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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55화 (155/221)

〈 155화 〉 154.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이어져있다

* * *

“아빠 돼지.. 죽었다.. 너희가.. 범인...?”

늑대 가면은 고개를 꺾으며 그렇게 물었다.

“아니야!!! 우리 범인 아니야!!!”

난 곧바로 아니라고 맞받아 쳤다. 허나 늑대 가면은 속지 않았다. 놈은.. 비정상적으로 코가 좋았다. 돼지 가면의 피를 몸에 묻힌 바이유와 닉 때문에 들켰다.

“거짓말!!! 저 두 놈에게서!! 아빠 돼지 피 냄새난다!!!”

순간 놈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살갗이 찌릿할 정도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통으로 늑대 가면의 살기를 받은 바이유와 닉은 마치 포식자 앞에 선 쥐 새끼처럼 몸을 떨었다.

허나 나는 악신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가진 놈이라 그런지 저 늑대 새끼의 기선제압에 충격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뭔가 다들 정신적으로 압도당한 모습이다.’

심지어 동남아 여인과 소년은 완전히 몸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버렸다. 덜덜덜 떨며 실금하는 모습이 살리긴 어려울 것 같았다.

‘집단적인 멘탈 붕괴. 설마 이건 늑대 가면이 갖춘 능력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지금 중요한 건 늑대 가면이 갖춘 능력이 아니다. 아직 저 괴물 새끼와 거리가 벌어져 있을 때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도망갈 길을 모색했다. 우리 바로 뒤에 있는 문과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다. 나는 위층에서 무언가 강한 끌림을 느꼈다.

'위로 도망가야 한다.'

도망갈 길이 정해졌다. 난 여전히 멍청하게 늑대가면을 보고 있던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이 시발새끼들아!! 빨리 정신 차리고 따라와!!!”

“어.. 어..!!”

닉이 제일 먼저 내 목소리에 반응했고 뒤따라 바이유가 고개를 강하게 내저으며 늑대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허나 캐나다 소년과 동남아 여자는 여전히 주저앉은 채였다. 내 명령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으나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후들거리는 꼴이 영 못 미덥다.

차라리 미끼로 늑대 가면의 시간을 끄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 하는 동남아 여인과 캐나다 소년에게 시간을 끌라고 소리치려던 찰나...

“젠장! 바이유!! 리나를 챙겨라!!”

닉이 캐나다인 소년을 안아 들며 바이유에게 소리쳤다. 바이유는 얼떨결에 동남아 여인 리나를 챙겼고 도망치기 시작한 나와 닉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때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던 늑대 가면이 바이유의 뒤편에 죽어 있던 토끼가면을 발견하고는 거칠게 소리 질렀다.

“으아!!! 저새끼들!! 래비까지 죽였어!!! 으아아아아!! 개자식들이!!!! 엄마!!!! 누나!!!!! 빨리 와!!!”

늑대 가면의 비인간적인 땡깡이 울려 퍼지며 충격파로 인해 복도에 금이 갔다.

이에 최후미에 있던 바이유가 휘청거렸다.

“시발!! 넘어지지 말고 그년 버려!!”

“닥쳐!!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나는 바이유를 향해 고함쳤다. 바이유는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동남아 여인을 늑대가 오고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닉이 격분해 소리쳤다.

“바이유!!! 무슨 짓이냐!!!”

“시발!! 힘 빠진 년을 어떻게 챙겨 가!!! 난 못해!! 아니!! 안 해!! 내가 왜 그래야해!!”

졸지에 계단 아래로 내팽개쳐진 동남아 여인 리나.

미친 듯이 복도를 달려온 늑대 가면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비명을 내지르는 여인의 머리를 붙잡았다.

“엄마!! 엄마!!! 침입자가!!! 아빠랑 동생 래비 죽였다! 빨리 와!!!!”

그러곤 누군가에게 경보를 울리듯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리나의 머리를 터트리곤 종이책을 찢어 버리듯 맨손으로 그녀의 몸을 찢었다.

“으아아아아아!!!!”

닉에게 안겨 있던 캐나다 소년 제이콥은 찢겨나가는 리나를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제이콥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우리는 모두 위층으로 이동을 완료했다.

“문 닫고 막아!! 거기 장롱으로 막아!!”

“시발.. 이런 걸로 막아지겠냐고..”

­쾅!! 쾅!! 쾅!!

­문 열어!!!! 엄마 왜 안와!!!!!

“그냥 닥치고 막아!!! 개시발놈아!!!”

