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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46화 (146/221)

〈 146화 〉 145. 클리셰 범벅의 방랑 검객

* * *

요정은 자위하는 모습을 들킨 게 굉장히 부끄러웠는지 소리를 꽥 지르며 이를 드러내곤 나를 위협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저 웃기기만 할 뿐 전혀 무섭지 않았다.

‘갈아 마시면 마력 스탯이 무려 100... 그런데 이건 그냥 갈아먹기엔 너무 신기한데...’

말하는 게 약간 덜떨어진 것 같긴 한데.. 대화가 가능하단 시점에서 이건 지성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성체라면 노예상이 취급해야 하는 녀석 아닌가? 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날개에서 요정가루인지 뭔지 딱 봐도 재료 아이템 같은 걸 떨구는 녀석이니까, 갈아 먹는 건 일단 보류해 두고..’

우리 거점 공식 도라*몽인 헬러스 영감한테 알아서 하라고 던져 줘야겠다. 고성능 연금술 노예인 헬러스라면 저 요정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내겠지.

만약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하면... 그때는 정말 운동장에서 키우던 야채들이랑 같이 믹서기 행이다.

“주우운. 거기서 뭐 해..? 어서 이리 와아..”

“아, 잠시만요. 이거 이상한 짓 해서. 잠시 구경 중이었어요.”

그녀에겐 정말 미안 하지만 이불 속 야광공룡 만큼이나 자위하는 요정은 신기한 녀석이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응? 뭐야아...? 아.. 요정..”

나는 부끄러운지 연신 자기 몸을 가리며 나에게 짜증을 부리는 요정을 들고서 체셔에게로 갔다.

“응? 그 녀석이 왜에..?”

2시간 풀로 나와 몸을 섞어서 그런지 축 늘어진.. 마치 모찌떡마냥 녹아내린 체셔가 새장에 들어 있는 요정에게 손가락을 뻗으며 물었다.

“아, 이 녀석.. 저희들 섹스하는 소리 듣고 혼자서 자위하고 있더라구요.”

“진짜? 얘. 너 이름이 뭐니?”

애완인간을 키우는 브리더답게 그녀는 자그마한 요정에게 관심을 보였다.

“흥..! 시러! 말 안 해 줄 거야! 너희 미워!”

허나 요정은 자기 이름을 말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새장을 흔들어 버리면 찌그러져 죽을 녀석이 꽤 당돌했다.

“어머.. 얘, 성깔 있네?”

“그쵸? 그냥 탁자 위에 올려 두고.. 우리 한 번 더 할까요?”

“응.. 좋아.!”

새장 안에 갇힌 요정을 애완인간들이 춤을 추고 있는 테라리움 옆에 올려 둔 다음 나와 체셔는 69자세로 서로의 음부를 핥고 빨았다.

­쭈웁 쭈웁. 츄릅..

“하앗..”

살짝 곁눈질로 살펴보자 요정은 우리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선 혀를 내밀곤 다시 자위에 열중했다. 완전 푹 빠져 버린 모양이었다...

“쭈룹. 체셔..”

“응.. 나도 보고 있었어.. 엄청 열중했나 봐.. 자기를 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만지작거리기 바쁘네...”

“허... 갈아먹으라기에 그냥 짐승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저 새끼 뭐죠?”

“나름.. 지성이 있는 생물 아닐까?”

“그런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나와 체셔가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으니 물고 빠는 소리가 멈춘걸 느낀 요정이 감고 있는 눈을 슬며시 떴다. 곧 요정과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꺄아아!! 너, 너희들!! 왜 하던 거 안 해!! 나 그만 쳐다봐!!! 이 변태 새끼들아!! 구경하니까 좋아? 좋냐고!! 개짜증나!!”

“음... 어투가 제법..”

“방금 전보다 훨씬 유창하게 말하는데요..”

“저 아이.. 실시간으로 성장 중이야. 우리의 대화를 듣고서.. 순식간에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

“허어...”

“아마.. 저 아이가 살았던 서식지엔 우리 같은 고등생물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흡수할 지식이 없었던거지.”

“그럼 지금 새로운 지성체인 우리를 만나고... 실시간으로 성장 중이란 말이네요.”

“그렇지. 내가 봤을 때 언어에 대한 이해력이나, 학습 능력이 굉장히 높아. 신기해..”

체셔는 요정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탐구하기 시작했다. 밀렵꾼이 가게를 이어받으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생물에 관심이 많았다.

“흠... 무엇보다 동시에 2가지 언어를 구사하다니.. 그리고 그게 준이와 나한테 둘 다 똑바로 전해지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원래 나하고 준이 너는 대화가 안 통해야 정상인 거 알아?”

“어...”

