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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7화 (187/221)

〈 187화 〉 186. 이제 탈출할 시간이다 (2)

* * *

키시리아의 발차기 한 방에 나가떨어져 빈사 상태에 빠진 주살짐승이 내 앞으로 배송됐다.

“끄아아!!! 찌르지 마시와요!!!”

“닥쳐!!”

역겹게 생긴 케케르와 혐오스럽던 주살짐승의 새끼가 합쳐졌는데 어떻게 이런 귀여운 외모를 가지게 된 걸까.

도무지 무슨 인과관계가 작용한 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패고 싶다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놈의 몸 곳곳을 귀곡도로 찌르고 후벼 팠다.

눈앞에서 20만 코인을 날릴 뻔했는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본전도 제대로 못 뽑아서 속이 아주 안 좋았는데 이놈이거 잘 걸렸다.

“우리도 합세할까?”

“네! 같이 조지죠!”

주위의 동태를 살피던 체셔와 에일라는 아무도 우리를 향해 다가오지 않자 나와 함께 주살짐승을 잡아 팼다.

아무리 키시리아의 공격에 빈사 상태가 된 상태라지만 좀 전까지만 해도 악마 하나와 드잡이 질을 하던 놈이다.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 새대가리 악마와 티격태격 싸울 정도면 적어도 네임드 악마와 비슷한 수준이란 소리니까.

“끄아아아!!!! 그만!!!”

“그만 같은 소리 하네!! 더 패요!!! 봐주지 말고!!!”

발버둥 치는 주살짐승을 후려 패며 움직이지 못하게 내리누르는 체셔와 놈의 몸에 뭔지 모를 뾰족한 검은 보석을 무자비하게 박아 넣는 에일라.

어느 순간부터 나는 뒤로 빠져 응원을 했고 나보다 강한 체셔와 에일라가 주살짐승을 전담 마크했다.

곧 두 사람은 능숙하게 주살짐승을 무력화 시켰다. 에일라가 박아넣은 보석들이 효과를 발휘한 건지 주살짐승은 바르르 떨며 기다란 혀를 내빼고선 정신을 못 차렸다.

“저주가 안 통하면 마력을 차단시키면 되지. 대충 손질 끝났으니 빨리 굴복시키고 나가자.”

“예!”

에일라는 손을 탁탁 털며 체셔와 다시 경계모드에 들어갔다.

우리가 제법 멀어져서 그런지 키시리아는 자기 주변을 초토화 시키며 날뛰고 있었고 아발람은 팔한쪽이 잘려 나간 상태로 파이몬인지 뭔지를 미친 듯이 부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봤을 때 저 악마 새끼들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 같다.

“후우.”

나는 대용량 가방에서 꺼낸 소방용 도끼로 주살짐승의 왼팔을 내려쳤다.

­빠자작!!!!

“끄아아아아!!!!!!!”

잘려 나간 팔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주살짐승 특유의 정신 나간 회복력으로 다시 단면끼리 달라붙어 재생될 게 뻔했기 때문에 잘린 팔을 곧바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다음 피가 뿜어져 나오는 놈의 상처를 차오르는 살점을 사용해 억지로 틀어막았다. 그러자 주살짐승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아악!!! 아아아아아!!! 그, 그만하란 거시와요호옹!!!”

“그만하고 싶으면 네가 빨리 굴복해!!! 나의 노예가 되란 말이다!!!”

“싫어!! 노예만큼은 싫사와요!! 제발!!! 이제 안 쫓아다닐 테니까!!!”

“안 쫓아 다니는게 문제가 아니야!! 이 개쌍년아!!! 굴복하기 싫으면 20만 코인이라도 뱉어내!!!”

“에에에? 20만 코인??? 그런 거 본녀는 없사와요!!!”

“그러니까 그냥 몸으로 때우라고!!!”

­콰자작!!!

“끼아아아아!!! 내 오른팔!!! 미친 인간!!! 그만두란 거시와요!!”

이 새끼 도무지 굴복할 생각을 안 한다. 확김에 사지를 다 썰어 버렸는데도 아프다고 고함만 지를 뿐 굴복하지를 않으니, 고통으로는 이 놈을 굴복시킬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거 아쉽지만 그냥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다.

‘참수밖에 답이 없어...’

이때까지 이놈을 참수하지 않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지금의 주살짐승은 케케르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에서 주살짐승의 모가지를 썰어 버린다면 주살짐승의 새끼는 다시 얻을 수 있겠지만 흡수합병 되어 버린 케케르는 그대로 안녕이다.

그럼 케케르의 값만큼 내가 손해를 보게 되는 거다. 그게 싫어서 살린 채로 굴복시키고 싶었는데... 이놈이 나에게 굴복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냥 죽여야겠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도 없고. 애초에 낭비할 시간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러니 빠르게 놈의 목을 베어 죽인 다음 배를 갈라 주살짐승의 새끼라도 챙겨서 도주해야겠다.

