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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2화 (182/221)

〈 182화 〉 181. 냄새나는 파이프를 넘어가자

* * *

눈을 뜬 곳은 곳곳에 곰팡이와 이끼가 피어 있는 눅눅한 파이프 속이었다.

닿았다간 바로 중독되어 죽을 것 같은 손가락 모양의 붉은 발광버섯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고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누런 포자들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더욱이 녹슨 파이프에선 녹물과 검푸른 오폐수가 뚝뚝 떨어졌다. 전부 암시장에서 버려진 하수들이 아닌가 싶다.

“윽.. 젠장.”

파이프 관은 굉장히 좁았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법한 넓이에 180센티 이상인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할 정도로 천장이 낮았다.

좁고 답답한데다 공기도 묘하게 따뜻하고..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런 냄새가 가득한 장소였다.

그래, 더럽고 냄새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여긴 더럽다거나 냄새난다는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뭔가 좀 더 불결하고 기분 나쁜 장소였다. 그리고 벌레가 많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진짜 정신 나갈 정도로 많다.

눈을 뜬 순간부터 손가락 만한 벌레 새끼들이 한두 마리씩 꼬이기 시작하더니 1분쯤 지나자 돈벌레 같은 놈들이 수십 마리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왔다.

도대체 무슨 놈의 벌레새끼들이 이렇게나 많은 건지. 온갖 종류의 해충은 물론이거니와 특히나 흡혈 파리가 들끓어서 미칠 것 같다.

틈만 나면 옷 틈이나 귓구멍으로 기어들어오려 해서 정말이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다들 이거 한 방씩 뿌리자.”

나는 급히 가방에서 살인해충 기피제를 꺼내 일행들에게 골고루 뿌려 줬다. 이건 실종자들의 숲에 들어가기 전에 보부상에게서 구입했던 물건으로 벌레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게 해준다.

구입할 때부터 내용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일행들에게 골고루 뿌려주면 금방 동날 것 같았지만, 이런 곳에선 아끼지 말고 뿌리는 게 맞다. 벌레 새끼들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는데 아껴봐야 그게 더 손해지.

“오, 그거 나도 사 왔는데.”

“통했네요.”

체셔도 나와 같은 살인해충 기피제를 주머니에서 꺼내 들며 웃었다. 이미 3층이 어떤 꼴인지 알고 있었던 체셔도 준비해온 모양이었다.

체셔도 똑같은 걸 가지고 있다면 아껴가며 뿌릴 이유가 없다.심지어 3통이나 있어서 나는 더욱더 열심히 벌레 기피제를 뿌렸다. 여분이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 기피제를 뿌려주고 주변에도 칙칙 기피제를 뿌려댔다. 그러자 흡혈파리들과 기타 등등 기분 나쁜 벌레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속도가 느린 구더기나 애벌레 류는 여전히 달라붙은 채로 남아 있었지만 이런 놈들은 느려서 죽이기 쉬우니 대충 털어 내거나 밟아 죽였다.

“우웩...”

그때쯤 아람이는 벽을 붙잡고 구토를 시작했다. 방독면을 껴도 필터를 뚫고 침범하는 역겨운 냄새와 더럽게 생긴 벌레들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진 모양이었다.

“아람아, 이걸로 입 좀 헹궈.”

나는 아람이에게 입을 닦을 수건과 버섯수를 가방에서 꺼내건네주며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려 줬다. 아람이는 3층의 썩은 내와 비위생적인 환경에 속이 좀 많이 안 좋아진 것 같다.

“응.. 고마워. 푸화악!! 우욱.. 시발, 버섯수.. 시발.”

“어.. 미안. 그것밖에 없어서.”

“퉷. 아니야. 괜찮아. 후우. 그런데 이거 너무 맛없어...”

아람이는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버섯수로 다시 입을 헹궜다. 표정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지만 금세 다시 방독면을 껴버려서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아람이가 너무 고생이네...’

아람이는 괜히 나를 따라와서 개고생만 하다가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마기를 흡수하는 것으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긴 한데.. 필요 이상으로 고통받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야 고통받는 게 일상이라 그냥저냥 버틸 만한데 아람이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때 체셔가 아람이에게 건네받은 버섯 수를 들이키며 주의사항을 알려 줬다.

“다들 보다시피 여긴 벌레들이나 쥐 같은 놈들이 위험해. 잘못 물리면 바로 기생충 감염되고 심하면 정체불명의 질병에 걸리기도 하니까. 조심하고.”

설명이 너무 살벌하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1층에서는 저주들이 대부분 나를 피해가서 그런지 저주보다 기생충이나 질병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만약에 여기 어딘가에 알시드들이라도 떼 거지로 모여 있다면 파티가 끝장날 것 같다.

