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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72화 (172/221)

〈 172화 〉 171. 암시장 풀코스를 대접하다 (2)

* * *

먹거리 골목을 벗어난 그들은 곧 밀렵꾼의 움막에 도착했다.

한아람은 정신 사나운 가게 내부의 풍경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장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바닥과 벽, 천장에도 온갖 물건들과 철창들이 걸려 있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어서 와라. 응? 그쪽은 못 보던 인간이군.”

조준의 뒤를 어미 새 따르는 아기오리마냥 무지성으로 따라가던 한아람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앞을 봤다.

거기엔 온몸이 까만.. 오직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입만이 하얀 존재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그는 모자이크 처리된 괴물의 머리통을 닦고 있었다.

‘저건.. 대체...’

한아람은 밀렵꾼을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인 NPC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인지 밀렵꾼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컬티스트 너의 일행인가?”

“예. 이번에 일이 좀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조준은 체셔를 암시장에서 빼낼 거라는 이야기까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는 게 더 맞겠지.

조준은 밀렵꾼이 체셔를 상당히 아끼며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체셔를 채갈 거라고 말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준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군. 조심해라. 평범한 인간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니까.”

밀렵꾼은 머리통을 닦던 손을 멈추고선 한아람에게 직접적으로 시선을 보내며 경고했다. 밀렵꾼의 서늘한 경고에 한아람은 순간 등골이 시려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자 체셔가 밀렵꾼에게 한 소리했다.

“아저씨! 아무 문제없거든! 괜한 소리 마셔! 그리고 남의 여자 그만 쳐다봐!”

“흥. 기껏 경고 해 줘도...”

한아람은 조준이 손을 꽉 쥐어 주자 조금 진정됐다. 밀렵꾼은 조준도 살짝 두려워하는 상대다. 천하의 장조준을 살기만으로 떨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밀렵꾼이었으니 한아람이 그의 시선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하아.. 체셔. 너도 애송이들 뒤치다꺼리 그만하고 이제 가게 좀 이어라. 그게 너의 미래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거다.”

“아, 생각해 본다니까. 그리고 내 미래가 아니라 그냥 아저씨가 쉬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크흠.. 뭔 말을 그렇게... 휴우, 됐다. 다들 따라와라. 오늘의 추천메뉴다.”

체셔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다 조금 밀릴 것 같자 밀렵꾼은 얼른 미닫이문을 열어 그 안으로 일행들을 초대했다.

방안에는 1개의 철창과 2개의 화분, 피로 흥건한 가죽 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 원하는 걸 가져가라. 기왕이면 다 가져 갔으면 좋겠군.”

“오..”

조준은 물건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한아람도 조준이 보고 있던 아이템들을 따라서 관찰했다.

그녀는 우선 제일 왼쪽에 있던 철창 속 짐승부터 살펴봤다.

‘윽...’

철창 안에는 한껏 몸을 웅크린 작은 동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짐승은 상당히 기괴한 생김새였다. 짐승의 얼굴 부분은 앵무조개 머리처럼 생겼고 몸통은 털이 하나도 없어서 분홍빛 살결에 울긋불긋한 핏줄이 다 드러나 있었다.

[주살짐승의 새끼: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모두가 이 짐승의 죽음을 바라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피를 먹여 주종계약을 맺으십시오. 주인에게 적용될 모든 저주와 질병, 독 등이 전부 짐승에게로 이양됩니다. 짐승은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주의. 주살짐승의 새끼에게 부정적인 효과가 9개 중첩될 때 성체로 진화합니다. 성체로 진화하는 순간 주종관계가 역전됩니다. 주살짐승이 성체가 되기 전에 도살하십시오. 참수가 아닌 방법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주살짐승의 배를 가를 경우 새로운 새끼가 태어날 것입니다.]

[가격: 90000C]

“이거...”

“액막이네. 구입할게요.”

조준은 망설임 없이 주살짐승의 새끼를 구입했다. 주살짐승의 새끼는 사용처가 분명한 물건이다. 향후 악마와 광신도들이 득실거리는 암시장의 지하층은 물론이고 누스의 사슴왕관을 얻기 위해 부패의 숲에도 가야 하는 조준으로선 부정적 효과를 제거할 수 있는 주살짐승을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9만 코인이라는 엄청난 코인을 소모하더라도 지금 얻어 둬야했다.