“후우..”

“자, 잠깐..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소방용 도끼를 목에 가져다 대고서 위치를 잡았다. 그다음 도끼를 들어 올려 내려치기 좋은 자세를 잡고서 단숨에 목을 썰어버릴 준비를 했다.

“자, 잠깐?! 정말? 정말로 죽일 생각!!!??”

“참수.”

“끼아아아!!! 이런!!! 야만적인!!!”

“사람 처먹겠다는 년이 더 야만적이지!! 그냥 곱게 뒤져!! 이제 우리 도망가야 해!! 너랑 놀아 줄 시간이 없어요!!”

“자, 잠깐!!!! 싫어!!! 다시 멍청한 유체가 되는 건 싫어!!! 버러지 새끼로 살고 싶지 않아. 흐어엉...!! 구, 굴복하겠사와요!! 그러니까 제발.. 이대로 나를 남겨 주셔요...”

팔다리를 잃고 발버둥 치던 주살짐승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나에게 굴복했다. 나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약해빠지고 자아도 옅었던 주살짐승의 새끼로 되돌아가는 게 더 싫었던 모양이다.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흐으윽.. 흐윽..”

“후우....”

나는 얼른 주살짐승의 이마에 노예낙인을 새겨 넣었다. 다리가 잘리긴 했지만 무릎 아래를 날려버린 거라 어정쩡하게나마 무릎을 꿇을 수는 있었다.

­치이이익...!!

“읏...”

그런데 이거 평소와는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저주를 무효화하는 놈이라 그런지 노예낙인을 박아넣자 거부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허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낙인을 새겼다.

“후우.. 됐다.”

겨우 주살짐승을 노예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랩을 하듯 놈에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3가지 규칙을 명령했다. 자해금지, 배신금지, 팀킬금지.

“흐으윽... 젠장.. 젠장.. 알겠사와요.. 지키겠사와요..”

주살짐승은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밀렵꾼에게서 구입했던 ‘주살짐승의 새끼’와 피의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내 스킬로 성체 주살짐승을 노예삼은 것이라 이놈을 주살짐승의 새끼처럼 액막이 부적으로는 써먹을 수 없다.

하지만 주살짐승의 새끼가 제대로 걷지도 못했었던 것에 비해 훨씬 기동성이 좋아졌고, 지능도 케케르를 흡수해서 그런지 상당히 높아졌으며, 몸뚱이도 튼튼한 것이 심지어 전투력도 거의 악마 급이니 주살짐승의 새끼일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써먹기 좋다고 볼 수 있었다.

­쿠구구궁...!!!

그때 창고가 흔들리며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진짜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빨리 나가자! 케시아!! 네가 이 새끼 업어!!”

“네, 네!!”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간 주살짐승에게 다시 팔다리를 붙여주고 치료해 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지하여정에서 제일 한 일이 없었던 케시아에게 주살짐승을 맡겼다. 케시아는 자신의 등에 주살짐승을 밧줄로 묶었다.

“저쪽이야!!”

“오케이!!”

에일라가 나침반을 들고서 선두로 나아갔다.

참고로 저건 전율저택을 들어가기 전에 보부상에게서 구입했던 위상지정 나침반이다. 암시장 지하층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길잡이인 에일라에게 넘겨 줬던 건데, 그녀가 미리 우리가 들어왔던 장소를 입력해둔 모양이었다.

­쿠구구궁!!!

“준아!!”

“예!! 체셔!!”

“지주님 저대로 두고 가도 돼?”

“예!! 그냥 지 알아서 돌아갈 겁니다!! 아니, 그런데 체셔!!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겁니까!! 우리부터 빨리 살아야죠!!”

“어, 어!! 그치!!”

창고지기들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고, 우리도 덩달아 무너지기 시작한 창고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다 왔어!! 여기야!! 체셔!! 그거 꺼내!”

“아, 잠시만!”

에일라가 탈출지점에 도착했음을 알리자 체셔가 품에서 그래플링 훅을 꺼내더니 천장을 향해 쐈다. 곧 끝도 없이 솟구쳐 올라가던 밧줄이 무언가에 걸려 팽팽해졌고, 체셔는 줄을 몇 번 팡팡 당겨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확실하게 고정됐으니까, 이제 나가자!”

“오오!!”

아람이는 드디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망치가 상당히 무거워 보였지만, 여기까지 오며 마기를 가득 충전해 둔 상태라 그런지 굉장히 가볍게 위로 쭉쭉 올라갔다.

아람이 다음으로는 케시아가 밧줄을 타고 올랐다. 그녀는 등에 주살짐승을 매단 채로 능숙하게 위로 올랐다.

“준아, 어서 올라가.”

