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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32화 (132/221)

〈 132화 〉 131. 속여라, 불태워라, 강탈해라

* * *

효선 여자고등하교는 반쯤 산 중턱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산과 맞닿아 있는 학교다. 그렇다 보니 도심지가 주 서식지라 할 수 있는 언데드들은 이곳 주변으로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생존자들이 살아남기 좋다는 말이다. 이러한 가정 대로 효선 여고엔 제법 많은 생존자들이 있었다.

일단 효선여고에 자리 잡은 생존자들의 대부분은 효선 여고의 학생들이었다. 그녀들은 설 명절까지 반납하고서 3월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 준비를 위해 학교 체육관에 모여 극기 훈련하던 이들로 훈련 중에 재앙을 맞이해 지금까지 여고에서 생활 중이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재앙을 맞이한 여학생들과 몇 명의 체육 교사들이 각성해 학교에 침입했던 좀비들을 죽이며 중간중간 찾아오는 보부상을 통해 특수한 무기나 장비들을 수급했다.

여기에 여고생 각성자들 중에서 엔지니어와 플랜트 파머라는 희귀 클래스 각성자가 나왔고 이들 덕에 학교는 반쯤 요새로 변했다. 우선 엔지니어가 스킬을 이용해 만든 터렛들이 학교 담벼락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자동 요격했고 플랜트 파머가 키워 낸 나무의 뿌리와 줄기들이 얽혀들어 학교를 둘러싸고 있던 담벼락을 보강해 외부로부터 학교를 보호했다.

그렇게 엔지니어와 플랜트 파머라는 특수 클래스에 의해 효선 여고는 반쯤 요새화됐고 아직 비축해 둔 식량이 풍족했던 이들은 굳이 학교 밖으로 나갈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파머가 운동장을 과수원으로 만들며 키워 낸 여러 가지 열매들에 의해 더욱더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외부에 활발히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간혹 생존자들이 찾아올 경우 받아들이긴 했다.

가령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던 젊은 부부라거나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던 남자애들을 그녀들은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금 효선 여고엔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여고생들과 더불어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생존자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덕분에 도심지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사건 사고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가령 스포츠 센터에 자리 잡은 무뢰한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몰살당했다거나 검은 바퀴벌레들이 좀비와 사람을 공격했다거나.

아니면 악마에 빙의된 이들이 이상한 종교를 권유한다거나, 어느 이름 모를 마트에 괴물들이 모여살고 있다는 요상한 소문들 말이다.

물론 외부로 잘 돌아다니지 않았던 효선여고의 생존자들은 그런 소문을 그저 소문으로 치부할 뿐 전부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멸망했다지만 하반신은 거미고 상반신은 인간인 괴물이 돌아다닐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이 본 건 좀비들이 전부였으니 믿지 못할 만도 했다.

아무튼 그녀들은 생존자들을 받아들이며 이리저리 중요한 정보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모르쇠 취급하며 본인들의 거점 꾸미기에만 집중했다.

“지선 언니!”

“하~암. 벌써 교대 시간이야?”

“네. 언니, 별일 없었죠?”

“어. 어제랑 똑같아. 존나 지루해.”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묻은 학교 체육복을 입은 여고생 2명, 이수경과 김지선이 활을 들고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긴장감이라곤 없는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둘째 주를 제외하곤 좀비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오지 않았으니. 그나마 찾아오는 이들이 있더라도 힘없는 생존자들이라 이들은 방심한 상태였다.

“찾아오는 생존자도 없었어요?”

“생존자도 없었어. 지난주에 찾아왔던 남자 네 명을 제외하곤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돌아다녀.”

“네 명의 생존자.. 아~ 그 무슨 진심 공략반인가 뭔가 하는 오빠들이요?”

“어, 그 사람들. 그런데 그 남자들 좀 이상하지 않아?”

“그래요?”

“어, 자꾸 이상한 소리 하잖아.”

“뭐... 밖에서 무서운 걸 봤나보죠.”

“그런가... 막 목 없는 기사 이야기나.. 바퀴벌레 들이라거나.. 좀비 말고 다른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좀 웃겨서.”

아예 서울을 뜨려던 진심 공략조의 네 명도 효선 여고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들은 팀원인 구교한이 머리가 터지며 듀라한이 된 일과 더불어 조준 일당과의 접전이후 정신적인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나 비술사인 안경잡이 윤지호는 더 이상의 공략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팀의 브레인이 의지를 상실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 게임을 클리어 해결해 보자는 포부를 잃고 평범한 생존자들 중 하나가 된 상태였다.

“그보다 요즘 진짜 너무 조용하네요. 꼭 뭐 나올 것 같지 않아요? 가령 필드 보스라거나.”

“야. 괜히 그런 말 하면 진짜 뭐 나온다고! 저번에도 근처에서 튀어나와서 선생님들이 잡는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부정 타니까 어서 빨리 퉷퉷퉷해.”

“네~ 퉷퉷퉷. 됐죠?”

