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139. 진행이 막히면 NPC에게 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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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거의 하루 만에 세 마리의 필드 보스를 더 사냥했다. 상주하고 있던 인원들이 워낙 많은 덕에 스포츠 센터 때보다는 비교적 쉽게 필드 보스를 사냥할 수 있었다.
특히나 힐러들과 서포터들을 실종자들의 숲에서 대거 납치해온 덕에 전투가 한층 더 쉬워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세 마리나 잡았는데도 내 레벨이 겨우 1개밖에 오르지 않았단 사실이다.
‘15레벨은 전투에 참여 만해도 16레벨로 올랐지만...’
16레벨부터는 다시 레벨 올리기가 쉽지 않아졌다. 세 마리를 전력으로 때려잡아 기여도를 높여 봐도 겨우 레벨이 1개밖에 더 상승하지 않았으니 필드보스도 효율이 떨어지는 몬스터가 됐다.
그렇다보니 이제 좀비나 스켈레톤 따위는 잡아도 경험치를 전혀 얻지 못 하는 느낌이었고. 잡몹은 사냥할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코인 수급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잡아 죽여야하지만, 어쨌든 레벨이 안올라서 큰일이다.
'아마 스킬이 하나 증가할 때마다 전력이 확 상승하니까 나름대로 파워 밸런스를 잡기 위한 안배일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이번에 노예들을 이끌고 단체로 레이드를 뛰며 알게 된 것 중 제일 놀라운 사실인데.
일반직이라 여겨지는 클래스들. 그러니까 워리어, 아처, 파이터와 메이지까지. 이 네 가지 클래스들은 15레벨이 넘어가는 순간 더 이상 스킬을 추가할 수 없고 원래 가지고 있던 스킬들이 강화됐다.
그들은 원래 있던 스킬 자체가 성능들이 애매했는데 그게 레벨 업으로 보완되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미 15레벨까지 키운 이들은 그대로 빌드가 굳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클래스들은 스킬이 계속 추가 됐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일지는 아무도 몰라. 짜놓은 빌드를 초기화 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나 방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계획 없이 스킬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엔 숨통을 조이는 일이 된다..’
일반직은 15레벨인데 벌써 스킬 추가가 아니라 강화가 시작됐다. 직업들 간의 희귀도나 등급이 어찌 나눠져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가장 흔하고 낮은 등급의 직업이라 생각되던 것들이 15레벨부터 스킬 추가가 되지 않으니 좀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다시 스킬이 추가될지 아니면 그냥 계속 스킬 강화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스킬 습득에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런 추세라면 나를 비롯해 내 하렘 멤버들이나 희귀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결국엔 스킬 추가가 멈출 것이다. 그러니 빌드를 더욱 체계적으로 맞춰야 한다. 뭐 그것도 레벨이 좀 빨리 오를 때의 이야기지만.
그나마 이번에 효선 여고에 있던 이들 중 새로 각성한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인간들은 마구잡이로 키우지 말고 다른 각성자들의 조언을 참고하게 해서 좀 체계적으로 키워볼 생각이다. 컨셉을 확실하게 잡고 키우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멸망한지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좀비 한마리 안죽여본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거지... 물론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은 좀비 사냥이 불가능 했겠지만...'
강당에 있던 장애인들을 알시드 감염체로 만들고 나서야 알게된 사실인데. 노인들이나 장애인들 중에선 아직 좀비를 한 마리도 안죽여본 이들이 있었다. 문제는 좀비를 죽여보지 않은 인간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지육신 멀쩡한 인간들 중에서도 좀비를 피해다니기만 하고 싸워 죽여보지 않은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야말로 밥버러지들이 따로 없었기에나는 당장 좀비와 스켈레톤을 끌고와 그들에게 죽이라며 던져 줬다.
그 결과 무려 24명이나 되는 신규 각성자가 추가됐다. 아쉽게도 전원 일반직 각성자였지만 어쨌든 각성자는 각성자니까. 그리고 일반직 중에서도 희귀한 메이지도 꽤나 추가됐고. 아무튼 그런 일들이 있었다.
“존나 한가롭네.”
“그렇군. 이게 평화...?”
나는 메르를 품에 안고서 옥상에 앉아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운동장에는 비 각성자들이 바삐 나무에서 자라난 열매를 따고 있었다. 또한 어디서 몸빼바지를 주워 입은 희선 누나와 플랜트 파머인 인혜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었다.
듣자 하니 체육대회 날에 반티 삼아 구입했던 걸 주워 입었다고 한다. 일하기 편한 복장이라고.
“주인. 희선양이 뭘 심고 있는지 아는가?”
“어.. 삼월이라서 감자랑 상추랑 심는다던데.”
“그렇군.. 감자라.. 훌륭한 구황작물이지.”