‘이걸 사놓으면.. 딴 놈들이 나에게 독을 처먹여도 나는 죽지 않는다.’

전율저택에서 조준은 팀원들을 반쯤 독으로 처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말은 조준 또한 비슷한 방법에 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주살짐승의 새끼와 주종관계를 맺는 다면 기억 소거제와 성별 전환제를 누군가 조준에게 먹이더라도 그 효과는 주살짐승의 새끼에게로 이양되어 조준은 무사할 것이다.

실상 주살짐승의 새끼를 데리고 있는 동안엔 만독불침에 저주면역, 질병면역 상태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부정적인 효과가 9개 이상 중첩되면 그대로 끝장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 계산하면 될 문제였다.

“다음은...”

철창 속 짐승은 단박에 구매했다. 남은 것은 2개의 화분과 피로 물든 가죽 주머니다.

조준은 2개의 화분 중 줄기에 사람의 얼굴 같은 형상이 있는 묘목을 확인했다.

[송장나무 묘목: 죽은 사람의 피와 살점, 혹은 남성의 정액을 먹고 자라나는 나무입니다. 나무가 자라날수록 주위로 뿌리를 뻗어 나가며 영역을 구축합니다. 자신의 영향권 내에 버려진 시체와 유해를 찾아내 흡수합니다. 송장나무의 열매는 굉장히 달콤합니다.]

[가격: 12000C]

송장나무는 시체처리에 용이한 나무였다. 이때까지 조준은 시체가 생기면 태우거나 칠흑바퀴의 먹이로 던져 주었었다. 사실 조준에게 송장나무는 그다지 크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싼 가격과 더불어 달콤한 열매가 자란다는 문구를 읽고 조준은 송장나무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송장나무의 열매는 높은 확률로 헬러스가 영약을 만들 때 재료로 쓰일지도 몰랐으니까.

조준은 송장나무를 구입한 다음 옆에 있는 화분을 살펴봤다. 두 번째 화분엔 붉은색의 가느다란 식물이 자라나 있었다. 그 생김새가 꼭 회충 같아서 징그러웠다.

[시체 기생목: 죽은 생물의 몸에 뿌리를 내리는 기생목입니다. 죽은 생물의 몸을 조종해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기생한 시체의 뇌를 흡수해 지능을 얻습니다. 고지능 생물의 뇌를 얻을 수록 더욱 교활해지며 잔학해집니다. 무성생식입니다.]

[가격: 23000C]

시체 기생목은 길가에 널리고 널린 좀비들을 모조리 노예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이걸로 시체들의 군단을 만들면 실상 리치인 손하은의 존재이유가 사라지는 셈이었지만 조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이자 본인 자체가 언데드인 리치 손하은은 물량공세가 아닌 정예부대를 키우는 식으로 성장중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켈레톤 부대를 만드는 게 아닌 데스나이트 하나를 만드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시체 기생목과 컨셉이 그다지 겹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녀석인데...”

조준은 마지막 남은 피로 물든 가죽 주머니를 빤히 쳐다 봤다.

[헨리의 머리: 시끄러운 청부살인업자 헨리의 머리입니다. 머리만 남았음에도 헨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잃은 헨리의 몸은 나락의 밑바닥 어딘가에 버려져 근처로 다가오는 모든 존재를 썰어 죽이며 아직도 생존 중입니다. 헨리의 몸을 찾아줄 경우 그가 당신에게 평생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헨리는 소실된 '교단'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가격: 1000C]

“허... 이런 것도 파는 건가요?”

조준은 당황스럽다는 듯 밀렵꾼에게 물었다. 밀렵꾼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든 살아 있는 생물이면 다 팔지. 시체도 파는데 못 팔 게 뭐있겠나. 그래도 머리만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녀석이라 고작 천 코인이야. 싸지? 말동무 삼아 데려가. 악성재고니까.”

나락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그의 몸통을 찾아줄게 아니라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머리통이라니. 극도로 외로운 인간이 아니고서야 굳이 구입할 이유가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나는 나락의 바닥으로 갈 방법이 있지..’

금간 앙크를 보유중인 조준은 언젠가 나락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여기서 서브 퀘스트 용 물품을 구할 수 있을 줄이야.

