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150. 정말 죽이고 싶은 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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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이 조장이 된다는 말에 중국인인 바이 유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나와 닉에게 질문했다.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오던 방송이 잠시 끊겼다.
“둘 중에 누가 조장이지? 코쟁이 너냐? 아니면.. 너?”
팔찌 덕분에 이제야 귀아픈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들리는군. 아마 저 둘도 마찬가지도 자기들 언어로 번역되어 들리겠지.
그런데 이 개 같은 새끼는 뭔데 초면에 반말이지? 그냥 번역기능이 반말로밖에 전달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저놈이 나를 얕잡아 보는 건지 모르겠다. 뭐, 나도 반말할 생각이었긴 하지만.
NPC도 아닌데 높인 말 써줄 이유가 없지.
“나다. 왜. 불만이라도 있냐?”
나는 완장을 보여 주며 껄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바이 유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딘가 중국인이 아닌 다른 동양인은 모조리 낮잡아 보는 듯한 저 눈빛과 당연히 중국인인 자신이 더 우세하다는 듯한 권위주의적인 말투까지.
이거 딱 봐도 자신은 자칭 아시아 넘버원에 제일 잘나가는 중국인이고 중국은 존나 위대하니 오랑캐인 나보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할 삘이었다.
어림도 없지.
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면 바로 면전에 쌍욕을 퍼붓고 저 새끼가 먼저 나를 공격하려고 하면 그대로 죽빵을 갈기고 부정한 손길로 머리통을 녹여 버려야겠다.
선시비를 참고 넘어가 줄 정도로 나는 관대하지 못하다. 먼저 공격당했으니 명분도 충분하고. 언어를 넘어선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가차 없이 카쉬낙스의 품으로 보내주마.
그렇게 내가 손을 쥐락펴락하며 놈이 먼저 공격하게 할 개쩌는 부모욕을 준비하고 있자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눈여겨보던 닉이 중간에 끼어들어 나의 대답을 가로챘다.
아주 심한 패드립을 퍼부어서 놈을 발광하게 만들어 죽일 생각이었는데.. 닉의 개입으로 내 계획이 무산됐다.
“이봐. 차이나맨. 나라를 꼬투리 삼아서 이 작고 연약한 한국인을 괴롭히려는 생각이겠지만. 거기까지 하는게 좋을 거야. 그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닉은 나를 모욕했다. 작고 연약하다니... 중국인을 말리는 척 나까지 싸잡아서 욕하다니..
짜증나지만 그의 개입 덕에 바이 유의 어그로가 닉에게 돌아갔다.
바이 유는 중간에 끼어들어 선을 긋고서 넘지 말라 경고하는 닉의 발언이 우스웠는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뭐? 차이나맨? 하. 쓸데없는 참견하지 마라 빌어먹을 코쟁이놈아. 네 까짓 양놈이 끼어들 때가 아니야.”
“빌어먹을 코쟁이? 미쳤군. 그건 굉장히 인종차별주의 적인 발언이다. 그리고 내 코는 백인남성 평균이야. 이 칭챙총아.”
“칭챙총? 이 개자식이!!”
바이유는 이제 표적을 내가 아닌 완전히 닉으로 바꾼 건지 닉에게 달려들려고 했고 닉은 화가 나서 미치려고 하는 바이유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
곧 칼까지 뽑을 것 같아서 나는 얼른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 두 새끼 초장부터 지리게 눈싸움을 하더니 나를 구실로 서로 싸울 생각에 신난 모습이다. 말리지 않았다간 둘 중에 하나는 죽을게 뻔했다. 내 생각엔 바이유가 죽지 않을까 싶다.
'진짜 미친놈들...'
그래, 이 두 새끼 모두 미친놈들이다.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지. 안 그랬다간 서로를 찢어 죽이려 할게 뻔했다.
“그만! 싸우지 마! 이 개새끼들아!!”
“놔라!! 빵즈!! 오늘 저 코쟁이놈을 죽일 거다!!”
“하하하! 죽여 봐라! 멍청한 치나!!”
