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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69화 (169/221)

〈 169화 〉 168. 적응하기 힘든 암시장

* * *

“후우.. 후우.. 시발...”

한아람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메르헤레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살짝 닦아내며 들고 있던 낫을 내렸다.

싸움의 승자는 역시나 메르헤레였다. 두 사람 다 스킬을 봉인해 둔 상태로 싸웠고, 한아람은 메르를 상대로 선전했으나 역시 아직 이길 수는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살아온 세월이 다르다. 비록 본신의 모든 능력을 빼앗기고 추락한 천사라곤 해도 그동안 몸에 익혔었던 전투 기술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예전보단 훨씬 강해졌다.”

“후우.. 젠장.. 메르 언니야 말로 너무 강하잖아.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한아람은 못내 분한 듯 흙을 움켜쥐며 아쉬워했다. 그녀는 사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장조준과 함께 암시장의 지하로 들어가 악마들을 도륙 낼 생각에 한껏 들떠서 신나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벽을 마주해 이곳에서 주저앉아야 했으니까.

그야말로 자신의 전공분야라 할 수 있는 악마 사냥까지 딴 여자에게 빼앗기면 이제 자신에겐 남는 게 없다고 느꼈다. 뭐하나 잘난 구석이 있어야 눈치 안보고 낮잠 잘 수 있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한아람은 눈물까지 흐를 것 같았다.

그때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람이에게 메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주인을 잘 지켜줘라, 아람.”

“뭐.. 요.?”

“사실 진짜로 갈 생각은 없었어. 그저 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본 거야. 확인차.”

애초에 메르는 조준과 함께 암시장에 갈 생각이 없었다. 암시장에서 굴렀던 기억을 떠올리니 절로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주했었던 괴이한 것들을 아직도 메르는 잊지 못했다.

물론 꼭 가야 한다면 두 말없이 들어갔겠지만 저렇게나 가고 싶어 하는 한아람을 말려서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고마워.. 언니.”

“뭘.”

한아람은 자신에게 조준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한 메르가 엄청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한아람은 메르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그녀를 꽉 끌어앉았다. 두 사람다 가슴이 너무 커서 서로의 유방이 서로를 밀어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이제 확실히 정해졌다. 한아람, 장조준, 에일라가 이번 암시장 원정의 정규멤버다. 이들은 이제 체셔와 접선해 노예상에게 노예를 하나 구입한 뒤 총 다섯 명이서 암시장의 지하층을 공략할 것이다.

"그럼 이제 사람도 다 정해졌으니까 들어갈 준비나 하자."

조준의 말과 함께 그들은 암시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물론 준비라고 해도 별건 없었다. 식량은 암시장에서도 자체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에 쓸만한 아이템들만 챙기면 됐다.

보석함에 귀금속을 다 집어 넣은 보석상은 대용량 마법 가방에 물건을 집어 넣고 있던 조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조준에게 전원 끄는 법을 알려주러 온 것이었다.

“다 챙겼어?”

“어. 완벽... 하다곤 역시 말 못 하겠고. 어느 정도 챙길 건 다 챙겼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여기. 만져 봐.”

“어.. 여기요?”

“응.. 이건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절대 발설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에일라는 조준에게 자신의 약점을 공개했다.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마력을 약간만 주입해. 그럼 나는 꺼질 거야. 켤 때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돼고. 알겠지?”

“예.. 그런데 이거 다른 보석상들도 전원 위치가 동일한가요?”

“어.. 그건 아닐걸? 다들 위치가 다른 거로 알고 있어. 그래도 아마 대부분은 뒤통수나 등일걸?”

“과연.. 그렇군요...”

조준은 전율저택을 공략했을 때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던 순백의 보석상을 떠올렸다. 기회가 된다면 사지를 비틀어 죽일 거라 다짐했기 때문에 미리 생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다.

“자, 그럼 슬슬 전원 끄겠습니다.”

“응. 나중에 보자고.”

조준은 보석상의 머리를 살살 애무하듯 만지더니 곧 그녀의 전원을 껐다. 보석상은 스르르 눈을 감더니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서 인형이 됐다. 조준은 그녀를 대용량 마법 가방에 고이 집어넣었다.

그때 인식저해용 고글을 착용하던 한아람이 조준에게 물었다.

“이거 이렇게 끼면 돼? 좀 헐렁한가?”

“어... 잠깐만, 뒤에서 끈 조정해 줄게.”

“그런데 이거 꼭 꺼야 해? 갑갑할 것 같은데...”