나락의 밑바닥에 내려간 김에 겸사겸사 헨리의 몸을 찾아주면 될 것 같았다.

“좋아. 좋은 거래였어. 올 때마다 전부 구입해주니 기분이 좋군. 물론 내가 기분 좋다고 서비스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만약 체셔가 가게를 이으면 창고 대방출을 해 줄지도 모르지.. 차라리 이렇게 된거 잘 꽤서 가게를 이어받게 해주면.. 너에게 특별한 물건을 주마. 어때?”

밀렵꾼은 조준에게 어깨동무를 한 다음 작게 속삭였다. 만약 그가 체셔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면 밀렵꾼의 부탁을 받아 체셔를 설득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조준은 체셔를 암시장에서 빼낸다는 선택지를 고른 상태였다.

결국 조준은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다음에 한번 이야기해보겠다고 대답한 뒤 밀렵꾼에게서 벗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와라.”

“예. 또 오겠습니다.”

“아,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 안녕!”

가게를 나서며 그들은 곧바로 마약상이 있는 하수도로 향했다.

******

한아람은 또다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수도에 널브러져 약과 코인을 요구하는 이들이 아람이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피고름으로 얼룩진 그들의 손길에 한아람은 신경질을 내며 스킬을 사용했고 한아람의 발에 짓밟혀 쓰레기 같은 약쟁이 새끼들이 여럿 죽어 나가자 그제야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하아.. 썩을..”

“나중에 돌아가서 씻자.”

“응.. 젠장.”

한아람은 약에 찌든 놈들이 서로 물고 빨며 난교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한 숨 쉬었다. 썩을 놈들뿐인 장소였다. 먹거리 골목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난리였다면 여긴 약에 미쳐 버린 놈들 뿐이었다.

가령 판자집에 있던 약쟁이 놈 하나가 몰래 약을 빨면 옆에 있던 놈이 그놈을 죽이고 피를 탐한다. 조금이라도 혈액에 스며든 약 기운을 나눠 받기 위해.

그렇게 한 놈이 마약을 한 상태로 죽으면 약쟁이들이 놈의 피를 빨기 위해 시체로 모여들고, 시체에 모여든 약쟁이 새끼들은 서로의 몸에 묻은 마약성분 가득 함유된 피를 핥아대며 온갖 더러운 행위를 이어 나가는 것이었다.

망설임 따윈 없었다. 놈들은 그저 쾌락에 미친 쓰레기들이었으니. 심지어 이족이 아닌 지성체들도 많아서 모자이크 처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개 역겨워.”

“흐흐.. 여기가 좀 그래. 빨리 가자.”

“응..”

그래도 한아람은 이미 최악이라 볼 수 있는 먹거리 골목을 지나왔기 때문인지 역겨움 이상의 감정은 느끼지 않았다. 그게 또 대견했던 조준은 그녀를 격려하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곧 마약상의 가게인 드러그 앤 러쉬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바텐더 잭슨이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한아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조준이 신신당부했던 ‘그 무엇도 먹지 마라’라는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교육이 아주 잘된 상태였다.

“오, 체셔. 그리고 준이었군요.”

한아람은 머리 둘 달린 남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방독면을 쓰고 있었던 덕에 표정이 티나진 않았지만.

‘저 새끼.. 뭐지...?’

머리 하나는 약에 취한 듯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머리는 말끔하게 꾸민 듯 멀쩡했다. 한 사람의 몸에 머리가 2개나 달린 것도 징그러운데 한쪽 머리는 완전히 맛이 가 있으니 더 징그러웠다.

“잭슨씨. 오늘의 추천메뉴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오실 줄알고 특별한 녀석들로 준비해 뒀습니다.”

잭슨은 카운터에서 능숙하게 4개의 술병을 꺼냈다.

“특별한 녀석들이죠.”

잭슨이 꺼내 든 술들은 휘황찬란했다. 우선 피처럼 붉은색의 와인 하나. 사파이어 처럼 파란 리큐르하나. 우주의 색체로 물든 럼주 한 병. 그리고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벌꿀 주 하나.

조준은 술병들을 확인했다.

그사이 잭슨은 사탕을 하나 꺼내 인자하게 웃으며 한아람에게 건넸다. 물론 한아람은 고개를 저으며 사탕을 거부했다.

잭슨은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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