그녀들은 감자와 상추를 심어본다고 아침부터 흙을 다지고 식물생장관련 스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포칼립스와는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목가적인 풍경이라 보고 있으니 어딘가 마음이 편안 해졌다.
‘이번에 정령들도 진화했다고 했었나..’
산이 있고 학교 내부도 나무들로 가득한 통에 자연친화력이 급격히 오른 희선 누나는 어제 저녁에 샐러맨더와 운디네를 진화시켰다. 샐러맨더는 이프리트로 진화했고 운디네는 네레이드로 진화했다는데, 둘 다 이제는 짐승이나 슬라임 같은 형태가 아니라 작은 인간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인간형 정령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화력도 엄청 증가했고...’
그들은 이제 공격용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가 됐다. 뒷산에서 파괴력을 측정해 보니 이프리트가 쏘아내는 화염구는 메이지 클래스의 마법과 맞먹었고 네레이드는 쏘아내는 얼음송곳은 살상력이 굉장히 높았다. 둘 다 나무를 부러뜨릴 정도로 강했다.
그 모습에 드루이드는 어쩌면 후반부 최강의 직업이 아닐까 싶은 생각 마저 들었다. 지금도 마법사 둘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인데 나중에 저 중급 정령들이 정령왕급으로 진화 하면 얼마나 강해질까...
살아 있는 자연재해가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플랜트 파머인 인혜와 같이 붙어 다니며 농사를 짓더니 노움과도 계약에 성공했고 예원이와 옥상에서 헬겐을 함께 돌보더니 실피드와도 계약했다.
노움은 아직 땅고르기와 비옥토 생성밖에 할 수 없어서 공격력은 제로에 가깝지만 실피드는 하급 정령 주제에 바람 칼날, 일명 윈드 커터라 불리는 기술을 쓰고 앉았다. 솔직히 이대로 가면 최강자의 자리는 희선 누나의 것이다.
‘이프리트 한 마리에 네레이드 2마리.. 노움과 실피드까지... 이러고도 아직 한 자리 남았네..’
다섯 마리와 계약하고도 아직 한 자리가 남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드루이드는 총 여섯 마리의 정령과 계약이 가능하니까.
‘기왕 강해지고 있는 김에 누스의 팔찌를 찾아서 부패의 숲에도 가봐야 할텐데...’
희선 누나는 심지어 클래스 관련 세트 아이템도 따로 있다. 세계수의 딸이라더니 만귀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클래스 답게 좀 특별하다. 물론 그녀는 나의 것이지만..
어쨌든 희선 누나의 전용 아이템 세트는 바로 누스 시리즈다. 우연히 보부상에게서 구입했던 누스의 생화반지를 시작으로 숲지기로 진화하며 얻게 된 누스의 목걸이까지.
두 개의 물건은 얼떨결에 얻었지만 누스의 팔찌도 과연 우연히 얻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팔찌도 보부상이 판매할지.. 아니면 암시장에서 얻어야 하는 건지..
“그러고 보니 아직 보부상이 안 왔네.”
“그렇군. 벌써 금요일인데.”
“내일 올 생각인가.”
학교엔 이미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보부상은 100퍼센트의 확률로 등장해야 한다. 다만 랜덤한 요일과 시간에 나타나기 때문에 언제 나타날지 알 수가 없었고 그저 그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뿐이었다.
“보석상하고 무기상은 언제 오려나.. 하~암..”
“그 둘도 거의 무조건 올 거 같다고 했었지?”
“응. 보석상은 저번에 온다고 했고.. 무기상은 한 번도 본적 없어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직도 안 오네.”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주인. 결국은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다. 보아하니 그들의 물건을 구입해 줄 인간도 이제 몇 없던 모양인데.”
“그렇겠지?”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죽어버려 뭐라도 하나 팔아먹으려면 우리 쪽으로 무조건 올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이번 주 중에 분명 상인 npc들이 전원 등장할 거라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체셔를 만나러 가는 건가?”
“그렇지. 지난주에는 못 만났으니까.”
“그렇군... 그녀도 이곳으로 오면 좋으련만.”
“데리고 나올 수만 있다면 무조건 데려나올 텐데.”
체셔는 암시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다. 듣자 하니 지하층을 탐방하며 영혼의 조각을 찾아야 한다고 했었던 것 같다.
‘광신도와 악마들이 있는 장소...’
악마들은 만마전의 기생충들이다. 그놈들 중 일부가 만마전에서 빠져나와 똬리를 튼 곳이 암시장의 지하층인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악마들 중에서도 상당히 서열이 높은 놈이 하나 자리를 잡았고 놈의 자식인지 부하인지 모를 것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던데...
‘악마를 사냥해야 한다는 소리니까. 아람이가 필수겠군.’
체셔의 영혼 조각은 지하층에 둥지를 튼 악마가 가지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필히 악마 사냥꾼인 아람이를 데리고 가야겠지. 직업부터가 데몬 슬레이어기도하고, 악마의 마기를 흡수할 수록 직업 자체가 강화되는 타입이니까.
