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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79화 (179/221)

〈 179화 〉 178. 너는 누구냐?

* * *

“이봐, 조준. 어서 일어나. 자고 있을 시간이 아니야.”

“으응..?”

나는 에일라의 부름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에일라는 내가 눈을 뜨자 겨우 안심한 듯 뒤로 물러섰다.

“거울..?”

나와 일행들을 비추고 있는 거울과 은은한 빛. 광원의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지하 1층처럼 심하게 어두운 장소는 아니었다. 묘하게 어두워서 두려운 장소였다. 조금 무섭다.

“여긴 2층이네요.”

우린 거울미로의 한복판에 추락한 상태였다. 다행히 전원 같은 곳에 떨어진 듯 다들 같은 장소에 쓰러져 있었던 모양이다.

만약 다들 뿔뿔히 흩어졌다면 굉장히 끔찍했겠지만 신이 우릴 도우셨는지 다행히도 전원 같은 곳에서 깨어났다.

“아, 아람양.. 츄릅.. 어서 일어나시와요. 자꾸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 있으면... 배가 고파지니까.. 어서.. 츄릅...”

“야! 두꺼비!! 혀 안 집어넣어?!”

“아앗!! 체셔님!! 때리지 마시와요!! 아얏!! 아파!! 주인님!! 도와주시와요!! 아야앗!!”

고개를 돌리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람이와 그런 아람이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케케르, 그런 케케르를 진심으로 때리고 있는 체셔가 보였다.

한편 케시아는 한쪽에 주저앉아서 불안감에 몸을 살짝 떨며 피부를 긁고 있었다. 케케르는 식인 충동을, 케시아는 자해충동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둘 다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 나중에 케시아는 차오르는 살점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고 케케르는 챙겨 온 냉동 애완인간을 먹이로 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으윽.. 머리가..”

“어디 다친 건가?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

“아, 아니예요. 그냥.. 조금 머리가 울려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살펴보는 에일라.

나는 지그시 누르는 듯한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둔기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치... 뭔가 내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뇌혈관이 꽉 막혀서 터질 것 같은 아픔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 말로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저 머릿속 한편에 이상한 게 자리 잡은 듯한 이물감이 들 뿐이었다.

그때 체셔가 입을 열었다.

“다들 일어났으면 슬슬 다시 움직이자. 여긴 다행히 지하경비대는 없지만, 그래도 한 장소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돼. 거울 귀신이 나오니까.”

체셔의 말에 우린 다들 장비를 점검하고 3층으로 이동할 준비를 시작했다. 나도 점차 두통이 잦아들며 곧 고통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내 머리에 들어온 듯한 이물감은 남아 있었다. 영 찝찝하지만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무시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어디 갔어.’

그런데 어째선지 내 허리춤에 메여 있어야 할 귀곡도가 사라져 있었다. 분명 차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없어졌다. 그뿐만 아니다. 부부동침의 목걸이도 사라졌다. 전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나는 문득 불안 해졌다. 대용량 마법 가방에 집어넣은 기억도 없기에 나는 일행들에게 귀곡도를 못 봤냐고 물어 봤다.

“저기, 다들.. 내 검 못 봤어?”

“응? 검?”

“무슨 검?”

“어.. 그, 귀곡도 말이야. 녹색 검 날에, 양지상이 깃든.”

“으음.. 모르겠네.”

“나도 못 봤다.”

다들 못 봤다는 말에 나는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미궁에서 양지상을 잃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암울해졌다. 엄청 유용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영체를 탐색하는 데는 꽤 쓸 만했는데...

그때 눈을 비비고 있던 아람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 준.”

“응?”

“목걸이 떨어뜨렸어?”

“아.. 응. 검이랑 같이 어디로 사라졌나 봐.”

“아하...”

아람이가 들고 있는 부부동침의 목걸이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저쪽으로 쭉 나아가면 목걸이가 나오겠지. 어쩌면 귀곡도도 그곳에 떨어져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준, 찾으러 가 볼까?”

체셔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고 해도 언제 낙오되어 죽을지 모르는 장소에서 아이템 찾으러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지금은 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편이 좋아 보였다.

“아쉽지만.. 지금 검과 목걸이를 찾으러 갈 상황은 아니니까. 다시 출발하자.”

