은지는 씩 웃으며 오니의 물음에 답했다.

“없어요.”

오니는 무녀의 빛이 비치는 공간으로 팔을 뻗었다. 오니의 손바닥에는 기기괴괴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는데 그게 봉인의 실체인 듯했다.

[그럼 봉인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지. 나의 손을 맞잡아라.]

목소리가 워낙 중성적이라 성별이 구분되지 않았는데 결계 근처까지 다가오니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됐다. 오니는 내 예상과는 달리 보기보다 훨씬 더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또한 얼굴에는 요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고 몸에는 검게 삭아버린 기모노 같은 걸 망토마냥 걸치고 있었다.

[신사에 봉인된 나를 ‘인간 이은지’의 몸에 다시 새겨 넣기 위해선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동안 나와 손을 붙잡고서 명상해라... 손을 놓으면 의식은 실패하고. 나는 폭주해 너희를 죽이려 들 테니. 인간 이은지 또한 정신이 나가고 말 거다.]

의식을 진행하기 직전 등골 서늘한 경고를 하는 오니. 감히 은지의 안위를 건드리려고 하기에 분노한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혹여나 허튼수작부리면 가만두지 않겠어. 똑바로 진행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걱정 마라. 너희는 나에게 있어 구세주나 다름없다. 이 썩은 곳에서 당장에라도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어. 그러니.. 부디 1시간 동안 우리를 잘 지켜 주길 바라지.]

“지켜달라고?”

[그래. 1시간 동안.... 나의 요력을 빨아먹고 살던 숲의 온갖 잡것들이.. 여기로 몰려온다. 이매망량을 상대하기 적합한 힘을 가진 이들이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군....]

“그게 무슨....”

[벌써 손님이 오셨군... 그럼 남은 1시간.. 잘 부탁하지.]

그 말을 끝으로 오니와 은지는 눈을 감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미동도하지 않는다. 졸지에 나와 나머지 일행들은 예정에 없던 디펜스 게임하게 생겼다.

그나마 신사에 들어오기 전에 다들 제대로 회복해 둔 덕에 마력이 충분하단 점이 위안이 됐다.

“야!!! 호타루!! 일본인들에게 말해!! 디펜스 게임이다!! 숲의 괴물들이 전부 여기로 몰려올 거야.”

“나니?! 아..!! 민나!! ?がてるよ!! (적들이 오고 있어!!)”

곳곳에서 당황한 일본인들의 외침이 신사 안에 울려 퍼졌다. 난 연달아 그들에게 명령했다. 신사의 입구에서 떨어져 안 쪽으로 들어 와서 뭉치라고.

그리고 호타루와 하쿠보는 당장 은지와 오니를 둘러 싼 결계를 펼치라고 외쳤다. 만약 저 둘이 공격당해 의식이 끝장 난다면 파국이다.

그때 우리가 전투 준비를 끝마치자 신사의 입구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아아! 여러분 다들 여기계셨군요!! 한참을 찾아다녔지 뭡니까!”

놈은 찢긴 양복을 입고 있었다. 또한 목에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낡은 밧줄이 매달려 있었다. 심지어 얼굴은 심하게 창백해 어딜 보나 이미 죽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놈은 숲의 실종자다. 살아있는 사람인척 연기하고 있지만 급하게 여기까지 온다고 외양을 바꾸진 못한 모양이었다.

'오니의 말대로 숲에 들러붙은 잡것들이 모조리 신사로 모여 들기 시작했구나.'

난 암담한 기분에 마른세수를 한번 하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은지 꼬리를 팔랑거리는 하린이에게 외쳤다.

“하린아! 저 새끼 죽여!!!”

내 외침에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 나간 하린이가 푸른 손톱을 꺼내 신사로 기어들어 오려는 놈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커다란 신사의 문이 반쯤 터져 나가며 수많은 짐승들과 이매망량이 신사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하린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은 수였다.