‘오늘 가서 지하층 공략에 대해 체셔와 확실하게 이야기해봐야겠어...’
지난번에는 내가 너무 약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었다. 암시장의 지하층에 들어가려면 용잡이 지크급이 되어야 한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언제 그때까지 기다려.’
하다 안 되면 키시리아라도 불러내서 타고 다녀야지. 지구에서 불러내는 것과 달리 암시장의 지하층에서 불러내면 소환 페널티가 적어서 좀 오래 불러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체셔를 어찌 꺼내올지 고민하고 있으니 정찰을 다녀온 노예들 중 하나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형님!! 1층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응?”
“그게.. 조금 특이하신 여성분입니다.”
“노예가 아니라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고?”
“예. 그게.. 손목이랑 목에 인형 같은 관절이 보이던데..
“아, 보석상인가...”
지난번에도 마트 1층에 갑자기 나타났었지.
“바로 가지. 다녀올게.”
나는 메르를 남겨두고 얼른 1층으로 내려갔다. 보석상이 무엇을 팔지 한껏 기대한 채로. 그야 이번엔 필드 보스들을 토벌하며 얻게 된 코인이 엄청나니까 그녀가 파는 물건은 전부 구입할 수 있을 거다.
“오랜만이네. 컬티스트.”
“오셨습니까.”
1층 교장실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자. 레이스 달린 검은 고딕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굉장히 소장하고 싶은 느낌의 인형이었다.
특히나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석 같이 아름다웠다... 어쩌면 진짜 보석일지도 모른다.
“이번엔 코인 좀 모아뒀어?”
“예. 오실 줄 알고 잔뜩 모아 뒀죠.”
“그렇구나. 좋아. 아주 좋아. 저번에 왔을 때보다 응접실도 훨씬 멋있어졌고. 마음에 들어.”
지난번에는 마트 계산대 위에 보석을 올려 뒀었지만 이번엔 무려 교장실 탁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뭔가 더 있어 보였다. 무드를 중요시 하는 그녀는 분위기가 있어보이는 장소에서 거래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보였다.
“자, 그럼 일단 준비한 물건들부터 보여 줄게.”
보석상은 이번에도 마법적인 문양이 가득 그려진 가죽을 꺼내 교장실 탁자 위에 쫙 펼쳐 두더니 손가락으로 소리를 냈다.
딱!
그녀의 핑거스냅과 동시에 가죽.. 아마 양피지겠지. 아무튼 양피지 위로 장신구 3개나 나타났다.
[무희의 귓불 장식: 착용자의 움직임에 잔상이 생깁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경우 더욱더 많은 잔상이 생겨 적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가격: 10000C]
[크로네의 장신구: 장신구에 마력을 부여할 경우 무기에서 맹독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사용할 수록 장신구가 점점 어두워집니다.] [주의. 완전히 검게 물들 경우 사용자를 암왕의 유적으로 이동시킵니다.]
[가격: 60000C]
[금간 앙크: 선신진영 플레이어가 소유할 경우 스킬의 효과가 더욱 증가합니다.] [주의. 앙크가 깨질 경우 나락의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가격: 34000C]
“오...”
“어때?”
“전부 구입해야죠.”
무희의 귓불장식은 아름이에게 주면 되는 물건이다. 부작용도 없고 딱 무희 클래스를 저격한 물건이었다. 이걸 주변 아름이가 좀 더 강해지겠지.
‘다만 나머지 2개는...’
나머지 두 개는 타차원 이동 아이템이었다. 크로네의 장신구는 ‘암왕의 유적’이라는 장소로 보내주고 금간 앙크는 '나락의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아이템이다.
‘나락의 바닥이면.. 심연 쪽인가? 만약 심연이라면 인디크론이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암왕의 유적은 뭐 하는 장소지..?’
궁금하다. 한층 더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역시 화끈하네. 마음에 들어.. 다음번에도 이렇게만 해준다면... 특별 서비스를 해 줄게.”
“서비스요...?”
“그래.. 아주 특별한 서비스..”
뭔가 매혹적인 목소리다. 허나 정작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무표정했다. 인형이기에 표정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지.
“어.. 그, 서비스도 감사하긴 한데.. 혹시 누스의 팔찌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응? 누스의 팔찌?”
“예. 그걸 찾고 있거든요.”
“흠... 누스.. 누스라면.. 미쳐 버린 사슴왕인가?”
“아십니까?
“알 것 같아. 떡갈나무 숲의 주인. 지금은 부패한 숲이라 불리는 장소지만.”
보석상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역시 게임하다가 진행이 막히면 NPC에게 물어보는 게 정석이지. 기왕 물어보는 김에 커스 돌인 은하와 마도공학으로 탄생시킬 자동인형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인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보석상이라면 우리에게 뭔가 해답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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