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157. 거짓말쟁이 바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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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부수고 들어온 괴물들.
놈들은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두족류의 괴물들이었다. 꼭 크툴루 신화에서 기어 나올 법한 스탠다드한 생김새의 이족들 말이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엔 역겹고 끔찍한 기형 괴물들이었지만 이미 암시장을 세 번이나 방문한 조준의 기준에서는 그저 그런 생김새의 괴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끄아아!!!”
바이유는 반쯤 패닉에 빠져 놈들에게 스킬을 난사하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의 스킬에 직격당한 이족들은 파란색 피를 뿜어내며 죽어 나갔다. 그리 내구성이 높은 놈들은 아니었다.
허나 이것도 그나마 바이유가 정신력이 높아서 싸울 엄두라도 낸 거지 조준의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포로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덜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지. 싸워라.. 바이유...’
조준은 공포에 반쯤 사로잡혀 두족류 괴물들과 뒤엉켜 싸우는 바이유를 응원했다. 간혹 조준에게 관심을 보이는 괴물도 있었으나 조준이 촉수발출로 한 놈을 보란듯이 으깨버리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만마의 총애를 익히고 있어서 그런지 조준에게 꽤 친숙한 기운이 돌기도했고,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이족들은 조준이 자신들과 같거나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조준의 등 뒤를 지키고 있는 눈동자들이 굉장히 무서웠다.
악신들은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전율저택에 하수인이 입장하는 순간 이어져 있던 패스가 끊겼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영혼의 계약을 맺은 소환수들은 멀쩡히 조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키시리아와 에이낙스의 존재감은 감히 18레벨짜리 던전에 출몰하는 이족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다. 아무리 지성을 가진 고위이족이라고 해도 타고난 격의 차이를 어찌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참고로 악신들은 현재 조준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일 뿐 그의 모습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바이유는 자신에게 과하게 집중되는 이족들의 모습에 기가 눌려 눈물을 흘렸다. 서럽고 벅찼다. 이러려고 여기 들어온게 아닌데 어째선지 그는 자꾸 저 한국인 플레이어에게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결국 그는 이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린 채 제발 조준이 자신을 도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끄아아아!!! 이 빌어먹을 새끼야!! 보지만 말고 도우라고!!! 아니!! 좀 도와주세여!!!!”
“미안 해! 바이유!! 그렇지만 난 비전투 직인걸!”
“지랄하지 마라아악!! 스킬 쓰는 거 다 봤다고!!!! 도움!! 도움!!!”
바이유는 슬슬 마력이 다 떨어져 갔다. 그도 이때까지 생존하며 여러 장비들을 얻고 마력스탯을 높여주는 영약도 몇 개 주워 먹었지만 그게 마력 수치가 자그마치 700대에 도달한 조준만큼은 아니었다.
온갖 기연들로 중무장한 행운 666의 위엄을 넘보기에는 많이 모자랐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끝도 없이 밀려들어오잖아...’
바이유는 계속해서 꾸물꾸물 거리며 괘종시계가 있는 방 안으로 기어들어 오는 이족들을 어찌 처리할지 고민했다. 그 혼자 계속 싸운다면 결국 마력을 회복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는 놈들의 물량에 쓸려나갈 것 같았다.
‘한 방에 터트리고... 길을 연다..’
결국 바이유는 아껴뒀던 스킬을 꺼내 사용했다. 그건 레벨 14짜리 뱀파이어를 죽이고 빼앗은 스킬이었다.
“혈폭!!!”
콰광!!!!
바이유가 흘린 피가 일시에 폭발했다. 바이유 본인은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이족들은 넝마가 되어 마치 물기에 젖은 걸레마냥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그걸로 잠깐의 틈이 생겼다.
폭발의 여파로 인해 빈공간이 생겼고 거기다 때마침 방의 입구에서 밀어닥치던 이족들이 잠시 뜸해졌다. 근처에 있던 놈들은 이곳으로 다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방의 입구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이는 오래가지 않을게 분명했다. 다른 곳에서도 소리를 듣고 이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니... 한마디로 지금이 이곳을 빠져나갈 절호의 기회였다.
‘나 혼자서라도 도주해야 해... 저 좆 같은 빵즈가 뒤지든 말든...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쳐서... 어떻게 해서든 닉이 있는 시간대로 가는 거야... 그래, 그런 다음 적당한 플레이어 하나 잡아서 저택을 빠져나가면...’
