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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74화 (174/221)

〈 174화 〉 173. 지하층 공략법

* * *

“자, 악성재고 대방출이다. 팔리지 못한 밥버러지 새끼들이 너를 기다리는군.”

우리가 어렵사리 찾아온 이후 시종일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광대 놈은 처참한 노예들의 몰골을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 녀석은 남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이코였다.

“씹...”

나는 아홉 명의 노예들을 보며 조금 당황했다.

나에게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인지 놈들은 아주 무슨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모진 대우를 받은 것인지 상상도 안 갈 만큼 온몸에 채찍 자국이 가득했고 상처가 곪아 터져 죽기 일보적전인 놈들도 있었다.

“이건 악성재고가 아니라.. 당신 손으로 망가뜨린 것 같은데요..?”

“뭐. 그렇지. 그런데 어쩌라고? 내 맘이지. 아니, 네 탓이지. 네가 안 사갔잖아. 누가 남겨두고 가래?”

“허어. 아니 애초에 한명 밖에 안 팔잖아요...”

“흥! 네놈의 눈에 띄지 못한 이것들 잘못이지. 이놈들에겐 분명 여길 벗어날 기회가 주어졌었어. 하지만 이 무능한 녀석들은 가진 능력이 부족해서 그 기회를 잡지 못한 거야.”

광대에 말에 나는 더 이상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유재산을 자기 손으로 망가뜨리겠다는데 내가 뭐라 할까.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난 이런 일에 일일이 분노할 만큼 선인이 아니다. 그저 내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내가 구입해야 할 노예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굳이 데려다가 차오르는 살점으로 치료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좀 짜증 났던 것이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놈들에게 남은 미래란.. 죽음뿐이지. 솔직히 아직까지 살려 둔 것만으로도 이 새끼들은 나에게 감사해야 해. 저기 철창 어딘가에선 팔려나갈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놈들도 있는데. 감히 불평할 순 없지. 그리고 무려 두 번이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팔리지 않는 놈들은... 유통기한이 지났다 판단하고 죽일 거다. 그러니 신중하게 골라라 컬티스트.”

“예예. 음.. 일단은...”

안팔리면 죽인다고 말해서 그런지 다들 바짝 긴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흣...”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통을 참고 있는... 장미의 기사.

놈은 가만히 있어도 비호감인데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 처럼 되도 않은 어필을 하고 있었다. 난 놈의 모습에 굉장히 화가 났다.

다른 노예들은 겁에 질려 아픈걸 티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가만히 입 닥치고 있는데 저놈은 좀 아프다고 저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위급 상황에서도 자기가 조금만 다치면 지랄하며 트롤링을 할게 뻔했다.

난 귀족이랍시고 더럽게 아픈척 중인 게이 장미기사부터 아웃 시키기로 했다. 저 새끼는 갱생의 여지가 없다. 솔직히 당장 눈앞에서 죽어줬으면 했다.

“저 씹새끼는 절대로 구입할 의사가 없으니 일단 아웃 시켜 주십시오. 죽어도 저 새끼는 안 살 겁니다.”

“그래? 하하하하!!! 들었지!! 죽어라!!! 너의 유통기한은 방금 끝났어!!”

내가 아웃이라고 말하자 장미기사는 느끼한 목소리로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허나 놈에게 남은 것은 가차 없는 죽음뿐이었다. 광대는 환히 미소지으며 어디선가 봉을 하나 꺼내와 전원을 켰다. 그러자 봉 끝이 빛나며 전류가 흘렀다.

­파지지직!!!

광대는 전류가 흐르는 봉으로 장미기사의 목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장미기사는 바르르 떨더니 곧 바닥에 쓰러졌다. 바짝 익어버린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뒤쪽에 있던 철창 사이로 나무뿌리 같은 이상한 줄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장미의 기사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 남은 재고는 총 여덟이군. 후우. 개운해라.”

