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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0화 (180/221)

〈 180화 〉 179. 흉내쟁이들의 연회

* * *

거울 귀신들을 겨우 따돌리고 앞길을 가로막는 거울들을 모조리 깨부수며 나아간 끝에 나는 겨우 아람이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과 만날 수 있었다.

“넌 뭐냐?”

“넌 뭐냐?”

“뭐?”

“뭐?”

그런데 왜 나와 똑같은 생김새의 ‘무언가’가 저기 서 있는 걸까. 마치 나의 자리를 빼앗듯이...

“이런 시발..”

“이런 시발..”

도대체 저 새끼는 뭐지?

누군데 내 자리에서.. 내 일행들과 함께 서있는 거야. 그것도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동중에 나를 공격한 검은 그림자.. 가방을 뺏았아 갔던 그놈인가..? 젠장.’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손을 쥐락펴락 움직였다. 바로 촉수를 쏘아내 놈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

허나 그건 놈도 마찬가지였는지 나와 똑같은 행동을 취하며 자세를 잡았다.

만약 저놈이 바이유, 아니 메이링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가진 기술까지 그대로 카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나의 촉수 발출도 비슷하게 베껴 쓸 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스킬을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놈을 만나 본적이 없으니까. 사지를 결박하는 촉수와 갑작스레 나타나 머리나 팔다리를 씹어 버리는 심연아귀는 상대하기 굉장히 껄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심연아귀에 머리를 뜯기거나 촉수에 사지가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방어스킬인 일그러진 비늘부터 사용하기로 했다.

“뭐, 뭐야.”

“뭐, 뭐야.”

놈도 똑같이 일그러진 비늘을 사용했다.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나와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아마 저놈과 싸운다면 정말 거울 속 자신과 싸우는 것처럼 서로 똑같은 스킬을 쓰고 똑같은 행동을 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슷한 생각을 하며 싸울 것 같았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건 저놈도 마찬가지겠지.

악신들에게 어찌해야 좋을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기선 그녀들의 기운이 굉장히 희미하게 느껴진다. 암시장에 들어왔을 때는 보타밀리를 제외한 카쉬낙스와 인디크론의 기운이 옅어졌었는데, 지하층으로 들어오니 보타밀리 마저 느끼기 어려워졌다.

‘어쩌지...’

곧 있으면 내 몸에 찍힌 낙인 때문에 거울 귀신들이 여기로 몰려올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저 가짜 놈을 처리하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잠깐, 둘 다 멈춰 봐.”

그때 체셔가 우리를 중재했다. 그녀는 나와 나를 흉내 낸 가짜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킁킁.. 흐음.. 썩은 엑토플라즘 냄새 때문에... 냄새로 구분을 못 하겠어. 이때까지 우리와 쭉 같이 있었던 저 조준에게선 약간 다른 냄새가 나서 의심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내 몸에 묻은 거울 귀신의 체액 때문에 냄새로는 나와 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결국 여기서 누가 진짜인지 구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내가 나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뭘로 증명하지..? 일그러진 비늘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나의 스킬을 그대로 카피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기억까지 모조리 베꼈을까?

시험해 봐야겠다. 나는 가짜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체셔의 집에서 아람이가 먹고 토한 게 뭔지 아나?”

“버섯수.”

“이런.”

기억마저 카피 당했다. 그렇다고 연결이 희미한 악신을 부를 수도 없는 상태고, 스킬이나 행동도 나와 비슷하거나 더욱 나답게 행동한다.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에 빠져 있자 체셔는 품에서 미래과학적인 생김새의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나와 가짜를 향해 번갈아 가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빨리 조준이란 사실을 증명해. 안 그럼.. 일단 둘 다 쏠 테니까.”

미치겠군. 내가 나임을 증명할 방법...

“아람아! 오른 팔 들어!”

나는 노예인 아람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람이는 내 명령과 동시에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과연 가짜 녀석이 이것마저 흉내 낼 수 있을까.

“아람아! 왼 팔 들어!”

“어? 둘 다 명령이 먹히는 데?”

“이 무슨..”

놈의 명령에도 아람이는 팔을 들어 올렸다.

허나 나는 그 짧은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저놈, 방금 전 스킬을 사용할 때.. 나를 거쳐서 스킬을 발동시켰다. 뭔가, 나에게 지금 기생 중인 상태인 느낌이다. 내 스킬을 그대로 빌려 쓰고 있으며 내 기억마저 읽어내는 느낌이다.결국, 내가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것들은 저놈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

이걸로 나는 저놈이 가짜란 사실을 방금 완벽하게 간파했다.

