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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78화 (178/221)

〈 178화 〉 177. 저주받은 미로를 헤매다

* * *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체셔와 에일라, 아람이와 떨어졌다.

무슨 함정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솟아오른 벽이 우리를 갈라놓았고, 양쪽에서 벽을 부수려던 중... 체셔 쪽에서 지하경비대들에게 발각됐다.

벽 너머의 소리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체셔는 우리를 찾으러 갈 테니 벌꿀주부터 마시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보아 1층에서부터 팀이 이렇게 분열될 줄은 체셔도 전혀 예상 못했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고작 1층에서 벌꿀주를 소비하기엔 너무 아까웠으니까 마시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거겠지.

아무튼 체셔가 우리보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나도 케시아와 케케르를 데리고서 부부동침의 목걸이가 이끄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중이다.

현재 저쪽에 있을 부부동침의 목걸이는 아람이가 차고 있을 거다. 지하층에 들어오기 전에 혹시나 해서 아람이에게 한 짝을 줬었다. 보험 삼아 줬던 건데 지금,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한 방향을 알 수 있으니 계속 찾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케시아, 바닥보지 마. 시발 좀 보지 말라고. 바닥에 아무것도 없다고.”

“아앗.. 네..”

나는 계속해서 바닥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숙이려는 케시아에게 경고했다. 그녀는 아까부터 바닥에 쓰인 뭔가 이상한 지렁이 같은 문자가 자신을 따라온다며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때 나는 체셔의 경고가 떠올랐다. 지하 1층의 벽이나 천장, 바닥에서 이상한 걸 볼 경우 최대한 모른 척 신경을 끄라고 했던 경고 말이다.

그녀가 알려주길 1층 전체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저주가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 저주들은 암시장의 지하층을 몇몇 악마들이 불법적으로 점거하며 생겨난 것으로, 이곳에 들렸던 다른 악마들이 방명록을 남기듯 저주를 새기고 갔단다..

내 생각엔 유명 관광지나 자연경관에 이름을 새기고 가는 악질 외국인 관광객 같은 행동을 악마들이 악마답게 단체로 진행했고, 그 결과 그들이 남긴 이름이나 문자들이 그대로 저주가 되어 여기에 남아 방문자들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체셔에게 듣기론 여기에 새겨진 저주들은 종류나 강도가 참으로 다양한데. 한번 걸렸다간 손쓸 도리도 없이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거나,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버리는 극악한 저주부터, 누군가의 시선이 계속 느껴지거나 몸이 심하게 떨리는 비교적 약한 저주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무슨 저주에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저주는 자신이 발동시키고 감당은 옆에 있던 다른 동료가 해야 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가령 케케르 이 미친 새끼가 주살짐승 하나 믿고 저주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못 참아서 결국 저주를 하나 발동시켜 버린 결과... 내 팔이 이상한 금속덩이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왼팔이 통째로 마비되더니 붉은 금속으로 변하기 시작했을 땐 진짜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왜 저주를 발동시킨 건 저 빌어먹을 두꺼비 새끼인데 그 감당은 내가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악마 새끼들 아니랄까 봐 발동 즉시 불특정 다수를 엿 먹이는 정말이지 악의적인 저주를 심어둔 것이다.

뭐, 어찌 됐든 그리 강한 저주가 아니었던 덕분에 케케르가 온갖 기기묘묘한 해주의식을 거행해 팔은 원래 상태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깨가 조금 뻐근했다.

“야, 케케르. 천장보지 말라고. 내가 지금 천장보지 말라는 말만 벌써 다섯 번은 말한 것 같은데 너는 왜 자꾸 고개 드냐? 돌았냐? 주살짐승 저주 먹이고 싶어서 미쳐 버린 거야? 아니면 이참에 나 조질려고 개수작부리는 거지? 차도 살인이냐고. 죽고 싶어? 내가 그냥 죽여줄까?”

“그, 그것이.. 자꾸 먼가.. 꾸물거리는 것 같아서.. 죄송하와요..”

케케르가 또 흘깃 거리며 천장을 올려다보려고 해서 나는 그녀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러자 케케르는 굉장히 미안하다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개굴거렸다.

케케르는 지금 자기 혼자서 저주만 열 번 정도는 걸린 것 같다. 도무지 지적인 욕망을 참을 수 없는 건지 내 명령마저 어기곤 저주를 관찰하려 했다.

그덕에 주살짐승은 벌써 한 차례 도축당했다. 저주가 8개째 쌓였을 때 케케르는 주살짐승을 토해내더니 머리를 베고 배를 갈라 주살짐승의 새끼를 끄집어냈다. 두꺼비가 그런 이상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휴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천장엔 아무것도 없어. 천장에 아무것도 없다고. 전부 그냥 멍청한 악마 새끼들의 수작질이야. 그냥 차라리 눈을 감아라. 눈감아도 피부로 느낀다며.”

“아.. 그것이.. 공기 중에 마기가 너무 많아서.. 피부호흡이 조금 곤란한 거시와요.. 피부호흡이 안 되면.. 주변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서..”

“아오. 마기는 왜 주살짐승이 안 먹어 줘. 왜지? 도대체 기준이 뭐야.”

“그, 그것은 본녀에게 물으셔도.. 본녀도 잘 모르는 짐승이기에 답해드리기 곤란한...”