“여기, 하나씩 받아.”

그때 에일라가 품에서 팔찌를 꺼내서 하나씩 건네줬다. 그건 쇠사슬 같은 느낌의 제법 무게가 있는 팔찌였다.

“이건 쥐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줄 거야. 여기의 쥐들은... 떼로 몰려다니거든.”

“오 시발.”

여기 파이프 층의 쥐들은 수백, 수천마리씩 몰려다니며 흘러들어온 생존자들을 공격한단다. 수가 워낙 많아서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는 소리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1층도 그렇고 2층도 그렇고. 암시장의 지하층은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물량공세를 퍼붓는 느낌이다.

“그리고 쥐는 웬만하면 가까이 가지도 말고. 보이는 족족 중장거리에서 몸에 안닿게 죽여야 해. 피부엔 기생진드기부터 온갖 벌레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만에 하나라도 포위되거나 물렸다간 바로 탐색중지하고 거점으로 돌아 가야 하니까 주의하고.”

에일라의 경고에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이 정신 나간 하수구에 사는 쥐들은 뭐 하는 놈들일까. 이런 말도 안되는 환경에 적응한 놈들이니 예사 시궁쥐가 아니겠지. 그때 체셔가 까먹고 있었다는 듯 중요한 내용을 설명해줬다.

“참고로 여긴 암시장의 하수도와 이어져 있어. 1층과 2층은 한번 진입하면 암시장으로 빠져나갈 길이 사실상 없다고 생각해야 하지만 여긴 나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있다는 말이지.”

“그럼 4층에서 체셔의 영혼 조각을 찾으면 여기로 되돌아오면 된다는 소리네요?”

“응응. 4층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 3층을 통해 완전히 지하에서 탈출하는 거지. 약쟁이들의 시체를 따라가다 보면 나올 거야.”

설마 다시 1층까지 기어 올라가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3층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길이 있단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아 참, 가끔 암시장 하수도에서 흘러들어온 약쟁이나 마약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주의하고.”

“네.”

우린 체셔의 주의를 들으며 4층으로 이어진 딥 홀, 일명 깊은 구멍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

체셔의 말에 의하면 3층 파이프 구간에는 오폐수가 모여드는 깊은 구멍이 있다고 한다. 어디로 가든 물줄기만 찾으면 그게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면 된단다.

따라가다 보면 딥 홀에 도달할 수 있는데 깊은 구멍의 한가운데로 뛰어내리면 4층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사, 삼층은 쉬, 쉬어가는 구간 같네요. 헤헤.”

말 없이 묵묵히 나아간지 대략 2시간 반. 케시아가 창을 휘둘러 쥐 새끼들을 쳐 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3층은 방비만 제대로 해 두면 그다지 큰 위협은 없어 보였다.

만약 이런 수단을 챙기지 않은 상태로 들어왔다면 1층이나 2층보다 더 힘들었겠지만.

“물줄기 찾았다.”

“이제 이것만 따라가면 되겠네요.”

한참이나 파이프 관 속에서 물줄기를 찾아 돌아다닌 결과 졸졸졸 어딘가로 흘러가는 오폐수를 발견했다. 거의 5시간 째 물줄기를 못 찾아서 헤맨 것 같다. 그래도 이제 발견했으니 이것만 따라 가면 된다.

우린 슬슬 벌레 기피제의 효과가 끝날 시간이라 잠시 멈춰서서 기피제를 뿌린 다음 다시 이동했다.

­키아아아아!!!!

그때였다. 벌레나 쥐가 우는 소리 말고는 적막만이 감돌던 파이프 층에 괴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설마...”

“설마라뇨?”

“따라온 모양이야.”

“예?”

“케케르를 집어삼킨 주살짐승말이야...”

에일라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 새끼 거울 귀신들이랑 싸우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러게. 왜지? 어떻게 온거야.. 체셔, 뭐 좀 알겠어?”

“아니.. 전혀 모르겠어. 스스로 거울귀신의 낙인을 지워 버린 건가? 아니면.. 아니, 애초에 어떻게 우릴 추적하는 거지? 우리 중에 뭔가 표식이 새겨진 사람도 없었을 텐데. 어... 혹시..”

체셔는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본인이 생각하는가설을 말했다.

“주살짐승은 저주 스택이 9개 이상 쌓이면 주종관계를 뒤집는 생물이야.”

“그렇죠..?”

“그리고 놈은 주인이었던 케케르를 집어삼켰어.”

“그렇다면 서요.”

“그리고 케케르의 주인은 너지.”

“어?”