“예, 다들 정말 고생했어요. 위에서 만나죠!”

“그래!!”

나는 케시아를 뒤따라 위로 올라갔다. 뭔가가 폭발하는 굉음과 악마의 비명 소리, 키시리아의 광소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암시장의 지하 4층은 개박살 나기 시작했다. 키시리아는 이참에 악마들의 병참기지를 아주 못 쓰게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존나 즐거워하고 있어...’

키시리아가 행복해하는 감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때까지는 소통하거나 불러낼 때마다 툴툴거리고 항상 날이 서 있었는데... 지금은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벌써 3분은 진즉에 지났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과율을 이번 일에 갈아 넣은 걸까...’

모르겠다. 모든 페널티를 홀로 감당 중이니 나로서는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인디크론이 인과율을 내주고 있는 느낌이긴 한데...’

나중에 나가면 인디크론에게 공양 좀 넉넉히 해 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대략 4분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밧줄을 타고 계속 올라가자 순간 몸이 붕 뜨며 나는 다른 공간으로 날려졌다.

­쿠당탕.

“으윽.. 엉덩이..”

“준아! 왔구나! 자, 어서 일어나.”

“어. 땡큐.”

나는 아람이의 손을 잡고서 벌떡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더럽고 눅눅한 지하 3층의 파이프 구간이었다. 층을 이동해서 그런지 더 이상 키시리아의 감정이 공유되지 않았다.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하니까. 굳이 내가 챙겨 주지 않아도 때 되면 제 발로 돌아갈 거 같다.

“후우..”

“읏챠!”

곧이어 에일라와 체셔도 3층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나처럼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착지했다.

“이제 약쟁이 소굴로 이어진 길을 찾으면 돼. 죽은 약쟁이들의 시체나 좀비를 발견하면 찾기 쉬울 거야.”

버려진 시체들이 흘러들어오는 구멍을 찾아 빠져나가면 된단다. 우린 행여나 좀비의 울음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침묵을 유지하며 파이프 구간을 걸어 나갔다.

******

[커헉...]

아발람은 사지를 결박당한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 키시리아는 곧바로 그를 죽이지 않고 그의 몸에 무언가를 새겨 넣었다.

실시간으로 영혼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되는 감각을 느끼던 아발람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키시리아를 향해 죽기 살기로 소리쳤다.

[크으윽.. 크아아아!!! 네놈!!! 주군께서 널 감히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아발람은 어째선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신의 주인을 들먹였다. 악마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의 위세를 빌려 키시리아를 겁박해 보려 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지만.

[뭐라? 키시시싯... 웃기는군. 버림 패 주제에.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나?]

오히려 키시리아는 아발람을 비웃으며 버림 패라고 조롱했다.

[뭐, 뭐라고? 내가 버림패라고!!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위대하신 상왕의 오른팔이며!! 파이몬님의 충실한 종복이자!! 그분의 유일한...!! 유일한... 유일한...]

키시리아가 내뱉은 잔혹한 진실에 아발람은 거부 반응을 보이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허나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아발람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파이몬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버려진 줄도 모르고 제 주인을 기다리는 꼴이 마치 주인 잃은 개새끼 같구나.]

[크으윽...]

[자, 키싯.. 슬슬 밑작업이 끝났군. 그럼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의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해 주마.. 키시시싯..]

키시리아는 손을 휘저어 주박궁전과 연결된 관문을 만들었다.

[아, 안 돼!! 잠깐 기다려!! 제발!! 으아아!!! 제발 살려주세요!! 저리 꺼져!! 내 몸에 알을 낳지 말란 말이다!! 으아!!!]

아발람은 비명 소리만을 남긴 채 심연독충들이 우글거리는 관문 너머로 끌려갔다.

곧 모두가 사라지자 관문은 자동으로 무너져 내리며 심연을 내뿜었다. 그렇게 암시장의 지하 4층은 폐쇄되고 말았다.

이에 창고에 귀중품을 보관 중이던 몇몇 악마들은 오열했고,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본 수많은 악마들이 파이몬을 향해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왜 부하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이 사달을 일으켰냐고.

왜 얌전히 물건 하나 찾아서 나가려던 애들을 건드려 악몽을 불러왔냐고.

파이몬은 그들의 질타를 무시했다.

그는 그저 멍하니 얼굴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하아... 빌어먹을 놈들. 같잖은 것들이 기회다 싶으니 득달 같이 달려드는 군. 후우.. 이 일을 어쩌면 좋지...]

그렇게 한참이나 고뇌하던 파이몬은 사역마의 등에서 악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꺼냈다. 그러곤 또 한참을 고심했다.

[선신들에게 붙는 수밖에.. 없나.]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의 정체는 금간 앙크.

나락의 밑바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이자, 용사 니콜라스의 동료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물건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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