“빌어먹을 시빠꿔!!! 좀 도와주던지!!! 으아!! 열린다!!!”

닉과 바이유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늑대 가면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나는 방의 벽면에 반쯤 처박혀 있던 괘종시계를 발견했다.

‘찾았다...!’

이걸로 이제 이 엿 같은 시간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느 시간대로 날려질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발동시켜야 한다.

운 좋게 가주 집권기로 가게 되면 그대로 임무 완료 각이 뜨는 거니까.

‘괘종시계의 사용 법...’

4시 44분 44초로 시간을 설정하고 3인 이상 괘종시계 앞에 모여 있으면 된다.

“4시... 44분.. 44초.”

괘종시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을 맞췄다. 곧 멈춰있던 괘종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또한 시계 앞에 빛나는 둥근 원이 생성되며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3인 이상 모이면 바로 이동 가능하다.

“야!! 빨리 모여!! 곧 이동한다!!!”

“잠깐!! 그럼 문은 누가 막나!!”

“거기 제임스!!! 아니 제이콥? 아 모르겠고!! 네가 좀 막아줘!!”

“NO!!!!!!!”

제이콥은 울며불며 발을 동동 굴리면서도 나의 명령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문을 막아 섰다. 그 모습에 나에게 묘한 눈초리를 보낸 바이유. 그는 별 다른 말 없이 서둘러 나를 향해 달려왔다.

“제, 제이콥..!”

바이유는 이미 진즉에 내 옆에 와서 섰으나 닉만이 홀로 남을 제이콥 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다. 놈은 자신마저 떠나면 죽어버릴 제이콥을 굉장히 걱정하는 듯했다. 미친놈인가? 아니면.. 설마 게이 새끼인가?

“아씨!!! 닉!!! 제이콥의 희생을 헛되이 할 샘이냐!!!”

“희생이라니!! 아직 제이콥은 죽지 않았어!!”

“아니!!! 이 코쟁이 양놈아!!! 리나도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고!!!”

“잠깐, 리나는 네가 버린..”

“닥쳐라 빵즈!!! 그냥 희생한 거로 해!!!”

“젠장!! 미안하다!! 제이콥!!!”

“NO!!!! Nick!!! Don't abandon me! (안 돼!!! 닉!!! 날 버리지 마!!)”

곧 닉은 제이콥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닉이 벗어남과 동시에 문이 뚫리며 캐나다 소년 제이콥은 늑대 가면에게 붙잡혔고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해 찢겨나갔다. 제이콥은 몇초 정도 벌어줬다.

'고맙다.. 제이콥..!'

우린 그가 죽는 장면을 끝으로 빛에 휩싸여 이동했다.

******

우리는 전송됐던 괘종시계 앞으로 전이됐다. 천장에 검은 구멍이 열리며 바이유, 나, 닉 순서대로 떨어졌다. 맨 밑에 깔린 바이유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나를 미친 듯이 쳤다.

“끄으윽.. 무겁다.. 비껴라..”

“쿨럭..”

“젠장, 제이콥..”

나는 멍하니 제이콥을 찾는 닉을 밀어서 던져 버리곤 얼른 냄새 나는 바이유에게서 떨어졌다.

“하아.. 아니.. 시발. 너 제이콥이랑 무슨 관계야. 뭔데 그리 슬퍼하냐고.”

“오.. 너는 이해 못 할 거야.. 그 소년은... 젠장..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다고.”

“나침반?”

역시 그냥 소년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군. 뭔가 얻을게 있으니 제이콥을 아까워한 거였나...

“그렇게 중요한 거였으면 뺏었어야지.”

“그게.. 자기만 사용가능 한 물건이라고 했다. 더욱이 인벤토리에 넣어 뒀다고 해서... 뺏으려면 고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늑대 가면을 쓴 괴인이 나타났지.”

닉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그런데 나침반이라...

“그 나침반 혹시..”

“위상지정 나침반이라더군... 그게 있으면 지정한 장소를.”

“나침반의 추가 가리키게 되지. 알아. 나도 있다.”

“뭐?”

역시, 내가 생각한 게 맞았다. 제이콥이 들고 있던 나침반은 위상지정 나침반이었다. 그거라면 나도 하나 가지고 있지.

“자, 여기 봐라. 나도 있어. 그리고 이것도.”

“그, 그건...”

