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152. 억장이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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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리에 걸려 있던 남자에게 전해 들은 정보. 그건 상당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내가 죽인 남자는 보석상의 의뢰로 이곳에 온것이 아니라 그저 저택의 물건을 훔치러 들어온 도둑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는 우리 같은 지구인도 아니었으며 목적도 인장반지가 아닌저택에 숨겨져 있다는 영혼 추출기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이 저택에 얽혀 있는 시간대의 종류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알려 줬는데. 그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전율저택은 총 4개의 시간대 섞여 있는 상태라고 했다.
‘어디보자.. 시간 순으로 따지자면.. 반지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가주집권기, 태엽 손잡이를 얻아야하는 식인종집권기, 탈출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대, 그리고 이족들이 돌아다니는 미래 시기.’
우리 조가 떨어진 시간대는 보아하니 인형박이 가주가 모종의 사건으로 죽은 뒤의 시기였다. 그러니까 비어 버린 저택을 차지하게 된 식인종 일가가 방문객들을 상대로 온갖 잔혹행위를 벌였던 시기인 거지.
'저택의 시간대를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선 저택 어딘가에 있을 괘종시계를 찾으라고도 말했었지.'
남자가 알려주길 괘종시계를 작동시키면4가지 시간대 중에서 현재 자신이 속하지 않은 나머지 시간대를 랜덤하게 하나 이동 가능해진단다. 그러니 저택어딘가에 있을 괘종시계를 찾아내야 했다.
문제는괘종시계를 작동시키려면 식인종들이 돌아다니는 지금 이 시간대에서 태엽 손잡이를 얻어야 한다는 건데... 만약 내가 멋도 모르고 회중시계를 작동시켜 현대로 가버렸다면 그 순간 일의 순서가 꼬여버려서 우린 그저 탈출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고 봐야했다.
'아마 보석상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이 시간대에 떨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처럼 모종의 방법을 써서 정보를 얻어낸 놈들은 아마 태엽 손잡이를 찾고 있겠지.'
물론 이 시간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괘종시계 말고도 다른 방법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조금전 나와 대화를 나눈 남자는 오직 괘종시계로 이동하는 방법만을 알고 있었다. 괜히 다른 방법을 실험하다가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으니까 확실한 방법인 괘종시계 말고 다른 방법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불사의 식인종 일가...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 같은 놈들.’
놈들은 총 다섯 명으로, 일가의 수장과 그의 아내, 자식들이 셋 있다고 했다. 그놈들은 저택의 침입자를 찾기 위해 실시간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중일 테니 최대한 안 마주치고 시계를 찾는 게 상책이다. 죽여봐야 되살아난다니까. 공양하면 끝장 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한 상태고.
‘이거 탈출구를 지정할게 아니라 괘종시계에 위상을 지정해야 할 판이로군.’
시계태엽을 찾는 것부터가 일일 줄은 몰랐는데. 여러모로 제대로 된 도구나 저택에 갇힌 인간을 만나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인원들은 살아서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방에서 나갈 출구를 찾자. 바이유는 계속 벽을 확인하고. 닉은 천장을 살펴. 내가 바닥을 볼 테니까.”
“알겠다.”
“쳇...”
나는 바이유와 닉에게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괘종시계나 기타 등등 다른 정보는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 최대한 이 미친놈들을 이용해먹으려면 최대한 정보를 감춰야 했으니까.
‘이제 좀 조용해서 좋네.’
둘 다 가급적이면 입을 열려하지 않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입만 열면 싸운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이 유는 지퍼라도 잠군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고 닉 또한 제스쳐만 크게 취할 뿐 목소리를 높이거나 하진 않았다.
‘짱깨의 투덜거림도.. 짜증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 닉도 입을 다무니.. 스트레스가 쌓일 일이 없구나...’
인간 도축장은 상당히 넓어 일일이 다 확인하려니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특히나 제대로 된 광원이 없어 눈이 점차 침침해지는 모양인지 입을 다물고 있던 바이유가 슬슬 투덜대기 시작했다.
“손전등 없어? 좆은 달려 있냐?”
“그런 것도 안 챙겨 온 거냐, 차이나맨?”
나와 닉이 동시에 나무라자 바이유는 툴툴거리며 품에서 자그마한 라이터를 꺼냈다. 그는 진짜 거지나 다름없었다. 풀 템을 맞춰온 나와 필요한 물건을 확실하게 챙겨온 닉과는 달리 놈이 가진 거라곤 말라비틀어진 육포와 단검 몇 개가 전부였으니까.
