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6. 예상 밖의 거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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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우상을 지하창고에 완벽하게 설치하고 난 뒤, 나는 때마침 할일이 없던 화영이와 예원이를 데리고서 이리저리 학교를 둘러봤다. 앞으로 여기서 터전을 꾸리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마트는 몇 번이나 좀비들에게 습격을 당한 탓에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도 많고 유리창도 많이 깨져 있어 어수선하고 보기 흉했기 때문이다. 허나 효선 여고는 마트와 달리 좀비 웨이브를 죄다 비껴간 덕에 풍경도 좋고 마트보단 훨씬 깨끗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산책을 하고 있다보니 망가진 터렛을 수리하던 정지연과 마주쳐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뭐? 귀신은 원래도 잘 안 왔다고?”
“네... 업데이트 이후로 일주일 동안 유령이나 이상한 게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엔지니어인 정지연과 대화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놀랍게도 신의 우상을 설치하기 전에도 학교엔 귀신들이 잘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의 우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효선 여고의 사람들은 괜히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단 안 들어가기를 선택한 모양이었다.원래 도시 괴담의 배경은 학교가 가장 기본적인 법인데 어째선지 학교엔 귀신이 없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화영이가 자기 생각을 말해 왔다.
“흐음.. 귀신들은 원념이 뭉쳐 있는 장소에서 특히 많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쵸?”
“그치..?”
“그리고 재앙이 시작되고 도심지에서 특히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으니까... 효선 여고 부근에서는 잘 출몰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화영이의 말은 재앙 초기부터 엔지니어와 플랜트 파머, 길드 매니저를 가지고 시작한 효선 여고에선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을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이 인근에서 잘 발생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그런 화영이의 의견을 예원이가 뒷받침 해줬다. 둘 다 내가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가 있을 동안 거의 일주일 정도를 마트에서 버텼으니 뭔가 보고 느낀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빠.. 제가 옥상에서 관찰해봤는데요.. 그, 저희가 무너뜨린 스포츠 센터있죠?”
“어, 거기.”
스포츠 센터에선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었다. 더욱이 우리가 털어 먹으로 가기 전에도 식인 행위부터 입에 담기 거북한 온갖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특히나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이찬성이 진성 싸패 새끼라서 고문당한 이들을 예술품이라며 장식해 두는 경지에 이르렀었지. 그런 장소다 보니 원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 좀 과할 정도로 많이 모였었어요.. 심령 스팟으로 지정된 장소가 아닐까 해요... 그리고 귀신들은 거기를 터전 삼아서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대부분 밤이 지나기 전에 그 장소에 다시 돌아갔어요..”
“그러니까 예원이 네 말은 거기가 귀신들의 거점이다.. 이거네?”
“네... 그리고 여기 효선 여고는 저희가 있던 우리마트보다 스포츠 센터에서 훨씬 머니까.. 귀신이 아직은 오지 않은 거 아닐까요..? 가까운 곳에 있는 생존자들부터 다 죽이고... 차근차근 오려는 걸지도 몰라요..”
“일리 있네. 활동영역을 점차 늘려 나가는 느낌으로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귀신도 구울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치면 말이지.”
곧 도심지가 무인 지대로 바뀌고 나면 귀신들은 이곳에 몰려들려고 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신의 우상이 정상작동 중일 테니까 상관없다.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때 이은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야, 이은하. 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그게.. 기냥.. 조금 어지럽고 마음이 울적해서...”
이은하는 어지럼증과 원인불명의 우울함을 호소해 왔다. 귀신을 그리 미친 듯이 처먹고도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니 걱정됐다. 설마... 집어삼킨 괴이들이 속에서 터져 나오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야.. 은하야. 진통제라도 찾아 줄까?”
“아, 아입네다.. 그게.. 약으로 될 일이 아이라.. 이건 뭐랄까..”
“증상을 확실히 말해.”
“고, 고것이.. 숨 쉬기가 좀 답답하고.. 속이 불편해서... 그리고 요기 있음 안 될 것 같은 기분입네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어딘가 심하게 아프다기보단 뭔가 기분이 엄청 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이은하게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주하를 불렀다.