“안 끼면.. 네가 후회할걸. 암시장은 정신 나간 곳이야. 뭘 보든.. 감당하기 힘들 거야.”

“좀비들보다 더 징그럽나?”

“어.. 좀비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면.. 암시장은 상영불가 정도?”

“오우... 더 꽉 조여 줘.”

조준의 말에 한아람은 기겁하며 고글을 더 꽉 조이라고 말했다. 조준의 말대로 암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반인이 봤을 땐 정신적으로 충격 먹기 딱 좋았다.

암시장은 정말 온갖 끔찍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이다. 보다보면 식인은 물론이고 인간 목장이나 말로 다 표현하기도 벅찬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식저해용 고글.. 일명 모자이크 고글을 끼지 않으면 검열되지 않은 장면들 속에서 정신이 망가지기 딱 좋았다.

또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이족들은 그냥 존재 자체가 인간의 정신력을 갉아먹는 놈들이고 심지어 이런 미친 곳에서 떡하니 가게를 차리고 있는 NPC들은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이기 때문에 목도하는 것 만으로 정신이 오염되어 버린다.

조준을 제외하고 암시장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출입 후 사망했거나 규칙을 어겨 암시장 상인 NPC들의 손에 처리 당했거나, 두 번 다시 들어 오려하지 않아서였다.

그저 장조준이 장조준이기 때문에 관광하듯 돌아다닐 뿐이었지, 실상 암시장은 일종의 함정이었다. 참고로 현시점 암시장 출입 자격을 갖춘자들은 조준을 제하고도 무려 일곱 명이나 더 있었다.

“자, 그럼 들어가 보자.”

모든 준비를 마친 조준과 한아람은 학교 창고의 문을 검은 열쇠로 열었다.

“무사히 다녀와요!”

“언니! 조심해야 해!! 오빠도!”

“그래! 다들 무사히 기다리고 있어!”

마중 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얼른 문을 넘어갔다. 이제 일주일 간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남은 이들은 우두머리 없이 재앙을 맞이해야 했다.

******

­두쿵. 두쿵. 끼이이익....

­두쿵. 두쿵. 끼이이익....

­두쿵. 두쿵. 끼이이익....

정체불명의 기계가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골목에 아련히 울려퍼진다.

­으아아아아!!!!

또한 무언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철퍽.. 철퍽...

정체불명의 존재가 물웅덩이를 밟고 다니는 소리 등이 뒤를 이었다.

이곳은 꼬인 골목.

암시장을 드나드는 존재들이 가장 처음 방문하는 장소이자 벽면에서 갑작스레 문이 생겨나 이족을 뱉어내거나 방문자를 납치해가는 정신 나간 장소.

악신의 사도가 아니었다면 꼬인 골목조차 벗어나기 어렵다. 만마의 총애를 가진 조준이기에 이곳이 그저 좀 더럽고 냄새 나는 장소라고 여겼을 뿐. 실상 이곳은 인간이 실종될 확률이 가장 높은 장소 중 하나에 해당한다.

­끼이익...

곧 아무것도 없었던 벽면에 갑자기 문이 생겨나며 그곳에서 조준과 한아람이 걸어 나왔다.

“여기가.. 암시장..?”

한아람은 좁디좁은 골목길과 제멋대로 자라난 파이프들, 그리고 축축한 바닥에서 풍겨 올라오는 악취를 맡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암시장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한 장소처럼 보였다.

조준에게 어떤 곳인지 대략 설명을 듣긴 했지만 정말 이 정도로 역겨운 냄새와 정신 사나운 소리로 가득 찬 장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런 장소를.. 혼자서 돌아다녔단 말이야?”

“어... 처음 왔을 땐 혼자서 헤맸었지. 두 번째부터는 가이드인 체셔랑 같이 다녔고.”

“와...”

“생각보다 평범하지?”

“뭐? 이게? 허어... 평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결하고 더러워 보이긴 하네... 그리고 망치를 휘두를 수 없을 것 같아.”

“맞네.. 여긴 공간이 협소하니까.”

데몬 슬레이어의 전용무기 ‘훌륭한 대화 수단’은 거대한 망치다. 그 크기가 만만찮은 무기이다 보니 좁디좁은 꼬인 골목에선 사용하기 힘들어 보였다.

심지어 무게도 굉장히 많이 나가기 때문에 대용량 가방에 넣기도 곤란했다. 그런 이유로 결국 한아람이 계속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어... 도대체 여긴 뭐야.. 끝이 없는 골목이잖아..”

한아람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미로와도 같은 꼬인 골목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조준은 능숙하게 리모컨을 눌러 체셔를 호출했다.