나는 저 거지에게 절대 손전등을 빌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대로 꿀꺽할 새끼였으니. 허나 마음씨 고운 닉은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바이유에게 건네줬다.
“이거라도 쓰던지. 눈 아프다고 찡찡 거리지 말고.”
“허... 존나 선심 쓰는 척 하는군.”
“야야. 바이유 가만 보니 네가 문제네. 닉한테 시비 그만걸라고 했지?”
“흥..”
바이유는 콧방귀를 뀌더니 뒤돌아서 자기 할 일을 하려 가 버렸다. 닉은 황당하다는 듯이 바이유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천장을 살폈다.
‘내가 봤을 때 바이유 저 새끼는 용사가 아니야...’
하는 짓도 그렇고 행색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나의 대적자라고 여길만한 놈은 아니었다. 뭔가 좀 모자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닉이 용사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만약에 닉이 정말 용사가 맞다면..’
777짜리 용사도 행운 수치만큼의 보정을 받는 놈이라면 아마 대적자인 컬티스트가 이 저택에 들어와 있다는 정보를 이미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쩌면 조원중 한 명이 컬티스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닉이 용사라는 가정하에.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놈은 지금 존나 혼란스럽지 않을까? 아마도 나와 바이유 중에서 누가 컬티스트일지 엄청 고민되겠지.
‘어쩌면 계속 시비를 걸고 있는 바이유를 컬티스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물론 닉이 777의 용사가 맞는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물론 닉이 아니라 저 거렁뱅이 바이 유가 거지로 위장한 용사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냥 전혀 다른 놈이 생뚱맞게 등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봐. 여기 천장에 이상한 홈이 있어.”
그때 미켈란젤로가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렸을 때처럼 목이 아플 정도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닉이 우리를 불렀다.
“뭔데. 열 수 있겠어?”
“잠시만.. 강하게 당기면.. 열릴 것도 같은데. 누구라도 좋으니까 목마 좀 태워줘.”
닉은 180을 넘긴 나보다 더 컸음에도 천장까지 손이 잘 닿지 않는지 목마를 요청했다. 이에 나와 바이유는 서로에게 역할을 떠넘겼다.
“뭐 하냐. 빨리 목마 태워줘라, 바이유.”
“아니지. 한 것 없는 네가 해야지.”
“뭐라고? 나도 열심히 나가는 길 찾았어.”
“땅바닥만 대충 훑어보고는 계속 쉬고 있었잖아!”
이런, 들켰군. 눈치 빠른 짱깨녀석. 틈틈이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던 건가... 상당히 소름 끼친다.
“그래서. 뭐.”
“이 빌어먹을 씨빠궈가...”
“뭐? 방금 뭐라 그랬냐. 씹빠꺼? 이 개자식이...”
“됐다! 됐어! 그냥 내가 한다. 더러워서...”
바이유는 정보를 쥐고 있는 나하곤 싸워 봤자 이길 수 없다고 여긴 건지 닉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이 코쟁이 새끼야. 네가 밑으로 가고 내가 목마 탄다.”
“허... 그러던지.”
별로 어찌 되던 상관없었던 모양인지 닉은 그러라며 바이유에게 목마를 태워줬다.
“끄윽.. 이거.. 더럽게 안 열리는데...”
“안 되나? 근력 스탯 몇인데 그걸 못 열어.”
“하.. 씨바... 그냥 내려와서 닉 목마나 태워줘라. 답답해서 뒤지겠네.”
“기, 기다려 봐..! 될 것 같다고.. 어?”
바이유가 낑낑거리며 천장의 홈을 잡아당기고 있을 때였다.
덜컹.
순간 천장이 열리려 했다.
손잡이를 당기고 있던 바이유가 잠시 위로 끌려올라 갔다가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입구는 당기는데 아니라 밀어야 하는 구조였다. 바이유가 멍청하게 계속 당기고만 있었기 때문에 열지 못하고 낑낑 거렸던 거다.
“시, 시발.. 좆됐다....! 뭐가 문 열려고 하는데!!”
“야! 버텨!! 못 들어오게 계속 당기고 있으라고!!”
“안 되겠어!!! 힘이...!! 너무 강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겠는지 바이유는 경악스런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닉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덜커덩!!! 뿌드드득!!
곧 입구가 활짝 열렸다. 아니, 그냥 뜯겨나갔다.
“으아아아아아!!! 저 새끼 뭐야!!!”
얼마나 강하게 당겼으면 입구가 아예 뜯겨 나가 버렸을까. 그런 의문도 잠시, 곧 활짝 뚫린입구로 뛰어내린 괴한. 놈은 돼지 머릴 뒤집어쓴 것 같은 생김새의 돼지 괴인이었다.
