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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4화 (184/221)

〈 184화 〉 183. 너희는 초대 안했는데..?

* * *

창고지기들이 주살짐승의 광역 어그로에 전부 빠져나갔다. 덕분에 조준 일행은 아주 순조롭게 4층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영혼조각을 찾아다닌 그들은 벌써 7시간째 쉬지도 않고 돌아다녔다.

분명 에일라는 이 근처에서 강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워낙 특이하고 요상한 물건들이 많아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끄흡.. 후욱. 후욱...”

한편, 탐색 시간이 점차 길어질 수록 한아람은 점점 더 지쳐 갔다. 이미 악마화가 완전히 진행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일행들을 위해 마기를 흡수하다 보니 몸속에 마기가 너무 많이 쌓여 버린 거다.

그녀는 마기를 너무 많이 들이쉰 나머지 폭주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아무리 데몬 슬레이어인 한아람이라고 해도 무한정 마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명백히 한계란 게 존재했고 그 한계를 넘어선 순간부터는 이성의 끊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더욱이 몸에 쌓여 버린 마기를 제대로 방출하지 못하면 얼마 못 가 폭주할지도 몰랐다. 그리되면 적아군 구분 없이 미쳐 날뛸 수도 있었다.

‘빨리 뭔가 수를 써야 해. 그냥 무작정 스킬이라도 쓰라고 말해야 하나...’

조준은 실시간으로 상태가 나빠지는 아람이를 걱정스레 쳐다 봤다.

‘근처에 창고지기는 없는 것 같으니 바닥을 향해 스킬을 난사하면 몸에 쌓인 마기가 좀 빠지지 않을까..’

이대로 가다간 한아람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질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조준은 체셔에게 허락을 구한 뒤 한아람이 마기를 뿜어낼 수 있게 스킬을 사용하게 시킬 생각을 했다.

“저기, 체셔. 지금 아람이가...”

체셔에게 한아람이 상태가 안 좋으니 스킬을 써서 마기를 빼내보자고 말하려던 찰나, 체셔가 조준을 자기 뒤로 보내며 어둠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퓨웅!

“끄아아아!!!”

무언가 이상하게 생긴 인간 하나가 체셔의 공격에 배가 뚫리며 터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망가진 인간들이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싸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 새끼들은 또 뭐야.”

선반 사이사이에서 기어 나오는 인간 같은 것들. 그건 창고지기의 눈을 피해 곳곳에 숨어 있던 좀비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는 어정쩡한 놈들이었다.

창고지기들이 쫙 빠져나가자 온갖 조무래기들이 다 기어 나온 것이다.

“우웩.”

그들의 끔찍한 몰골에 비위 좋은 케시아마저 헛구역질했다.

그것들은 뭐랄까, 마치 저주를 한 서른개 쯤 얻어맞은 듯한 몰골이었다. 딱 생긴 모양들이 창고지기가 되기 직전의 인간들 같았다.

얼굴이 부풀어 오른 놈이 있는가 하면, 팔다리가 길쭉해진 인간부터 피부가 녹아내린 녀석들까지. 마기와 저주에 중독되어 망가진 찰흙 인형 같은 상태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악마와 계약했다거나 악마들이 뿌려 둔 함정을 건든 자들이었다.

여기서 악마가 뿌려 둔 함정이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가장 크게는 마약상이 판매했었던 ‘쾌락 1004’ 같은 종류의 아이템들이었다.

확실하게 쾌락을 주거나 별다른 노력 없이 힘을 얻게 해주는 식의 어딘가 치트스럽고 조금 이상한 그런 물건들 말이다. 욕심 많고 나태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런 물건에 끌리기 마련이고, 이는 악마들이 펼쳐둔 함정이었다.

그리고 이런 물건들은 암시장뿐만 아니라 보부상을 비롯해 여러 일반적인 상인 NPC들도 판매 중이었다. 뜻밖에 접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악마들이 일방적으로 사기를 치고 다녔다간 난장판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에 분명 아이템 설명 란에 악마와 관련된 물품이라는 설명이 기입되어 있었다. 아니면 경고문을 달아둔 다던 지 분명 구입하기 전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볼 수 있게끔 표시를 해 뒀다.

허나 나태하고 욕심 많은 인간들은 그런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악마가 만든 아이템에 손을 뻗었다.