저놈이 노예낙인의 효과를 사용할 때 나를 거쳐서 스킬이 발동됨을 느꼈으니까. 중요한 건 이걸 내가 알아챈 순간 저놈또한 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그대로 카피해 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내 말을 그대로 따라할 테니...

‘그래, 오직 나만 쓸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해. 그런게 뭐가 있을까.. 칠흑바퀴. 칠흑바퀴다. 칠흑바퀴를 불러내는 거야.’

단 한 마리뿐인 소환수 마저 복사하긴 어렵겠지.

문제는 칠흑바퀴가 내가 아닌 저놈에게 소환될 경우다. 허나 저놈이 스킬을 쓸 때는 나를 한번 거쳐서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동시에 사용하면 내가 미묘하게 더 빨리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다.

그럼 한 마리뿐인 칠흑바퀴는 내 쪽에서 먼저 소환이 되겠지.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만약 저놈이 바퀴를 소환하면.. 그때부터는 내 스스로 내가 과연 조준이 맞나 의심해야 하니까.

“칠흑바퀴 소환!”

“칠흑바퀴 소환!”

나와 거의 똑같은 타이밍에 가짜 놈도 칠흑바퀴를 불러냈다. 허나 놈의 소환에 칠흑바퀴는 응하지 않았다. 칠흑바퀴는 내 옆에서 소환됐다.

칠흑바퀴가 진정한 주인을 알아챈 건지, 아니면 인디크론이 바퀴에게 귀띔 해준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 생각대로 내가 선행소환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로써 나는 내가 진짜 장조준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

“으윽, 저게 뭐야..”

“우웩..”

“조, 조준.. 그건.”

“호오, 특이한 생명체네. 나락에서 기어 올라왔나?”

케시아와 케케르를 칠흑바퀴를 보더니 헛구역질을 했고 에일라는 몸서리를 치며 당황해했으며 생물에 관심이 많은 체셔는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아람이는...

“저쪽이 조준이야!! 체셔 언니!! 칠흑바퀴를 불러낸 쪽이 진짜예요!!!”

나를 손가락질 하며 흥분한 듯 소리쳤다. 아람이는 거의 초반부터 나와 함께 생존해 왔다. 그리고 은지와 하린이를 제외하면 가장 칠흑바퀴를 많이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끔찍한 생김새의 칠흑바퀴를 보고도 별다른 이상 반응 없이 그저 나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어..? 어, 어째서.. 이, 이건 말도 안 돼!!!”

가짜 놈은 내가 칠흑바퀴를 먼저 소환해 버리자 이럴 줄은 미처 몰랐는지 나를 손가락질 하며 억울함을 토로 했다.

“이건 잘못됐어!!! 저건 가짜라고!! 이런 시발!!! 내가 진짜란 말이야!!! 아람아!! 오빠가 진짜야!! 체셔!! 아니야!! 저놈말 믿지마!! 저 녀석이 무슨 수를 쓴 거라고!! 에일라!! 케케르!!! 케시아!!!”

놈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나의 모습을 한 가짜는 마치 거울 속 자신에게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이 일궈둔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허나 이미 모두 저놈을 가짜라고 인식한 상태다. 놈의 억울한 몸짓과 목소리는 전부 거짓이었다. 나를 흉내 낸 저 존재의 정체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승리다.

“자, 다들 봤지? 내가 진짜다.”

나는 더듬이를 활발히 움직이며 내 명령을 기다리는 칠흑바퀴를 모두에게 보여 주며 내가 진짜 조준임을 어필했다. 그러자 흉측한 생김새의 칠흑바퀴 때문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던 에일라가 가짜 장조준을 향해 무언가를 잽싸게 집어던졌다.

“죄인을 속박하라.”

­파지지직!!!

“끄아아아!!! 왜 이래!!! 에일라!!! 저놈이 가짜라고!!!!”

에일라가 집어 던진 푸른 보석들이 가짜 장조준의 발밑에 떨어지며 깨져나갔다. 동시에 에일라는 시동어를 외쳤고 순식간에 마법진이 생성됐다.

마법진은 그대로 가짜 장조준을 푸른 번개로 결박하며 놈이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연달아 전기 충격을 가했다.

“빨리 못 알아채서 미안 해, 준아.”

가짜의 움직임이 봉쇄되자 체셔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어깨를 토닥이더니 들고 있던 총을 발포했다.

­퓨융!!!