한창 학교 별관에 식재료를 옮기고 있던 주하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이리저리 은하의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애가 어릴 적부터 튼튼해서 감기 한 번 없었는데.. 만져봐도 문제 없습네다. 은하야, 아픈데 있으면 참지만 말고 언니한테 자세히 말을 해 봐라야.”
“어, 언니.. 그게..”
주절주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증상을 언니에게 설명하는 이은하.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않은 탓에 어휘력이 좀 딸리는 친구라 횡설수설 말을 잘 못 하는 감이 없지 않아 들지만... 그래도 참고 자세히 들어 보니 이은하는 지금 이곳의 기운이 불편한 듯했다.
‘설마....’
신의 우상의 효과가 이은하에게도 통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가 방금 전부터 뭔가 짓누르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 내가 영감 하나를 제물로 바치고 신의 우상을 활성화한 순간부터 그녀는 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진 모양이다.
‘언데드도 아닌 커스 돌인 이은하가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아예 언데드 계열인 손하은이나 듀라한은 어떨까.’
그들도 아마 비슷한 증상을 느끼고 있으리라. 나는 강은정과 함께 물탱크를 학교 옥상으로 옮기고 있던 하진우를 불렀다.
“야, 진우야! 손하은 어디 있는지 알아?”
“예? 아, 그 해골 꼬맹이 말씀입니까?”
“어. 걔랑 머리 없는 놈.”
“걔네들 아까 보니까 학교 후문 쪽에 앉아 있던데 말입니다. 불러도 대답도 없고. 피곤하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둘 다 신의 우상의 효과 때문에 완전히 퍼졌구나. 나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은하를 안아 들고는 후문으로 향했다.
“어.. 주인 오빠..”
“목.. 목이.. 없다..”
후문 옆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두 사람.. 사실 손하은은 눈알이 없고 듀라한은 머리가 없으니 어딜 보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 다 멍청해 보였다.
“야, 네들 지금 어지럽고 속 안 좋지?”
“어... 속이라.. 뼈밖에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좀 처지네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목.. 목을 줘...”
둘 다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아 했다. 더구나 듀라한은 완전히 방전이라도 된 듯 바닥에 드러누워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항상 헛소리만 하지만.
“흠.. 어쩌냐. 너희들.”
이은하, 손하은, 구교한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나와 화영이, 은지는 아무 이상이 없으나 이들 셋은 언데드에 저주인형이라 그런지 완전히 맛이 갔다. 플레이어지만 종족이 언데드라 그런지 신의 우상의 효과를 받는 모양이다.
‘그런데.. 커스 돌도 언데드인가...? 아닌 것 같은데.. 차라리 인형이니까 무생물에 가깝지 않나? 판정범위가 어떻게 되 먹은 거야.’
솔직히 리치인 손하은이나 듀라한인 구교한은 그냥 학교 밖에서 살라고 하면 된다. 좀비에게 물려 감염될 일도 없는 애들이고 식사할 필요도, 잠잘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듀라한은 좀비나 스켈레톤을 사냥하며 취미 생활인 목 뽑기에 열중하면 되고 손하은도 듀라한이 잡아온 시체나 가지고 놀면 된다.
문제는 은하다. 그녀는 이미 나와 몸을 섞었고 하렘에 들어왔다. 개같이 유기할 수 없단 말이지. 그러니 우린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쯤 리어카 호위 임무를 마친 아름이가 다가왔다.
"다들 아람 언니 못봤어요?"
"아람이? 못봤는데? 왜?"
"아니, 자꾸 저만 일시키고 땡땡이 치잖아요.. 어..? 그런데 다들 왜 그리 심각해요?”
“아.. 아름아.. 그게..”
나는 아람이의 짬까지 전부 떠맡아 짜증나 있던 아름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거 그냥 은하가 먹은 괴이를 토해내면 되는 문제 아니예요?”
“응?”
“보아하니 클래스나 종족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쟤 귀신 먹었다면서요. 그럼 그게 문제겠네. 안 그래요? 그럼 저 다시 언니 찾으러 가 볼게요.”
"어, 어. 그래. 수고해."
아름이의 말에 나는 바로 깨달았다. 아예 뼈다귀만 남은 손하은이나 머리가 달려 있지 않은 듀라한 두 사람은 몰라도 은하 얘는 언데드가 아니다. 심장도 잘만 두근거리고 있고 껴안고 있으면 따뜻하다.