“으아아아!!!”

하린이는 광기가 묻어나오는 짐승의 포효를 내지르며 가장 앞에 서서 신사로 밀고 들어오는 짐승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허공을 날아들어오는 괴이들까지는 하린이가 막아 낼 수 없었다.

“으아!! 쿠소!!!”

“젠부 시네!!!”

그녀의 뒤를 다른 일행들이 지탱했다. 특히 새로 영입한 이단 심문관 하야토가 미친 듯이 십자가를 휘두르며 신사로 침입한 괴물들의 머리를 터트렸다.

그런데 그는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두려움에 질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두렵기에 더 빨리해치워야 한다는 듯이 십자가를 휘두르고 있던 거였다.

“으아니!!! 이 빌어먹을 개종간나 새끼들!!!! 다 죽으라 기레!!!”

이주하는 아예 화마를 일으켜 옆으로 우회해서 밀고 들어오던 괴이들을 일 거에 불태웠다.

또한 그녀는 어느새 삼미호로 변해 하린이 옆으로 가서 그녀를 도왔다. 늑대와 여우가 뒤섞여 숲의 흉측한 짐승들을 찢고 불태우자 더 이상의 물리적 실체를 가진 괴물들은 신사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허나 둘 다 마력 소모가 극심해 보인다.

“주, 준아!! 언제까지 싸워야 해?”

“1시간! 누나 1시간만 버티래!”

“뭐어!? 하, 한 시간이나!?”

나의 외침에 당황해하던 희선 누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 나무뿌리를 소환해 은지에게 다가가려는 실종자들을 붙잡아 으깨버렸다. 또한 그녀 주변을 부유하던 정령들도 괴이들을 상대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더럽게 많네.. 숲에 있는 괴물들이 다 기어 오는 건가... 미친.. 왜 항상 내가 있는 곳에만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는 것 같을까...’

나 또한 전투에 참여해 밀어닥치는 짐승들을 죽였다. 워낙 숫자가 많아서 하린이와 주하가 계속 싸워게 뒀다간 피를 볼 것 같았다. 그녀들을 뒤로 보내고 사무라이놈과 린, 하야토를 전면으로 세워야할 것 같다. 그러면 짐승들은 막아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괴이들이다. 물리적 실체를 가지지 못한 괴이놈들을 잡아 죽이려면 마력을 쓸 수밖에 없는데 이런 속도로 밀어닥치면 마나가 오링되는 건 금방이다.

'나 혼자서 모두를 지키며 싸울 수 있을까...?'

칠흑바퀴고 음지나방도 죽어서 하루 동안 소환이 불가능하고 키시리아를 꺼내자니 그것도 결국은 단발성이라 결국은 밀릴 것 같다.

어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은지 옆에 눕혀둔 이은하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곧 콘크리트 건물에서 발견한 이후로 계속 잠들어 있던 그녀가 눈을 떴다.

“아... 아.. 언니.. 언니.. 어디 있네..”

이상하리만치 스산한 목소리가 이은하의 입에서 흘러나와 신사 안에 낮게 깔려 퍼져나갔다. 그건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은하의 목소리를 들은 이주하가 반응했다.

“은하야!!! 일어났구나!!”

한창 하린이 옆에서 숲의 짐승을 찢어 죽이던 이주하는 순간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이은하의 모습을 보곤 소리를 꽥 질렀다.

“야!! 이주하!! 집중해!!!”

“으, 은하야!!! 알겠습네다!!”

이주하는 내 명령에 의해 다시 전투를 속행했다. 난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이은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 갔다.

이은하는 이때까지 계속 의식불명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를 굴복시켜서 노예로 만들지 못했다. 더구나 상태도 이상해 보이고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라 빨리 이은하를 노예로 삼아야 했다.

“야, 정신 차려. 야. 이은하.”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은하의 눈엔 빛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 말이 되지 못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코토리바코에게 집어 삼켜진 후유증인지 뭔지 모르겠다.