당장 우리의 대화만 보자면 뭔가 굉장히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전부 다 지하경비대의 어그로가 체셔와 에일라에게 끌려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아까부터 뭔가 터지고 파괴되는 폭발음과 괴물 새끼들의 비명 소리 같은 게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오고 있다. 우린 부부동침의 목걸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 소리의 진원지로 점차 가까워지는 중이고.

“슬슬... 이 근처겠어. 다들 조심해라. 저기.. 지하경비대다..”

“개굴...”

“꿀꺽...”

체셔일행에게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전투의 소음은 커져만 갔다. 저쪽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진즉에 포위당한 거겠지. 그러니 빨리 도움을 주러가야 한다. 다치기 전에 구해내야겠지...

그때쯤 서서히 우리 근처에도 지하경비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왔다..”

새하얀 머리와 누런 피가 흘러내리는 끔찍하고 잔인한 상처들. 또한, 몸 곳곳에 새겨진 불결하고 불길한 문양과 다양한 악마의 표식들까지.

더구나 눈을 가린 검은 안대와 입술이 뜯겨나가 다물어지지 않는 크고 더러우며 추잡한 주둥이는 역겨움을 자아냈고, 온몸에 박혀 고통을 유발하는 쇠말뚝들과 속박을 실패한 듯 풀려 버린 쇠사슬은 놈들이 얼마나 흉폭한지 잘 나타내고 있었다.

“키아아아!!!!”

체셔 쪽으로 달려가던 지하경비대 놈들 중 몇 마리가 우리를 감지했다. 놈들은 비명을 내지르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놈들의 등에 달린 파이프 관으로 붉은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난번에 봤을 땐 저게 뭔지 몰랐지만.. 지금 보니까 저건 마기를 내뿜는 행위였다. 저놈들이 숨을 한번 깊이 내쉴 때마다 공기 중 마기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저놈들은 환경파괴의 주범이었다.

“후우.. 가자..”

이미 들킨 거 빠르게 저 놈들을 뚫고서 체셔 일행과 합류해야겠다. 조금이라도 멈칫했다간 놈들이 사방에서 밀어닥칠 거고, 포위 당하는 순간 우린 전멸할게 분명했다.

“으앗!!!”

빠른 속도로 치고나간 케시아가 창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끝나지 않는 충동의 효과로 창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케시아는 전방에 서 있던 지하경비대 하나의 목을 꿰뚫으며 창대를 튕겨 머리를 분리시켰다. 동작은 굉장히 간결했고 지하경비대 하나가 죽는데 고작 10초 남짓한 시간 밖에 들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였다. 아마 이 또한 재능성장제의 효과겠지.

“옴..”

케케르 또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지하경비대의 피가 튀고 놈들의 몸에 있던 저주가 발동되자 케케르는 곧바로 양손을 합장해 주술을 사용하며 케시아를 엄호했다. 그녀는 실시간으로 지하경비대의 피를 해독했고 놈들의 몸에 새겨진 문양이 파괴되며 전이된 저주를 해주했다.

나는 나대로 경비대가 풀어둔 털 없는 짐승들을 잡아 죽였다. 다행히 아직 심하게 몰려들진 않았다. 지금 더 빠르게 치고 나가야한다.

허나 점차 체셔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갈수록 경비대의 수는 기하급수 늘어났고 우리 셋 만으로는 어쪄지 못할 정도로 수가 불어났다.

“전방에!! 엄청 많아요!!!”

“나도 알아!! 이런!! 체셔!!! 여기예요!!!! 아람아!!! 에일라!!!!!”

부부동침의 목걸이가 요동친다. 저 괴물들 너머에 체셔와 에일라, 아람이가 있다. 괴물들은 우리를 신경쓰지 않았다. 저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매료되어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중이었다.

왠지 나는 저 모습에서 몰이사냥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체셔와 에일라의 역량이라면 그정도는 간단하겠지. 다만...

“키아아아!!!!”

“키에에에에에에!!!”

문제는 저 정도로 많은 지하경비대를 뚫고 들어갈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인데...

“조준!!!!!”

그때 괴물들로 이루어진 벽 너머에서 확성기라도 쓴 듯 커다란 에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열 테니!!! 여기로 뛰어와라!!! 여기에!!! 아래층으로 가는 통로가 있어!!!! 뭐라고 체셔?!! 이런!!! 일단은 엎드려!!!”

“예!? 시, 시발!!! 다들 엎드려!!!!”

곧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곤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케시아와 케케르도 내 명령에 머리부터 바닥으로 처박으며 엎어졌고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퓨웅!!!! 콰광!!!!!

바닥에 납작 엎드렸음에도 등이 뜨거워질 정도로 엄청난 화력의 광선이 수백, 수천 마리의 지하경비대를 분쇄하며 쏘아졌다.

“케시아!! 케케르!! 일어서!!! 뛰어!!! 지금이야!!!!”

“으아아아!!!!!”

길이 열렸다. 미로의 벽과 천장이 붉게 달아올라 녹아내린 상태였다.

도대체 뭘 쏘아낸 건지 예상도 안간다. 다만 체셔는 좀 전의 공격으로 모든 힘을 방출했다는 듯 기진맥진한 모습을 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팔을 부들거리며 결계를 유지 중이던 에일라와 피범벅된 상태로 망치에 기대고 선 아람이가 서 있었다.

“됐다!! 바로 아래로 뛰어내려!!!”

우리가 결계 안으로 들어온 순간 에일라는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우린 커다란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때 나는 보았다.

무언가 시커먼 존재가 우리를 따라 뛰어내리고 있음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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