광대는 장미기사의 죽음을 목격하곤 덜덜 떨고 있는 남은 여덟 명의 노예들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도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지면 그대로 끝장이라는 생각에 남은 이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거나 눈물을 쏟아 냈다.

“뭐, 어쨌든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래. 마음 대로해라. 아 참, 이번엔 재고품이니.. 2명. 2명까지 고를 수 있게 해주지.”

“예? 진짭니까?”

“그래. 기분 좋으니 특별히 2명이다. 대신 두 명을 고르면 가격을 두 배로 받겠어.”

“어.. 알겠습니다.”

다른 상인들은 전부 물건을 4개씩 판매하는 와중에 광대새끼만 꼭 하나를 고집해서 짜증 났었는데, 이번엔 무려 2명이나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이 배로 뛰어 버리니 그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 아니고서야 굳이 두 명이나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일단...”

나는 왼쪽부터 노예를 살펴봤다. 가장 왼쪽에 서 있던 것은 처음 내가 암시장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녀석이었다.

“이름이 뭐였지?”

“아... 크, 크레톤입니다. 콜록, 힘도 좋고.. 일도 잘합니다.. 콜록, 콜록!! 사,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모시겠습니다. 그, 그리고 저는 삼만 사천 코인입니다..”

그래. 놈의 이름은 크레톤이었다. 그때는 메르가 있어서 선택하지 않았던 미노타우루스 아종이었나? 하프였나? 뭐 그랬을 거다.

아무튼 처음 봤을 땐 아직 멸망 초반이라 진정한 강자들을 만나 보지 못해 꽤 끌렸던 매물인데... 이젠 크게 감흥이 없어졌다. 무엇보다 눈에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열의가 떨어진 느낌이다. 또한 늙기도 너무 늙었고.. 수상쩍게 기침을 콜록이고 있어서 조금 불결해 보였다.

“병 걸린 것 같은데.. 별로네.”

“자, 잠깐!! 이, 이건 그냥 어.. 그래! 감기! 감깁니다!!! 제발!! 다시 한번만 더 재고해 주시길!! 안 돼!!! 이대로 끝날 순 없어!!!!”

­파지지직!!!!

“끄아아아!!!”

광대가 전기봉으로 크레톤의 복부를 찌르자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무언가 이상한 병에 걸려있었던 건지 쓰러져 죽은 놈의 입으로 누런 액체가 흘러나왔다.

“다음은..”

“저, 저저저 저는, 케시아. 케시아예요. 케시아.. 제발. 저 창질도 잘하고.. 물밖에서도 빠르고.. 물속에서는 더 빠르고.. 또.. 어.. 노래도 잘 부르고요.. 알도 낳으라면 많이 낳을게요. 많이 낳을 테니까.. 영양가 있어서. 먹을 수도 있어요.. 흐으윽.. 제발 저 좀 여기서 꺼내주세요. 제발. 저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제발...”

두 번째는 대양인인 케시아였다. 그녀는 메르에게 밀려 구입을 포기했었던 매물이다. 그동안 얼마나 모진 괴롭힘을 당한 건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인어왕자의 심장도 그렇고... 언젠가 만약에 물속으로 들어갈 일이 생긴다면.. 필요하겠지.’

두 명까지 구입 가능하므로 일단은 결정을 보류했다. 당장 사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매물은 아니었으니까.

“당장은 보류하죠.”

“끄흡..”

내가 보류했기 때문인지 케시아는 죽임 당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만으로 감격했는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 또 보는군.”

“그러게. 너는 이름이...”

“로우. 생긴 건 애새끼 같아도 무려 여든이나 처먹은 하프풋이다. 사려면 사던지. 능력은 끝내주니까.”

바닥에 주저앉아 거만하게 지껄이는 애새끼 같은 하프풋. 이놈은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더럽게 거만하다. 자기가 무조건 선택받을 거란 확신이라도 하고 사는 건가? 분명 저번에도 저런 거만한 자세로 있다가 선택받지 못했을 텐데. 한결 같은 새끼...