“이런..!”
닉은 곧바로 허리춤에 메여 있던 3종류의 검중에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 즉시 닉의 검에 은은한 빛이 서리더니 곧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닉은 곧바로 돼지머리 거한에게 빛으로 이루어진 검기를 쏘아냈다.
그 꼴이 마치 꼭... 성검을 사용한 용사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놈이 그 힘을 사용하는 순간... 나는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을 느꼈다. 그래, 이건 성흔을 가진 놈과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모종의 위화감이었다. 성흔을 가진 존재. 그건 곧 신의 선택을 받은 녀석이라는 의미...!
‘여, 역시...! 저 새끼가...!’
닉이 777의 용사라고 확신을 가지려는 그때였다. 순간 뒤로 물러나 있던 바이유가 합장을 한 상태로 무언가 주문을 외우더니 스킬을 사용했다. 역시나 뭔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죽어!!!”
내가 당황해 하는 사이 곧 바이유의 몸이 빛에 휩싸였고 바이유는 거침 없이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빛에 휩싸인 바이유의 몸통 박치기에 직격 당한 거한은 버티지 못한채 바닥을 나뒹굴었고 순식간에 달려온 닉이 바이유에게 합세해선 괴한의 몸을 난도질했다.
나는 묘하게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어째선지 성흔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타밀리의 은총 덕에 내 성흔, 그러니까 악신들이 새긴 표식이 저 놈들에게 가려진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리고 있는 중에는 내가 성흔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딴놈들이 파악할 수 없으니... 정말 다행이다.
“죽여!!!”
“잡아 패!!!”
“꾸어어어!!!”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사이 미친놈들이 돌아가며 괴한을 두드려 팼다.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는 현 상황 속에서 놈들이 괴한을 고깃덩이로 만드는 장면을 멍청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괜히 나대다가 공공의 적으로 몰리면 골치 아파질 것 같아서...
그래, 이런 상황에서 스킬이라도 잘못썼다가.. 컬티스트인걸 들켰다간.. 아니지... 만마전 쪽이란 걸 들키는 것만으로도 끝장이다. 분명 파국으로 치닫겠지. 어쩌면 계정이 삭제되든 말든 나를 죽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아.. 하아.. 겨우 죽였군...”
“더럽게 질기 놈이었어...”
“확실히.. 생김새도 이상하고.. 만마 진영의 크리쳐같군. 이봐, 당황한 것 같던데. 괜찮나?”
웃으며 친절하게 나의 안위를 물어보는 닉.
‘아니, 시발. 너희가 선신진영이라 지금 존나 당황스럽고 미칠 것 같은데’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둘에게 박수를 치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어.. 그래.. 나는 괜찮아. 둘 다 수고했어.”
좆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답이 없다. 정말이지 최악의 조원들이라 할 수 있겠다.
“별거 아니지. 그보다 바이유.”
“왜.”
“너도 혹시... 선신들의 선택을 받았나?”
“나? 뭐... 그렇지. 그러는 너도?”
“물론이다. 선신들의 위대한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지. 이거.. 우린 결국 같은 편이었군.”
“쳇... 미국인이라 마음에 안 들지만.. 뭐...”
악수를 청하는 닉과 괜히 부끄러운지 코를 쓱 문지르며 그의 악수를 받아주는 바이유....
‘시발...’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의 훈훈한 분위기를 보며 인상을 찌푸릴 뿐...
“그보다.. 너는 어디 소속이지? 아니면 소속이 없나?”
“여기까지 올 정도면 예사 클래스는 아닐 거고. 그렇다면 만신전이든... 아니면 만마전이든 소속이 있을 텐데...”
마치 나를 추궁하듯 물어보는 닉과 바이유. 나는 그들에게 서둘러 변명했다.
“어... 나는 만귀전 소속이다.”
“그래? 그... 고대신들의 진영?”
“그, 그렇지?”
“허어... 그렇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나를 보는 닉과 영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바이유. 나는 서둘러 가방에 들어 있던 헬러스가 챙겨 준 물약들을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자, 이거 봐. 나는.. 어.. 그래. 약제사다. 연금술계통이라.. 이렇게 물약을 만들 수 있지. 대신 전투력은 좀 약해.”
“오.. 그런가. 어쩐지 생전 처음 보는 아이템을 쓰기에 신기했는데.”
“흠.. 과연. 의사소통용 물약도 직접 만든 거였군.”
“그래.. 그런 거지.”
“만귀전이라면 대립 관계는 아니니까. 다시 한번 잘 부탁하지.”
나는 닉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는 뭔가 잘 풀리는 법이 없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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