무엇보다 나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에게 따라잡히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유를 모를 불안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나는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채로 일행들의 뒤를 따라갔다.

******

“시발...”

일행들과 떨어졌다.

난 지금 혼자서 거울 미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 혼자였다.

가방도 없어진 상태였고...

“끼아아아!!!!”

“이런, 시발!!!”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순간 거울이 쩌저적 금가며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기어 나왔다.

심지어 팔과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고 말라비틀어진 상태였으며 키가 최소 2미터는 훌쩍 넘어보였다.

“끼아아아.. 아아아아아!!!!”

“으아!!! 거머리 새끼들!!!”

나는 목을 사방으로 흔들며 비명을 지르는 거울 귀신을 피해 놈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대적한다고 해서 내가 죽지는 않지만 저놈들은 죽을 때 죽인 대상의 몸에 이상한 낙인을 하나 새겨 넣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그래, 놈들이 새겨넣는 낙인이 문제다. 한번 낙인이 새겨지면 다른 거울 귀신이 뭔가 냄새를 맡고 오는 건지 금방 나를 찾아낸다. 또한 낙인이 중첩되니 쉴 틈 없이 거울귀신들이 기어 나왔다.

놈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아픈 내색 없이 집요하게 공격해 오며 갑자기 거울을 깨부수곤 기습을 가하므로 최대한 피해 다니는 편이 좋다.

놈들의 뜬금 없는 기습공격에 입고 있던 옷이 죄다 찢겨나가고 피로 물들었다. 정말 혼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모르겠다.

기다란 팔로 거울을 깨부수며 급소를 찌르고 들어오기 때문에 차오르는 살점으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다면 아마 진즉에 과다출혈로 죽었으리라.

­와장창!!!

­쨍그랑!!!

“이런 씹...”

그 사이 또 거울이 깨지며 뭔가가 기어나왔다. 안 봐도 뻔하다. 냄새를 맡은 거울 귀신이겠지.

“꺄아아아아!!!!!”

“끼에에에!!!!!”

벌써 다섯 마리나 꼬였다. 심지어 내가 달려가던 방향 쪽에서도 한 마리가 더 기어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포위당하지 않기 위해 또 거울 귀신 한 마리를 죽여야만 했다.

­치이이익!!

촉수로 사지를 터트리고 심연아귀로 거울 귀신의 머리를 씹어 죽이자 그 순간 내 오른쪽 날개 뼈가 있는 위치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며 낙인이 새겨졌다. 이걸로 10개째다.

“젠장!!!!”

낙인이 중첩된다. 사방에서 거울 귀신들이 거울을 깨부수며 밖으로 기어 나왔다. 저놈들이 늘어날수록 거울로 이루어진 미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거울이 더러워지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정신공격까지 당했겠지.

더욱이 중첩된 낙인이 10개니까 이제 최소 10마리는 나를 쫓아다닐 거다.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쉴 수 있는 시간 따윈 전혀 없다. 죽이면 죽일 수록 더 많이 나타나니까.. 나는 그저 저놈들을 피해 계속 도망쳐야 한다.

­쾅!!

“으악... 개좆 같은..”

달리던 도중 거울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이마가 살짝 찢어져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치료할 틈이 없어서 나는 다시 일어서 정신 없이 달렸다.

사방이 거울인데다 복잡하게 꼬여 있다 보니 방향을 구분하기가 정말 에매하고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조금만 한눈팔면 거울에 부딪치거나 사방에 비춰진 나의 모습 때문에 조금 어지럽다.

­끼아아아!!!

­끼에에에!!!

“하아.. 하아..”

다행히 정신없이 달린 덕에 놈들이 나를 놓친 것 같다. 나를 놓치면 놈들은 거울 속으로 기어들어가 다시 나를 추적한다. 빌어먹을 집착귀신들에게 들키기 전에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리 내 체력이 온갖 영약으로 좋아졌어도 쉴 틈 없이 몇 시간이나 계속해서 달리면 숨이 차오른다.

“후우. 빌어먹을.. 도대체 아람이는 어디 있는 거야.”