미안하지만 필요 없다. 초반에 템도 없고 시커 클래스 노예도 없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굳이 이따위 거만한 좀도둑 새끼를 구입하지 않아도 나는 이제 충분히 잠긴 문을 멋대로 따고 다닐 능력이 된다.

“너는 너무 싸가지가 없어. 그따위로 반항적이게.. 좀 있어보이는 척 행동하면 내가 관심이나 가져줄 것 같았냐? 됐으니까 넌 그냥 꺼져라. 아니, 죽어라.”

“자, 잠깐! 기다려 봐!! 나 능력있어!! 여기 있는 다른 머저리 새끼들보다 수십, 수백배는 더 뛰어나다고!! 이건 오판이다!! 나를 골라야해!! 이봐!!”

이제와서 어필해봐야 늦었다. 이놈은 자기 발로 기회를 걷어찬 것이다. 내가 고개를 젓자 광대는 로우인지 뭔지 하는 하프풋을 향해 거칠게 봉을 내려쳤다.

“끄아아아!!!! 이런 씹새끼들이!!!! 커헉!!”

곧 놈은 축 늘어졌고 장미기사가 끌려갔던 것처럼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이후 두더지 인간 말록과 징그러운 리자드맨 에인케, 사기꾼 새끼 로란을 차례대로 걸렀다.

버섯인간에 알시드 감염체까지 넘쳐나는 와중에 굳이 땅굴 파는 능력을 갖춘 두더지 새끼는 필요가 없었고 독이나 질병 면역이라는 리자드맨도 별로 유용해 보이진 않았다.

사기꾼 새끼 로란이야 가진 능력이라곤 아가리 털기 뿐이라 말할 것도 없는 쓰레기고. 이놈들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내가 선택안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하나같이 어정쩡하거나 별로 필요 없는 놈들 뿐이었다. 세명 다 전원 죽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나는 고기성애자라 인육도 처먹는 우랄탄과 생식을 좋아하는 두꺼비 여자를 마저 확인했다.

우랄탄은 그냥 자동 탈락이다. 크레톤보다 약해 보이는 놈이 입맛은 지랄맞게 까다로워서 고기만 처먹으니 식비도 많이 들 것 같다. 이런 놈을 굳이 살 필요는 없지.

“결국 남은 건 여기 두 년뿐이군. 이만 칠천짜리 케시아와 삼만 사천짜리 케케르.”

“두 사람 전부 구입하면...”

“두 사람이면 가격도 두 배니까 총 십이만 이천. 옷 포함 십이만 육천.”

“비싸긴 하네요.”

한 사람만 구입하면 그냥 정가대로 살 수 있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구입하면 가격이 배로 뛴다. 나는 과연 여기서 십이만 이천을 태울 가치가 있는지 고민했다.

“빨리 선택해라! 곧 문 닫을 시간이야!”

“아씨. 일단 케시아 구입. 그리고.. 케케르 너는..”

솔직히 보석상인 에일라가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면 학자풍인 케케르를 헬러스에게 붙여주기 위해서 구입했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그다지 필요 없어보인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자기 어필도 없고. 사실 학자풍이라 느끼는 것도 그냥 내 느낌이지 케케르 이새끼가 뭔가 나에게 말해준 건 아니다.

심지어 당장 암시장의 지하층을 공략해야 한다. 그런데 저리 느려터진 새끼를 달고 다닐 수 있을까?

물론 체셔의 거점에 두고 다니면 되긴 하지만...

“결정했습니다. 케케르까지 구입하겠습니다.”

“좋아. 십이만육천 코인.”

그렇게 노예 구입이 끝났다. 우린 곧바로 케시아와 케케르를 데리고서 중앙광장으로 갔다. 거기엔 뭔지 모를 고기꼬치를 사 들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에일라가 있었다.

“그게 이번에 구입한 노예들이야?”