“그래. 너 진짜 조심해. 말 막하다가 진짜 부정 타.”

“으휴. 선배도 참! 말 한마디로 부정 탈거였으면 저희 진즉에 다 죽었을 걸요?”

“에휴... 됐어. 네가 뭘 알겠니.. 그럼 나 내려갈 테니까 오후에 보자.”

“네~ 고생하셨습니다! 푹 쉬셔요!”

“그래.. 수고해.”

후배인 이수경은 선배 김지선에게 장난스럽게 꾸벅 인사하곤 지정사수의 자리에 앉았다.

레인저인 이수경과 마크스맨인 김지선이 로테이션으로 옥상 감시를 맡고 있다. 낮은 이수경이 감시하고 밤은 김지선이 감시한다. 두 사람은 시력이 굉장히 좋고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데 특화된 궁수계열 클래스였기 때문에 이렇게 주변 관측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녀들은 희귀한 클래스에 맡은 역할도 분명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효선 여고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각성자였으며 대우도 굉장히 좋았다.

물론 학교에 틀어박혀 제때 레벨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15레벨이었지만. 그녀들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녀들의 역할은 학교 주변 감시지 직접적인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위협적인 생존자들이야 도심지에서 나대다가 다 죽었을 것이고, 도심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다 뜯어먹고 난 다음 좀비들이 여기로 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안일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흐음.. 지루해..”

이수경은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맑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주에 남자 네 명이 찾아왔었던 것처럼 간혹 생존자들이 찾아오긴 하지만 그마저도 요즘엔 뜸했다. 귀신들이 밤중에 나돌아다니게 된 이후 생존자들의 수가 확 줄어든 것 같았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게 다가와 산 사람을 홀리는 귀신들 때문에 도심지에선 밤마다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효선 여고엔 어째선지 귀신들이 잘 다가오지 않았지만 도심지는 날마다 귀신 때문에 수많은 생존자들이 죽어 나갔다.

멸망이후 학교에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밖이 그렇게나 참혹한 상황임을 잘 인지하지 못한 호기심이 많은 이수경은 과연 저 아파트로 가득한 도심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탐색조에 끼어 저 아래로 내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허나 그녀는 다가오는 외부의 적들을 감시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저 뭔일 일어나지 않나 기대만 할 뿐이었다.

“어...?”

그렇게 오늘도 멍하니 옥상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멸망한 세계의 인적드문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트나 편의점을 털어오는 상상을 하던 이수경은 저 아래에서 걸어올라오는 세 명의 생존자들을 확인했다.

“와! 생존자들이다!!”

곧 그녀는 의자에 연결되어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이건 비상사태임을 알리는 경종과 연결된 노끈이었다. 생존자의 방문은 그녀의 처지에선 심심했던 찰나 좋은 흥미거리였기 때문에 노끈을 힘차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렸고 당직을 서고 있던 교사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좀바야? 아니면 생존자?”

“아, 저기 멀리서 사람들 걸어올라오고 있어요. 생존자예요.”

“어디 보자.. 세 명이네? 얼굴은 잘 안 보이는데. 여자야 남자야?”

이수경 만큼 시야가 밝지 않았던 체육 교사 유혜지는 멀리서 걸어올라오는 생존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디 보자.. 셋 다 여자예요. 검을 두 자루 들고 있는 단발머리에 피어싱한 여자랑... 뭐지 저게?”

“왜?”

“아니.. 저분홍 머리 여자가 들고 있는 무기.. 망치 같은데, 크기가 사람만해요.”

“어... 진짜네? 저런 걸 들고 싸운다고...?”

“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청 키 큰 금발 머리 외국인이요.”

“외국인까지 있어?”

“네. 백인이에요. 붉은 낫을 들고 있네요.”

“저런 무기를 들고 거리를 걷는 여자들이라. 셋 다 플레이어 같네. 일단 알겠어. 계속 감시해 줘. 나머지는 선생님이 알아서 할게.”

“네!”

곧 유혜지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이수경은 혹여나 저 세 명의 여자들에게 다른 동료나 일행들을 없는지 계속해서 예의주시하며 주변을 살폈다.

비 각성자들이야 신원확인만하고 집단에 받아들여 줬지만 각성자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일지 알 수 없으니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거기 정지!!!”

학교를 둘러싼 식물의 뿌리와 줄기로 보강된 담벼락 위에서 유혜지와 여고 내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그러자 무심한 얼굴로 걸어올라오던 세 명의 여자들이 일제히 검을 들고 있던 유혜지를 올려다봤다.

“거기 당신들. 플레이어 맞죠!”

유혜지의 외침에 단발머리 여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마주 소리쳤다.

“네! 저희들 각성자 맞아요! 저희가 원래 살던 집단이 어젯밤에 스켈레톤이랑 귀신들 때문에 초토화 돼서... 도망쳐 나왔어요! 저희 좀 도와주세요..!!”

단발머리 여자는 처절한 심정을 담아 소리쳤다.

마치 당장에라도 두려움에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리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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