나는 한국어를 쓰고.. 체셔는 뭔지 모를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니까, 원래라면 대화가 통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건 보부상이나 보석상도 마찬가지고 이 게임에 속한 모든 NPC가 마찬가지인 셈이다.

허나 시스템의 영향인지 우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서로 대화가 가능했다. 한마디로 시스템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린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야 정상이란 소리다. 그런데.. 저 요정은 체셔나 보부상 같은 NPC가 아님에도 대화가 가능했다.

심지어 노예상이 파는 노예가 아님에도 말이다.

“이 녀석 실시간 통역기군요.”

“그렇지. 더구나 이 아이가 하는 말은 너하고 나에게 둘 다 똑바로 의미가 전달되는 거지. 동시다발적으로.. 이건 거의 권능의 영역이야.”

그러니까 예를 들어 한국인과 일본인이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치자. 그때 이 요정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면 한국인의 귀에는 ‘안녕’으로 들리고 일본인에게는 ‘곤니찌와’라고 전해지는 거다. 체셔의 말은 이런 식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의미가 전달된다는 뜻이었다.

“시스템의 범주를 넘어선... 녀석이야. 나도 저런 녀석은 살면서 처음 봤어. 저 종족의 특성인지. 아니면 저 개체의 단일 특성인지 궁금하네... 저런 아이가 어째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까...”

체셔조차 놀라워하는 존재. 길잃은 요정은 생각보다 엄청난 녀석이었다. 언어에 관해선 메르마저 한 수 접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메르는 인간들의 언어만 완벽하게 구사할뿐이지만 저 녀석은 몇번의 대화만으로 언어를 자동습득해버리니까.

‘이 녀석을 어찌 써먹지...’

나는 길 잃은 요정을 어찌 사용할지 고민했다. 실종자들의 숲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같은 외국인을 많이 만났었던 것처럼 아마 이번에 들어가게 될 전율미궁에도 외국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겠지.

‘3인 1조로 15팀 정도가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같은 조원들끼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조율해준다고 해도 다른 조까지 대화가 통하리란 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길 잃은 요정이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외국인 전용 의사소통 도구가 되는 거다.

‘하지만 이 녀석 뭔가 명령한다고 들을 만큼 유순한 성격의 생물이 아니야.. 회유하던지.. 고문하던지 해서 노예로 삼아야 해.’

문제는 새장 속에 들어 있는 이 자그마한 생명체에게 어찌 낙인을 찍느냐 하는 거다. 묘하게 엄지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의도하기라도 한 듯이...

‘그렇다고 새장 밖으로 꺼냈다간... 꺼낸 사람을 행성 내의 불특정 장소로 날려 버리고 도망칠 테니.. 새장 안에 있을 때 승부를 봐야 한다..’

중요한 건 이 요정의 내구성인데.. 고문 한답시고 새장을 흔들어 댔다간 그대로 철창 이리저리 부딪혀서 찌그러져 죽을 것 같았다. 그러면 갈아먹는 다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으니 자중해야 했다.

‘일단은 나중에... 회유해야겠다. 적당히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고 하면... 말을 듣지 않을까?’

어쩌면 숲지기인 희선 누나의 말은 들어 줄 지도 모른다.

“일단은 가방에 넣어 두고 슬슬 갈까요?”

“응!”

좀 더 요정의 처우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지만 이제 슬슬 노예 상인과 만난다음 집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요정을 대충 가방에 집어넣은 다음 지퍼를 잠갔다.

“읏챠.. 준..”

“네?”

“헤헤.. 아니야.”

빠르게 옷을 다 챙겨 입은 체셔는 한참 바지를 입고 있던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러더니 나의 등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좋아... 준이의 기운을 잔뜩 충전했으니까.. 이제 괜찮아. 또 기다릴 수 있어.”

“체셔..”

나는 뒤돌아서 체셔를 꼭 껴안았다.

“다음에 올 때는... 저희, 지하층에 내려가 보지 않으실래요?”

“지하에...?”

“네. 지하층 공략해 보죠.”

“그렇지만.. 아직 준이는 약한걸... 분명.. 죽고 말 거야..”

“하지만 이대로 계속 어영부영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요. 나는 체셔를 꼭 여기서 꺼내줘야겠어요.”

“준아...”

암시장엔 한 명 더 데리고 들어올 수 있으니 데몬 슬레이어인 아람이와 함께 건너 와서 일주일 정도 체셔의 거점에서 머물며 지하층을 공략해볼까 싶다. 그리고 노예도 구입하면 4인조로 공략이 가능하겠지.

암시장의 지하층을 빠르게 공략해야 체셔를 꺼내줄 수 있을 테니까 다음주는 그녀에게 투자하고 싶다.

“응.. 알겠어.. 우리.. 한번 시도 해 보자..”