“네. 이쪽은 케시아고 전위로 써먹으려고 구입했습니다. 여기는 케케르고... 자기 말로는 청소부랍니다.”

“그래? 어.. 일단은.. 좀 씻겨야겠다.”

멍청하게 서있는 케케르와 달리 케시아는 연신 우리의 눈치를 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럴때 마다 몇몇 이족들이 입맛을 다시며 케시아를 훑어보고 지나갔다. 케시아는 극도로 불안 해졌는지 옆에 있던 아람이의 옷을 살짝 잡았다.

아람이는 케시아가 옷을 잡던 말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는 것 만으로도 조금 벅찬 상태였다. 천지사방이 전부 모자이크 처리된 상태로 보여서 조금 어지럽다고 말했다.

“그럼 일단 거점으로 돌아갑시다.”

“오케이.”

중앙광장에서 먹을 걸 더 구입한 우린 당장 가게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라 일단은 체셔의 거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후 그녀의 거점에서 가볍게 식사를 한 뒤 아람이와 체셔가 케시아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녀를 구석구석 씻길 생각인 것 같았다. 케케르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다. 얌전한 녀석이다.

결국 나는 에일라와 단둘이서 버섯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봐 준.”

“예?”

“암시장의 지하층 말이다.”

“예.”

“거기에 대해 체셔에게 무언가 들은바가 있나?”

“어.. 아뇨? 체셔도 그냥 굉장히 위험하다고만 했고...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렇군. 암시장의 지하... 거긴 꽤 방대하다. 넓고, 위험하지.”

“아하..”

“나는 과거에.. 한번 들어가 본적이 있어.”

“예? 진짭니까?”

“그래. 그때도... 체셔의 영혼 조각을 되찾아 주려고 체셔와 함께 들어갔었지.”

“허어... 그래서요?”

“결과만 말하자면 실패했어. 체셔와 나는 그저 도망쳐 나오는 게 한계였으니까.그때 실패한 이후로 나는 암시장에 오지 않았어. 체셔를 보기 미안해서.”

“허어... 그럼 이번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아니지. 무조건 실패할 거다...”

에일라의 말에 나는 가슴이 턱 막혔다. 무조건 실패라니... 에일라는 분명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 끝에 저런 말을 하는 걸 거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야. 네가 저것들을 구입하지 않았다면..”

“예?”

“우리가 그때 실패했던 이유는.. 마지막 층을 공략하지 못해서였어.”

“마지막 층이요?”

“그래.. 지하는 총 4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까지는 나와 체셔 둘이서도 어찌저찌 돌파는 가능했었어. 하지만.. 4층은 불가능했다.”

“4층에.. 뭐가 있는 겁니까.”

“4층은.. 거대한 창고다.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창고화 시킨 불가해한 장소였지. 우린 거기서 결국 체셔의 영혼을 찾지 못했어. 심지어 공기 중에 퍼져 있던 마기에 점차 중독되어갔고. 더욱이 창고지기들은 시시각각 우리에게 저주를 퍼부었지. 버틸 재간도 없이 우린 도망쳤어야 했다.”

“어.. 그럼..”

“하지만 공략법이 생겼어. 솔직히 공략법 따윈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운이 참 좋았지.”

“네?”

“내가 찾은 공략법은... 바로 아람이와 주살짐승이야. 마기를 흡수할 수 있는 아람이가 4층의 공기를 정화하고. 그다음 저주를 주살짐승에게 떠넘기는 거다. 그럼 충분히 가망이 있어. 체셔의 영혼을 찾을 희망이 보인거야.. 그리고..”

에일라가 품에서 푸른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끄집어냈다.

“장물아비에게서 구입한 혼백추적의 목걸이야. 이걸로 체셔의 향을 뒤쫓으면 돼.”

“과연...”

운이 좋았다. 아람이와 주살짐승, 혼백추적의 목걸이라면 체셔의 영혼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무사히 도달할 수 있느냐인데.. 이것도 역시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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