총구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졌고 빔에 직격당한 도플갱어는 배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곧 놈의 몸이 녹아내려 진득한 액체로 변했고 그 속에서 펄떡이며 몸부림치는 길쭉한 벌레가 기어 나왔다. 그건 살구색의 맨들맨들한 광택이 흐르는 기생충이었다. 꿈틀거리는 모습이 마치 뇌를 파먹는 선충 같기도 했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펄떡이는 벌레를 밟아 죽였다.

­푸학.

“어... 으으으윽..!!!”

벌레를 밟아 죽이는 순간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코에서 무언가 줄 줄 줄 흘러내렸다. 그건 방금 죽인 벌레가 녹아내린 물 같았다. 살구색 액체가 봇물 터지듯 코에서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시야가 비틀리고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시, 시발.. 이거.. 왜 이래..”

머리가 어지럽다.

어째서.. 이런 게 내 코에서 흘러내리는 걸까.

아, 어쩌면 이 녀석들은 한 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놈은 나의 모습을 흉내 내고, 한 놈은 내 머릿속에서 나의 기억이나 스킬을 카피해 저쪽에 보내는 방식인 거지...

어쩐지 내 스킬을 따라 쓸 때 나를 한번 거쳐 가는 느낌이 들던데... 이것 때문이었나보다.

­풀썩.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점점 눈이 감겨 온다.

설마 이대로 죽는 건가?

­준아!!!

­이런!! 조준!!!

여자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와장창!!

­끼에에에에!!!!

거울이 깨지며 거울 귀신들이 대거 기어 나오는 소리도 뒤이어 들려왔다.

빨리 일어서서 도망가야 하는데 일어설 힘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업히는 감각을 느끼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뛰어! 뛰어!!!!”

체셔는 쓰러져 버린 장조준을 업고서 거울귀신들이 나오지 않은 방향을 향해 뛰었다. 그 뒤를 케시아와 케케르, 에일라와 한아람이 따랐다.

“여, 열 마리!!”

고개를 돌려 뒤를 살핀 에일라는 열 마리나 따라붙었단 사실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거울귀신을 죽이는 일이야 굉장히 쉬웠지만 문제는 죽이고 나서다.

죽이면 죽일 수록 수가 늘어나며 나중엔 거울 미궁을 돌아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늘어난다. 이미 과거에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일이다. 그래서 최대한 피해가려고 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젠장!! 저것들 왜 저렇게 많아!!”

“어? 언니들!!! 준이 등에!!”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아람이가 조준의 찢겨진 옷 사이로 붉게 빛나는 낙인을 가리켰다. 조준의 등에 찍혀있는 낙인은 족히 10개가 넘어보였다.

“이런...”

에일라는 이미 십여 개나 중첩된 낙인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살풀이 석을 하나 꺼내 조준의 몸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10개나 되는 낙인이 전부 살풀이 석으로 옮겨졌고, 곧 살풀이 석이 진동하며 깨지려 했다.

“케케르!!! 받아!!”

“네? 네? 어?”

에일라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케케르를 희생하기로 했다.

살풀이 석이 얼굴로 던져지자 케케르는 본능적으로 혀를 내뻗어 살풀이 석을 받았고.

‘10개’나 되는 낙인이 전부 케케르에게로 전이 됐다.

그리고 전이 된 낙인들은 다시 주살짐승의 새끼에게로 넘어갔고...

­푸우욱!!!!

케케르는 달리다 말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보관용 위장에 있던 주살짐승을 토해냈다.

케케르의 위장 속에서 10개의 낙인을 전이 받은 주살짐승은 쏟아져 나오듯 밖으로 뿜어져 나오며 바닥을 기었다. 점액질로 물든 주살짐승이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곧 순식간에 크기가 3미터로 불어나며 주살짐승을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 크아아아!! 키아아아아!!!!”

주종관계가 역전된다.

저주를 집어삼키는 짐승은 케케르를 붙잡아 그대로 집어삼켰다.

곧 주살짐승의 몸에 두꺼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다. 이제껏 집어삼킨 ‘한때 주인이었던 것들’의 얼굴이 주살짐승의 몸에 가득 떠올라 있었다.

“후하... 공기가.. 아름다운 거시와요...”

주살짐승은 방금 집어삼킨 케케르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냈다. 또한 가장 최근에 집어삼킨 존재였기에 케케르의 모습까지도 일부 흉내냈다.

곧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 모를 양서류 수인이 된 주살짐승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꽤나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완벽한 흡수와 변형을 마친 주살짐승은 광소를 터트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거울 귀신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에일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달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피륙음들과 거울귀신들이 으깨지는 소리를 전부 무시했다.

케케르를 닮은 웃음 소리도 무시했다.

그들은 결국 한명을 희생해 거울귀신들을 무사히 따돌릴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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