나는 부부동침의 목걸이를 들어 방향을 가늠했다. 다행히 목걸이가 좀 더 힘차게 흔들리는 거로 보아하니 가까워진 모양이다.

‘그나마 부부동침의 목걸이가 있어서 다행이지....’

지하경비대를 피해 지하 2층으로 떨어지는 순간 나를 공격한 검은 그림자.

그것 때문에 일행들과 처음부터 떨어져서 2층으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아람이가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부부동침의 목걸이 마저 없었다면 나는 진짜 답이 없었을 거다.

벌꿀주는 검은 그림자에게 빼앗긴 대용량 가방에 넣어둔 상태였으니까...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도 없이 일행들이 나를 찾으러 와줄 때까지 무한정 거울 귀신들을 피해 다니며 생존물을 찍었어야 했다.

­웅. 우웅.

그때 허리춤에 메여 있던 귀곡도가 웅웅 울렸다. 양지상이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나에게 의사전달을 해 왔다.

난 귀곡도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조금 조급해 보이는 목소리로 양지상이 말했다.

[저기, 주인님?]

“응? 왜.. 힘드니까.. 별거 아니면 말 시키지 마.”

[아, 아니.. 조금 불길한 기운이 들어서요. 도도메키가 뭔가를 본 것 같습니다.]

“뭐? 뭘 봤는데?”

[자, 잠시만요. 도도메키가 뭔가를 말해주네요.. 어.. 응. 음. 뭔가.. 굉장히 불길한.. 무언가 말입니다. 검고.. 물컹거리는.. 남을 흉내 내는.. 그런..]

“뭐?”

[그, 아람양이 있는 곳에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님을 습격했던 그 검은 형체가.. 지금 아람양이 있는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씹..”

양지상이 뭔가 영적인 존재를 느낀 모양이다.

나는 목걸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몸을 사릴 때가 아니었다. 거울이고 뭐고 다 깨부수면서 가야겠다. 아람이가 위험해지기 전에 빨리 찾아내야한다. 체셔와 에일라는 안심이지만.. 아람이는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

“음...”

“준아, 아까부터 왜 그래?”

“아니.. 뭔가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아서.”

“뭐?”

나의 말에 아람이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덩달아 선두에서 걷고 있던 체셔도 내 말에 반응했다.

“준, 뭔가 느껴지는지 정확히 말해 줘. 어쩌면 그런 느낌을 들게 만드는 저주일지도 몰라. 그런 류는 묘하게 거슬리게 만들어서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저주니까 빨리 지워버리는 편이 좋아. 마침 케케르가 해주를 할 수 있으니까.”

체셔의 말에 에일라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만약 저주라면 얼른 이 살풀이 석으로 케케르한테 옮기자.”

저주를 케케르에게 옮겨 해소하자는 에일라. 나는 자꾸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체셔와 에일라의 말대로 하얀색 살풀이 석을 손에 쥐었다.

이러면 저주가 살풀이 석으로 옮겨 가고 살풀이 석이 깨지기 전에 저주를 덮어쓸 사람을 구하면 된다.

“오, 저주가 맞았나 봐. 뭔가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파작!

“어?”

들고 있던 살풀이 석이 완전히 검게 물들며 녹아내렸다. 석유 마냥 끈적한 물이 되어 바닥에 뚜둑 떨어지자 염산이라도 닿은 것 처럼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바닥마저 일부 녹아내렸다.

“어...?”

“저게 왜 녹아내리는 거지? 녹는 물건이 아닌데...”

당황한 체셔와 의문스럽다는 듯이 녹아버린 살풀이 석의 잔재를 만져보는 에일라. 곧 에일라는 살풀이 석의 잔재를 혀로 핥더니 이상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쳐다 봤다.

“너... 조준 맞아?”

순간 체셔가 아람이를 자기 뒤로 숨겼다. 그러곤 쓰고 있던 네온 마스크를 반쯤 벗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킁킁.. 냄새가 묘하게 달라. 너, 누구야. 우리 준이 어디갔어.”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다. 왜 다들 나에게 저런 말을...

그때, 등 뒤에서 거울이 깨져나갔다.

­콰장창!!!!

“후우.. 시발.. 겨우 도착했네. 다들 무사... 어?”

깨져나간 거울 속에서 내가 튀어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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