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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27화 (127/221)

〈 127화 〉 126. 용의 보모

* * *

'내 행운 때문인가... 666의 행운... 두렵다..'

난 케이지 안에서 꽥꽥 거리며 나를 향해 소리치는 해츨링을 빤히 쳐다보다가 예원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런지 나를 보는 예원이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혹여나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어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기뻐할거로 생각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으니까 그런 듯했다.

“오, 오빠.. 뭔가... 잘못된 건가요...?”

결국 그녀는 내가 별로 기뻐 보이지 않자 살짝 울먹이며 물었다. 이거 내가 미안한 짓을 해버렸다.

예원이는 나를 기쁘게 만들어 주려고 열심히 알을 부화시켰을 텐데.. 내가 너무 쓸데없는 고민으로 그녀를 불안 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음 여린 예원이가 나 때문에 상처받고 말았다.

‘무려 용을 부화시켜 줬는데...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을 하면 안되지.. 그래, 시발. 지금 지크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자주 만날 사람도 아닌데. 예원이가 더 중요하지.’

난 곧장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활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내 반응이 왜 이상했는지에 대해 거짓말 살짝 섞어서 변명했다.

“아냐! 너무 좋아서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 우와! 이거 드래곤 새끼잖아!! 대박이다!! 장하다, 예원아!! 세상 어디에도 남편을 위해 용을 선물로 준비하는 여자는 없을 거야. 네가 내 보물이다! 이리 와! 안아줄게!! 잘했어!!”

나는 얼른 예원이를 끌어안고서 빙글빙글 돌았다. 안아주며 이마에 뽀뽀해주니 그제야 예원이는 배시시 웃으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예원이는 나와 함께 지내며 내가 워낙 많이 아껴준 덕에 상당히 밝아졌지만 여전히 소심한 구석이 남아 있는 여자다. 그래서 간혹 이렇게 잔뜩 사랑을 표현해주며 예뻐해 줘야 한다. 너무 자존감 떨어지면 우울증 재발할지도 모른다.

‘예원이가 힘들여서 기껏 용을 뽑아줬는데.. 내가 괜히 쓸데없는 고민한다고 예원이 실망시킬 수는 없지... 용잡이 지크에게는 용 키우는거 안 들키면 그만이야.’

어차피 지크프리트와 만날 방도도 마땅히 없다. 그가 줬던 수호부는 코토리바코를 죽이기 위해 사용했으니까. 물론 그가 나를 찾아올 가능성이... 아주 많이 높지만, 그때는 해츨링을 숨겨두면 된다. 설마 냄새로 용을 찾아내는 미친놈은 아닐거다...

'아니야.. 지크 그 인간은.. 미친놈이야.. 분명히 눈치챌거야..'

상대가 그 용잡이 지크프리트라면 분명 내가 용을 키우고 있음을 눈치챌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나를 직접 찾아왔을 때 감출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냐. 내가 키우겠다는데.. 지가 뭘 어쩔건데. 그리고 지크는 다짜고짜 용이라고 죽이는 미친놈은 아닐거야. 대화로 풀어나가면 되겠지...'

그와 몇 번 대화해 본 결과 알 수 있었던 사실인데 그는 용 사냥에 완전히 미친 광인은 아니었다. 용이라고 해서 무작정 잡아 죽이려고는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예원이는 이미 이 해츨링에게 어느 정도 정을 붙인 것 같은데 지크가 찾아와서 죽이겠다고 한다면... 그땐 지크와 대적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걸 건들면 그게 지크라해도 얄짤 없이 싸울 용기가 있다.

‘그리고 지크는 심심하니까 엔드 컨텐츠로 용사냥 다니는 느낌이지.. 용을 보면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게거품 물고 날뛰는 미친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 내가 겁먹으면 안되지.’

나는 일단 계속 예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아무래도 용잡이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 수중에 드래곤이 들어왔다는 건 엄청난 일이니까. 안들키고 잘만 키우면 이 작은 꾸물이는 향후 분명 엄청난 전력이 되어 줄 것 같다.

“그런데 예원아. 이거 다른 애들한테는 말했어?”

“마트에서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어요.”

“그렇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짜 잘했어. 잘 키워서 성체로 진화시키자.”

“네! 헤헤헤..”

이후 나는 해츨링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 해츨링은 예원이를 부모로 여긴 듯해서 그녀의 마나를 먹으며 성장 중이라고 했다. 태어 난 지 하루 만에 꾸물거릴 정도로 커졌다고 하니 몇 주 지나면 팔다리도 생기고 날개도 나올 것 같단다.