“아 씨바!! 미친 짱깨 새끼야!! 그만하라고!!! 그리고!! 너도 그만 도발해!! 으아!! 멈춰! 칼 집어넣어!!!”
나는 겨우 손도끼를 꺼내든 바이 유를 진정시켜 다시 자리에 앉혔고 칼을 반쯤 뽑은 닉에게 진정하라 타이르며 식은땀을 닦아냈다.
차라리 대학교 조별 과제가 낫겠다. 멸망한 세상에 적응해 버린 뒤 없는 새끼들만 모아 둬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좆같으면 참지 않고 바로 칼부터 뽑으려고 지랄들이다.
'원래 이런 지랄은 내가 전문인데...'
어쩌다 보니 조장을 맡게 되어 정상인 포지션됐다. 미칠 지경이다.
[자자, 곳곳에서 소란이 발생했군요. 조장이 되기 싫은 분도 계시고. 조장의 완장을 빼앗으려던 분도 계시고. 참고로 팔찌 착용 전에 이미 유혈 사태가 발생했던 방들은 곧바로 격리조치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팔찌를 착용하지 않으신 분들도 격리조치 될 테니 어서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방은 내가 중간에서 말린 덕에 무사히 넘어갔지만 중재자의 부재로 인해 서로 싸우기 시작한 방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내방송에서 알려주길 그런 방들은 전부 격리조치 되었으며 자동탈락 됐다고 한다. 시작부터 탈락이라니.
[이제야 팔찌를 전원 착용하신 모양이군요.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이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과 생존을 위한 정보가 주어질 예정이니. 소란피우지 마시고 경청해주시길 바랍니다.]
겨우 평화를 되찾은 우리 셋은 침묵을 유지하며 안내방송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바이 유도 처음의 날카롭던 태도를 가라앉히고서 눈을 감았고 닉은 초코바를 네 개째 뜯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 새끼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 팔찌만 만지작거렸다.
[우선 첫 번째 규칙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팀킬 금지’입니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여러분들은 제 말을 무시하고 팀원에게 화풀이를 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종국엔 죽이고 싶어지겠죠.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팀원을 죽이려 할 경우. 계정이 삭제됩니다.]
계정 삭제?
이게 무슨 개소리지? 설마.. 플레이어로서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소리인가.. 그렇단 말은 팀 킬을 할 경우 가진 힘을 잃게 된다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행패로군. 이건 운영진의 패악질이다. 정의롭지 못해.”
“젠장... 짜증 나지만 너의 말에 동의한다. 이따위 규칙을 만든 새끼는 도대체 뭐 하는 새끼지?”
안내자의 말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려고 난리를 부리던 닉의 말에 바이유가 동의했다. 물론 나 또한 저 둘과 마찬가지인 심정이다. 팀킬 금지라니.. 이 두 놈을 죽일 수가 없다니... 이건 저택 공략 내내 고구마를 먹으란 말 아닌가.
[설마 이걸로 저를 욕하시는 분은 없겠죠? 이건 그저 팀원들끼리 단합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또한 이런 방지책을 마련해 둬야 안심하고 팀플레이를 즐기실 수 있는 분들도 계실 테니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안내방송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원들끼리만 공격을 못 하는 거지 다른 조는 죽일 수 있으니까. 이건 그저 우리가 사이좋게 저택을 공략하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게 잘 안 될 것 같다는 거겠지만.
[그다음, 두 번째 규칙은 ‘셋이서 빠져나올 것’입니다. 저택의 출구는 세 명일 때만 열립니다. 만약 팀원이 저택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경우, 다른 조의 일원 중 하나를 납치 혹은 강탈해 끌고 와야 출구가 열립니다.]
탈출하기 위해선 무조건 세 명이 모여야 한단다. 둘도 안 되고 넷도 아닌.. 단 세 명.
‘팀원을 내 손으로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사고에 휘말리게 하면... 충분히 죽일 수 있는 모양이군..’
나는 다른 조의 인간을 발견하면 곧바로 닉과 바이 유를 차도 살인으로 처죽이고 딴 놈들을 노예 삼아 저택을 빠져나올 계획을 세웠다. 그때 마치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안내방송이 뒷말을 이었다.