‘클래스나 종족이 문제라면 반인반사인 나도 그렇고 뱀파이어인 화영이도 문제가 있어야지. 심지어 은지는 요괴야.’
그런데 셋 다 멀쩡했다. 그렇다면 이건 언데드만 겪는 문제인데, 그럼 답은 간단하지. 은하가 집어삼킨 괴이들이 속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아까 전부터 어지럽고 속이 안 좋다고 했던 거구나...’
고로 우상의 가호를 받기 위해선 은하는 아름이의 말대로 괴이를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집어삼킨 괴이들.. 아직 소화 안 됐지?”
“소화라기 보단.. 자기들끼리 아귀다툼 중이었는데.. 엊그제 한 놈만 남았습네다.”
“그렇구만.. 그럼 그놈만 토해내면 되겠네.”
“예...”
나는 얼른 고독으로 제조된 강력한 괴이를 베어죽이기 위해 양지상이 깃든 귀곡도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으허억...! 주, 주인.. 드디어.. 드디어.. 제 목소리가 닿은 겁니까...! 아아!! 신이시여!!]
격한 외침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양지상이 황홀경에 찬 목소리로 신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늙은 유령의 목소리 따위 나에게 닿은 적 없다. 그저 사용하려고 손잡이를 붙잡았을 뿐이다.
“뭐, 뭐냐. 아.. 너도 유령이었지.”
가만 보니 양지상도 언데드였다. 빙의된 영혼이니.. 언데드지. 아무튼 나는 당장에라도 고독을 토해내고 편해지려고 하는 은하를 말렸다. 양지상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독을 토해내던 은하는 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주,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성불할지도.. 어라? 차라리 그게 더 나은 것 같은..]
양지상은 쓸모가 있다. 벌써 성불하면 안 되지.
“야, 기다려! 너 성불하면 지옥 간다.”
[으윽.. 지, 지옥...!!!]
“그리고 내가 저번에 첩도 하나 넣어 줬잖아. 사이 좋드만.”
도도메키를 베어 양지상의 옆자리에 앉혀줬던 것 같다. 내가 도도메키를 언급하자 양지상은 급격히 입을 다물었다.
[...]
뭔가 여자를 옆에 두고 부끄러워하는 영감탱이의 음흉한 얼굴이 떠올라서 기분 나빠졌다.
내가 기분 나쁜 티를 내자 양지상은 얼른 화재를 돌렸다.
[주, 주인님.. 그게 아까.. 그 영감쟁이 죽였을 때 말입니다.]
“어.”
[그때 그 영감을 공양하고 나서 느낀 건데 말입니다...]
양지상의 말을 요약하자면 신의 우상을 안치시킨 지하창고는 뭔가 마음이 편했다는 모양이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고 양지상은 말해왔다. 마치 무덤이나 묘지 같은 분위기였단다.
“그러니까.. 신의 우상이 놓인 지하창고는 사기(死?)로 가득하고.. 지하창고를 나오고 나서부터 급격히 기분이 안 좋아졌단 거네. 성불할 정도로.”
[예.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신의 우상은 결코 신성한 물건 따위가 아니다. 인간의 영혼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언데드 용 홈키퍼 같은 물건이다.
고로 그 물건이 안치된 장소에 한 해서는 충분히 사기가 퍼져 있을 만했다. 그러니 양지상이나 손하은은 거기를 거처로 삼으면 된다. 듀라한이야 좁은 장소는 싫어하니 학교 주변 순찰이나 돌게 만들면되고.
'당장 죽인 노인의 시체조차 치우지 않은 장소니... 거기를 손하은의 공방으로 내주면 되겠다.'
어차피 시체를 만지작거려야 할 손하은은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잠도 자지 않을 그녀가 24시간 내내 우상을 수호하면서 지하창고에 처박혀 공양당한 이들의 시신을 가지고 놀면 되겠다.
“일단 은하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얼른 고독 토해내고... 손하은 너는 조금만 참아라.”
일단은 구토감에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있는 은하부터 해결해야겠다.
그녀의 손가락 틈 사이로 어둠이 삐져나오는 걸 보아하니 당장 고독을 토하기 직전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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