그런데 문제는 이 놈의 먹이로 소모되는 마력량인데. 예원이가 말하길 일주일 뒤쯤부터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용이라 그런지 먹는 양이 엄청나단다. 나야 마력이 넘쳐흐르니까 예원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내가 맡아서 마력을 먹여 줘야겠다.

“그럼 그때는 내가 먹일게.”

“좋아요.. 공동육아.. 헤헤..”

예원이는 공동육아라며 기쁜 듯 웃었다. 나와 뭔가 같이 키워나간다는 생각에 상당히 기뻐보였다. 어린 시절 사랑을 못받고 자란 것에 대한 반동으로 그녀는 얼른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는데.. 해츨링으로 그녀의 육아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 같다.

"오빠.. 이제 이 아이... 우리 아이니까.. 이름 지어주세요."

“이름? 내가? 네가 안짓고 내가 지어도 돼?”

“네.. 오빠가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줘요. 저는 그게 좋아요.”

“그럼 그럴까?”

특히나 예원이는 자기 소환수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걸 굉장히 중요한 일로 여긴다. 이름을 지어줘야 더 애착이 생긴다는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내가 자신의 소환수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걸 엄청 선호했다. 마치 아빠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준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토실이나 해실이같이 진짜 대충 짓더라도 꼭 내가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나저나 용의 이름이라...’

당장 용용이라는 이름이 떠오르지만 그렇게 대충 지어 주면 안될 것 같아서 잠시 멈췄다.

'그래도 명색이 용인데.. 이름이 용용이인 건 좀 너무 좆밥 같아 보이잖아..'

원래 드래곤이란 것들은 그럴싸한 이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간지 있는 이름말이다.

어디 가서 자기소개하는데 ‘나는 용용이다!’라며 포효하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진짜 다들 병신으로 볼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곰곰이 고민했다. 내가 데리고 키울 녀석이 아니거나 그저 그런 일반적인 소환수였다면 어찌 불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성장하면 용이 된다는 사실에 너무 설렌 나머지 나도 조금 흥분하고 말았나 보다.

더구나 향후 나와 동고동락하게 될 녀석이니 더욱 신중해지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거창한 이름을 지어 주려니 우리가 부르기 어려울 것 같고..’

곧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용의 이름들 몇 가지가 파바밧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가령 ‘니드호그’라든지 ‘파프니르’ 같은, 좀 대중적이고 사악한 용들의 이름이었다.

‘아니야.. 이것들은 왠지.. 실제로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너무 구시대적이다.’

처음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용들의 이름 중 하나로 지어 주려 했으나 어쩌면 향후 이벤트에 등장할 것 같았다. 그리되면 명칭이 서로 겹치게 된다.

그리고 너무 이리저리 많이 쓰인 이름들이라 희소성이 떨어져 보였다.

‘좀 더 새로운 느낌으로...’

순간 머릿속에서 용이 등장하는 게임이 몇 개 떠오르며 ‘알두인’이라거나 ‘도바킨’이라는 명칭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내가 제일 오랫동안 플레이했던 RPG 게임의 등장인물들이다. 각각 사악한 용과 그 용을 퇴치하는 용사의 이름이지.

‘그래, 그 게임에 나오는 명칭으로 이름을 지어 보자... 흐음.. 파써낙스..? 아니야.. 낙스 부분이 카쉬낙스와 겹쳐서 존나 불길해.. 꼭 재앙의 용으로 성장할 것 같아.. 그럼 안되지..’

용의 이름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에서 이미 지크에 대한 걱정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내 머릿속엔 언젠가 엄청 커졌을 용을 타고 날아다니는 상상만이 가득했다.

드래곤 라이더.. 이건 남자들의 로망이다. 존나 커다란 기계를 타거나 존나 크고 멋있는 용을 타는 건 아무리 나이든 남자라 해도 가슴 설렐 일이지.

그런데 드래곤 라이더라.. 왠지 이 세상 어딘가에 관련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솔직히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드래곤 라이더가 될 수 없다면... 모든 드래곤 라이더를 죽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용용이에게 붙여줄 이름을 정했다.

‘헬겐.. 그래. 헬겐이야.언제나 불타 사라지는 장소긴 하지만... 어쨌든 용의 이름으로 써도 괜찮은 느낌이고 두 글자라 짧아서 외우기도 좋아 보여.’