[여기서 팀원 중 한 명이라도 잃은 팀은 클리어 실패로 판정하고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구해 낸 인장반지를 압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탈출하는 샘이겠군요.]
“이런 개좆 같은!! 그런 게 어딨어!!!”
방금 소리친 건 내가 아니다. 바이 유였다. 역시 썩을 쓰레기 자식. 벌써 우리를 차도살인지계로 죽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저놈과 비슷한 심정이긴 하지만...
“하아.. 바이유. 너는 표정 관리가 영 안 되는 구나.”
“흥. 닥쳐라.”
닉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바이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또한 저택은 오직 정해진 출입문만을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지정된 출입문이 아니거나 혹은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올 경우 차원 틈으로 사라질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안내방송의 말과 함께 천장에서 종이 세 장이 펄럭이며 떨어졌다. 거기엔 우리가 빠져나가야 할 출구의 사진이 프린팅 되어 있었다.
“흠... 삼각형 창이 달린 문이군.”
“하얀색 나무 문이고. 이건 뭐지? 손잡이가 특이한대.”
“손잡이에 장미문양이 각인되어 있다.”
프린팅 된 종이를 보며 우린 중얼거렸다. 뭔가 나를 포함해 전원 집중력이 상당히 높아졌다. 생존에 관한 문제라 그런지 닉과 바이유는 굉장히 유심히 종이를 들여다 봤다.
'개개인의 능력은... 제법 괜찮은 것 같은데...'
이거 가만 보니 우리 팀의 가장 큰 문제는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일단 다 외웠다. 너희는? 설마 이정도도 못 외우진 않았겠지?”
“당연히 다 외웠지.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기라도 할까?”
“또 또. 좀 그만해라.”
“흥. 꼴에 조장이라고 말리는 꼬락서니가 눈꼴 시리군.”
“내 눈엔 둘 다 똑같은 동양인인데 꼴에 중국인이라고 자존심 세우는 모습이 영 보기 껄끄럽군.”
“하아.. 미치겠네.”
시도 때도 없이 투닥 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게 아니었다면 둘 다 노예로 만들어 악신들 간식으로 줬을 텐데.
[마지막으로 저택 내부는 굉장히 광범위하며 시간이 뒤죽박죽 꼬여 있습니다. 조원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랍니다. 그럼 이상으로 안내방송을 마칩니다. 30초 뒤 여러분들은 조원들과 함께 저택의 랜덤 한 장소로 전송됩니다.]
안내방송이 끝났다. 30초 뒤 나는 이 개노답 조원들과 함께 저택의 어딘가로 전송된다. 그냥 묵묵히 할 일만 딱하고 끝났으면 좋겠다.
‘스킬은.. 최대한 숨기자...’
나는 컬티스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촉수발출과 심연아귀를 진짜 급할 때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저 둘 중에 하나가 선신 측의 첨병일 지도 모르니까. 굳이 내 능력을 들킬 필요는 없지. 그리고 만약 내가 컬티스트라는 사실을 들킬 경우 어쩌면 계정삭제를 감수하고서라도 나를 죽이려 들 수도 있었으니까.
[전송이 시작됩니다.]
곧 우리의 몸이 빛으로 휘감기며 전율저택의 어딘가로 날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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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 젠장...”
“이봐. 입 다물고 빨리 일어나라, 빵즈.”
“응...?”
바이유의 목소리에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주변은 상당히 어두웠다. 또한 쾌쾌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주사위 던지듯 내 던져진 것처럼 아무렇게나 전송된 건지 몸이 굉장히 찌푸둥하고 아팠다. 허나 아파하고 있을 틈조차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얼른 변형된 시야를 발동에 어둠 속을 확인했다.
내 앞에 쪼그려 앉은 바이유와 닉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너머로 천장에 매달린 형체들이 가득했는데...
“젠장... 인간 도축장인가..”
우리가 전이 된 방엔 죽은 인간들이 갈고리에 가득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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