“좋아요. 꼭.. 체셔의 영혼 조각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와 체셔는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슬픔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서커스 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노예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아... 왜. 너는 어째서 내 부탁을 들어 먹질 않는 거냐...”

무려 세 번이나 체셔와 함께 오자 이젠 완전히 절망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노예상. 안 그래도 울상인데 한층 더 우울해 보인다.

나를 노예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그의 모습에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졌다.

“지랄 말고 빨리 물건이나 보여 줘. 우리 바빠!”

“닥쳐라.. 체셔... 너만 아니었다면... 컬티스트는 이미 진즉에 내 소유였다..”

이젠 고장 나버린 건지 숨길 생각도 없이 대놓고 나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광대놈.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그림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내 얼굴 표정이 보이진 않겠지만..

“남자에게 구애 받아봐야 헛구역질 밖에 안 나옵니다.”

“하아.. 이건 구애가 아니다.. 수집욕이라고.. 됐다.. 말해 봐야 나만 바보가 될 뿐이지... 빌어먹을 연놈들.. 따라와라..”

한참을 체셔와 눈싸움하던 광대는 내가 끼어들어 헉구역질을 해대니 결국 우리 듀오를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곧 우리를 광대를 따라 지하로 데려갔다. 지하는 여전히 관리라곤 전혀 안 되어 있었고 곳곳에 죽은 시체가 썩어가는 철창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왔을 때 봤던 자기 자식을 악마에게 팔았다던 한국인 여자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왜? 연민이라도 느끼나?”

“아뇨. 전혀요. 지 자식까지 팔아먹는 년한테 연민은 무슨.”

“흐흐흐. 그렇지..”

광대는 웃었다. 처음 보는 것 같은 그의 미소였다. 허나 기뻐보이진 않았다. 그저 자신의 가학적인 욕망을 일부 충족해서 그런지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웃음 같았다.

“자, 오늘의 메뉴다...”

곧 발가벗은 남녀가 나와 체셔 앞에 섰다.

그들은 광대의 명령에 따라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붉은 머리카락의 미남자는 자신을 '들장미의 기사 로이'라고 소개했다. 너무 씹게이 같은 목소리와 말투에... 나를 보는 눈빛마저 역겨워서 바로 패스했다.

그다음 광대가 보여 준 매물은 조금 모자라 보이는 야만인이었다.

“나는 우랄탄!! 푸른 염소 부족의 족장!! 고기와 술을 좋아한다! 아주 잘 싸운다!!”

“삼만짜리야. 겁이 더럽게 많은 겁쟁이 우랄탄. 고기를 못처먹으면 인육이라도 처먹는 녀석이지. 어때.”

내가 먹을 고기도 없는데 겁쟁이 새끼에게 고기까지 나눠줘야 한다니... 나는 짜증스럽게 답했다.

“다음이요.”

“그렇다면.. 너, 빨리 자기소개해라.”

“알겠사와요.. 저는... 생식을 좋아하는... 늪지의 청소부...”

“하아... 씹... 말하는 거 존나 느리네.”

“행동은 느리지만 청소는 일품이지. 무려 삼만 사천짜리 두꺼비다. 어때?”

세 번째는 느려터진 여자 두꺼비 인간이었다. 이 미친 광대새끼. 뭔가 나에게 심술이라도 난 걸까? 내가 아까 헛구역질 하며 놀려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체셔랑 같이 와서? 어찌됐든 광대놈이 보여주는 매물은 하나같이 어딘가 하자가 있어 보였다.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나보군.. 그러니까 다음엔 혼자와라. 내가 엄청난 녀석들로 소개해 주마.. 용사냥꾼 노예라던지.. 대현자라던지... 성녀의 음부가 그리 쫄깃하다던데.. 어떤가?”

“됐습니다.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다음에도 체셔랑 같이 올 겁니다. 아니, 무조건 항상 체셔랑 올 겁니다!”

“흥. 고집불통 이교도놈. 마지막! 자기소개 해라.”

“알겠다.”

네 번째로 소개받은 노예는 ‘애꾸눈의 외팔검사’였다.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꽁지머리를 한... 뭔가 살인 전문가 같은 분위기의 남자가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기 이름을 밝혔다.

“나의 이름은 팔어스. 보다시피 볼품없는 떠돌이 검객이다. 나를 거두어 준다면.. 내 이 비루한 몸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지.”

“고작 일만짜리야. 검사로서 구실이나 똑바로 할지 잘 모르겠군. 어때? 이것도 싫나? 그럼 꺼지는 수밖에 없다. 선택해라 컬티스트.”

무려 일 만 코인짜리 외팔의 애꾸눈 검객...

‘허어... 이건...’

클리셰적으로만 말하자면.. 이 녀석, 분명 무진장 강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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