이미 조준을 적으로 인식한 바이유는 혼자서라도 도망치려고 했다.
허나 적의 통수를 후벼 팔 기회를 잡은 조준이 도주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한번 집어삼키기로 결정한 적을 순순히 도망가게 둘 정도로 조준은 자비롭지 못했다.
그는 뱀처럼 바이유를 휘감았다. 벗어날 수 없게끔. 그를 이번 기회에 폐인으로 만들기 위해 마수를 뻗었다.
반인반사의 통수가 작렬한다. 물론 직접 공격했다간 페널티를 받을게 뻔했기에 타인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바이유가 도망가려고 하는군. 빨리 견제해라.”
“예.”
“알겠습니다.”
바이유가 홀로 이족들을 상대하는 동안 조준은 칠흑바퀴를 소환해 가까이 다가오는 이족들을 견제하며 억제용 입마개와 조련용 밧줄로 제압당해 있던 두 사람을 수차례 의식용 단검으로 쑤시고 차오르는 살점으로 치료하며 굴복 시켜 노예낙인을 찍었다.
순식간에 노예가 2명이나 생긴 조준은 때마침 홀로 방 밖으로 탈출하려던 바이유를 견제했다. 문어대가리들의 물량공세를 대충 막아 내고 빈틈을 만든 바이유였으나, 갑작스레 두 명의 플레이어가 입구와 자신 사이로 끼어들어 공격을 날리니 미칠 노릇이었다.
“시바아알!!! 비끼라고!!! 왜 갑자기 지랄들인데!!!!!”
바이유는 복도 너머에서 기어들어 오기 시작한 이족들을 보며 비명을 꽥 내질렀다. 두 명이 입구를 막아 버리는 통에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이다.
곧 다시 이족들이 방안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조준의 명에 따라 바이유를 견제하던 두 사람은 이족들이 밀어 닥치자 얼른 뒤로 물러났고 홀로 다시 이족을 막아내기 시작한 바이유는 점점 닳고 닳아 걸레짝이 되어갔다.
비틀거리며 두족류 괴물들의 촉수 공격을 어렵사리 막아 내는 바이유를 보며 조준은 슬슬 이족들을 쓸어버려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실 준비는 좀 전부터 끝난 상태였다. 무수히 많은 시체들과 극단적인 효율충이라 할 수 있는 칠흑바퀴가 있다면 그는 단시간에 십만 바퀴 양병설을 몸소 실현 시킬 수 있었으니까.
‘분명 보석상이 그랬었지... 이곳은 15에서 18레벨 따리들을 위한 장소라고... 그러니 이족이라 해 봐야 수만 많을 뿐 좀비랑 다를 바가 없다.’
처음 전투가 시작될 때 이족 하나를 촉수로 터트려 죽이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족들은 수가 많고 상처가 금방 회복하며 정신 공격을 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실 그게 전부라기엔 두족류 이족들이 가진 특성들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감당하기엔 답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조준이나 칠흑바퀴 같은 정신 나간 괴물 앞에선 그냥 그게 전부인 수준에 불과했다.
아무튼 조준이 보기에 수가 많은 건 좀비들도 마찬가지고 정신 공격은 조준 자신이나 칠흑바퀴에겐 통하지 않으니 이족들은 그야말로 훌륭한 바퀴들의 먹이였다. 칠흑바퀴가 알을 깔 수 있는 개체들이 가득하단 소리니 사실상 이곳은 이제 조준의 주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늑대 가면 같은 미친 괴물이 나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군...’
그런 생각을 하며 조준이 적당히 몇 마리의 이족들을 붙잡아 넘겨 주자 칠흑 바퀴는 신나게 놈들의 배에 생식기를 처박아 알을 까기 시작했다.
“바이유! 괜찮니?”
“끄갸갸가가가각!!!!!”
한참 이족들에게 붙잡혀 귀와 코로 촉수가 삽입되어 알아선 안 되는지식들을 주입 당하던 바이유는 조준의 부름에 대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죽으면 안 되니까... 자, 이제 문어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렴.”
“키샤샤샤샤!!!”
조준은 모아 뒀던 바퀴들을 풀었다.