헬겐은 나에게 참 의미가 깊은 게임 속 마을의 이름이다.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튜토리얼 마을의 이름이자 주인공의 전설이 시작되는 장소니까. 다회차 플레이를 해서 정말 숱하게 봐온 곳이라 그런지 나는 헬겐이라는 단어에서 내적친밀감마저 느껴졌다.

“.. 그래. 이 녀석의 이름은 헬겐이다.”

“헬겐이요..? 오빠답지 않은 네이밍 센스.. 저는 그냥 용용이라고 지어줄 줄 알았는데.. 오늘은 뭔가 다르네요.. 그런데 그 단어에 뭔가 의미가 있나요?”

“흐음.. 의미라.. 글쎄. 멋있고 괜찮지 않아?”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용용이보단 훨씬 멋있는 것 같아요!”

“응. 좋아. 용용아. 이제 너의 이름은 헬겐이란다. 옥상에서 강하게 살아가렴.”

나는 붉은 해츨링의 머리를 검지로 쓰다듬어 주려고 했으나 놈은 내가 만지려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버렸다.

‘만마는 나에게 친근감을 느낄 텐데.. 이렇게 위협적인걸 보면 만마전 소속의 생명체는 아니구나..’

내 검지를 깨물고선 대롱대롱 매달린 헬겐.

아직 이빨이 그리 날카롭지 않아서 그런지 별다른 고통이나 아픔은 없었다. 다만 크기 차이가 어머 어마한 나를 상대로 싸움을 걸어오는 만용인지 패기인지 모를 것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만 했다.

역시 새끼라곤 해도 드래곤이라 그런지 저돌적이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녀석이네.”

“맞아요. 너무 귀여워요.. 헤헤.. 헬겐.. 아빠 깨물면 안 돼요. 내려와야지.”

예원이가 다정하게 쓰다듬자 헬겐은 씩씩거리며 다시 플라스틱 케이지로 들어갔다. 예원이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예원이.. 좋겠다...'

이후 나는 옥상에서 예원이를 껴안고서 대화를 좀 더 나누었다. 주로 예원이가 떠들고 내가 듣는 상태였다. 예원이는 할 이야기가 엄청 많았는지 재잘재잘 열심히 나에게 속삭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열심히 그녀의 말에 반응하며 고개를 끄덕여줬고.

“아, 맞다. 오빠. 저 헬겐 부화시키고 업적도 하나 달성됐어요.”

“그래? 어디 보자.”

“네.. 여기..”

예원이가 알림 창을 띄우자 내 눈에도 그녀가 달성한 업적이 보였다.

[노예 김예원의 업적달성! ‘용의 보모’]

[업적달성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바로 보상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용의 보모라니.. 어떤 보상이 나올지 너무 기대된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보호자의 증표]

[2. 라갈의 인장]

[3. 용왕의 호신부]

[보호자의 증표: 보상 선택 시 육체의 랜덤한 부위에 문양이 하나 각인됩니다. 브레스에 면역 상태가 됩니다. 용의 어리광에도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라갈의 인장: 변신의 의미가 담긴 용언이 새겨져 있는 인장입니다. 인장에 피를 묻혀 오른손 손등에 찍을 경우 잠시간 용으로 폴리모프할 수 있습니다.]

[용왕의 호신부: 황금룡 라갈의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입니다. 착용할 경우 모든 용종들의 호감도가 올라가며 대부분의 용들은 착용자를 보호합니다.]

“오오..”

보상들은 하나 같이 용의 보모가 얻어야 할 법한 물건들이었다.

‘보호자의 증표는... 향후 용과 싸울 일이 생긴다면.. 브레스 한정으로 무적이나 다름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건 나나 다른 근접전투 클래스의 여인들이 빌려서 쓸 수는 없는 보상이란 사실이다. 보상을 수령하는 순간 몸에 증표가 새겨지기 때문에 오직 보상을 수령할 예원이만 사용할 수 있는 보상이었다.

“흐음...”

예원이만 쓸 수 있는 증표는 일단 제쳐두고, 잠시간 용으로 변하는 라갈의 인장이나 용들의 호감도를 쌓아주는 용왕의 호신부..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싶다.

용으로 변신할 것인지.. 아니면 용들과 친해질 것인지..

'용이랑 친해지면... 타고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지 그냥 선택을 예원이에게 전적으로 위임할지 고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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