“제이콥의 가방이지. 놈의 물건이 들어 있는 가방. 마주친 순간 내가 뺏었다. 어디보자.. 여기 있군. 그런데 가방 안에 나침반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허어.. 하하하하..! 준! 너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닉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대용량 마법 가방에서 제이콥이 가지고 있던 사이드 백을 꺼냈다. 그러곤 바닥에 물건을 쏟아부었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과 식량들 가운데 내가 가진 것과 똑같은 나침반이 하나 더 나왔다.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새끼가 굳이 무겁게 가방 차고 다닐 이유가 없지. 거짓말이었어.”

“제이콥.. 이 영악한 녀석.. 나를 속였구나..”

그제야 닉은 제이콥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이콥은 아마 내가 언제든지 자기를 고기 방패로 쓸 수 있단 사실을 알아채고선 인벤토리에 나침반이 있다고 거짓말 치며 닉을 이용하려 한 것 같다. 교묘하게 내 명령을 벗어나 자기 보신을 챙기려 한 거겠지. 닉은 나에게 한방 먹일 수 있다 생각하곤 제이콥을 챙기려한 거고.

‘이미 나에게 빼앗겨서 있지도 않은 나침반을 들먹이며 닉이 자신을 지켜 주게 만들 속셈이었던 모양이군.’

그 짧은 순간에 꽤 머리를 굴렸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제이콥은 닉의 도움은커녕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한 줌의 고깃덩이가 되고 말았다.

‘이걸로 졸지에 나침반이 2개가 됐어... 개꿀이다.’

괘종시계가 있는 이 방과 출구에 각각 하나씩 위상을 지정해 두면 되겠다.

“일단 이건.. 여기로 지정하고...”

나는 제이콥이 우리에게 남기고간 나침반의 버튼을 눌러 장소를 지정했다. 이제 이건 괘종시계가 있는 이 방의 위치만을 가리킬 거다.

굉장히 넓다고 여겨지는 이 저택에 시간 이동용 괘종시계는 이 방 말고도 몇 개 더 있겠지만.. 일단 하나는 언젠든지 찾아올 수 있게 된 셈이지. 물론 지금은 우리가 한번 사용했기 때문에 하룻동안 재사용 할 수 없게 됐지만..

“그럼.. 여기가 어느 시간대인지 일단 파악해 보자고.”

“그전에.. 이걸 봐라.”

“응? 뭔데.”

“여기... 이 굳어 버린 핏자국과 뼈 조각...”

“뭐야. 설마...”

좀 전에 홀로 문을 막다가 결국엔 늑대 가면에게 찢겨 죽은 제이콥의 시체가 있던 자리. 그곳에 묵은 때처럼 늘러 붙은 핏자국과 제이콥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조각이 몇 개 보였다.

“미래로 왔군...”

우리가 속한 2022년의 시간대인지 아니면 고위이족들이 돌아다니는 아주 먼 미래일지... 어쨌든 인장반지가 있는 가주 집권기는 분명 아니다.

‘뼛조각이 아직 남아 있는 거로 봐선... 엄청 먼 미래보단 현대의 시간대로 온 것 같은데...’

일단은 좀 더 저택을 돌아다녀 봐야 알 것 같다. 그리고 현대의 시간대로 온게 맞다면... 여기서 출구를 먼저 찾아둔 다음에 다시 시간 이동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젠장... 여긴 어디야...”

한참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던 플레이어 최석호.

그는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진 채 홀로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동료들과 헤어진 원인은 다름이 아니다. 무지막지하게 강한 자동인형들 때문이었다.

어쌔신인 최석호는 동료들이 자동인형들과 싸우던 중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곤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도 최석호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곤 각자 살길을 찾아 도주했고 전원 흩어져 버렸다.

‘시발.. 어떻게 나가지..’

최석호는 자신이 언제 저택에 들어온 건지, 시간은 또 얼마나 지났는지 감도 안 잡혔다. 애초에 그는 이 시간대에서 벗어나는 방법조차 몰랐고 그저 저택을 순찰하는 자동인형들을 피해 도망 다니며 자신과 같은 플레이어들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빌붙기 위해서.

“음.. 이건 뭐지..?”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최석호는 굉장히 거대한 방을 찾아냈다. 그곳엔 수많은 레버들과 파이프 관, 여러 이름 모를 장치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마치... 스팀펑크 풍으로 꾸며진 저택의 관리실 같았다.

“혹시.. 타임머신...?”

이 망할 저택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최석호는 방 안에 있던 레버들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건드려 봤다.

그 순간...

­쿠구구구구궁!!!!

“으, 으아!! 시발!!!”

저택이 굉음을 내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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