“놈은 주인의 주인까지 집어삼키려는 거야. 케케르로는 만족을 못한거지. 그래서... 준이 너를 쫓고 있는 거고.”

“무슨 미친..”

체셔의 가설대로라면 지금 거울귀신들을 아무렇지 않게 찢어 버리고 혼자서 3층으로 진입할 정도의 괴물이 나를 뒤쫓고 있단 소리였다.

“좀 더 빨리 이동해야겠다.”

“네. 빠, 빨리 가요!”

놈은 정확히 나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다가왔다. 우린 놈과 마주치기 싫어서 더 빨리 깊은 구멍을 찾아 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흘러내려가는 오폐수의 유속이 점점 더 빨라지더니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법한 파이프가 넓어졌다.

“다 왔어. 이제 뛰어내리면 돼!”

수직갱도마냥 뻥 뚫려 있는 드넓은 공간. 천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래엔소용돌이치며 오폐수를 빨아들이고 있는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더욱이 벽면 곳곳에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 처럼 구멍이 뚫려있었다.

“후욱..”

이제 뛰어내리면 드디어 마지막 4층으로 갈 수 있다. 허나 도무지 저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뛰어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더러운 물이 한 방울이라도 피부에 닿았다간 온갖 피부병이 발병할 것 같았다.

“준아, 괜찮아. 중심으로 뛰어내리면 물에 닿기 전에 바로 이동할 거야.”

“허어... 아니, 체셔. 그런데 도대체 이런 방법으로 4층에 갈 수 있단 걸.. 어떻게 알아낸 거예요.”

“어.. 많은 실험을 해 본 결과라고 할 수 있지. 그럼 나부터 간다!!”

체셔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곧바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체셔!! 오우..”

체셔의 모습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다들 저 중심에 들어가야 해. 빗나가면.. 그대로 그냥 저 똥물에 빠져 죽는 거니까.”

에일라도 재차 경고했다. 정확하게 저 중심으로 떨어지지 못하면 정말로 그냥 끝장인 모양이었다.

“후욱...”

케시아는 심호흡 하더니 체셔를 뒤따라 물줄기의 중심을 향해 뛰어내렸다.

다행히 그녀는 정확히 중심을 향해 뛰어내릴 수 있었고 순식간에 4층으로 이동했다. 끝나지 않는 충동의 효과로 대부분의 것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재능이 생겨서 그런지 뛰어내리는 것도 잘하게 된 모양이다.

하긴 1층에서부터 계속 번지 점프하듯 다음층을 향해 뛰어내렸으니까 이제 잘할 때가 되긴 했지.

“아람아, 할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어. 우리 밑에서 만나자.”

케시아의 모습을 보고 용기가 생겼는지 아람이도 멋있게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으악!!! 르뤼에!!!”

나는 얼른 촉수를 내뿜어 아람이를 붙잡았다. 뛰어내리려는 도중에 발이 미끄러져 중심이 아닌 방향으로 떨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아람이는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과호흡 상태가 된 건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올려 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붙잡았어. 괜찮아.”

“후우. 후우. 후우... 진짜.. 이번엔 진짜 죽을 뻔했네... 하하하. 하하하하...”

사람은 너무 어이가 없거나 허용치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머리가 멍해지거나 웃음이 나오는 법이다. 그래, 반쯤 실성한듯 아람이는 웃었다.

“미안. 이제 실수 안해. 후우.. 다시 갈게.”

다행히 겁에 질리거나 하는 일 없이 아람이는 곧바로 다시 뛰어내렸다. 두 번째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아람이는 정확히 소용돌이의 중심에 안착해 4층으로 이동했다.

“어째된 게 3층은 다른 것보다 여기가 제일 위험한 것 같네요.”

“후후.. 그러게.”

내 의견에 동의한 다는 듯이 에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째 그녀도 살짝 긴장한 것 같다.

“에일라. 제가 봐 드릴 테니까. 먼저 가요.”

“응? 아, 아니야. 괜찮아.”

“됐어요. 위험하면 바로 촉수로 붙잡아 드릴게요.”

“후후후.. 조준은 정말 친절한 아이네.. 고마워. 사실, 나도 조금 무서웠거든. 후우, 조준 네가 봐준다고 하니까 용기가 생기네. 그럼 우리 밑에서 봐.”

“네. 밑에서 봐요.”

에일라는 다행히 첫 시도 만에 정확히 중심으로 뛰어들어 4층으로 갈 수 있었다.

“하아.. 이제 내 차례구나..”

나는 언제든지 촉수를 내뿜어 벽을 붙잡을 수 있게 준비를 한 다음 아래로 뛰어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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