“왔구나!!”

곧 2분이 지나기 전에 허공에서 자그마한 게이트가 만들어지며 체셔가 뛰어내렸다. 체셔는 도착과 동시에 조준에게 안겨들었다.

“준! 준!”

그녀는 옆에 한아람이 있다는 사실 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온 힘을 다해 반가움을 표했다. 한아람은 네온 마스크를 쓴 괴인이 기계음 가득한 변조된 목소리로 조준에게 안겨들자 그만 그녀가 적인 줄 알고 망치를 휘두를 뻔했다.

“진정. 진정! 우리 편이야!”

“아...”

그제야 한아람의 존재를 눈치챈 체셔는 작은 목소리로 조준에게 물었다.

“저쪽은...?”

“아, 이쪽은 한아람. 내 동료이자.. 여자 친구에요.”

“어... 반가워.”

“아, 예..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하게 악수했다. 한아람은 다짜고짜 조준에게 안겨드는 체셔를 보며 조금 당황했고, 체셔는 심상치 않은 망치를 들고 있는 한아람을 보곤 놀라워했다.

두 사람 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오늘부터 지하층을 공략할 건데, 아람이는 악마 사냥꾼이라서. 아마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데려왔어요.”

“아하... 지하엔 하급 악마나 악마의 종들이 다수 돌아다니니까... 저기.. 악마 사냥꾼이면 마기 다룰 줄 알지?”

“아, 예. 조금.”

“그럼 일이 더 빨리 진행되겠다. 와줘서 고마워.”

“아, 아뇨. 뭘.”

한아람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과하게 반가워하는 체셔의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그럼 일단, 여긴 너무 역겨우니까 이동해볼까요? 시장 돌아다니려면 저 커다란 망치도 가져다 둬야겠고... 에일라도 꺼내야하니까.”

“에일라?”

“나중에 소개시켜 줄게요. 가방에 있거든요."

"어... 그래, 좋아. 그럼 가보자!!”

“어? 어딜...”

어딜 가는 거냐고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한아람은 체셔에게 손이 붙잡혀 순간 이동 당했다. 한아람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이 조금 버거웠다.

“으아아아!!!”

“아람아, 진정해. 도착했어.”

“어.. 어?”

체셔의 아지트에 도착한 한아람은 순간 이동 후유증으로 잠시 헛구역질했다. 조준은 걱정스레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소파에 그녀를 앉혔다.

“저기.. 그.. 이름이. 뭐였더라...?”

“아... 한아람이요..”

“아, 그래. 아람아. 이거 마셔볼래?”

“아... 예.. 고마워요...”

속이 안 좋았던 한아람은 체셔가 건네주는 정체불명의 음료를 받아 마셨다.

“우웩...!!! 커헉! 콜록!”

“아람아!! 왜 그래!”

“이, 이거.. 으으.. 맛이 이상해...”

그제야 한아람은 자신이 마신 캔에 버섯이 그려져 있는 걸 봤다.

그건 '노란 진액 버섯 수'였다.

“어.. 미안.. 입맛에 안 맞았나 보네..”

“저, 저기.. 체셔.. 언니? 언니 맞죠?”

“아마.. 그럴걸?”

“언니.. 저 일부러.. 맥이는 거 아니죠?”

“아냐! 진짜 아냐!! 그, 그냥.. 뭔가 줘야겠다 싶은데.. 줄 수 있는 게 술 말고는 그거뿐이라... 미안 해!”

체셔는 사실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조준의 여자 친구, 즉 자신의 선임이나 다름없는 한아람의 등장에 그만 긴장하고만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조준은 한아람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설명했다.

“저기.. 아람아.”

“어?”

“아마... 여기 있는 동안은 계속.. 그런 좀.. 어.. 일반적이지 않은? 그런 것들을 접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얼른 적응하는 게 좋아. 적응이 잘 안 되겠지만. 사실 나도 네 번째 들어오는 거지만 여긴 영 적응이 안 되긴 해. 그리고.. 이거? 버섯 수?”

“응. 버섯수.”

“어디 한번 먹어볼게...”

­꿀꺽.

“음. 상당히.. 풍미가 있네?”

“뭐...?”

“아마 아람아. 이게 그나마 여기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범주에 들어가는 물건이야. 그러니... 역시 적응하라고 밖에 해 줄 말이 없네. 아람이 파이팅?”

“버섯 수가 일반적인 물건이라니..”

그제야 한아람은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메르를 보내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 마저 들 정도였다. 더욱이 이어진 암시장의 규칙을 듣자 한아람은 그만 머리가 띵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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