무상의 힘이나 공짜 쾌락을 준다는 말 앞에서 타락해 버린 거다. 아니, 애초에 폐암에 걸린다며 썩어 문드러진 폐 사진을 표지에 붙여놔도 끝까지 담배를 사는 게 인간이란 족속들이다. 특히나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은 더욱 쉽게 악마의 계략에 빠져들었다.

물론 저들은 아마 자신들이 이렇게까지 극한 상황에 몰릴 줄은 몰랐을 거다. 애초에 이곳에 끌려 들어와 악마들의 노리개가 된 인간들 대부분이 악마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던 플레이어들이니까.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뜻밖에 기연이 찾아왔다는 생각과 더불어 미디어 매체가 만든 ‘착한 악마의 허상’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가령 처음엔 사악했지만 결국, 나중엔 츤츤 거리며 같은 편이 된다거나. 괜히 나쁜 척하지만 실은 착한 악마라거나. 뭐 그런 애니나 서브 컬쳐의 허상들 말이다.

실제 악마는 인간을 가축 이상으로 여기지 않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에 봉변을 당했다고 볼 수 있었다.

‘자업자득이지. 멍청하게 악마의 물건에 손을 댄 머저리 새끼들.’

당연하게도 조준은 저들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멍청한 선택으로 인해 이곳에 끌려온 놈들이다. 동정해 줄 가치도, 필요도 없었다.

조준은 그저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은 놈들이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쿠허억.. 다, 당신들.. 당신들은 나가는 길을 알고 있지!”

“살려 줘!! 제발 살려 줘요!!!”

“으학.. 크헉 커어억...!”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끌려 들어와 농락당하던 인간들은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조준과 그의 일행들을 보곤 도움을 요청했다.

어쩌면 저들이라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서.

“더럽게 생긴 새끼들이..”

허나 그들이 동아줄이라 생각한 조준이란 남자는 인간 사냥에 도가 튼, 악마보다 더한 인간이었다. 인류애는 옛적에 팔아먹은 악인이 바로 조준이다.

그의 사전에 타인이란 노예로 삼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몸과 마음을 바친 하렘 멤버거나 이미 종속된 노예가 아니고서야 조준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으며 쓸모없다고 판단된 인간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 따윈 없었다.

더구나 인종도, 종족도 전부 제각각이지만 이미 망가진 놈들이라 그런지 조준은 저들의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이미 완전히 망가져 버려서 만마에 편입된 상태란 말이었다.

'그렇다면.. 반쯤 하급 악마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겠어. 노예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기도 어정쩡할 것 같고.'

조준은 저들을 구해 줄 생각도 없었고 짐 덩어리를 달고 다닐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모조리 삶이란 지옥에서 해방 시켜주기로 했다.

마침 마기를 뿜어내지 못해 어지럼증을 느끼던 한아람도 있었으니 딱이었다.

“체셔, 아람이한테 저놈들 맡기자.”

“그래?”

“응. 아람이 마기 좀 뿜어내게.”

조준의 말에 체셔는 뒤로 물러섰다. 그사이 아람이는 이미 망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람아, 저놈들 쓸어버려.”

“응!”

훌륭한 대화 수단이 가장 선두에 있던 남자를 향해 휘둘러졌다.

마기를 풀로 충전했기 때문인지 아람이는 평소보다 더 강했고, 그녀의 풀스윙에 직격당한 남자는 그대로 피와 살점이 되어 바닥과 선반에 터진 토마토 마냥 퍼져나갔다.

“끄아악!!”

“이 시발!!!”

도움을 요청하며 다가오던 4층의 생존자들은 아람이가 남자 하나를 무자비 하게 터트려 죽이자 비명을 내지르며 도주하려 했다. 물론 아람이는 그들을 놓칠 생각이 없었고 반쯤 날아 두더지 잡기라도 하듯 내려쳐 으깨버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못생긴 놈들을 신나게 망치로 내려쳐서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은 너무 호쾌한 나머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람이가 사방으로 마기를 뿜어내며 인간이었던 것들을 쳐 죽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체셔가 조심스럽게 아람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아. 후우.”

“좀 어때?”

“좋아요. 아주. 많이.”