이족의 배 속에서 내장을 파먹던 벌레들이 배를 찢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성인 남성의 머리통 만한 바퀴벌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그다지 넓지도 않은 방에 이족과 벌레, 발버둥 치는 인간이 한 대 뒤섞여 지옥과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키에에에!!!”
바퀴 떼에 물어뜯기며 이족들이 비명 소리를 내지른다. 그 사이 조준은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헐떡이던 바이유를 촉수로 붙잡아 끌어당겼다.
“바이유. 괜찮아?”
“그, 그만.. 그만 알고 싶어.. 알기 싫어.. 내 머릿속에서 나가!!! 제발 부탁이야.. 흐어엉...”
“이런.. 바이유...”
조준은 파란색 피로 범벅된 채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통을 호소하는 바이유를 기만하듯 과장된 표정으로 안쓰럽게 쳐다 봤다. 딱 스리슬쩍 뭔가를 먹이기 좋은 상태라 생각하며.
조준은 한손으로는 울고 있는 바이유가 혹여나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잡은 다음 가방에 손을 뻗어 와인이 들어 있는 텀블러를 꺼냈다. 그건 그가 따로 텀블러에 담아서 챙겨 온 기억 소거용 와인이었다. 병채로 가져오면 아이템을 정보를 보고 기피할 수도 있으니 일종의 수를 쓴 것이다.
“이걸 먹으면 안 좋았던 기억들이 싹 사라질 거야. 우리 약 먹자.”
“시, 싫어!!! 네놈!!! 설마 처음부터 그걸 나에게 먹이려고 개수작을 부린거냐!!! 이건 팀킬이야!! 심판!!! 심파아안!!!”
“이래서 눈치 빠른 새끼들은 질색이야... 이봐!! 바이유!! 이건 다 너를 위해서야! 정신이 오염된 바이유를 치유하는 행위라고!!! 먹어!!!”
조준은 바이유가 쓸데없는 소리를 더 지껄이기 전에 그의 입을 벌려 와인을 한 모금 부었다.
꿀꺽.
“어..? 어.. 자, 잠깐.. 이건.. 어.. 여긴 뭐지..? 넌.. 빵즈...?”
하루치의 기억이 날아가 버린 바이유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조준은 그에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바로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더 그의 입에 흘려 넣었다.
“자, 다음 모금.”
“자, 잠깐!! 으읍!!”
본능적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눈치빠른 바이유는 조준이 흘려 넣은 와인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조준은 거칠게 바이유의 턱을 쳐 입을 틀어막고서 끝까지 삼키게 만들었다.
꿀꺽.
“허억...!! 너, 너는 누구냐!!”
두 모금으로 일주일치의 기억이 사라진 바이유. 그의 뇌는 조준과 만나 적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갔다.
“자, 마지막.”
“응? 그건 뭐지? 이봐!! 그, 그만둬라!!! 우으윽!!”
꿀꺽.
바이유의 반항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스킬한번 써보지 못하고 조준에게 딱 붙잡힌 상태로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셔버렸다.
네 모금 이상부터는 숨 쉬는 법조차 잊어먹기 때문에 확실한 팀킬이었다. 팀킬해서 계정이 삭제 당했다간 답이 없기에 조준은 정확히 세모금만 그의 입에 흘려 넣어 바이유가 가진 기억들을 죄다 날려 버렸다. 정신이 오염되어 있던 바이유의 기억을 지움으로서 치료했다고 판단, 페널티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과거의 추억, 가슴 아팠던 사랑, 일생일대의 사명까지도 전부 잊어 먹은 바이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조준을 올려다 봤다.
재앙은 커녕 자기 이름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억들이 사라진 그는 지금의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저기... 죄송하지만.. 그쪽은 누구신대.. 저를 안고 계신 건가요...?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디고.. 또.. 어.. 나는.. 여기에 왜.. 여긴 어디지? 어?”
바이유가 완전히 맛이 가 버린 것을 확인 조준. 그는 오랜만에 메소드 연기를 시전했다. 컨셉은 기억을 잃은 바이유의 오랜 동료였다. 조준은 마치 굉장히 친근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바이유에게 말을 걸었다. 허나...
“이봐 바이유. 정신이 들어?”
“바, 바이유는 또 누군가요... 저는 바이유가 아닌데요...”
“뭐? 아. 그, 그래...?”
“네.. 저는...”
“메이링인데요..?”
조준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얼어붙었다.
미친 짱깨가 알고 보니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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