혹시 머리를 다쳤나 싶어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해 봐도 반응이 별로 없고, 몸을 잡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허공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뭔가 중얼거렸다.

‘잡아 패서라도 굴복시켜야 하나.. 그런데 뭐라는 거지...?’

어쩌면 이런 이상한 상태에서 벗어날 단서를 중얼거리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이은하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모자라. 모자라. 모자라. 모자라. 부족해. 모자라.”

뭐가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해결할 방법은 없고 적들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데 이은하에게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녀의 상태를 관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패버렸다가 더 이상해지면 진짜 답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방치하는 게 답인 건지 고민하고 있자 갑작스럽게 이은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아주, 아주 깊게.

마치 신사에 들어온 괴이들을 모조리 흡입하려는 듯이.

“후우우웁!!!!”

실로 광대한 흡입력에 허공을 날아다니며 일행들을 농락하던 괴이들이 모조리 이은하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이은하는 신사를 습격한 이매망량을 모조리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광기 어린 청소기가 검은 연기를 죄다 빨아들이는 모습 같았다.

“끼아아아!!!!”

“우어어어어어!!!!”

“키이이이이사아아아마아아아!!!”

괴이들의 귀곡성이 신사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얼마나 소름 끼치던지 신사로 기어들어오던 괴이들이 화들짝 놀라 밖으로 죄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건 짐승이나 실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포, 포제션 워리어라도 된 건가..? 아니, 그보다 훨씬 굉장한 클래스 같은데..’

코토리바코와 융합되었던 인간이다. 어쩌면 이훈처럼 포제션 워리어로 각성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비슷하거나 더 상위의 직업을 얻었을지도...

“야, 이은하. 괘, 괜찮냐...?”

순식간에 괴이들이 전부 소탕됐다. 전부 이은하의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신사를 습격하려던 지성이 희박한 대부분의 이매망량이 전부 두려움에 빠져 도주했다.

난 이걸 행운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한폭탄을 짊어진 느낌이다.

“욱.. 우욱... 웁...”

이은하는 뭔가 터져 나오려는지 입을 막았다. 구토를 참듯 입을 꽉 막고서 뱃속에서 날뛰는 존재들을 소화시켰다. 그녀의 몸이 시시각각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이미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 같은데...

“꺼억....”

곧 입에서 손을 뗀 그녀는 트림을 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벌어진 그녀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빠져나오고 있다.

그때 이때까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양지상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거...]

“뭐? 왜? 뭔지 알겠냐?”

[저 여자.. 인간이라기엔... 차라리 주물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주물..? 곡옥? 청동 거울?”

[아니... 신사의 봉인을 풀었던 그런 물건이 아닌... 진짜배기 주물 말입니다. 주술에 쓰이는 물건이요..]

“사람이 주물로 변했다는 소리야..?”

[예... 저건.. 살아 있는 코토리바코 같은 상태 같습니다.. 사람의 몸뚱이에 저렇게까지 원혼과 괴이들을 집어삼켜두고 있을 수 있다니... 저 여인의 속은 지금 각축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은하의 내부는 지금 괴이들로 각축장이 된 상태라고 말하며 양지상은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고독, 항아리에 독충을 몰아넣고 자기들끼리 죽이고 잡아먹게 만든 후 한 마리가 남으면 그걸 고독이라고 한다지.

이은하는지금 인간의 모습을 한 고독 항아리고 방금 전 악귀들을 집어삼켜 자체적으로 고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무진장 위험한 냄새가 난다.

나는 여전히 멍하게 트림을 하는 이은하에게 가까이 갔다.

일단은 노예낙인부터 찍어야겠다.

난 멍하니 나를 보고 있던 이은하의 이마에 딱밤을 갈겼다.

심하게 때렸다가 괴이가 역류하면 안되니까... 적당히 패서 굴복 시킬 생각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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