아람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답답하던 속이 풀려서 기분이 좀 나아진 듯했다. 그때 체셔의 영혼 조각을 계속 탐지 중이던 에일라가 피육을 밟고서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그럼 대충 정리했으니까 뛰자. 위치를 특정했어. 여기 근처야.. 가까이 있는 것 같아.”

“오!”

에일라는 드디어 체셔의 영혼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잡아냈다. 이제 영혼 추출기로 체셔의 영혼 조각을 서리한 다음 빨리 이곳에서 도주하면 됐다.

­쾅! 쾅!

­쿠구구구궁!!!!

그때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던 선반이 무너져 내리며 도미노 쓰러지듯 개박살 나기 시작했다.

­크아아!!!

­푸확!! 뿌드드득!!

곧 뒤쪽에서 뭔가 부서지고 터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주살짐승과 창고지기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 다는 건.. 아주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뛰어!! 뛰어!!”

“이런 미친!!!”

일행들은 주살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리자마자 달리기 시작한 에일라를 따라 미친듯이 달렸다. 여기서 주살짐승과 창고지기들을 마주치면 영혼 조각을 얻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야!! 저기라고!!”

그때 선두에서 달려가던 에일라가 선반 하나를 손가락질 하며 소리 쳤다. 그녀가 들고 있던 목걸이가 요동치며 한쪽을 미친 듯이 가리켰다.

‘드디어..!’

조준은 점차 가까워지는 주살 짐승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4층에 들어온 이후 시종일관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찌 체셔의 영혼 조각을 찾아냈다. 이제 저걸 가지고 나가면 된다... 분명 그럴 텐데..

‘그런데..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웠는데... 이대로 끝이라고? 네임드 악마가 나올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조준은 불안 했다. 슬슬 뭔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불길한 생각을 떠올린 순간...

­쾅!!!!

“으아!!!!”

“준아!!!!”

“이런 씨발!!!!”

뒤에서 찌그러진 창고지기가 날아왔다. 조준은 직격 당하진 않았지만 휘말려 넘어졌다.

“후와아!!! 주인님!!! 드디어!!! 찾았사와요!!!!!”

피로 물든 주살짐승이 조준를 향해 소리쳤다.

“개 같은...!”

개구리 수인 같은 생김새를 한 나체의 주살짐승. 분명 귀여운 모습이긴 하나.. 어딘가 소름끼쳤다.

“더럽게 끈질긴 새끼...”

조준은 전투를 준비했다. 기왕 마주친 김에 아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그때.

­빰빠밤!!!!

­두구두구두구!!!

기괴한 음악 소리가 4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건 마치.. 뒤틀린 행진곡 같았다.

“이, 이건 또 뭐야..”

조준은 소리가 들려오는 천장을 올려다 봤다. 주살짐승도 이게 뭔가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천장을 올려다 봤다.

그렇게 현장의 모두가 정체불명의 행진곡에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오직 체셔만이 이 소리가 뭔지 눈치챘다.

“서, 설마...”

그녀는 암시장 토박이다. 또한 일행들 중 가장 악마와 자주 접했으며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기 까지 한.. 어찌 보면 악마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음악 소리의 정체를 바로 간파 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재앙의 행진곡을.

왕의 등장을.

“파이몬....”

체셔는 절망했다.

절대 마주쳐선 안 되는 악마 중 하나가 이곳에 현현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지며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특유의 화려하다 못해 기괴하며 뒤틀린 악기 소리는 분명 파이몬의 등장을 알리는 비발과 아발람의 연주였다.

“시, 실패야.. 우린 실패했어.. 다들 정신 차리고 뛰어!!!!!”

체셔의 고함 소리에 에일라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넘어져 있던 조준을 일으켜 세웠다. 곧이어 케시아와 한아람도 행동을 취하려 했다.

허나.

일순 시공간이 멈추며.

암시장 4층의 천장이 갈라졌다.

"젠장.."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이다.

그녀의 예상대로 왕의 첨병들이 나타났다.

승산이 없다. 저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곧 파이몬이 나온다는 소리였으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꽤액!!! 어딜 도망치려는 겁니까!!! 침입자들!!!!]

[시끄럽다 비발. 벌레들이 겁먹지 않나.]

비발과 아발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체셔는 떠올렸다.

원래 재앙은 연달아 터지는 법이란 것을.

그녀는 기적이 일어나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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